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동구문화원 문학기행-경기 여주
세종대왕 유적지
(2017.5.5)
여주 영릉(寧陵)
경기도 여주시 능서면 왕대리에 있는 조선 제17대 효종과 인선왕후 장씨(仁宣王后張氏)의 능.
사적 제195호. 능호는 1674년(현종 15)에 정하였다.
영릉은 현 동구릉(東九陵)자리에 병풍석(屛風石)을 갖춘 왕릉을 조영하였는데
1673년 석물에 틈이 나 빗물이 스며들 염려가 있다 하여 여주로 옮겼다.
다음해 왕비 인선왕후의 능이 동원(同原)에 택정(擇定)되어 왕릉 앞에
비릉(妃陵)을 써서 앞뒤로 나란히 쌍분(雙墳)을 이루게 하였다. 참고문헌『세종실록(世宗實錄)』
여주 영릉(英陵)
조선 제4대 왕인 세종과 왕비 소헌왕후 심씨(昭憲王后沈氏)의 능.
사적 제195호. 당초 영릉은 1446년(세종 28) 소헌왕후가 죽자 광주(廣州) 서강(西岡)에 쌍실의 능을 만들고 그 우실(右室)은 왕의 수릉(壽陵)으로 삼았다가 1450년(문종 즉위년) 세종이 죽자 합장하였다. 이 능제(陵制)는 『국조오례의』치장조(治葬條)에 따라 만든 것으로 조선 전기 묘제의 기본이 되었다.
능의 석물은 병석(屛石) 가운데 영저(靈杵: 공이)·영탁(靈鐸: 방울)·지초문양(芝草文樣)을 빼고 운채(雲彩)와 십이지신상만을 새겨 조선병석문(朝鮮屛石文)을 확정하였으며, 혼유석(魂遊石)의 고석(鼓石)은 5개에서 4개로 줄였고, 기타 양식상 바꾸어 고친 것이 약간 있었다.
세조 이후 영릉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능을 옮기자는 주장이 있었으나, 서거정(徐居正)의 반대로 옮기지 못하다가, 1469년(예종 1)에 다시 옮기자는 의논에 따라 여주로 옮겼다.
능제는 세조가 죽은 뒤부터 크게 바뀌어 병석과 석실제를 폐지하고 회격(灰隔)으로 하여 합장하고 능 앞에 혼유석 2좌를 놓아 양위임을 표시하였을 뿐 단릉과 마찬가지로 하였다.
여주로 영릉을 옮길 때 천장도감(遷葬都監)에서 석물을 함께 옮기자고 하였으나 왕명에 의하여 그 자리에 묻었다. 1973년에 석물들을 발굴하여 청량리 영휘원(永徽園) 북쪽에 세운 세종대왕기념관으로 옮겼다.
혼유석, 장명등(長明燈), 2기(基)의 무관석과 문관석, 4기의 석수, 7기의 망주석과 구 영릉터에 세웠던 세종대왕신도비가 그것이다. 참고문헌『세종실록(世宗實錄)』
세종대왕 유적지
영릉
남한강 황포돗대(신륵사 앞)
신륵사 앞 남한강
황포돗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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