고영민의 가계저주론 비판
가계저주론은 사적으로 푼 해석으로 신비주의 신앙 부추겨
기독교 서점에서 장안의 지가를 한층 높여주고 있는 화제작들 가운데
‘가계에 흐르는 저주’라는 제목이 붙은 책들이 있다.
이와 비슷한 내용을 다룬 책들도 역시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 책들의 요지는 “조상이 범죄한 결과로 온갖 저주와 재앙이
집안마다 다르게 대물림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알콜 중독이나 도박, 이혼 또는 당뇨병이나
고혈압과 같은 성인병 등으로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지를 뒷받침하기 위하여 저자들은 신,구약에 나타난 여러가지 사례들과
역사적으로 입증된 몇 가지 실례들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헤롯 가문의 저주와 아브라함의 축복, 욥의 재앙과 레갑 족속의 신앙 등을
차례로 열거한 후 저주의 행위들과 축복의 행위들이 무엇인가를 상세히 소개하고
조상의 저주를 끊는 기도문으로 마무리를 짓고 있다.
그런데 얼마 전 몇몇 기독교 단체들이 그러한 주장이 성경에 전혀 부합되지 않은
“사사로이 푼 해석”에 지나지 않는다는 주장과 함께 그 신학적인 위험성에
경종을 울리고 나섰다.
그렇다면 조상이나 부모가 지은 죄가 그 자손들에게 저주나 형벌로
대물림을 하게 되는 것일까?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끊어야만 산다는 것은 성경적으로 타당한 주장인가?
이 난제적인 질문에 대한 최선의 해결책은
역시 성경에서 그 답변을 구하는 일일 것이다.
1) 아담이 지은 죄는 후손들에게 그 효력이 이어지는가?
아담이 지은 죄의 효력이 후손에게 계속 이어지는 것을 죄의 전가라고 부른다.
전가론에 의하면 “아담의 범죄는 직접적으로, 즉각적으로 그 후손에게 전가되었으며,
그 결과로 인간성은 타락되었고 죽음이 찾아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즉 아담은 전 인류 안에 존재하였으며, 아담이 범죄했을 때 인류는 범죄하였고
아담이 타락했을 때 인류도 타락하였다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5장(12~21절)에서 아담의 범죄와 그 후손에게 미친 결과에 대해
구원사적으로 설명해 주고 있다.
루터에 의하면 우리는 “아담으로부터 계승된 내재적인 죄 때문에
하나님에 의해 정죄를 받는다”고 하였다.
칼빈도 비슷하게 설명하기를, “아담은 인류의 조상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 뿌리였기 때문에 그의 모든 후손들은 부패한 성질을 가지고 출생한다”고 하였다.
또한 “아담의 죄의 허물과 그들 자신의 타고난 부패는 그들에게 죄로 전가된다”고 하였다.
이러한 전가론에 대해 강력히 반대하는 견해들도 적지 않았다.
그들에 의하면 아담의 죄가 그 자신 이외의 어떤 사람에게 전가되었다는 것은
신적인 공의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현대 자유주의 신학은 세상에 있는 악을
“그 자체가 죄악이 아닌 동물적인 유전질”에서 설명하려 하고 있다.
악은 범죄의 결과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동물적으로 유전되었다는 것이다.
죄의 전가 범위를 확대해석해 오히려 신적인 권위에 위배
조상의 죄의 결과 아닌 부패한 인간에게는 자연적인 현상
아담의 범죄가 그 후손들에게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세 가지 이론으로 설명되고 있다.
첫째, 실재론인데 인간성이 단일한 단위로 구성되어져 있다고 보는 견해이다.
이 이론에 의하면 아담은 전체 인간성을 소유하였으며, 또한 아담 안에서
그 전체 인간성은 그 자체의 자발적인 배신행위로 말미암아 스스로 타락하였다.
개인들은 구별된 실체들이 아니라 동일한 일반적 실체들이다.
그것들은 수적으로 하나이다.
이 보편적인 인간성은 아담 안에서 부패하고 범죄하게 되었으며
그 결과는 동일하게 후손에게 이어졌다.
이 이론은 아담의 후손들이 어떻게 해서 그 조상의 죄를 이어받게 되었는지를
충분히 설명해주지 못하고 있다.
둘째, 행위 언약론인데 아담이 그의 후손들과 이중적 관계 즉 모든 인류의
자연적 대표자와 행위언약적 대표자로서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이론이다.
아담은 그의 자연적 관계에서 모든 인류의 아버지였고 그가 범죄함으로써
그 후손에게 타락과 형벌을 가져다주게 되었다.
또한 아담은 인류의 언약적 대표자였기 때문에 그의 불순종은
그의 모든 자손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하나님은 그의 의로우신 심판에 있어서 언약의 우두머리에 의해 저질러진
첫 범죄의 허물을 언약적으로 관계된 모든 자들에게 전가시키고 있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타락되고 죄악된 상태로 태어나며 이 선천적인 부패는
역시 오염까지 포함하고 있다.
이 이론은 어떻게 아담의 첫 범죄만이 우리에게 전가되는가와
그리스도가 무죄하신 분인가를 설명해주고 있다.
그리스도는 인간적인 인격이 아니셨으므로 행위 언약에 들지 않으셨으며
따라서 죄가 없으신 분이셨다.
셋째, 간접적 전가론인데, 아담의 후손들은 자연적인 출생의 과정에 의해 본래적인 타락에
예속되며 그들도 아담이 범한 것과 똑같은 죄를 지은 것으로 간주된다는 이론이다.
그들이 아담 안에서 범죄하였기 때문에 부패성을 가지고 태어난 것이 아니라
그들이 타락하기 때문에 범죄한 것으로 간주된다는 것이다.
이 이론은 아담의 후손들에게 그의 범죄가 효력을 미치게 되었다는데 대한
객관적인 법적 근거를 제시해주지 못하고 있다.
아담의 범죄가 그 후손들에게 저주와 형벌을 가져다주었다면 아담 이후의
조상들이 지은 범죄도 그 후손들에게 똑같은 결과를 가져다주는가?
2) 아담 이후의 조상들이 지은 죄는 후손들에게 어떤 결과를 낳게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해 소위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주장하는 자들은 다음과 같은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첫째, 조상들이 지은 죄에 대한 대가는 반드시 후손들에게 치루어진다.
이 사실을 뒷받침하기 위해 노스 다코다 주의 멜빈과 아네트 부부가
자신들의 땅에 임했던 저주에 대한 간증이 소개되고 있다.
멜빈 부부는 가족 농장을 사서 그곳으로 이주하여 살았는데
온갖 시련과 역경이 계속적으로 찾아오는 것이었다.
채무, 가뭄, 광엽 등대풀, 기형아 출산, 가축값 폭락 등 이루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그들은 기도하는 중에 성령의 음성을 들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자신들의 저주가
그 땅에서 원주민 인디언들이 우상숭배를 했기 때문임을 깨달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들은 계속하여 금식기도를 드렸는데, 잡초가 메말라가고 가축들도 다 잘 자라나서
결국에는 풍성한 수확을 거두게 되었다고 한다. 이 경우는 조상들이 아닌,
그 땅에 거주했던 사람의 죄까지도 후대에 이어지는 것으로 되어있다.
둘째, 조상들이 지은 죄의 결과는 여러가지 재앙과 형벌로 나타난다.
구체적으로 나타나는 것들로는 가뭄이나 흉년과 같은 자연적인 재해들, 두통이나
복부 통증, 관절염, 등허리 통증, 암, 심장병, 눈과 귀 질병, 천식과 감기 등의
육체적인 질병들 그리고 정신 이상이나 불안 공포증, 두려움, 신경 쇠약,
열등감과 같은 정신적인 질병들이 있다고 한다.
더욱이 어리석음이나 부정적 자아상, 가난, 정직치 못함, 겁이 많은 것, 이기심,
탐욕, 슬픔, 비천함, 증오, 열등감, 정죄, 수줍음 등과 같은 정서적인 불안정을
조상들의 죄에서 비롯된 형벌로 간주되고 있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그 목록들에는 간음이나 신앙생활 중단, 불면증, 중독,
믿음 부족 등과 같은 것들도 포함되어져 있다는 사실이다.
질병·재난, 죄의 인과응보적인 결과 아니다.
셋째, 조상들이 행했던 선행들은 그 후손에게 보상되어진다.
인과응보의 법칙에 따라 선을 행한 자의 후손에게는 상급과 칭찬이,
악을 행한 자의 후손에게는 형벌과 저주가 임한다는 것이다.
전자의 실예로는 욥과 레갑 족속, 요아스 왕이 그리고 후자의 실예로는
아간과 헤롯 왕가, 에서, 아합, 여호람 등이 소개되고 있다.
넷째, 믿음의 조상이 축복하거나 저주한 것은 후대에 그대로 이루어진다.
이에 대한 성경적 근거로는
창세기 12장 3절(“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이 인용되고 있다.
또한 하나님께서 이미 축복하신 것을 사람이 저주할 수 없으며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가 누릴 축복이라고 말하고 있다.
히키 사모는 두 번이나 심각한 신경쇠약으로 쓰러졌던 자신의 친정아버지의 경우를
실예로 들고 있다. 저자는 자신에게도 임하려고 했던 저주의 사슬을 끊어버림으로써
문제를 해결했었음을 간증하고 있다.
다섯째, 모든 형벌과 저주의 배후에는 마귀의 역사가 있고
믿음의 기도로 그것을 중지시킬 수 있다.
저자는 저주의 사건이 있을 때마다 그 배후에 마귀의 세력이 있음을 강조하고 있고
하나님이나 예수님의 도우심을 힘입어 그것을 물리침으로써
정상을 되찾을 수 있었다고 회고하고 있다.
그리고 마귀나 하나님을 마치 면전에서 만난 듯 대화하거나 그 음성을 듣고 있다.
그는 책 말미에 조상의 저주를 끊는 기도문을 싣고 있다.
“지난날 우리 조상들이 무지로 인해서, 호기심 때문에 혹은 목적을 가지고
사단을 섬겼나이다. 이제 이것이 죄라는 사실을 깨닫고 회개하오니
우리 조상들이 주술적 죄악을 지어 주술과 점술이 우리 집 가계 혈통을 따라
내려오게 한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대대로 이어져 온 미혹의 영들에게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지금 떠나갈지어다! 사단아 내가 예수의 이름으로 너를 꾸짖노라.
우리 옛 조상들이 너를 섬김으로 인해서 악한 세력에 눌렸었는데
이제는 너에게 열어놓은 모든 문들을 닫아버리노라….”
3)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끊어야 사는가?
어느 날 예수님과 제자들이 길을 걸어가고 있었을 때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을 만난 적이 있었다.
그 때 제자들이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이오니이까 자기오니이까
그 부모오니이까”라고 물어 보았다.
그 때 예수님께서는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고 대답하셨다(요 9:1~12).
당시 유대인들은 인간의 모든 불행과 고통의 원인은 자신이나 조상이 지은
죄에 대한 인과응보적인 결과라는 생각을 지니고 있었다.
하나님께서 아비의 죄를 자식에게 보응하여 삼, 사대에 이르게 한다는 사상이
십계명에 내포되어 있으며(출 20:5) 고통이 죄에 대한 하나님의 형벌로 인하여
온다는 견해는 구약성경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출 34:7, 민 14:18,33, 렘 32:18).
대부분의 랍비들도 고난과 죽음이 범죄의 결과라는 사실에는 생각을 같이 하였다.
그러나 성경은 질병이나 고난이
자신이나 조상의 범죄의 결과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제시하고 있다.
욥의 경우는 그가 하나님을 더욱 분명하게 알도록 하기 위해 질병이 주어졌으며(욥 42:5,6),
바울의 경우는 너무 자고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육체의 가시가 주어졌다(고후 12:7).
나사로의 병 역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주어진 것이었다(요 11:4).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의 일반적인 통념과는 전혀 다른 각도에서 이 문제를 설명하셨다.
그는 빌라도가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저희의 제물에 섞었다는 말을 전해 들으시고는,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같이 해 받음으로써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눅 13:1~5)고 말씀하셨다.
말하자면 그들이 처참하게 죽은 것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죄를 지었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예수 십자가의 공로로 저주와 형벌로부터 자유함 얻어
질병의 원인은 유전자가 자녀들에게 생리적으로 옮겨져
에스겔서(18:20)는 범죄에 대한 개인의 책임을 강조하고 있는데 부모 혹은
본인의 죄책 중 양자 택일을 강요하는 논리의 부당성을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요컨데 조상의 범죄가 후손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하여
우리는 다음과 같은 성경적인 결론을 맺을 수 있다.
첫째, 오직 아담의 범죄만이 후손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아담이 범죄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죽음과 땀의 수고와 해산의 고통을
선고하셨고 땅은 저주를 받아 가시와 엉겅퀴를 내게 되었다.
아담은 인류의 언약적인 대표자였기 때문에 그의 범죄의 결과는 대대로
그 후손들에게 이어지게 되었다.
말하자면 우리들에게 찾아오는 온갖 질병과 재난과 형벌은 우리 조상들의
죄 때문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아담 때부터 이어져 내려온 유전적인 죄 때문이다.
“아비의 죄를 삼, 사대에 이르게 한다”는 것은 문자적으로 이해해야할 것이 아니라
죄의 심각성을 강조하는 표현으로 이해해야만 할 것이다.
만일 후손들에게 아무런 재난이나 고통이 찾아오지 않는다면
그것은 조상들이 죄를 짓지 않았다는 것이 될 것이다.
둘째, 조상들의 질병이나 불행은 그 후손들에게 생리적, 환경적인 영향을 미치게 할 수 있다.
오늘날 현대의학은 각종 질병의 유전자가 그 자녀들에게 생리적으로
옮겨진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있다. 예를 들면 누군가에게 암이나 심장병, 비만 등이
있다면 그것은 부모나 친척들에게서 비슷한 유전자를 물려받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 폐결핵이나 간 질환 등은 한 집안에서 공동생활을 함으로써 자연적으로 전염되어
나타날 수도 있다.
그리고 한 가정의 교육적인 분위기나 신앙적인 상태가 그 자녀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어 그것이 마치 조상들의 죄 때문인 것처럼 오해될 수도 있다.
셋째, 사람들의 질병이나 재난 등은 죄에 대한 인과응보적인 결과만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로 성도의 믿음을 연단시키거나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도록 하기 위해
온갖 질병이나 재난 등을 허락하실 때가 있다.
인간의 불행은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기회가 될 수 있다.
넷째, 인간의 불행이나 저주는 어떤 인간적인 노력에 의해 중지되어질 수 없다.
더욱이 저주를 끊는 기도문을 외운다고 해서 해결되어질 수 없다.
마귀나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는 것은 신비적인 오류에 빠져들게 될 위험성이 있다.
믿는 성도는 십자가의 공로로 말미암아 아담의 범죄로 인한 모든 저주와
형벌로부터 완전히 자유함을 얻었다.
이제 우리들에게 주어진 과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감사하면서
그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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