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 이것이 부흥이란 말이더냐?
사도행전대로 본다면 한국교회는 부흥한 적이 없다
사도행전은 성령행전(Acts of Holy Spirit)이라고도 부릅니다. 20세기 초에 시작된 오순절운동(pentecostal movement)을 거론치 않더라도, 한국교회의 수적부흥주의론의 핵심구절들 중의 하나를 오늘 우리가 살펴보려는 본문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선 사도행전 2:37을 먼저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이 찔려서 '형제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하고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말하였습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용서를 받으면, 성령의 선물을 받을 것입니다(표준새번역; 일부 수정)."
그래서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하루만에 신도수가 약 3천 명이 늘었고 계속해서 신자의 수가 늘었다고 합니다. 사실 하루에 약 3천 명의 사람들이 회개하고 신자가 되었다면 역사상 몇 차례 있을까 말까 할 기적같은 이야기 아닐까요?
오순절주의자들은 사도행전 맨 앞부분의 기도하고 성령받고 하는 장면에 초점을 맞출 것이고, 한국교회의 수적부흥주의의 신봉자들은 이 장면이 바로 한국교회가 본받아야 할 역사적 현장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볼 때 그러한 이해가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이야기가 아닐까 합니다.
이러한 기적적인 현장은 너무 싱겁게 끝납니다(행 2:42-47).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에 몰두하여 서로 교제하고 식사를 하며 기도하는 일에 힘썼다... 사도들을 통하여 기이한 일과 표적이 많이 일어났다. 그리하여 모든 사람에게 두려운 마음이 생겼다. 믿는 사람들은 모두 함께 지내면서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재산과 소유물을 팔아서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대로 나누어 가졌다. 그리고 날마다 한마음으로 성전에 열심히 모이고 집에서 식사를 같이 하면서 순수한 마음으로 기쁘게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모든 사람에게서 호감을 샀다. 주께서는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여 주셨다"(표준새번역, 일부 수정).
너무 조용한 결과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사도행전의 저자의 관심사는 여기서 기이한 일과 표적의 내용이 아니었습니다. 아니 여기서 언급하고 있는 것을 기사과 표적으로 삼고 있는 줄도 모르겠습니다. 소위 기독교적 공동체에 대한 내용은 다음 기회에 더 세부적으로 다루기로 하겠습니다.
어쨌듯 기적과 표적적인 일이 초대교회 공동체에 발생한 것만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그리스도의 신앙 속에서 열심히 모이고 음식을 나누고 재물을 나눔으로써 교제하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이러한 놀라운 일(실상 별로 특이하고 기적같지 않은 일)은 한편으로는 이러한 사건들과 삶을 지켜보는 사람들에게 두려움으로, 그리고 호감(好感)으로 나타났습니다. 여기에는 오순절주의적, 혹은 은사주의적 소란함도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또한 소위 수적성장제일주의적 모습들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는 어떠합니까? 만약 우리나라 교회에 이러한 폭발적인 성령의 역사가 있다고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한번 상상해 볼까요?
아마 베드로는 당장 교회와 사도들 앞에 다음과 같은 요구를 하였을 것입니다.
1. 걸어다니는 것도 지겹고 매일 이집 저집 돌아다니는 것도 괴롭다. 개인사택을 40평 이상 고급아파트로 바꾸고 3000cc 이상 (외제) 중대형차로 바꿔달라.
2. 예루살렘 성전이나 그 앞에서 예배 보는 것도 지겹다. 성전 건너편 감람산 부지를 부흥회나 작정헌금, 혹은 십일조를 거둬서 새성전을 짓도록 하겠다. 새성전은 세계 최고로 지어야 할 것이다.
3. 구제는 교회의 존재 목적이 아니니, 재산과 소유물은 모두 교회에 바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쓰게 하라.
4. 이제 사도들이나 예수의 제자들 중에 수석사도, 수석제자 등을 두고 카리스마적인 지도력을 구사하겠노라.
5. 성전건축과 관련해서 임직식을 화려하게 거행하고 임직자들에게 후원금과 헌금을 약정하게 하겠노라.
6. 사도들은 하나님의 종이니, 비판하거나 반대하지 말고 그 모든 명령과 요구에 맹종하라.
아마 이런 요구들이 관철되었다면 조만간 사도들의 자제들로 구성된 황태자클럽이 성도들의 마음을 아프게 할 것이며, 사도들간에 각각 교회와 교단과 신학교를 꾸리고, 결과적으로는 자기가 운영하는 교회만 옳고 나머지는 가지도 말고 쳐다보지도 말고 생각하지도 말라고 하지 않았을까요? 결과적으로는 사도들이 자제들에게 담임목회자직을 세습시키려고 혈안이 될 수도 있었겠죠?
초대교회는 공동체의식과 나눔의 정신에 철저했던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헌금을 하나님께 바치지도 않았으며 헌금 때문에 교회 나가기가 괴롭거나 복 받으러 교회 나가지도, 그리고 목회자들의 저주의 말 때문에 두렵거나 괴로워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성령의 기적은 그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재산과 소유는 자발적으로 내어져서 재물이 필요한 사람에게 나누어졌습니다. 이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교회는 죄를 회개하고 구원을 받은 자들의 모임이었습니다. 사도들을 화나게 했던 것은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이었습니다. 자신에게 속해 있던 재물이었는데도 자신들의 욕심 때문에 성령을 속인 것 때문에 문제가 되었습니다. 헌금의 자발성은 정직성과 곧바로 연관됩니다. 억지로 하는 것은 부정직과 연관된다는 말입니다. 스스로 우러나오는 감정은 속일 것도 없고 부끄러움이나 감추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비교의식이나 자랑하는 마음도 없으며 교만하지도 않습니다. 이것이 자신의 재산을 팔아 신앙공동체에 내놓은 바나바의 마음과 행동과 대조되는 것이었습니다.
사도들과 사람들 사이에 행해졌던 기적들과 치유는 기억되지만, 사도들과 신자들의 고통과 박해와 신앙공동체의 교제와 나눔은 잊혀지게 마련인 것 같습니다. 그저 묵묵히 삶으로서 그리스도의 신앙과 정신을 실천하는 것은 우리가 볼 때 기적과 표적도 아닐 수 있습니다.
멋있는 교회 건물이 올라오는 것도 아니고 수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위세당당한 교회도 아니고 카리스마적인 어떤 지도자가 부상하거나 인기를 끄는 것도 아닌, 단순한 성도들의 삶이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한국교회의 부흥은 아니올시다 라고 말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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