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적 견인론, 회개 없는 성도 만들어
박창진
저는 오늘 한국 교회의 현실이 참으로 참담하다고 생각합니다.
저 개인적으로 보면 좋은 교회도 많고 존경할 만한 분도 많은 데
전체적으로 보면 참담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교회가 이렇게 된 배경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으나
제가 볼 때 불순종이 가장 큰 원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알려고 하지 않고 그 말씀에 불순종해서
교회가 이렇게 된 것입니다.
아무리 하나님 나라를 향한 열심이 있어도 생각과 말과 행동이
하나님 말씀과 다르면 그것은 불순종일 뿐입니다.
말씀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중요한 이유
하나님의 말씀과 다른 나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깨닫게 되는 것이 은혜입니다.
그 은혜를 헛되이 하지 않는 길은 잘못된 부분을 인정하고 돌이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은혜를 누리기 위해 주님의 말씀을 바로 이해해야 합니다.
말씀에 대한 바른 이해가 가장 기초적인 은혜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이해함으로 그에 따라 생각하고 말하며 행동하는 것은 은혜의 열매입니다.
제가 한국 교회가 참담하다고 말하는 것은 한국교회는 지금
말씀에 대한 바른 이해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삼박자 축복과 같은 주장이 한국교회를 천빈자본주의에 영합하여
물질만능주의를 낳았습니다. 물질만능주의는 하나님의 뜻과 무관합니다.
왜냐하면 신자들이 표면적으로는 하나님 나라를 구한다고 하지만
실제적으로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을 위하여 살게 만듭니다.
쉽게 세상을 받아들이고 세상에 동화되어 살게 됩니다.
왜곡된 절대적 견인론
한국 성도들의 신앙적 바탕에는 절대적 견인론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절대적 견인론자들은 회개 없이 마음대로 살아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다는 식으로 주장하지는 않지만
그들의 사고의 깊은 곳에는 이미 구원 받았다는 확신이 있습니다.
스스로가 거듭났다는 분명한 확신이 있기만 하면
구원은 절대 변동 불가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당연히 회개의 동력이 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후 천국에 대한 개념이 강한 신자일수록 그렇습니다.
그 부분에 있어서는 절대 안전하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내세적 구원에 대한 안심이 현실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고민이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구약시대 선지자들이 이스라엘이 범죄를 책망하고
심판한 선언에 대하여 나타낸 반응을 생각하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택하셔서
백성으로 삼으셨기에 절대 안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심판이 있다고 말하는 선지자들을 핍박했고 죽였습니다.
절대적 견인론이 변질되어서 하나님의 새 언약의 백성이 되면
멸망은 없다며 선지자들을 정죄하고 핍박하며 쫓아냅니다.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행동은 이와 똑같은 행동입니다.
하나님께서 늘 동일하시다는 말씀에는 구원의 원리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첫 창조로부터 마지막 때까지 구원의 원리는 변함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영접함으로 구원을 얻었고 그분을 의지함으로 구원을 얻으며
영원한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하지만 명심할 것이 있습니다.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이면서 동시에 '오직 순종으로'인 것입니다.
침묵하지 말고 개혁하자
절대적 견인론만을 믿고 안주할 것이 아니라 지금의 문제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자신과 교회의 죄를 회개하고 잘못된 부분을 고치도록 해야 합니다.
교회는 성경의 가르침과 다른 생각과 주장을 포기해야 합니다.
개혁은 열심히 외치기만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생각과 주장을 버려야 합니다.
나타난 현상에 대한 개혁도 중요하지만 더 근원적인 개혁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저는 다수가 교회 개혁에 대해 계속적으로 침묵만을 우려합니다.
침묵은 방조 내지는 동조가 되기 때문입니다.
참담하다고 말할 수 있는 한국교회의 현실에서 벗어나는 길은 개혁하는 길에 있습니다.
침묵하면서 개혁이 이루어질 수는 없습니다.
성경의 가르침을 바르게 밝히고 성경을 따라 살 때 개혁의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것입니다.
'☞ 묵상과 여운'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교회의 의미 (0) | 2009.09.23 |
---|---|
韓國을 감동시킨 日本人 며느리 (0) | 2009.09.10 |
영상예화 - 목동과 기차 (0) | 2009.09.03 |
감동의 영상 - 위대한 혁명들의 공통점 (0) | 2009.09.02 |
지구촌에 100명이 산다면... (0) | 2009.08.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