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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詩 같은 삶을 위하여
☞ 문학의 뜨락

디오게네스를 꿈꾸며...

by 石右 尹明相 2008. 6. 10.

 

 

디오게네스를 꿈꾸며...

  / 윤명상

 

나무통 속의 철학자,

감히 알렉산더 대왕을 향하여 햇볕을 가리지 말아 달라고 외쳤던,

따뜻한 햇볕만으로도 만족과 행복을 누리던 디오게네스.

 

내가 디오게네스를 만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얼마전, 목사님의 설교 중에서 '성도의 삶은

어떠한 상황에도 처할 줄 알며, 여하한 상황에서도

감사할 수 있는 생활이어야 한다'고 했다.

'옳다' 싶었다.

믿음이 행복의 창고라면 이는 행복의 열쇠려니 싶었다.

 

내가 직장에서 퇴근하여 집에 들어섰을 때,

아내는 몹시 행복해 보였다.

어느 시제(詩題)처럼 '비 개인 오후'의 화사하고 부드러운,

꼬옥 안아주고 싶은 정감 있는 모습이었다.

"여보,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소?"

나는 저녁을 차리는 아내의 등뒤에서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물었다.

"좋은 일이라니요. 저는 늘 이렇잖아요."

 

약간 애교 섞인 아내의 말은

지쳐있던 내 마음을 부드럽게 마사지했고,

영화 속의 주인공처럼 총천연색의 환상을 만들어 내기에 충분했다.

 

우리의 가정 형편은 그다지 넉넉한 편이 못되었다.

남의 집 아래채를 빌어 사는 형편이고,

초등학교 2학년과 유치원에 다니는 아들과 딸은

늘 가계부담의 가장 큰 요인이었다.

그럼에도 아내는 짜증냄이 없이

언제나 가정생활의 천칭(天秤) 역할을 톡톡히 해 내었고,

조그만 건자재 도매상에서 받아오는 나의 많지 않은

월급으로 가계를 훌륭히 꾸려 나가는 지혜도 있었다.

 

아내는 무척 즐겁고 행복한 하루였다고 말했다.

오전에는 지병으로 앓아 누운 주인집 할머니의

수발을 들어 주었는데(종종 있는 일이지만)

할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지웅이 엄마 같은 사람은

이 세상에 둘도 없다'며 그토록 고마워 하더란다.

할머니의 아들 내외는 시내의 중학교 부부교사였는데,

며칠 전 할머니가 몸져 누우면서 부인은 아예 학교를 그만두고

할머니 뒷바라지를 했다.

그러나 오래도록 교편생활만 해온 터라 가사는 물론,

노인 수발 드는데는 영 신통치 않아 아내는 종종 찾아가

거들어 주었던 모양이다.

 

아내의 즐거운 고백은 계속되었다.

"선아도 다녀갔어요"

"그래? 막내 처제가! 아니 그러믄 좀 쉬었다 가잖구"

선아는 작년 봄에 결혼해서 얼마전 백일을 넘긴

예쁜 딸을 둔 아내의 친정 막내 동생이었다.

"시간이 없었는가 봐요.

시댁 일로 내려 왔다가 잠깐 들렀는가 본데..."

그러면서 아내는 옷장에서 꾸러미 하나를 꺼내어 펼쳐 보였다.

"이걸 다 사왔더라 구요. 기집애..."

그것은 지웅이, 지현이의 아래 위 한 벌씩 예쁜 옷이었다.

"그러고요 여보, 선아가 3만원을 주었어요.

내 옷을 마땅한 것 하나 사려고 고르다 고르다 못 샀다고,

언니 맘에 드는 것 하나 사라면서..."

아내는 몹시 멋쩍은 듯 말끝을 흐렸다.

그러나 아내는 이미 그 3만원 중에서 저녁 찬거리를 준비하느라

8천원을 지출했노라고 말했다.

"여보! 반찬은 있는 것 그냥 먹으면 됐지. 처제 정성도 있는데."

나는 정말로 마음 써준 막내 처제가 고마웠고,

그 돈으로 아내가 맘에 드는 옷 하나 사 입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에서 말했다.

"2만원 선에서도 살 수 있을 거예요.

정 안되면 티셔츠라도 하나 사면되고..."

아내의 말이었다.

 

다음날 아침,

나는 출근하면서 아내에게 어제 처제가 준 돈 가지고

다른데 쓰지 말고 처제 정성을 생각해서라도

적당한 옷을 사 입으라고 권했다.

''라고 대답하는 아내의 모습은 무척 미안하다는 표정이다.

토요일이었다.

나는 좀 일찍 가게를 정돈하고 집을 향했다.

가게의 배달용 트럭인 포터는 내 자가용이다 시피

출퇴근에 사용되었다.

그래서 교통비는 따로 들지 않았고

주일이면 트럭을 이용해 온 가족이 교회를 다녀오곤 했다.

 

집에 가까워 오면서 나는 아내의 흐뭇해 할 모습을 상상해 본다.

예쁜 옷을 사 입고 남편을 기다릴 평범한 행복을 보려니 싶었다.

그러나 정작 집에 들어섰을 때,

아내는 약간의 화장된 얼굴에 밝지 못한 표정으로 나를 맞았다.

 

"여보. 어디 아픈 게요? 왜 그래."

"...." 아내는 말없이 머리를 좌우로 저을 뿐이었다.

"시내는 다녀오고? 옷은 샀소?"

나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물었다.

얼굴에 화장한 걸 보면 다녀왔거나 아니면 곧 갈 모양인데,

얼굴의 표정으로 봐서는 분명 무슨 문제가 있는 게 분명했다.

 

"옷 사러 갈려고 했는데, 가면 전화기도 찾아 와야 되잖아요.

그런데 전화기 수리비 7천원 주고 나면..."

아차, 그렇구나.

보름 전 낙뢰를 맞아 고장난 전화기를 시내 전파사에 맡겼는데

돈이 궁해 아직까지 찾아오지 못한 것이다.

"에구 이 사람아, 전화기는 월급 받으면 찾아오기로 했잖아"

나는 아내가 좀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러나 아내를 위해서는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여보, 갑시다. 트럭 타고 나랑 같이 갑시다.

그 돈은 당신을 위한 처제 선물이고, 선물은 선물로 빛을 봐야지"

내 말에 아내는 용기를 얻었는가 보다.

특유의 명랑함을 되찾았고, 우리 부부는 막내 지현이를 데리고

포터에 올라탔다.

나는 출발하기 전 내 호주머니에 있던 천원 권 지폐 몇 장을

모두 꺼내 아내에게 주었다.

아내의 밝은 표정을 보면서 나는 하나님께 감사했다.

 

그러나 이 행복한 날.

작은 행복을 위한 순간.

뜻하지 않은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시내에 들어서서 시장 입구에 아내와 아이를 내리게 한 다음,

차가 시내버스 정류장에 너무 가깝게 있다 싶어

조금 뒤쪽에 주차할 양으로(이곳은 노상 주차장이었다)

후진기어를 넣고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는 순간, ''하는

기분 나쁜 소리와 함께 불길한 예감이 차체를 통해 전달되었다.

나는 미처 확인하지 못했건만 어느 사이 내 차 뒤를

승용차 한 대가 따라와 막 주차 중이었던 모양이다.

다행이 승용차의 앞 범퍼에 거의 보일 듯 말 듯

아주 가볍게 긁힌 흔적이 있을 뿐이었다.

승용차에서는 험악한 인상을 한 말쑥한 오십대 초반의

남자 둘과 여자 셋이 내렸다.

 

"죄송합니다. 다행이 가볍...."

"이 사람아! 운전을 어찌 그 따위로 하나"

운전을 했던 듯한 사람이 내 말을 가로막으며 불쾌한 듯 내 뱉었다.

"어떻게 할거요?"

"예 제가 수리해 드려야지요"

"이건 프린스라고, 비싼 차에다 출고 된지 얼마 안 되는 차라서

수리비도 비싸요. 아마 적어도 사십 만원은 될 거요"

조금은 비아냥 하듯 그는 말했다.

 

그 때 옆에서 죄인이라도 다루듯 지켜보던 여자들이

내 트럭의 카스테레오에서 흘러 나오는 복음성가를 듣고는

교회 다니는 사람인가 보라며 수군거렸다.

그 승용차에도 룸미러에 매달려 있는 십자가로 보아

교회 다니는 사람임에 틀림없었다.

"교회 다녀요?"

그 사람이 내게 물었다.

". 교회 다니시는 군요!"

나는 한편 반가워서 되물었다.

"우리도 다 교회 다니오"

그리고는 윗주머니에서 명함을 한 장 꺼내어 내게 내밀었다.

"그리고 나는 대기업의 인사부장이오"

그는 '대기업의 인사부장'이라는 대목에 힘을 주며 말했다.

그러니 함부로 까불지 말라는 뜻이렷다.

()○○. A/V사업부. AUDIO 인사부. 부장 임○○.

 

"그건 그렇고, 당신 면허증 좀 봅시다"

그는 갑자기 냉정해졌다.

그리고는 다짜고짜 내 면허증과 차량등록증을 달라 하여

인근 문구점에 들어가 복사하더니 가까운 정비소로 가자는 것이었다.

 

아내는 무척 당황해 하였고 내심 차량 수리비가 많이 나오면

어떻게 하나 걱정하고 있었는데, 정비소에서의 감정 결과

6만원이 견적되었다.

", 지금 가진 돈이 없는데 괜찮으시다면 온라인으로

보내 드리면 어떨까요?"

그는 내 말을 어떻게 믿겠느냐며 중얼거리더니

잠시 후 수첩을 꺼내어 메모지에 번호를 적어 주는 것이었다.

()도 이름도 다른...

 

아내의 손에는 예쁜 옷 대신, 6만원에 대한 채무증서와

온라인 번호가 적힌 쪽지만이 들려 있었고

그녀의 눈에서는 눈물이 흐를 뿐이었다.

우리는 그냥 집으로 향했다.

"여보, 천만 다행이다 그지?"

한참을 오다가 나는 아내를 바라보며 위로했고

지현이 무릎 위로 한 손을 내밀어 아내의 손을 지그시 잡았다.

 

이제 아내는 마음이 가라앉은 듯 씨-익 웃어 주었고,

눈부신 저녁 햇살은 아내의 하얀 치아에 부딪쳐 왔다.

 

 

<월간 '활천'에 연재했던 "로뎀나무"(윤명상)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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