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톨릭은 참된 교회가 아니다.
카톨릭은 교황의 신적 권한에 의한 1인 지배와
막대한 경제적 규모로 그들의 영향력은 매우 크다.
그러면 카톨릭과 기독교를 구별해 주는 차이점이란 무엇일까?
큰 차이점은 "로마교황"과 관련이 있다.
카톨릭은 교황이 최상부이며 이 지구상에서 그리스도를 대표하고 있다.
그들이 인정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사도 베드로를 최초의 교황으로 지명했으며
그 이후의 교황들이 그의 후계라는 것이다.
즉 카톨릭에서는 그들이 "참된 교회"라고 생각하고 있다.
기독교와는 상기 내용과 여러 가지 점에서 다른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면 이러한 상이점들이 얼마나 중대한 문제일까?
최초에 이러한 논쟁이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카톨릭은 어떻게 발전했는가?
기독교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한복음 20:21)고 말씀하신
가장 짧은 명령으로 시작되었다.
오늘날 이 말은 아주 쉬운 말처럼 들린다. 그러나 잠시동안 이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그들은 그 당시 그들을 증오하는 세상으로 나가야만 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마태복음 10:16)고 하셨다.
그들은 많은 박해와 고문과 죽음을 당하게 되었다.
이런 것을 알면서 그들은 도대체 왜 나가야만 했을까?
그들이 그렇게 나가도록 뇌물을 준 사람도 없었으며 강요한 사람도 없었다.
그러면 왜 그렇게 했을까? 이에 대한 답변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단순하다.
그 때 사람들이 확실히 믿고 있던 것은 예수께서 몸소 주장하신 바대로,
예수는 그리스도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심과 하나님의 권위를 가지고 말씀하시고 계심을
확실히 그리고 완전히 믿게 되었다.
그들은 예수님을 사랑했으며 신임했다.
그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행하기를 원했다. 이와 같이 그 이유는 간단하다.
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라 하셨다.
무슨 반석을 뜻하셨을까(마태16:18)? 그리고 어떤 교회를 말씀하셨을까?
카톨릭일까? 동방정교일까? 그렇지 않으면 기독교일까? (기타 다른 교일까?) 아니다.
그 어느 것도 아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교회는 어떤 교회일까?
어떤 교회를 예수께서 세우셨는가? 오늘날 "참된 교회"란 어떤 것인가?
이것을 알기 위해 우리들은 먼 과거의 교회역사를 살펴봐야 하겠다.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이 점화시킨 조그마한 불꽃이 확대되어 빠른 속도로 지중해 연안을 따라
희랍, 이태리, 스페인, 이집트 그리고 리비아를 휩쓸게 되었다.
가해지는 박해로 말미암아 그 불꽃은 더 밝게 타오르게 되었다.
"참된 교회가 어떤 교회냐" 고 묻는 사람이 초기 그리스도교 300년 동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참된 교회란 다만 그리스도인들- 주님의 가르침을 따라 함께 살고, 일하고, 기도하고,
순교도 기쁘게 여기던 믿는 사람들이었다.
그 당시 중요한 교회는 로마(Rome)에 있는 어는 한 교회가 아니었다.
그때 돌연히 어떤 일이 생겼다.
이교도였던 로마의 콘스탄틴 황제가 4세기에 그리스도교로 개종하게 된 사실이다.
즉시 그는 그리스도교를 국교로서 선포했다.
콘스탄틴 황제는 교회 지도자들에게 특히 수도 로마에 있는 지도자들에게
종교적으로 그리고 정치적으로 큰 영향을 주었던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새롭고 강력한 교회의 지도권을 몹시 탐내게 되었다.
그들 중 대표주자라 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로마 주교였던 레오(leo)다.
A.D 445년에 야심적이며 활동력이 강한 레오(Leo) 로마주교(bishop)는
그 지도권을 장악할 것을 시도했다.
레오 주교는 자기 스스로를 사도 베드로의 후계자로 선언하고
"왕국의 열쇠" 즉 그리스도 스스로가 이룬 그리스도 왕국의 열쇠를 갖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레오 주교는 자기가 지상의 전 그리스도인들의 "교황" 즉 "아버지"라고 선언했다.
레오 주교의 이러한 주장은 교회의 많은 사람들의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이러한 논쟁은 로마의 그레고리(Grogory) 주교가 교황의 위치를 확고히 이룬
590년도까지도 그치지 않았다.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을 중심으로한 동방지교회의 저명한 지도자들은
그레고리 주교의 교권에 계속 도전했으며 그후 수세기를 통하여 그레고리 주교를 계승한
기타 교황들에게도 계속 도전을 가했다.
분열은 1054년 동방지교회의 대사교인 콘스탄티노플 사교가 로마의 교황 레오 9세로부터
탈피함으로써 시작됐다.
이 때부터 동방교회(동방정교)와 서방교회(로마카톨릭)가 각기 별도로 발전하게 되었다.
서방교회는 성장함에 따라 성경에 없는 교리를 추가하기 시작했다.
각지역의 토속신앙과 이교의 교리나 의식 등을 첨가시켰던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이 새로운 교리를 찬동치 아니했으며 불만의 소리가 계속됐다.
마침내 1517년에 카톨릭의 타락과 죄악에 분노하며 법관 출신의 신부였던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가 들고 일어났다.
루터는 카톨릭의 분열이 아닌 개혁과 성서의 권위를 강조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루터는 성서만을 참된 권위로 삼았다.
그가 여기에서 발견한 것은 그리스도인의 신앙의 중심이 예수 그리스도와의 직접적이고
개인적 관계를 맺는 데에만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카톨릭에서는 루터의 견해를 배격하여 루터와 그에게 동조한 모든 사람들을 강제 추방했다.
루터와 그들은 성경을 연구하며 해석하고 이해한 대로 그 교회를 따랐다.
이것이 1천 2백여년 만에 회복된 기독교의 새로운 시작이 된 것이다.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시작된 그리스도 교회는 레오(Leo)라는 정치적 야심가에 의해
로마카톨릭에 흡수되어 1천년이 넘도록 짖밟혀 오다가 드디어 햇볕을 보게 된 것이다.
카토릭교만이 유일한 "참된" 교회인가?
카토릭교는 다른 교회가 주장하는 타당성을 전부 거절하고 있다.
"카토릭교 외의 어떤 교회도 그리스도의 참된 교회가 아니다"라고 그들은 말하고 있다.
무슨 권위로 이런 말을 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로마 카토릭의 성서해석에 근거를 두고 있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카토릭교에서는 성서를 하나님의 영감에 의한 하나님 말씀으로 받아 들이고 있지 않음이
분명하지 않는가?
여기에 그 사실에 관한 언급을 소개한다.
"사도들의 신앙에 의존하고 있는 '성모교회'는 구약과 신약 모두가 하나님의 성령에 의한
영감을 받아 쓰여진 책이며 성스럽고 정확무오하고 권위있는 책임을 인정한다."
그러나 카토릭교에서는 성서를 읽도록 허락하고 있는가?
어떤 사람들은 카토릭이 그것을 허락하고 있지 않다고 말하고 있으나 사실상 정확하지 않다.
최근에 와서 카토릭교에서는 그들의 교인들로 하여금 성서를 읽도록 활발하게 격려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가 있다. 카토릭교는 개인으로서 아무도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할 수 없다고
가르치고 있다. 즉 카토릭교 교권만이 해석의 권한을 보유하고 있다.
"성서는 최종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하고 수호하며 거룩한 사명을 이끌어 나가는
교회의 판단 아래 위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로마 카토릭은 "교회는 성경 해석자와 보관자를 성스럽게 지정했으며…
하나님은 살아있는 교회의 권위를 떠나서는, 성경을 그리스도인의 신앙법칙으로 삼도록
허용하시지 않았다"고 가르친다.
과연 카토릭교가 정당할까?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 말씀을 읽고 그것을 그들 스스로
해석하기를 원하실까? 이것을 명백히 해주는 것으로 성서에 씌여있는 언어 자체를 보자.
신약은 그 전체가 희랍어로 쓰여져 있지만 시인들이나 학자들만이 읽을 수 있는 어려운
고전 희랍어로 쓰이지 않았으며, 가정이나 시장 등에서 흔히 말하여지고 읽혀지고 있는
평범한 희랍어로 쓰여져 있다.
이것이 증명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을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말씀이
어떤 "권위들"에 의해서만 읽혀지고 해석될 것만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서도 읽혀지고
해석되기를 원하시고 계심을 분명히 제시해 주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하여 성서자체는 무엇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가?
신명기 17:19에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 "평생에 자기 옆에 두고 읽어서"라 했고,
이사야 선지자는 "너희는 여호와의 책을 자세히 읽어보라"(이사야34:16)고 가르친다.
또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요한복음 5:39)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사두개인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알지 못하는 위험성에 대하여 지적하셨다.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고로 오해하였도다" 말씀하신다(마태복음22:29)
목적은 명백하다. 각 개인이 성서를 읽고 해석해야만 된다.
"카토릭교에 하나님 말씀을 해석하는 단 하나의 권위자가 있듯이
기독교에도 그와같은 사람이 있지 않느냐" 라고 묻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기독교에서도 성서를 해석할 때 그들 목사들에게 의뢰하지 않느냐?" 라고 물을 것이다.
그러면 양자 다 잘못이 아닐까? 처음에는 그런 것같이 생각된다.
잠시동안 생각해 보자. 그러나 양자간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물론, 목사나 선생들이 완전무결하다고 그리스도께서 말씀한 적이 있는가?
하나님 말씀을 해석할 수 있는 권한을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만 부여한 적이 있는가?
아니다. 신약에서 알려주고 있는 것은 전혀 다르다.
하나님 말씀을 연구하는 것은 각 개인이며 개인이 뜻을 찾아내고
다른 사람들과 의견을 나누도록 되어 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골로세서 3:16).
기독교 신앙인들은 장기간 성서를 연구한 목사나 선생들을 존경한다.
그러나 그들이 가르치는 내용을 받아 들이거나 또는 거절할 수 있는 자유를 각개인이
가지고 있음을 믿는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성서를 통하여 직접 각 개인에게 말씀하시며 성령께서 그 말씀의 뜻을
이해하도록 돕는다는 것을 믿고 있다(요16:13).
"참된 교회란 어떤 교회인가?" 라는 질문에 직접 관련되는 것은 다만 이것이다.
즉 카토릭교에서 이와같이 주장을 하게 된 것은 마태복음 16장에 기록된 성서를 해석한 데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그러면 16장을 살펴 보기로 하자.
다른 어떤 공식적 해석을 참조하지 않고 일차 살펴보기로 하자.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마태복음 16장을 보면 예수님이 그 제자들과 함께 계심을 보게 된다.
그들은 갈릴리 바다의 동북쪽 약 25마일쯤 떨어진 가이사랴 빌립보에 있다.
예수님의 때가 임박했다.
예수님은 곧 그가 예루살렘을 향하여 출발하게 될 것을 알고 계셨다.
처음은 영광의 입성, 그 후에는 십자가에서의 죽음이 있음을 알고 계셨다.
예수님께서는 하실 말씀이 많으셨다.
얼마 후에 발생할 일에 대한 뜻을 제자들이 알기를 예수님은 원하고 계셨다.
문제의 초점은 예수님 스스로의 신분이었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라고 예수님은 질문을 하셨다.
왜 이런 질문을 했을까? 사람들이 말하고 있는 바를 그는 잘 알고 계셨다.
그가 이렇게 묻게된 동기는 다만 그 제자들이 그 문제에 대하여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고자 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 라고 질문을 하셨다.
그들은 대답하기를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이다." 라고 했다. 그 후에 예수는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라고 물으셨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라고 했다.
이것이야말로 베드로의 위대한 신앙고백이었다.
베드로는 예수를 2년간 이상이나 알고 지내왔다.
그는 예수님을 여러 가지 환경하에서 보아왔다.
예수님이 어떤 분이냐 하는 것이 그에게 계속해서 인식되어 오던 중 그 초점이 순간적으로
명백하게 나타나게 되었음이 틀림없다.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라고 하신 예수님의 답변은 베드로의 고백의 중요성을
나타내고 있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고 말씀하셨다.
여기까지는 논쟁이 될만한 문제가 없다고 본다. 성서는 명확하다.
그러나 여기서부터 문제는 좀 복잡해진다.
예수님께서 다음에 말씀하신 것에 대하여 잠간동안 잘 생각해보자.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마태복음16:18-19)
그러면 카토릭교에서는 이것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을까?
그들의 견해는 다음과 같다.
(1)그리스도교회는 베드로 위에 세워졌으며
(2)로마 지교회의 최초 주교로 베드로가 임명되었고
(3)베드로가 로마에서 그의 후계 주교들에게 천국의 열쇠를 인계하였으므로
(4)카토릭교만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참 교회"라고 주장하고 있다.
카토릭교의 교훈은 한 마디로 "주님께서는 시몬 베드로 개인에게 교회의 반석이 되도록
허락하시고 천국의 열쇠도 홀로 갖게 하셨으며 모든 양떼의 목자로 그를 임명하셨다"고
해석하는 것이다.
카토릭교에서는 그들 교회만이 참된 교회며 따라서 온전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길은
카토릭교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성서적 증거에의 소고
우리가 상기한 카토릭교의 해석을 받아 들일 수 있을까?
반드시 어떤 문제점이 나타나게 된다.
예를 들어 초기교회에 관해서 신약성서가 제시하는 명백한 사실을 찾아 보자.
신약에는 베드로가 교회 주교인 것은 고사하고 로마를 방문한 사실조차 없다.
베드로에게 특별한 권한을 부여한 사실이 기록된 증거도 없으며 다만 예수께서는
모든 사도들에게 동일한 권한과 책임을 부여하였던 것이다(마태복음28:16-20).
신약에 단 한 번 기록된 교회 운영회의에서 사회를 맡아본 이는 베드로가 아닌
야고보(James)이었다(사도행전15장).
교회 설립에 관하여도 베드로가 아닌 예수님을 반석으로 교회가 지어졌다고 말하고 있다.
베드로전서 2:4-8을 보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릿돌이 되셨다"고 말하고 있다.
사도 바울(apostle Paul)도 "그리스도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다"고 말하고 있다(엡 2:20).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고전3:11)
성서상으로 본 "참된 교회"란 예수 그리스도 위에 세워졌으며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베드로가 고백한 것처럼
교회는 예수를 구세주와 주님으로 고백하는 사람들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루터나 칼빈과 같은 기독교학자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반석"이 곧 베드로의 고백임을 가르쳤다.
베드로가 말하기를 "당신께서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말했을 때 예수님이 대답하여 가로되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겠다"라고 하셨다.
어떤 반석 말인가? 즉 믿음의 고백 그것이다.
다시 말해서 "나를 고백하는 사람은 모두 내 교회가 될 것이다."라는 것이다.
그러면 카토릭교가 주장하는 것이 옳다고 가정을 하고 잠시 생각해 보자.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가리켜 "이 반석"이라 말씀했다고 가정할지라도 성서에
"사도들의 계승"문제에 대하여는 가르치는 바가 없다.
베드로를 따르는 사람이 교회를 세울 반석이 된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지 않다.
뿐만 아니라, 로마의 권위나 교회의 권위에 관하여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다.
"교황"이란 단어조차 신약성서에서 찾을 수가 없다.
요약해서 말한다면 "참된 교회"란 어느 사람이 세운 종교 단체나 조직이 아님을
성서가 가르쳐 주고 있다는 것이다.
"참된 교회"란 믿는 자-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와 산 교제를 갖고 있는 자-들의
전신(全身)이다.(참조;고전12:27, 엡1:23, 4:12, 골 2:19, 요10:9,14:6)
무엇이 다른가
(권 위)
기독교 |
카토릭교 |
성서가 그들의 믿음과 생활의 오직 한 가지 절대적 지침이다(딤후3:16-17, 요일5:13, 신12:32) |
거룩한 성서와 교회의 거룩한 전통이 그들의 믿음과 생활의 권위로써 간주된다. |
그들은 성서를 자유롭게 읽고 해석하되 성령의 인도함에 따라서 그 뜻을 해석한다(요5:39,롬15:4, 요14:26, 요일2:27) |
성서해석은 최종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하고 수호하며 거룩한 사명을 이끌어 나가는" 교회의 판단에 따른다. |
완전한 사람은 하나도 없으며 그리스도만이 아무 흠없는 그의 몸인 교회의 머리가 되신다(엡1:22, 골1:18) |
법황(POPE)-믿음과 도덕에 대한 설교를 할 때 그는 그리스도의 신부로 또 지상에 보이는 교회의 통치자로서 말하는 것이며 그는 결함이 하나도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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