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들 ‘권태(倦怠) 몸살’...“다 때려치우고 싶어”
직장 불만족ㆍ결혼 만족도 등이 큰 원인?
심할 땐 탈선ㆍ범죄로까지 이어져
- 권태(倦怠)로 몸살을 앓는 중년들이 크게 늘고 있다.
- 배우자에게 지루함을 느껴 외도(外道)하는 중년 남녀가 급증하는가 하면,
- 해 오던 일이 지겨워서 직업을 바꾸는 사람들도 생겨나고 있다.
- 매일 반복되는 일상과 삶이 지겨워서 술, 도박, 오락, 마약, 취미생활에 탐닉하기도 하고
- 심지어 이민(移民)을 떠나기도 한다.
- 외국도 사정은 마찬가지. 미국서는 부러울 것 없는 중산층 남성이 어느날 가족ㆍ직장 등
- 모든 것을 버리고 홀연히 잠적, 다른 도시에서 이름까지 바꾼 채 완전히 딴 인간으로
- 살아가는 극단적인 얘기가 화제가 되기도 한다.
- 심리학자들은 권태란 자신의 삶에 대해 근본적인 회의감을 가지고 삶을 재조명하는
-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 성신여대 심리학과 채규만 교수는 “권태란 근본적으로 나는 누구인가,
- 내 삶은 어디로 가는 것인가, 내가 남편(아내)에게 빚진 것은 무엇인가,
- 내가 내 자신에게 빚진 것은 무엇이고 내 자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등에 대한 해답을
- 추구하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 정신의학적으로는 권태를 가벼운 우울증의 한 형태로 파악한다.
- 신촌세브란스병원 정신과 민성길 교수는 “사는 게 지루하다고 느끼는 권태는
- 의학적 개념라기보다는 사회통념적인 용어다.
- 삶의 기쁨을 누리는 능력, 삶의 의욕이 많이 저하된 상태로
- 우울증 초기단계에서 나타나는 한 증상으로 파악할 수 있다”고 말했다.
- 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 김중술 교수는 “권태를 설명하는 대표적인 증상은
-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다, 일에 대한 동기를 느낄 수 없다는 것이다.
- 그 밑바닥에는 무망감(無望感ㆍhopelessness)이 깔려 있다.
- 그리고 그 시작은 대상이나 일에 대한 관심의 상실이다”고 말했다.
- ●자동차 한 달이면 권태감 느껴
- 사람이 특정 대상에 대해 싫증을 느끼게 되는 시기는 정확히 조사돼 있지 않다.
- 그러나 지금까지 연구결과에 따르면 결혼생활에서 부부간 섹스에 대한 권태감은
- 대략 3년 정도에 생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독일 함부르크대 심리학 교수 에리히 비테는 18~80세 독일 부부 500쌍을 조사한 결과
- 결혼 후 평균 3~4년 만에 사랑이 상당히 식고, 6년이 지나면 권태기에 접어들어
- 배우자에게 흥미를 잃고 바람기가 발동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발표했다.
- 하지만 개인적 차이가 많기 때문에 한 마디로 단정할 수 없다는 게
- 심리학자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 이밖에 자동차를 사면 한 달, 새 집은 6개월, 전자제품은 1주일 정도 뒤면
- 싫증을 느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 첨단 문명인 인터넷도 예외는 아니다.
- 로이터 통신은 작년 1월 ‘웹을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이제는 웹에 지루함을 느낀다’는
- 내용의 기사를 내보냈다.
- 2000년 10월부터 12월 사이 인터넷 사용자들의 평균 로그온 시간은 15%가 감소했으며
- 12월에는 가파르게 감소했다고 보도했다.
- 그리고 이같은 결과는 다른 조사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나고 있으며
- 모든 그룹에서 공통적인 것이라고 보도했다.
- 권태에 빠진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말수가 적어지고 일과 사람,
- 주변에 대한 관심이 적어지며 사람들과의 왕래가 줄어드는 것으로 알려졌다.
- 부부 간에 권태가 생기면 같은 장소에 있고 싶지 않고,
-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는 등의 행태를 보인다.
- 또 상대에 대한 관심이 적고 쉽게 짜증을 내며 잘 싸우게 된다는 것이다.
- 권태는 남녀 공통적으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의문과 회의감에서 출발한다는 게
- 심리학자들의 지적이다.
- 채규만 교수는 “자신의 삶을 살아오지 못하고 부모가 원하는 삶을 살아왔다든가,
- 남의 기대에 부합하기 위해 살아온 사람들이 이러한 삶에 대해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 자신의 삶에 대한 회의감과 함께 권태를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 특히 남성의 경우 직장에서의 불만족이 권태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 직장이 자신의 취향이나 성격, 기대에 맞지 않는 경우가 이에 속한다.
- 지난 99년 40~59세 중년 직장 남성 36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고려대 교육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 ‘중년기 직장남성의 주관적 안녕감(安寧感)과 적응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 전체적인 중년 직장남성의 주관적 안녕감에 직업만족도가 가장 높은 상관관계를 보였다.
- 그 다음으로 결혼만족도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 다음으로 지적되는 요인은 이상(理想)의 상실감.
- 고려대 심리학과 권정해 교수는 “특히 성취 지향적인 삶을 사는 남성일수록
- 40대에 자신의 이상 깨어지는 것을 경험하면서 권태에 빠지게 되는 경향이 강하다”고 말했다.
- 또 성적(性的) 기능 저하에 대한 두려움도 한 요인으로 꼽힌다.
- 성적인 기능이 저하되는 것에 대한 불안을 느끼면서 아내 외의 관계에서
- 성적인 기능을 확인하고 싶어 바람피우는 관계로 발전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 여성은 삶의 정체성과 관련해 권태를 느끼는 경우가 남성보다 많다.
- 권정해 교수는 “여성은 자녀 양육과 가사(家事) 때문에 자신의 삶에 대한 욕구나
- 목적을 접어두고 살아가는 수가 많다.
- 그러나 자녀가 학교에 가고 집안에서 여유가 생기면 잠재적인 욕구가 되살아나는데
- 그것을 추구하지 못하게 되면 삶에 대한 후회감과 함께 권태를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 권태는 어떤 사람에게서 잘 나타나는가.
- 채규만 교수는 “일반적으로 삶의 목표가 불분명하거나 자신감이 적은 사람, 목적의식과
- 성취감이 낮은 사람, 자신의 삶을 살기보다는 남의 시선을 의식하고 살아온 사람,
- 자신의 내적 성숙에서 오는 만족보다 물질적인 대리만족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 이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 한림대의대 강동성심병원 정신과 한창환 교수는 “여가를 찾지 않고 반복적인 생활을 하는
- 일벌레가 자아 정체성이 약해질 때 권태에 빠지기 쉽다.
- 이는 빈부나 지위 고하(高下)를 떠나서 마찬가지다”고 말했다.
- 중년 남성의 권태는 승진우울증, 성공우울증의 형태로도 나타난다.
- 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 조두영 교수는
- “이는 본인이 원했고 남들도 부러워하는 지위에 오른 다음 활기차게 일하기는커녕
- 거꾸로 의기소침해져 우울 상태에 빠지는 경우를 가르키는 말이다.
- 인생의 목표를 달성했다고 느끼는 데서 오는 상실감이 한가지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 부부 사이에는 친밀감과 감정적인 연결이 형성되지 않은 경우,
- 공통적인 삶의 영역이 적거나 대화가 잘 되지 않는 경우, 성적인 만족이 적거나 없는 경우,
- 서로 떨어져 외롭게 생활하는 경우, 서로를 이용하기 위해 정략적으로 결혼한 경우 등이
- 권태에 빠지기 쉬운 것으로 알려졌다.
- ●가슴 뛰는 사랑은 18~30개월이면 ‘끝’
- 결혼과 관련, 전문가들은 남성은 40대 초반, 여성은 30대 중반에
- 권태를 느끼기 시작하는 것으로 파악한다.
- 실제로 국정홍보처가 작년 12월 27일 전국 20세 이상 남녀 4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 ‘한국인의 의식ㆍ가치관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다시 태어나면
- 현 배우자와 결혼할 의향이 없다’고 응답한 사람이 47.8%나 됐다.
- 2000년 2월 미국 코넬대 인간행동연구소의 신디아 하잔 교수팀은 지난 2년간 남녀 5000명을
- 조사한 결과, 가슴 뛰는 사랑은 18~30개월이면 사라지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 연구팀은 “사랑의 감정은 뇌의 화학작용”이라며 “남녀가 만나 2년 정도 지나면
- 대뇌에 항체가 생겨 더이상 사랑의 화학물질이 생성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 연구팀에 따르면 사랑의 단계는 신경전달물질이나 호르몬의 생성, 분비에 따라
- 대개 4단계로 나누어진다.
- 처음 상대에게 호감을 느끼면 대뇌에서 도파민이라는 신경물질이 생성돼
-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감을 느낀다.
- 이어 페닐에틸아민이 만들어지면서 제어하기 힘든 열정이 분출되며,
- 다음 성적 관계가 이루어지는 단계에서는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된다.
- 이어 엔돌핀이 분비되면서 안정을 되찾게 된다는 것이다.
- 하지만 전문가들은 권태도 잘 극복하면 삶의 활력소로 작용하며
- 인생의 전화위복(轉禍爲福)이 된다고 조언한다.
- 일반적으로 권태는 자신의 삶의 목표, 가치관에 대한 점검을 통해 이상적 정체성을
- 현실에 맞게 조정하는 계기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 김중술 교수는 “권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권태에 대한 진지한 성찰(省察)이
- 선행되어야 한다. 많은 경우 상담을 통해 혹은 스스로 권태감의 원인이 무엇이며
- 그 원인이 과연 타당한가 등을 깊이 따져 봄으로써 권태를 극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 부부간 권태의 경우 공동의 작업을 하거나 섹스를 새롭게 하라, 같이 여행을 떠나거나
- 부부 간의 대화를 개선하라, 애정관리를 하고 부부간 친밀감을 높이도록 하라고
- 전문가들은 충고한다.
- 그러나 권태도 심한 경우 병원을 찾아 정신과적 치료를 받는 것이 좋다.
- 한창환 교수는 “권태도 우울증후군의 일종이므로 우울증 약으로 치료할 수 있다.
- 여기에는 약물뿐 아니라 상담ㆍ인지(認知)치료 등 다양한 치료법을 사용한다”고 말했다.
- 이렇게 해서라도 권태를 치료하지 않을 경우 외도, 도박, 마약, 춤바람, 음주 등
- 각종 사회적 일탈(逸脫)행위나 탈선(脫線), 범죄 등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 (김창기 주간조선 차장대우 ckkim@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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