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詩 같은 삶을 위하여

☞ 문학의 뜨락149

김삿갓 시 모음 김삿갓(1807~1863) 본명은 병연(炳淵), 삿갓을 쓰고 다녀 흔히 김삿갓 또는 김립(金笠)이라고 부른다. 그의 조상은 19세기에 들어와 권력을 온통 휘어잡은 안동 김씨와 한 집안이었다. 그의 할아버지는 익순(益淳)이요, 그의 아버지는 안근(安根)이다. 자신의 조부를 조롱하는 시로 장원급제를 했다. 김삿갓 시 모음 ◈ 自顧偶吟-나를 돌아보며 우연히 짓다 笑仰蒼穹坐可超(소앙창궁좌가초)-푸른 하늘 웃으며 쳐다보니 마음이 편안하건만 回思世路更초초(회사세로경초초)-세상길 돌이켜 생각하면 다시금 아득해지네. 居貧每受家人謫(거빈매수가인적)-가난하게 산다고 집사람에게 핀잔 받고 亂飮多逢市女嘲(난음다봉시녀조)-제멋대로 술 마신다고 시중 여인들에게 놀림 받네. 萬事付看花散日(만사부간화산일)-세상만사를 흩어지는 꽃같이.. 2023. 8. 5.
자모사(慈母詞) 1~ 40수 - 정인보 자모사(慈母詞) 1~ 40수 / 정인보 1 가을은 그 가을이 바람불고 잎 드는데 가신 님 어이하여 돌오실 줄 모르는가 살뜰히 기르신 아이 옷 품 준 줄 아소서 2 부른 배 골리보고 나은 얼굴 병만 여겨 하루도 열두 시로 곧 어떨까 하시더니 밤송인 쭉으렁*인 채 그지 달려 삽내다 3 동창에 해는 뜨나 님 계실 때 아니로다 이 설움 오늘날을 알았드면 저즘미리 먹은 맘 다 된다기로 앞 떠날 줄 있으리 4 차마 님의 낯을 흙으로 가리단 말 우굿이* 어겼으니 무정할 손 추초(秋草)로다 밤 이여 꿈에 뵈오니 편안이나 하신가 5 반갑던 님의 글월 설움될 줄 알았으리 줄줄이 흐르는 정 상기 아니 말랐도다 받들어 낯에 대이니 배이는* 듯하여라 6 므가나* 나를 고히 보심 생각하면 되 서워라 내 양자(樣子)* 그대로를 님.. 2023. 5. 8.
홍해리 시 모음 홍해리 시인(1942). 청주. 고려대 영문과. 1969년 시집 『투망도投網圖』 출간하며 등단. 시집으로 『황금감옥』『독종』『금강초롱』『치매행』『매화에 이르는 길』 외 다수. 시선집 『洪海里 詩選』『비타민 詩』『시인이여 詩人이여』『洪海里는 어디 있는가』 도서출판 움 대표, 월간《우리詩》편집인. 홍해리 시 모음 ▶ 치매행致梅行 아내는 어린아이가 되었습니다 내가 밖에 나갈라 치면 어느 새 먼저 문밖에 나가 있습니다 억지로 떼어놓고 외출을 하면 왜 안 와? 언제 와? 늘 똑같은 두 마디 전화기 안에서 계속 울고 있습니다. 내가 자기를 낳은 어미도 아니고 아버지도 아닌데 한평생 살 비벼 새끼 낳고 기른 죄 많은 지아비라서 나는 나이 든 아기의 아빠가 되었습니다 오늘도 내 사랑하는 아가는 내게 매달려 한마디 말은.. 2023. 3. 8.
이병기 시조 모음 이병기(李秉岐.가람(嘉藍) 시조시인, 1891~1968. 전북 익산.1913년 한성사범학교 졸업, 남양, 전주제2, 여산공립보통학교 교사.1930년 이후 한글맞춤법통일단 제정위원과 조선어표준어사정위원으로 활동하다가1942년 조선어학회사건으로 피검되었다.(1943년 출감)단국대, 동국대, 국민대, 숙명여대, 서울대 교수,1952년 전북대학교 문리과대학 학장 역임.     이병기 시조 모음     ▶ 난초1한 손에 책을 들고 조오다 선뜻 깨니드는 볕 비껴가고 서늘바람 일어 오고난초는 두어 봉오리 바야흐로 벌어라   2새로 난 난초잎을 바람이 휘젓는다.깊이 잠이나 들어 모르면 모르려니와눈뜨고 꺾이는 양을 차마 어찌 보리아.   산듯한 아침볕이 발틈에 비쳐 들고난초 향기는 물밀 듯 밀어오다잠신들 이 곁에 두.. 2023. 1. 27.
눈풀꽃 - 루이스 글릭 눈풀꽃 - 루이스 글릭(2020노벨문학상 수상) 내가 어떠했는지, 어떻게 살았는지 아는가 절망이 무엇인지 안다면 당신은 분명 겨울의 의미를 이해할 것이다 나 자신이 살아남으리라고 기대하지 않았었다 대지가 나를 내리눌렀기에 내가 다시 깨어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었다. 축축한 흙속에서 내 몸이 다시 반응하는 걸 느끼리라고는. 그토록 긴 시간이 흐른 후 가장 이른 봄의 차가운 빛 속에서 다시 자신을 여는 법을 기억해 내면서. 나는 지금 두려운가. 그렇다, 하지만 당신과 함께 외친다. ‘좋아, 기쁨에 모험을 걸자.’ 새로운 세상의 살을 에는 바람 속에서. 2022. 12. 15.
김제현 시조 모음 김제현 시조시인(1939, 전남 장흥) 경희대학교 국문과, 한양대학교 대학원. 2002.~ 경기대 교육대학원장 196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입선, 1962년 현대문학 등단, 중앙일보 시조대상, 제2회 월하시조문학상, 홍조근정훈장, 한국시조대상 김제현 시조 모음 ▶ 후일담後日談 한 평생 가난에 찌든 울엄니 징한 시상* "살다보면 살아진다"시고 "숨만 자주 쉬니 살더라"시는 엄니들 웃음 띤 후일담 오, 먹먹한 오도송悟道頌이여 ▶ 정통 트롯을 듣다 흥이 많은 민족이라 한恨도 그리 깊던가 한 소절 한 시절을 울먹이는 노래여 너보다 내가 먼저 운다 아파서 그리워서 ▶ 우물 안 개구리 암록색 무당개구리 우물 안에서 산다. 바깥세상 나가봐야 패대기쳐져 죽을 목숨 온전히 보존키 위해 우물 안에서 산다. 짝 짓고 알 슬.. 2022. 11. 7.
노산 이은상(李殷相) 시(시조) 모음 노산 이은상(李殷相, 1903~1982). 시인. 시조시인, 경남 마산. 연희전문학교, 와세다대학교 졸. 서울대학교·영남대학교 교수 대한민족문화협회장·한국시조작가협회장· 등 역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투옥. 국민훈장 무궁화장. 금관문화훈장 수훈 이은상(李殷相) 시(시조) 모음 ▶ 진달래 수집어 수집어서 다 못타는 연분홍이 부끄러워 부끄러워 바위틈에 숨어 피다 그나마 남이 볼세라 고대 지고 말더라 ▶ 개나리 매화꽃 졌다 하신 편지를 받자옵고 개나리 한창이라 대답을 보내었소 둘이 다 봄이란 말은, 차마 쓰기 어려워서 ▶ 성불사의 밤 성불사 깊은 밤에 그윽한 풍경 소리, 주승은 잠이 들고 객이 홀로 듣는구나. 저 손아 마저 잠들어 혼자 울게 하여라. 뎅그렁 울릴 때면 더 울릴까 맘 졸.. 2022. 10. 24.
하정 최순향 시조(시) 모음 최순향(崔順香,1946∼) 경북 포항, 시조시인. 숙명여대 졸업, 1997년 계간 『시조생활』로 등단. 시조집 『옷이 자랐다』, 『Happy Evening』, 『아직도 설레이는』 등. 국제PEN한국본부 시조문학상, 한국문협작가상, 시천시조문학상 등 수상. 하정 최순향 시조(시) 모음 ▶ 낙엽1 가을 숲 빈 의자에 내려앉은 소식 하나 형용사 하나 없이 느낌표와 말없음표 하늘이 그리 곱던 날 내가 받은 옆서 한 장 ▶ 낙엽2 눈부시게 차려 입고 춤추듯 떠나가네 이승을 하직하는 가뿐한 저 발걸음 언젠가 나 떠나는 날도 저랬으면 좋겠네 ▶ 인생 비옥한 잡초밭이 내 안에 있습니다 아침마다 뽑아내도 자고나면 무성하고 잡초만 뽑다키우다 한 생애가 갑니다. ▶ 섣달 그믐밤 탁본 떠서 벽에 걸 듯 지난 세월 펼쳐 보다 .. 2022. 10. 13.
역대 노벨상 수상작품(시) 모음 역대 노벨상 수상작품(시) 모음 ◈ 키플링의 노벨상(영국,1907년) 수상 시 ▩ 죄인들 배움과 근면의 세월을 통해 그들은 스스로 찾기 시작했다 새로운 공포와 꿈꾸어 보지 못한 두려움을 인류에게 쌓아 놓으려고 그들이 천상에서 이끌어 온 또는 대지에서 파낸 모든 것을, 그들은 그들의 소유주 불명의 귀중한 발굴물과 죽음의 병기고에 놓았다 잠시, 잘 저울질된 이익을 위해, 지배자와 피지배자 똑같이 믿음을 세웠다 그들이 깨기로 작정했던 적당한 시간이 올 때 그들은 부주의한 대지와 거래했다 그리고 훌륭하게 보상하였다 그들은 이웃의 난롯가에서 그를 노예로 만들 흉계를 꾸몄다 모든 것이 그들 손에 준비되었을 때 그들은 그들의 숨겨진 칼을 풀었다 그리고 땅을 완전하게 황폐화시켰다 그들의 맹세는 지키기로 약속되었다 냉정.. 2022. 10. 9.
쉴리 프뤼돔의 시 네 편 쉴리 프뤼돔(Sully Prudhomme, 1839~1907. 프랑스). 시인. 철학자. 1865년 첫 시집 《구절과 시 (Stances et Poèmes)》를 발간. 1901년 노벨문학상수상. 쉴리 프뤼돔 시 모음 ▶ 금 간 꽃병 이 마편초꽃이 시든 꽃병은 부채가 닿아 금이 간 것. 살짝 스쳤을 뿐이겠지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으니. 하지만 가벼운 상처는 하루하루 수정을 좀먹어 들어 보이지는 않으나 어김없는 발걸음으로 차근차근 그 둘레를 돌아갔다. 맑은 물은 방울방울 새어 나오고 꽃들의 향기는 말라 들었다. 손대지 말라, 글이 갔으니. 곱다고 ㅆ다듬는 손도 때론 이런 것 남의 마음을 절로 금이 가 사랑의 꽃은 말라죽는다. 사람들의 눈에는 여전히 온전하나 마음은 작고도 깊은 상처에 혼자 흐느껴 운다. 금이.. 2022. 10. 7.
정두리 시(동시) 모음 정두리 시인(1947~ ) 아동문학가. 경남 마산. 단국대학교 국문학과, 중앙대학교신문방송대학원. 1982년 한국문학에 시 당선. 1984년 신춘문예 동시 당선. 시집 《슈베르트의 집》, 《기억창고의 선물》 외 다수. 동시집 『안녕 눈새야』,『어머니의 눈물』 『찰코의 붉은 지붕』 등 정두리 시(동시) 모음 ▶ 그대 우리는 누구입니까 빈 언덕의 자운영꽃 혼자 힘으로 일어설 수 없는 반짝이는 조약돌 이름을 얻지 못할 구석진 마을의 투명한 시냇물 일제히 흰 띠를 두르고 스스로 다가오는 첫눈입니다 우리는 무엇입니까 늘 앞질러 사랑케 하실 힘 덜어내고도 몇 배로 다시 고이는 힘 아! 한목에 그대를 다 품을 수 있는 씨앗으로 남고 싶습니다 허물없이 맨발이 넉넉한 저녁입니다 뜨거운 목젖 까지 알아내고도 코끝으로 까지.. 2022. 10. 1.
소솔 류재하 시(동시) 모음 소솔 류재하 시인(1939~ ) 목사. 아동문학가. 서울신학대학교. 동 대학원. (현) 서울 서부교회 명예목사. 1990년 아동문학으로 등단, 한국아동문학상. 한국계관시인상. 크리스챤문학작가대상 등. 시집 ‘사랑과 평화의 노래’ ‘시냇가에 심은 나무’ ’그곳에 빈집하나 짓고 싶다’. 동시집 ‘사진기 하나 있다면’, ‘꿈꾸는 반달’ ‘작은 집 하나’ 이 외에 동화집, 전기, 인물평전 등 다수. 소솔 류재하 시(동시) 모음 ▶ 아버지와 아들 터벅터벅 뒷짐 지고 앞서가는 아버지 타박타박 뒷짐 지고 따라가는 어린이 우습고도 정확한 유 전 자 ▶ 춘설春雪 봄이 오려나보다. 입춘 지났으나 영하의 날 잦더니 지난밤 눈으로 온 세상 환하다. 누구의 사신使臣인가 상록수 잎마다 얇고 흰 눈꽃 피우고 헐벗은 나무마다 새하얀.. 2022. 9. 26.
박두순 시(동시) 모음 박두순 시인(1950년~ ) 경북 봉화. 아동문학가. (前)초등학교 교사. 한국일보사 기자. 1977년 , 동시 추천. 동시집 등 13권, 시집 등 5권. 「대한민국문학상」「소천아동문학상」「한국아동문학상」 방정환문학상」 「한국문협 작가상」「자유문학상」 등 수상. 박두순 시(동시) 모음 ▶ 새우 눈​ 새우를 그렸다​ 눈은 까만 점만 하나 톡 찍으면 되니​ 아주 그리기 쉬웠다​ 문득 궁금해졌다​ 고 작은 눈으로 어떻게 앞을 보나?​ 고 작은 눈으로 어떻게 바다를 다니나?​ 고 작은 눈으로 어떻게 먹이를 찾아내나?​ 아니다​ 새우 눈은 크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 넓은 바다를 보나​ 그 넓은 바닷길을 다니나​ 그 커다란 잠수함을 피하나​ 망원경 마음눈 가진 모양이지?​ ▶ 이빨 1학년에게 물었다. - .. 2022. 9. 21.
윤석구 시 모음 윤석구 시인(1940~ ). 충남 예산. (전)에이스침대 대표. 시인, 작사가. 한국동요문화협회 회장. 전국병아리창작동요제 주최. 경기 이천에 ‘한국동요박물관’ 개관. 시집 , . 출간 윤석구 시 모음 ▶ 늙어가는 길 처음 가는 길입니다.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길입니다. 무엇 하나 처음 아닌 길은 없었지만 늙어가는 이 길은 몸과 마음도 같지 않고 방향 감각도 매우 서툴기만 합니다. 가면서도 이 길이 맞는지 어리둥절할 때가 많습니다. 때론 두렵고 불안한 마음에 멍하니 창밖만 바라보곤 합니다. 시리도록 외로울 때도 있고 아리도록 그리울 때도 있습니다. 어릴 적 처음 길은 호기심과 희망이 있었고 젊어서의 처음 길은 설렘으로 무서울 게 없었는데 처음 늙어가는 이 길은 너무나 어렵습니다. 언제부터 인가 지팡이.. 2022. 9. 18.
윤희상 시 모음 윤희상 시인(1961년) 전남 나주 출생. 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 졸업. 1989년 《세계의 문학》에 「무거운 새의 발자국」으로 등단. 시집 『고인돌과 함께 놀았다』『소를 웃긴 꽃』『이미, 서로 알고 있었던 것처럼』. 윤희상 시 모음 ▶ 소를 웃긴 꽃 나주 들판에서 정말 소가 웃더라니까 꽃이 소를 웃긴 것이지 풀을 뜯는 소의 발밑에서 마침 꽃이 핀 거야 소는 간지러웠던 것이지 그것만이 아니라, 피는 꽃이 소를 살짝 들어 올린거야 그래서 소가 꽃 위에 잠깐 뜬 셈이지 하마터면, 소가 중심을 잃고 쓰러질 뻔한 것이지 ▶ 점잖은 구름 구름이 자연스러워야 합니다 성난 구름은 찍지 마세요 괜히 오해받습니다 뭉쳐 있는 구름도 좋지 않습니다 슬라이드 필름을 현상해놓고 보면, 햇빛 아래에서 눈으로 보는 것보다 더 어.. 2022. 9. 11.
조정권 시 모음 조정권 시인(1949년 ~ 2017년) 서울. 중앙대학교 영어교육과. 경희사이버대학교 석좌교수 시집 『비를 바라보는 일곱 가지 마음의 형태』, 『하늘이불』, 『산정묘지』 등 다수. 녹원문학상, 김수영문학상, 소월시문학상, 현대문학상 등 수상 조정권 시 모음 ▶ 양파 옷을 잔뜩 껴입고 사는 여자가 모임에 나오곤 했었지 어찌나 많은 옷을 껴입고 사는지 비단을 걸치고도 추워하는 조그마한 중국여자 같았지 옷을 잔뜩 껴입고 사는 그 여자의 남편도 모임에 가끔 나오곤 했었지 남자도 어찌나 많은 옷을 껴입고 사는지 나온 배가 더 튀어나온 똥똥한 중국남자 같았지 그 두 사람 물에서 건지던 날 옷 벗기느라 한참 걸렸다네 ▶ 약리도(躍鯉圖) 물고기야 뛰어 올라라 최초의 감동을 나는 붙잡겠다 물고기야 힘껏 뛰어 올라라 풀바.. 2022. 9. 7.
김광규 시 모음 김광규(金光圭)시인. 1941년 서울 출생 1975년 [문학과 지성] 시 [유무] [영산] [시론] 발표, 1981년 녹원문학상-오늘의작가상, 1984년 김수영문학상 수상. 시집 [우리를 적시는 마지막 꿈] [반달곰에게] [좀팽이처럼] 등. 김광규 시 모음 ▶ 달팽이의 사랑 장독대 앞뜰 이끼 낀 시멘트 바닥에서 달팽이 두 마리 얼굴 비비고 있다 요란한 천둥 번개 장대 같은 빗줄기 뚫고 여기까지 기어오는데 얼마나 오래 걸렸을까 멀리서 그 그리움에 몸이 달아 그들은 아마 뛰어왔을 것이다 들리지 않는 이름 서로 부르며 움직이지 않는 속도로 숨가쁘게 달려와 그들은 이제 몸을 맞대고 기나긴 사랑 속삭인다 짤막한 사랑 담아둘 집 한 칸 마련하기 위하여 십년을 바둥거린 나에게 날 때부터 집을 가진 달팽이의 사랑은 얼.. 2022. 9. 4.
박용래 시 모음 박용래 시인(1925년 ~ 1980년). 충남 강경. 강경상고 졸업. 1955년[현대문학]으로 등단. 현대시학 작품상 수상. 시집 [싸락눈] [먼 바다] [백발의 꽃대궁] [강아지풀] 등 다수. 박용래 시 모음 ▶ 그 봄비 오는 봄비는 겨우내 묻혔던 김칫독 자리에 모여 운다 오는 봄비는 헛간에 엮어 단 시래기 줄에 모여 운다 하루를 섬섬히 버들눈처럼 모여 서서 우는 봄비여 모스러진 돌절구 바닥에도 고여 넘치는 이 비천함이여. ▶ 산견(散見) 해종일 보리 타는 밀 타는 바람 논귀마다 글썽 개구리 울음 아, 숲이 없는 산(山)에 와 뻐꾹새 울음 낙타(駱駝)의 등 기복(起伏) 이는 구릉(丘陵) 먼 오디빛 망각(忘却). ▶ 제비꽃 부리 바알간 장 속의 새, 동트면 환상의 베틀 올라 금사(金絲), 은사(銀絲) 올.. 2022. 8. 30.
조동화 시. 시조 모음 조동화 시인(1949년~ ), 경북 구미시. 영남대학교 국어과 졸업. 1978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 시집 『낙화암』 『낮은 물소리』 『영원을 꿈꾸다』 『나 하나 꽃 피어』 등 경주교회 담임목사 역임. 이호우시조문학상, 유심작품상 등 수상. 조동화 시. 시조 모음 ▶ 낙화암 죽음보다 깊은 적막이 거기 엉켜 있더이다. 꽃 피 고 꽃 진 자리 꽃대공만 남아 있듯 강 따라 다 흘러간 자리 바위 우뚝 섰더이다. 눈물로, 그 많은 피로 얼룩졌던 바위서리 천년이 흘러가고 또 천년이 흐르는데 몸 가도 넋 들은 사무쳐 진달래로 피더이다. 그날 끊어진 왕조의 단면인 양 슬픈 벼랑 다만 함묵(含默)으로는 못 다스릴 한이기에 고란사 낡은 쇠북도 피를 쏟아 울더이다. ▶ 조화(調和)의 힘 봄이 오면 묵은 나뭇가지에서.. 2022. 8. 23.
이승훈(李昇薰) 시 모음 이승훈(李昇薰, 1942년~2018년), 시인. 강원도 춘천. 한양대학교,대학원. 연세대학교대학원 국어국문학과. 1962년 《현대문학》 추천으로 등단. 시집 《사물들》,《당신들의 초상》,《당신의 방》 등, 1983. 현대문학상 수상 이승훈(李昇薰) 시 모음 ▶ 풀잎 끝에 이슬 풀잎 끝에 이슬 풀잎 끝에 바람 풀잎 끝에 햇살 오오 풀잎 끝에 나 풀잎 끝에 당신 우린 모두 풀잎 끝에 있네 잠시 반짝이네 잠시 속에 해가 나고 바람 불고 이슬 사라지고 그러나 풀잎 끝 에 풀잎 끝에 한 세상이 빛나네 어느 세월에나 알리요? ▶ 암호 환상이라는 이름의 역은 동해안에 있습니다. 눈 내리는 겨울 바다-거기 하나의 암호처럼 서 있습니다. 아무도 가본 사람은 없습니다. 당신이 거기 닿을 때, 그 역은 총에 맞아 경련합니다.. 2022. 8. 19.
신석정 시 모음 신석정(辛夕汀, 1907~1974) 전북 부안, 본명 석정(錫正). 1931년 “시문학”에 ‘선물’을 발표하며 등단. 시집 “촛불”(1939), “슬픈 목가”(1947), “대바람 소리”(1974) 등. 신석정 시 모음 ▶ 들길에 서서 푸른 산이 흰 구름을 지니고 살 듯 내 머리 위에는 항상 푸른 하늘이 있다. 하늘을 향하고 산삼(山森)처럼 두 팔을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숭고한 일이냐. ​두 다리는 비록 연약하지만 젊은 산맥으로 삼고 부절히 움직인다는 둥근 지구를 밟았거니...​ 푸른 산처럼 든든하게 지구를 디디고 사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이냐. 뼈에 저리도록 은 슬퍼도 좋다. 저문 들길에 서서 푸른 별을 바라보자~ ​ 푸른 별을 바라보는 것은 하늘 아래 사는 거룩한 나의 일과이거니 ​ ▶ 망향.. 2022. 8.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