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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詩 같은 삶을 위하여
☞ 문학의 뜨락

백석(白石) 시 모음

by 石右 尹明相 2009. 12. 23.

   

백석(白石) (1912.7.1~1995) 본명 백기행(夔行)

평안북도 정주(定州) 출생.

오산(五山)중학과 일본 東京 靑山학원을 졸업.

1936년 시집 사슴을 간행하여 문단에 데뷔

 

 

백석(白石) 시 모음

 

 

남신의주(南新義州) 유동(柳洞) 박시봉방(朴時逢方)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木手)네 집 헌 삿을 깐,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 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같이 생각하며,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 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 위에 뜻 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 밖에 나가지두 않구 자리에 누워서,

머리에 손깍지베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메어 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천정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 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보며,

어느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워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아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를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 이다

 

 

 

흰 바람벽이 있어

 

오늘 저녁 이 좁다란 방의 흰 바람벽에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 간다

이 흰 바람벽에

희미한 십오촉 전등이 지치운 불빛을 내어던지고

때글은 다 낡은 무명샤쯔가 어두운 그림자를 쉬이고

그리고 또 달디단 따끈한 감주나 한 잔 먹고 싶다고 생각

하는 내 가지가지 외로운 생각이 헤매인다.

그런데 이것은 또 어언 일인가

이 흰 바람벽에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있다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이렇게 시퍼러둥둥하니 추운 날인데 차디찬 물에 손은 담

그고 무이며 배추를 씻고 있다

또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내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

어늬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의 나즈막한 집에서

그의 지아비와 마조 앉어 대구국을 끓여 놓고 저녁을 먹는다

벌써 어린것도 생겨서 옆에 끼고 저녁을 먹는다

그런데 또 이즈막하야 어늬 사이엔가

이 흰 바람벽엔 내 쓸쓸한 얼굴을 쳐다보며

이러한 글자들이 지나간다

-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났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어가는데

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 찬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를 위로하는 듯이 나를 울력하는 듯이

눈질을 하며 주먹질을 하며 이런 글자들이 지나간다

-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

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생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쓰 잼과 도연명과 라이넬 마리아 릴케가 그러하듯이

 

 

 

박각시 오는 저녁

 

당콩밥에 가지 냉국의 저녁을 먹고 나서

바가지꽃 하이얀 지붕에 박각시 주락시 붕붕 날아오면

집은 안팎 문을 횅 하니 열젖기고

인간들은 모두 뒷등성으로 올라 멍석자리를 하고 바람을 쐬이는데

풀밭에는 어느새 하이얀 다림질감들이 한불 널리고

돌우래며 팟중이 산옆이 들썩하니 울어댄다

이리하여 한울에 별이 잔콩 마당 같고

강낭밭에 이슬이 비 오듯 하는 밤이 된다

 

 

 

여승

 

여승은 합장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쓸쓸한 낯이 녯날같이 늙었다

나는 불경처럼 서러워졌다

 

평안도의 어늬 산 깊은 금덤판

나는 파리한 여인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여인은 나어린 딸아리를 따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십년이 갔다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산꿩도 설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

산절의 마당귀에 여인의 머리오리가

눈물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

 

 

 

가무래기의 낙

 

가무락조개 난 뒷간거리에

빚을 얻으려 나는 왔다

빚이 안 되어 가는 탓에

가무래기도 나도 모도 춥다

추운 거리의 그도 추운 능당 쪽을 걸어가며

내 마음은 우쭐댄다 그 무슨 기쁨에 우쭐댄다

이 추운 세상의 한구석에

맑고 가난한 친구가 하나 있어서

내가 이렇게 추운 거리를 지나온 걸

얼마나 기뻐하며 락단하고

그즈런히 손깍지벼개하고 누워서

이 못된 놈의 세상을 크게 크게 욕할 것이다

 

 

 

국수

 

눈이 많이 와서

산엣새가 벌로 나려 멕이고

눈구덩이에 토끼가 더러 빠지기도 하면

마을에는 그 무슨 반가운 것이 오는가보다

한가한 애동들은 어둡도록 꿩사냥을 하고

가난한 엄매는 밤중에 김치가재미로 가고

마을을 구수한 즐거움에 싸서 은근하니

흥성흥성 들뜨게 하며 이것은 오는 것이다

 

이것은 어늬 양지귀 혹은 능달쪽 외따른

산 녚 은댕이 예데가리밭에서 하로밤 뽀오얀

흰 김 속에 접시귀 소기름불이 뿌우현 부엌에

산멍에 같은 분틀을 타고 오는 것이다

이것은 아득한 녯날 한가하고 즐겁든 세월로부터

실 같은 봄비 속을 타는 듯한 녀름볕 속을 지나서

들쿠레한 구시월 갈바람 속을 지나서

대대로 나며 죽으며 죽으며 나며 하는

이 마을 사람들의 으젓한 마음을 지나서 텁텁한 꿈을 지나서

지붕에 마당에 우믈든덩에 함박눈이 푹푹 쌓이는

여늬 하로밤 아배 앞에 그 어린 아들 앞에 아배 앞에는

왕사발에 아들 앞에는 새끼 사발에 그득히 사리워 오는 것이다

 

이것은 그 곰의 잔등에 업혀서 길여났다는 먼 녯적 큰마니가

또 그 짚등색이에 서서 자채기를 하면

산 넘엣 마을까지 들렸다는 먼 녯적 큰 아바지가 오는 것같이 오는 것이다

,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이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은 무엇인가

겨울밤 쩡하니 닉은 동티미국을 좋아하고

얼얼한 댕추가루를 좋아하고 싱싱한 산꿩의 고기를 좋아하고

그리고 담배 내음새 탄수 내음새 또 수육을 삶는 육수국 내음새 자욱한

더북한 삿방 쩔쩔 끓는 아르궅을 좋아하는 이것은 무엇인가

이 조용한 마을과 이 마을의 으젓한 사람들과

살틀하니 친한 것은 무엇인가

이 그지없이 고담하고 소박한 것은 무엇인가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거리를 걸어가는 것은

장품 날씨가 너무나 좋은 탓이고

가난한 동무가 새 구두를 신고 지나간 탓이고

언제나 꼭 같은 넥타이를 매고 고운 사람을 사랑하는 탓이다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거리를 걸어가는 것은

도 내 많이 못한 월급이 얼마나 고마운 팃이고

어얼게 젊은 나이로 코밑 수염도 걸러보는 탓이고

그리고 어느 가난한 집 무엌으로

달재 생선을 진장에 꼿꼿이 지진 것은 맛도

있다는 말이 자꾸 들려 오는 탓이다

 

 

 

흰 밤

 

옛 성()의 돌담에 달이 올랐다

묵은 초가지붕에 박이

또 하나 달같이 하이얗게 빛난다

언젠가 마을에서 수절과부 하나가

목을 매어 죽은 밤도 이러한 밤이었다

 

 

 

모닥불

 

새끼오리도 헌신짝도 소똥도 갓신창도 개니빠디도 너울쪽도

짚검뷸도 거랑닢도 머리카락도 헝겊조각도 막대꼬치도

기왓장도 닭의 짖도 개터럭도 타는 모닥불

 

재당도 초시도 문장(門長) 늙은이도 더부살이 아이도

새사위도 갖사둔도 나그네도 주인도 할아버지도 손자도

붓장사도 땜장이도 큰 개도 강아지도 모두 모닥불을 쪼인다.

 

모닥불은 어려서 우리 할아버지가

어미아비 없는 서러운 아이로 불쌍하니도

몽둥발이가 된 슬픈 역사가 있다.

 

 

 

가즈랑집

 

승냥이가 새끼를 치는 전에는 쇠메든

도적이 났다는 가즈랑고개 가즈랑집은 고개 밑의

산 너머 마을서 도야지를 잃는 밤 짐승을 쫓는

깽제미 소리가 무서웁게 들려 오는 집

닭 개 짐승을 못 놓는 멧도야지와 이웃사촌을 지나는 집

예순이 넘은 아들 없는 가즈랑집 할머니는

중같이 정해서 할머니가 마을을 가면

긴 담뱃대에 독하다는 막써레기를 몇 대라도 붙이라고 하며

간밤에 섬돌 아래 승냥이가 왔었다는 이야기

어느메 산골에선간 곰이 아이를 본다는 이야기

나는 돌나물김치에 백설기를 먹으며

옛말의 구신집에 있는 듯이 가즈랑집 할머니

내가 날 때 죽은 누이도 날 때 무명필에 이름을 써서

백지 달아서 구신간시렁의 당즈깨에 넣어 대감님께

수영을 들였다는 가즈랑집 할머니

언제나 병을 앓을 때면

신장님 단련이라고 하는 가즈랑집 할머니

구신의 딸이라고 생각하면 슬퍼졌다

토끼도 살이 오른다는 때 아르대즘퍼리에서

제비꼬리 마타리 쇠조지 가지취 고비 고사리 두릅순

회순산나물을 하는 가즈랑집 할머니를 따르며

나는 벌써 달디단 물구지우림 둥굴레우림을 생각하고

아직 멀은 도토리묵 도토리범벅까지도 그리워한다

뒤울안 살구나무 아래서 광살구를 찾다가

살구벼락을 맞고 울다가 웃는 나를 보고

밑구멍에 털이 몇 자나 났나 보자고 한 것은 가즈랑집 할머니다

찰복숭아를 먹다가 씨를 삼키고는 죽는 것만 같아

하루종일 놀지도 못하고 밥도 안 먹은 것도 가즈랑집에 마을을 가서

당세 먹은 강아지같이 좋아라고 집오래를 설레다가였다

 

 

 

여우난골족()

 

명절날 나는 엄매 아배 따라 우리집 개는 나를 따라

진할머니 진할아버지가 있는 큰집으로 가면

 

얼굴에 별자국이 솜솜 난 말수와 같이 눈도 껌벅거리는

하루에 베 한 필을 짠다는 벌 하나 건너 집엔

복숭아나무가 많은 신리(新里)

고무 고무의 딸 이녀(李女) 작은 이녀(李女)

 

열여섯에 사십(四十)이 넘은 홀아비의 후처가 된 포족족하니

성이 잘 나는 살빛이 매감탕 같은 입술과 젖꼭지는

더 까만 예수쟁이 마을 가까이 사는 토산(土山)

고무 고무의 딸 승려(承女) 아들 승()동이

 

육십리(六十里)라고 해서 파랗게 뵈이는

산을 넘어 있다는 해변에서 과부가 된 코끝이 빨간

언제나 흰옷이 정하든 말 끝에 섧게 눈물을 짤 때가 많은

큰골 고무 고무의 딸 홍녀(洪女) 아들 홍()동이 작은 홍()동이

 

배나무접을 잘하는 주정을 하면 토방돌을 뽑는 오리치를 잘 놓는

먼섬에 반디젓 담그러 가기를 좋아하는 삼춘 엄매 사춘누이

사춘 동생들이 그득히들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는

안간에들 모여서 방안에서는 새옷의 내음새가 나고

또 인절미 송구떡 콩가루차떡의 내음새도 나고 끼때의 두부와 콩나물과

고운 잔디와 고사리와 도야지비계는 모두 선득선득 하니 찬 것들이다

 

저녁술을 놓은 아이들은 외양간섶 밭마당에 달린

배나무 동산에서 쥐잡이를 하고 숨굴막질을 하고

꼬리잡이를 하고 가마타고 시집가는 놀음 말 타고

장가가는 놀음을 하고 이렇게 밤이 어둡도록 북적하니 논다

 

밤이 깊어가는 집안엔 엄매는 엄매들끼리 아르간에서들

웃고 이야기하고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웃간 한 방을 잡고

조아질하고 쌈방이 굴리고 바리깨돌림하고 호박떼기하고

제비손이구손이 하고 이렇게 화디의 사기방등에

심지를 몇 번이나 돋구고 홍게닭이 몇번이나 울어서

졸음이 오면 아릇목싸움 자리싸움을 하며 히드득 거리다 잠이 든다

그래서는 문창에 텅납새의 그림자가 치는 아침 시누이 동세들이

욱적하니 흥성거리는 부엌으론 샛문 틈으로 장지 문틈으로

무이징게국을 끓이는 맛있는 내음새가 올라오도록 잔다

 

 

 

팔원(八院) - 서행 시초(西行詩抄) 3

 

차디찬 아침인데

묘향산행 승합자동차는 텅하니 비어서

나이 어린 계집아이 하나가 오른다.

 

옛말속같이 진진초록 새 저고리를 입고

손잔등이 밭고랑처럼 몹시도 터졌다.

 

계집아이는 자성(慈城)으로 간다고 하는데

자성은 예서 삼백오십 리 묘향산 백오십 리

묘향산 어디메서 삼촌이 산다고 한다.

 

새하얗게 얼은 자동차 유리창 밖에

내지인(內地人) 주재소장(駐在所長) 같은

어른과 어린아이 둘이 내임을 낸다.

 

계집아이는 운다, 느끼며 운다.

텅 비인 차 안 한구석에서 어느 한 사람도 눈을 씻는다.

 

계집아이는 몇 해고 내지인 주재소장 집에서

밥을 짓고 걸레를 치고 아이보개를 하면서

이렇게 추운 아침에도 손이 꽁꽁 얼어서

찬물에 걸레를 쳤을 것이다.

 

 

 

정주성(定州城)

 

()턱 원두막은 비었나 불빛이 외롭다

헝겊 심지에 아주까리 기름의 쪼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잠자려 조을던 무너진 성()

반딧불이 난다 파란 혼()들 같다

어데서 말 있는 듯이 크다란 산새 한 마리 어두운 골짜기로 난다

헐리다 남은 성문(城門)

한울빛같이 훤하다

날이 밝으면 또 메기수염의 늙은이가 청배를 팔러 올 것이다

 

 

 

고향(故鄕)

 

나는 북관(北關)에 혼자 앓아 누워서

어늬 아츰 의원(醫員)을 뵈이었다

의원(醫員)은 여래(如來)같은 상을 하고

관공(關公)의 수염을 드리워서

먼 녯적 어늬 나라 신선 같은데

새끼손톱 길게 돋은 손을 내어

묵묵하니 한참 맥을 짚드니

문득 물어 고향(故鄕)이 어데냐 한다

 

평안도(平安道) 정주(定州)라는 곳이라 한즉

그러면 아무개씨() 고향(故鄕)이란다

그러면 아무개씰() 아느냐 한즉

의원(醫員)은 빙긋이 웃음을 띠고

막역지간(莫逆之間)이라며 수염을 쓴다

 

나는 아버지로 섬기는 이라 한즉

의원(醫員)은 또다시 넌즈시 웃고

말없이 팔을 잡아 맥을 보는데

손길은 따스하고 부드러워

고향(故鄕)도 아버지도 아버지의 친구도 다 있었다

 

 

 

석양(夕陽)

 

거리는 장날이다

장날 거리에 녕감들이 지나간다

녕감들은

말상을 하였다 범상을 하였다 쪽재피상을 하였다

개발코를 하였다 안장코를 하였다 질병코를 하였다

그 코에 모두 *학실을 썼다

돌체돋보기다 대모체돋보기다 로이도돋보기다

녕감들은 유리창같은 눈을 번득거리며

투박한 *북관말을 떠들어대며

*쇠리쇠리한 저녁해 속에

사나운 즘생같이들 사러졌다

 

 

 

통영(統營)

 

1

옛날엔 통제사(統制使)가 있었다는 낡은 항구(港口)의 처녀들에겐

옛날이 가지 않은 천희(千姬)라는 이름이 많다

 

미역오리 같이 말라서 굴껍질처럼 말없이 사랑하다 죽는다는

이 천희(千姬)의 하나를 나는

어느 오랜 객주(客主)집의 생선 가시가 있는 마루방에서 만났다

 

저문 유월(六月)의 바닷가에선 조개도 울을 저녁

소라방등이 붉으레한 마당에 김냄새 나는 비가 나렸다

 

2

구마산(舊馬山)의 선창에선 좋아하는 사람이 울며 나리는

배에 올라서 오는 물길이 반날

갓 나는 고당은 갓갓기도 하다

 

바람맛도 짭짤한 물맛도 짭짤한

전복에 해삼에 도미 가재미의 생선이 좋고

파래에 아개미에 호루기의 젓갈이 좋고

새벽녘의 거리엔 쾅쾅 북이 울고

밤새껏 바다에선 뿡뿡 배가 울고

자다가도 일어나 바다로 가고 싶은 곳이다

 

집집이 아이만한 피도 안 간 대구를 말리는 곳

황화장사 영감이 일본말을 잘도 하는 곳

처녀들은 모두 어장주(漁場主) 한테 시집을 가고 싶어한다는 곳

산 너머로 가는 길 돌각담에 갸웃하는 처녀는 금()이라는 이같고

내가 들은 마산(馬山) 객주(客主)집의 어린 딸은 난()이라는 이 같고

()이라는 이는 명정(明井)골에 산다는데

명정(明井)골은 산을 넘어 동백(冬栢)나무 푸르른

감로(甘露)같은 물이 솟는 명정(明井) 샘이 있는 마을인데

샘터엔 오구작작 물을 긷는 처녀며 새악시들 가운데

내가 좋아하는 그이가 있을 것만 같고

내가 좋아하는 그이는 푸른 가지 붉게붉게

동백꽃 피는 철엔 타관 시집을 갈 것만 같은데

긴 토시 끼고 큰머리 얹고 오불고불 넘엣거리로 가는 여인은

평안도(平安道)서 오신 듯한데 동백(冬栢)꽃 피는 철이 그 언제요

옛 장수 모신 낡은 사당의 돌층계에 주저앉어서

나는 이 저녁 울 듯 울 듯 한산도(閑山島) 바다에 뱃사공이 되어가며

녕 낮은 집 담 낮은 집 마당만 높은 집에서

열나흘 달을 업고 손방아만 찧는 내 사람을 생각한다

 

 

 

통영(統營) 2

 

구마산(舊馬山)의 선창에선

좋아하는 사람이 울며 나리는

배에 올라서 오는 물길이 반날

갓 나는 고당은 갓갓기도 하다

 

바람 맛도 짭짤한 물맛도 짭짤한

전북에 해삼에 도미 가재미의 생선이 좋고

파래에 아개미에 호루기의 젓갈이 좋고

새벽녘의 거리엔 쾅쾅 북이 울고

밤새껏 바다에서 뿡뿡 배가 울고

자다가도 일어나 바다로 가고 싶은 곳이다

 

집집이 아이만한 피도 안 간 대구를 말리는 곳

황화장사 령감이 일본말을 잘도 하는 곳

처녀들은 모두 어장주한테 시집을 가고 싶어 한다는 곳

산 너머로 가는 길 돌각담에 갸웃하는 처녀는 금이라는 이 같고

내가 들은 마산 객줏

집의 어린 딸은 난이라는 이 같고

난이라는 이는 명정 골에 산다던데

명정 골은 산을 넘어 동백나무 푸르른 감로 같은 물이 솟는

명정 샘이 있는 마을인데 샘터엔 오구작작 물을 긷는 처녀며

새악시들 가운데 내가 좋아하는 그이가 있을 것만 같고

내가 좋아하는 그이는 푸른 가지 붉게 붉게 동백꽃 피는 철엔

타관 시집을 갈 것만 같은데 긴 토시 끼고 큰머리 얹고

오불고불 넘엣거리로 가는 여인은 평안도서 오신 듯한데

동백꽃이 피는 철이 그 언제요

 

녯 장수 모신 낡은 사당의 돌층계에 주저앉아서

나는 이 저녁 울듯 울듯 한산도 바다에 뱃사공이 되어가며

녕 낮은 집 담 낮은 집 마당만 높은 집에서

열나흘 달을 업고 손방아만 찧는 내 사람을 생각한다

 

 

 

석류(石榴)

 

南方土 풀 안 돋은 양지귀가 본이다

햇비 멎은 저녁의 노을 먹고 살다

 

太古에 나서

仙人圖가 꿈이다

高山淨土山藥 캐다 오다

 

달빛은 異鄕

눈을 정기 속에 어우러진 싸움

 

 

 

절간의 소 이야기

 

병이 들면 풀밭으로 가서 풀을 뜯는 소는

人間보다 해서 열 걸음 안에

제 병을 낫게 할 이 있는 줄을 안다고

 

首陽山의 어늬 오래된 절에서

七十이 넘은 로장은 이런 이야기를 하며

치마자락의 나물을 추었다

 

 

 

연자간

 

달빛도 거지도 도적개도 모다 즐겁다

풍구재도 얼럭소도 쇠드랑볕도 모다 즐겁다

 

도적괭이 새끼락이 나고

살진 쪽제비 트는 기지개에 길고

 

홰냥닭은 알을 낳고 소리치고

강아지는 겨를 먹고 오줌 싸고

 

개들은 게모이고 쌈지거리하고

놓여난 도야지 둥구재벼 오고

 

송아지 잘도 놀고

까치 보해 짖고

 

신영길 말이 울고 가고

장돌림 당나귀도 울고 가고

 

대들보 우에 베틀도 채일도 토리개도

모도들 편안하니

구석구석 후치도 보십도 소시랑도

모도들 편안하니

 

 

 

절망(絶望)

 

北關에 계집은 튼튼하다

北關에 계집은 아름답다

아름답고 튼튼한 계집은 있어서

흰 저고리에 붉은 길동을 달어

검정치마에 받쳐입은 것은

나의 꼭 하나 즐거운 꿈이였드니

어늬 아츰 계집은

머리에 무거운 동이를 이고

손에 어린것의 손을 끌고

가펴러운 언덕길을

숨이 차서 올라갔다

나는 한종일 서러웠다

 

 

 

고야(古夜)

 

아배는 타관 가서 오지 않고 비탈 외따른 집에

엄매와 나와 단둘이서 누가 죽이는 듯이

무서운 밤 집뒤로는 어늬 골짜기에서 소를 잡어먹는

노나리꾼들이 도적놈들같이 쿵쿵거리며 다닌다

 

날기멍석을 져간다는 닭보는 할미를 차 굴린다는 땅아래

고래 같은 기와집에는 언제나 니차떡에 청밀에

은금보화가 그득하다는 외발 가진 조마구 뒷어늬메도

조마구네 나라가 있어서 오줌누러 깨는 재밤

머리맡의 문살에 대인 유리창으로 조마구 군병의

새까만 대가리 새까만 눈알이 들여다보는 때

나는 이불속에 자즈러붙어 숨도 쉬지 못한다

 

또 이러한 밤 같은 때 시집갈 처녀 막내고무가

고개너머 큰집으로 치장감을 가지고 와서 엄매와 둘이

소기름에 쌍심지의 불을 밝히고 밤이 들도록 바느질을 하는

밤 같은 때 나는 아릇목의 삿귀를 들고 쇠든밤을 내여

다람쥐처럼 밝어먹고 은행여름을 인두 불에 구어도 먹고

그러다는 이불 우에서 광대넘이를 뒤이고

또 누어 굴면서 엄매에게 웃목에 두른 평풍의 새빨간

천두의 이야기를 듣기고 하고 고무더러는 밝는 날

멀리는 못 난다는 뫼추라기를 잡어달라고 조르기도 하고

 

내일같이 명절날인 밤은 부엌에 쩨듯하니

불이 밝고 솥뚜껑이 놀으며 구수한 내음새 곰국이 무르끊고

방안에서는 일가집 할머니가 와서 마을의 소문을 펴며

조개송편에 달송편에 죈두기송편에 떡을 빚는 곁에서

나는 밤소 팥소 든 콩가루소를 먹으며

설탕 든 콩가루소가 가장 맛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얼마나 반죽을 주무르며

흰가루손이 되여 떡을 빚고 싶은지 모른다

 

섣달에 냅일날이 들어서 냅일날 밤에 눈이 오면

이 밤엔 쌔하얀 할미귀신의 눈귀신도 냅일눈을 받노라

못 난다는 말을 든든히 녀기며 엄매와 나는 앙궁 우에

떡돌 우에 곱새담 우에 함지에 버치며 대냥푼을 놓고

치성이나 드리듯이 정한 마음으로 냅일눈 약눈을 받는다

이 눈세기물을 냅일물이라고 제주병에 진상항아리에

채워두고는 해를 묵여가며 고뿔이 와도 배앓이를해도

갑피기를 앓어도 먹을 물이다

 

 

 

 

아카시아들일 언제 흰 두레방석을 깔었나

어데서 물쿤 개비린내가 온다

 

 

 

산비

 

뽕잎에 빗방울이 친다

멧비들기가 닐다

나무등걸에서 자벌기가 고개를 들었다 멧비들기켠을 본다

 

 

 

주막(酒幕)

 

호박잎에 싸오는 붕어곰은 언제나 맛있었다

부엌에는 빨갛게 질들은 모알상이

그 상 우엔 새파란 싸리를 그린 눈알만한 이 뵈였다

 

아들아이는 범이라고 장고기를 잘 잡는

앞니가 뻐드러진 나와 동갑이었다

울파주 밖에는 장꾼들을 따러와서

엄지의 젖을 빠는 망아지도 있었다

 

 

 

청시(靑枾)

 

별 많은 밤

하누바람이 불어서

푸른 감이 떨어진다 개가 짖는다

 

 

 

광원(曠原)

 

흙꽃 니는 이름 봄의 무연한 벌을

輕便鐵道가 노새의 맘을 먹고 지나간다

멀리 바다가 뵈이는

假停車場도 없는 벌판에서

는 머물고

젊은 새악시 둘이 나린다

 

 

 

추일산조(秋日山朝)

 

아츰볕에 섶구슬이 한가로히 익는 골짝에서

꿩은 울어 울림과 장난을 한다

마루를 탄 사람들은 새꾼들인가

파란 한울에 떨어질 것같이

웃음소리가 더러 밑까지 들린다

巡禮중이 을 올라간다

어젯밤은 이 절에 가 들었다

무리돌이 굴어나리는 건 중의 발꿈치에선가

 

 

 

성외(城外)

 

어두워오는 城門밖의 거리

도야지를 몰고 가는 사람이 있다

엿방 앞에 엿궤가 없다

양철통을 쩔렁거리며 달구지는 거리끝에서 江原道로 간다는 길로 든다

술집 문창에 그느슥한 그림자는 머리를 얹혔다

 

 

 

적경(寂境)

 

신살구를 잘도 먹드니 눈오는 아츰

나어린 안해는 첫아들을 낳었다

人家 멀은 중에

까치는 배나무에서 짖는다

컴컴한 부엌에서는 늙은 홀아비의 시아부지가 미역국을 끓인다

그 마을의 외따른 집에서도 산국을 끊인다

 

 

 

하답(夏畓)

 

짝새가 발뿌리에서 닐은 논드렁에서

아이들은 개구리의 뒷다리를 구어먹었다

게구멍을 쑤시다 물쿤하고 배암을 잡은

늪의 피 같은 물이끼에 햇볕이 따그웠다

돌다리에 앉어 날버들치를 먹고

몸을 말리는 아이들은 물총새가 되었다

 

 

 

초동일(初冬日)

 

흙담벽에 볕이 따사하니

아이들은 물코를 흘리며 무감자를 먹었다

돌덜구에 天上水가 차게

복숭아나무에 사라리타래가 말러갔다

 

 

 

오리 망아지 토끼

 

오리치를 놓으려 아배는 논으로 나려간 지 오래다

오리는 동비탈에 그리자를 떨어트리며 날어가고

나는 동말랭이에서 강아지처럼 아배를 부르다 울다가

시악이 나서는 등뒤 개울물에 아배의 신짝과

버선목과 대님오리를 모다 던져버린다

장날 아츰에 앞 행길로 엄지 따러 지나가는

망아지를 내라고 나는 조르면

아배는 행길을 향해서 크다란 목소리로

매지야 오나라

매지야 오나라

새하려 가는 아배의 지게에 지워

나는 으로 가며 토끼를 잡으리라고 생각한다

맞구멍난 토끼굴을 아배와 내가 막어서면

언제나 토끼새끼는 내 다리 아래로 달어났다

나는 서글퍼서 서글퍼서 울상을 한다

 

 

 

쓸쓸한 길

 

거적장사 하나 뒷옆 비탈을 오른다

- 따르는 사람도 없이 쓸쓸한 쓸쓸한 길이다

가마귀만 울며 날고

도적갠가 개 하나 어정어정 따러간다

이스라치전이 드나 머루전이 드나

수리취 땅버들의 하이얀 복이 서러웁다

뚜물같이 흐린 날 東風이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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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빗기가 싫다면

니가 들구 나서

머리채를 끄을구 오른다는

이 있었다

 

너머는

겨드랑이에 짓이 돋아서 장수가 된다는

더꺼머리 총각들이 살아서

색시 처녀들을 잘도 업어간다고 했다

 

마루에 서면

머리 언제나 늘 그물그물

그늘만 친 건넌에서

벼락을 맞아 바윗돌이 되었다는

큰 땅괭이 한 마리

수염을 뻗치고 건너다보는 것이 무서웠다

 

그래도 그 쉬영꽃 진달래 빨가니 핀 꽃바위 너머

잔등에는 가지취 뻐꾹채 게루기 고사리 나물판

나물 냄새 물씬물씬 나는데

나는 복장노루를 따라 뛰었다

 

 

 

단풍

 

빩안물 짙게든 얼굴이 아름답지 않으뇨.

빩안무르녹는 마음이 아름답지 않으뇨.

단풍든 시절은 새빩안 우슴을 웃고 새빩안 말을 지줄댄다.

 

어데 靑春을 보낸 서러움이 있느뇨.

어데 老死를 앞둔 두려움이 있느뇨.

 

재화가 한끝 풍성하야 十月햇살이 무색하다.

사랑에 한창 익어서 살찐다. 몸이 불탄다.

영화의 자랑이 한창 현란해서 청청한울이 눈부셔한다.

 

十月시절은 단풍이 얼굴이요,

또 마음인데 十月단풍도 높다란 낭떨어지에 두서나

나무 깨웃듬이 외로히서서 한들걸이는 것이 기로다.

 

十月단풍은 아름다우나 사랑하기를 삼갈 것이니

울어서도 다하지 못한 독한 원한이

빩안 자주로 지지우리지 않느뇨.

 

 

 

동뇨부(童尿賦)

 

봄철날 한종일내 노곤하니 벌불 장난을 한 날 밤이면

으례히 싸개 동당을 지나는데 잘망하니

누어 싸는 오줌이 넓적다리를 흐르는

따끈따끈한 맛 자리에 펑하니 괴이는 척척한 맛

 

첫여름 이른 저녁을 해치우고 인간들이

모두 터앞에 나와서 물외포기에 당콩포기에

오줌을 주는 때 터앞에 밭마당에 샛길에 떠도는

오줌의 매캐한 재릿한 내음새

 

긴긴 겨울밤 인간들이 모두 한잠이 들은

재밤중에 나 혼자 일어나서 머리맡 쥐발 같은

새끼오강에 한없이 누는 잘 매럽던

오줌의 사르릉 쪼로록 하는 소리

 

그리고 또 엄매의 말엔

내가 아직 굳은 밥을 모르던 때

살갗 퍼런 막내고무가 잘도 받어 세수를 하였다는

내 오줌빛은 이슬같이 샛말갛기도 샛맑았다는 것이다

 

 

 

 

접시 귀에 소기름이나 소뿔등잔에

아즈까리 기름을 켜는 마을에서는

겨울밤 개 짖는 소리가 반가웁다

 

이 무서운 밤을 아래웃방성

마을 돌아다니는 사람은 있어 개는 짖는다

 

낮배 어니메 치코에 꿩이라도 걸려서

산너머 국수집에 국수를 받으려 가는

사람이 있어도 개는 짖는다

 

김치 가재미선 동치미가 유별히 맛나게 익는 밤

아배가 밤참 국수를 받으려 가면 나는

큰마니 돋보기를 쓰고 앉어 개 짖는 소리를 들은 것이다

 

 

 

외갓집

 

내가 언제나 무서운 외가집은

초저녁이면 안팎마당이 그득하니

하이얀 나비수염을 물은 보득지근한 복쪽재비들이

씨굴씨굴 모여서는 쨩쨩 쇳스럽게 울어대고

밤이면 무엇이 기와골에 무리돌을 던지고

뒤울안 배나무에 쩨듯하니 줄등을 헤여달고

부뚜막의 큰솥 적은솥을 모주리 뽑아놓고

재통에 간 사람의 목덜미를 그냥그냥 나려

눌러선 잿다리 아래로 처박고

그리고 새벽녘이면 고방 시렁에

채국채국 얹어둔 모랭이 목판 시루며

함지가 땅바닥에 넘너른히 널리는 집이다

 

 

 

마을은 맨천 구신이 돼서

 

나는 이 마을에 태어나기가 잘못이다

마을은 맨천 구신이 돼서

나는 무서워 오력을 펼 수 없다

자 방안에는 성주님

나는 성주님이 무서워 토방으로 나오면 토방에는 다운구신

나는 무서워 부엌으로 들어가면 부엌에는 부뜨막에 조앙님

나는 뛰쳐나와 얼른 고방으로 숨어 버리면 고방에는 또 시렁에 데석님

나는 이번에는 굴통 모롱이로 달아가는데 굴통에는 굴대장군

얼혼이 나서 뒤울안으로 가면 뒤울안엔느 곱새녕 아래 털능구신

나는 이제는 할 수 없이 대문을 열고 나가려는데

대문간에는 근력 세인 수문장

나는 겨우 대문을 삐쳐나 바깥으로 나와서

밭 마당귀 연자간 앞을 지나가는데 연자간에는 또 연자당구신

나는 고만 디겁을 하여 큰 행길로 나서서

마음 놓고 화리서리 걸어가다 보니

아아 말 마라 내 발뒤축에는 오나가나 묻어 다니는 달걀구신

마을은 온데간데 구신이 돼서 나는 아무데도 갈 수 없다

 

 

 

적막강산

 

오이밭에는 벌배채 통이 지는 때는

산에 오면 산 소리

벌로 오면 벌 소리

 

산에 오면

큰솔밭에 뻐꾸기 소리

잔솔밭에 덜거기 소리

 

벌로 오면

논두렁에 물닭의 소리

갈밭에 갈새 소리

 

산으로 오면 산이 들썩 산 소리 속에 나 홀로

벌로 오면 벌이 들썩 벌 소리 속에 나 홀로

 

定州 東林 九十긴기 하로 길에

산에 오면 산소리 벌에 오면 벌 소리

적막강산에 나는 있노라

 

 

 

늙은 갈대의 독백

 

해가 진다 갈새는 얼마 아니하야 잠이 든다

묽닭도 쉬이 어늬 낯설은 논드렁에서 돌아온다

 

바람이 마을을 오면

그때 우리는 설게 늙음의 이야기를 편다

 

보름밤이면

갈거이와 함께 이 언덕에서 달보기를 한다

 

강물과 같이 세월의 노래를 부른다

새우들이 마름 잎새에 올라앉는 이때가 나는 좋다

 

어늬 처녀가 내 닢을 따 갈부던을 결었노

어늬 동자가 내 잎닢 따 갈나발을 불었노

 

어늬 기러기 내 순한 대를 입에다 물고갔노

- 어늬 태공망이 내 젊음을 낚어갔노

 

이몸의 매딥매딥 잃어진 사랑의 허물자국

별많은 어늬 밤 강을 날여간 강다리배의 갈대피리

비오는 어늬 아침 나루배 나린 길손의 갈대 지팽이

모다 내 사랑이었다

 

해오라비 조는 곁에서 물뱀의 새끼를 업고 나는 꿈을 꾸었다

벼름질로 돌아오는 낫이 나를 다리려 왔다

달구지 타고 산골로 삿자리의 벼슬을 갔다.

 

 

 

칠월(七月) 백중

 

마을에서는 세불 김을 다 매고 들에서

개장취념을 서너 번 하고 나면

백중 좋은 날이 슬그머니 오는데

백중날에는 새악시들이

생모시치마 천진푀치마의 물팩치기 껑추렁한 치마에

쇠주푀적삼 항라적삼의 자지고름이 기드렁한 적삼에

한끝나게 상나들이옷을 있는 대로 다 내입고

머리는 다리를 서너 켜레씩 들어서

시뻘건 꼬둘채댕기를 삐뚜룩하니 해꽂고

네날백이 따배기신을 맨발에 바뀌 신고

고개를 몇이라도 넘어서 약물터로 가는데

무썩무썩 더운 날엔도 벌 길에는

건들건들 씨언한 바람이 불어오고

허리에 찬 남갑사 주머니에는 오랜만에 돈푼이 들어 즈벅이고

광지보에서 나온 은장두에 바늘집에 원앙에 바둑에

번들번들하는 노리개는 스르럭스르럭 소리가 나고

고개를 몇이라도 넘어서 약물터로 오면

약물터엔 사람들이 백재일치듯 하였는데

붕가집에서 온 사람들도 만나 반가워하고

깨죽이며 문주며 섶자락 앞에 송구떡을 사서 권하거니 먹거니 하고

그러다는 백중 물을 내는 소내기를 함뿍 맞고

호주를하니 젖어서 달아나는데

이번에는 꿈에도 못 잊는 붕가집에 가는 것이다

붕가집을 가면서도 칠월 그믐 초가을을 할 때까지

평안하니 집살이를 할 것을 생각하고

애끼는 옷을 다 적시어도 비는 씨원만 하다고 생각한다

 

 

 

추야일경(秋夜一景)

 

닭이 두 홰나 울었는데

안방 큰방은 홰즛하니 당등을 하고

인간들은 모두 웅성웅성하니 깨여 있어서들

오가리며 석박디를 썰고

생강에 파에 청각에 마눌을 다지고

시래기를 삶는 훈훈한 방안에는

양념 내음새가 싱싱도 하다

밖에는 어데서 물새가 우는데

토방에선 햇콩두부가 고여히 숨이 들어갔다

 

 

 

삼천포(三千浦) -南行詩抄 4

 

졸레졸레 도야지새끼들이 간다

귀밑이 재릿재릿하니 볕이 담복 따사로운 거리다

잿더미에 까치 오르고 아이 오르고 아지랑이 오르고

해바라기 하기 좋을 볏곡간 마당에

볏짚같이 누우란 사람들이 물러서서

어늬 눈오신 날 눈을 츠고 생긴 듯한 말다툼소리도 누우라니

소는 기르매 지고 조은다

아 모도들 따사로히 가난하니

 

 

 

탕약(湯藥)

 

눈이 오는데

토방에서는 질화로 우에 곱돌탕관에 약이 끊는다

삼에 숙변에 목단에 백복령에 산약에 택사의 몸을 보한다는 六味湯이다

약탕관에서는 김이 오르며 달큼한 구수한 향기로운 내음새가 나고

약이 끊는 소리는 삐삐 즐거웁기도 하다

 

그리고 다 달인 약을 하이얀 약사발에 밭어놓은 것은

아득하니 깜하야 萬年옛적이 들은 듯한데

나는 두손으로 고히 약그릇을 들고

이 약을 내인 옛사람들을 생각하노라면

내 마음은 끊없이 고요하고 맑아진다

 

 

 

오리

 

오리야 네가 좋은 淸明 밑께 밤은

옆에서 누가 뺨을 쳐도 모르게 어둡다누나

오리야 이때는 따디기가 되여 어둡단다

 

아무리 밤이 좋은들 오리야

해변벌에선 얼마나 너이들이 욱자지껄하며 멕이기에

해변땅에 나들이 갔든 할머니는

오리새끼들은 장몽이나 하듯이 떠들썩하니 시끄럽기도 하드란 숭인가

 

그래도 오리야 호젓한 밤길을 가다

가까운 논배미들에서

까알까알 하는 너이들의 즐거운 말소리가 나면

나는 내 말을 그 아는 사람들의 지껄지껄하는 말소리같이 반가웁고나

오리야 너이들이 이야기판에 나도 들어

밤을 같이 밝히고 싶고나

 

오리야 나는 네가 좋구나 네가 좋아서

벌논의 늪 옆에 쭈구렁벼알 달린 짚검불을 널어놓고

닭이짓 올코에 새끼달은치를 묻어놓고

동둑넘어 숨어서 하로진일 너를 기다린다

 

오리야 고흔 오리야 가만히 안겼거라

너를 팔어 술을 먹는 장에 령감은

홀아비 소의연 침을 놓는 령감인데

나는 너를 백통전 하나 주고 사오누나

 

나를 생각하든 그 무당의 딸은 내 어린 누이에게

오리야 너를 한쌍 주느니

어린 누이는 없고 저는 시집을 갔다건만

오리야 너는 한쌍이 날어가누나

 

 

 

노루

 

산골에서는 집터를 츠고 달궤를 닦고

보름달 아래서 노루고기를 먹었다

 

 

 

머루밤

 

불을 끈 방안에 횃대의 하이얀 옷이 멀리 추울 것같이

方位로 말방울 소리가 들려온다

 

을 열다 머루빛 밤한울에

송이버슷의 내음새가 났다

 

 

 

북신

 

거리에는 모밀내가 났다

부처를위한다는 정갈한 노친네의 내음새 같은 모밀내가 났다

어쩐지 향산 부처님이 가까웁다는 거린데

국수집에는 농짝같은 도야지를 잡어 걸고 국수를 치는

도야지 고기는 돗바늘 같은 털이 드믄드믄 백였다

나는 이 털도 안 뽑은 도야지 고기를 물구러미 바라보며

또 털도 안 뽑은 고기를 시꺼먼 맨모밀국수에 얹어서

한입에 꿀꺽 삼키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나는 문득 가슴에 뜨끈한 것을 느끼며

소수림왕을 생각한다 광개토대왕을 생각한다

 

 

 

북관

 

명태 창란젓에 고추무거리에 막칼질한 무이를 뷔벼 익힌 것을

이 투박한 북관을 한없이 끼밀고 있노라면

쓸쓸하니 무릎은 꿇어진다

시큼한 배척한 퀴퀴한 이 내음새 속에

나는 그느슥히 여진의 살내음새를 맡는다

얼근한 비릿한 구릿한 이 맛 속에선

까마득히 신라백성의 향수도 맛본다

 

 

 

북방에서

 

아득한 옛날에 나는 떠났다

부여를 숙신을 발해를 여진을 요를 금을

흥안령을 음산을 아무우르를 숭가리를

범과 사슴과 너구리를 배반하고

송어와 메기와 개구리를 속이고 나는 떠났다

 

나는 그때

자작나무와 이깔나무의 슬퍼하든 것을 기억한다

갈대와 장풍의 붙드든 말도 잊지 않었다

오로촌이 멧돌을 잡어 나를 잔치해 보내든 것도

쏠론이 십리길을 따러나와 울든 것도 잊지 않었다

 

나는 그때

아모 이기지 못할 슬픔도 시름도 없이

다만 게을리 먼 앞대로 떠나 나왔다

그리하여 따사한 햇귀에서 하이얀 옷을 입고

매끄러운 밥을 먹고 단샘을 마시고 낮잠을 잤다

 

밤에는 먼 개소리에 놀라나고

아츰에는 지나가는 사람마다에게 절을 하면서도

나는 나의 부끄러움을 알지 못했다

 

그동안 돌비는 깨어지고 많은 금은보화는 땅에 묻히고

가마귀도 긴 족보를 이루었는데

이리하여 또 한 아득한 새 옛날이 비롯하는 때

이제는 참으로 이기지 못할 슬픔과 시름에 쫓겨

나는 나의 옛 한울로 땅으로나의 태반으로 돌아왔으나

 

이미 해는 늘고 달은 파리하고 바람은 미치고

보래구름만 혼자 넋없이 떠도는데

, 나의 조상은 형제는 일가친척은 정다운 이웃은

그리운 것은 사랑하는 것은 우러르는 것은

나의 자랑은 나의 힘은 없다 바람과 물과 같이 지나가고 없다

 

 

 

멧새 소리

 

처마끝에 명태를 말린다

명태는 꽁꽁 얼었다

명태는 길다랗고 파리한 물고긴데

꼬리에 길다란 고드름이 달렸다

해는 저물고 날은 다 가고 볕은 서러웁게 차갑다.

나도 길다랗고 파리한 명태다.

문턱에 꽁꽁 얼어서

가슴에 길다란 고드름이 달렸다..

 

 

 

내가 생각하는 것은

 

포근한 봄철날 따디기의 누굿하니 푹석한 밤이다

거리에는 사람두 많이 나서 흥성흥성할 것이다

어쩐지 이 사람들과 친하니 싸다니고 싶은 밤이다

 

그렇건만 나는 하이얀 자리 우에서 마른 팔뚝의

새파란 핏대를 바라보며 나는 가난한 아버지를

가진 것과 내가 오래 그려오던 처녀가 시집을 간 것과

그렇게도 살뜰하던 동무가 나를 버린 일을 생각한다

 

또 내가 아는 그 몸이 성하고 돈도 있는 사람들이

즐거이 술을 먹으러 다닐 것과

내 손에는 新刊書 하나도 없는 것과

그리고 그 <아서라 世上事>라도 들을

유성기도 없는 것을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이 내 눈가를 내 가슴가를

뜨겁게 하는 것도 생각한다

 

 

 

나와 지렁이

 

내 지렁이는

커서 구렁이가 되었습니다

천년 동안만 밤마다 흙에 물을 주면 그 흙이 지렁이가 되었습니다.

장마 지면 비와 같이 하늘에서 나려왔습니다.

뒤에 붕어와 농다리의 미끼가 되었습니다.

내 이과책에서는 암컷과 수컷이 있어서 새끼를 낳았습니다.

지렁이의 눈이 보고 싶습니다.

지렁이의 밤과 집이 부럽습니다

 

 

 

고방

 

낡은 질동이에는 갈 줄 모르는 늙은 집난이 같이

송구떡이 오래도록 남아 있었다

 

오지항아리에는 삼촌이 밥보다 좋아하는

찹쌀탁주가 있어서 삼촌의 임내를 내어가며

나와 사춘은 시큼털털한 술을 잘도 채어 먹었다

 

제삿날이면 귀머거리 할아버지 가에서

왕밤을 밝고 싸리꼬치 에 두부산적을 께었다

 

손자 아이들이 파리떼같이 모이면

곰의 발 같은 손을 언제나 내어 둘렀다

 

구석의 나무말쿠지에 할아버지가 삼는

소신 같은 짚신이 둑둑 이 걸리어도 있었다

 

옛말이 사는 컴컴한 고방의 쌀독 뒤에서 나는 저녁

끼때에 부르는 소리를 듣고도 못 들은 척하였다

 

 

 

오금덩이라는 곳

 

어스름 저녁 국수당 돌각담의 수무나무가지에 녀귀의 탱을 걸

고 나물매 갖추어놓고 비난수를 하는 젊은 새악시들

-잘먹고 가라 서리서리 물러가라 네 소원 풀었으니 다시 침노 말아라

 

벌개눞녘에서 바리깨를 뚜드리는 쇳소리가 나면

누가 눈을 앓어서 부증이 나서 찰거마리를 부르는 것이다

마을에서는 피성한 눈숡에 저린 팔다리에 거마리를 붙인다

 

여우가 우는 밤이면

잠없는 노친네들은 일어나 팥을 깔이며 방뇨를 한다

여우가 주둥이를 향하고 우는 집에서는 다음날 으례히 흉사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무서운 말인가

 

 

 

수라(修羅)

 

거미새끼 하나 방바닥에 나린 것을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문밖으로 쓸어버린다

 

차디찬 밤이다

언제인가 새끼거미 쓸려나간 곳에 큰거미가 왔다

나는 가슴이 짜릿한다

 

나는 또 큰거미를 쓸어 문밖으로 버리며

찬 밖이라도 새끼 있는 데로 가라고 하며 서러워한다

이렇게 해서 아린 가슴이 싹기도 전이다

 

어데서 좁쌀알만한 알에서 가제 깨인 듯한

발이 채서지도 못한 무적 작은 새끼거미가

이번엔 큰거미 없어진 곳으로 와서 아물거린다

 

나는 가슴이 메이는 듯하다

내 손에 오르기라도 하라고 나는 손을 내어미나

분명히 울고불고 한 이 작은 것은

나를 무서우이 달어나버리며 나를 서럽게 한다

 

나는 이 작은 것을 고히 보드라운 종이에 받어

또 문밖으로 버리며 이것의 엄마와 누나나 형이

가까이 이것의 걱정을 하며 있다가

쉬이 만나거나 했으면 좋으련만 하고 슬퍼한다

 

 

 

삼호(三湖) - 물닭의 소리 1

 

문기슭에 바다해자를 까꾸로 붙인 집

산듯한 청삿자리 우에서 찌륵찌륵

우는 전북회를 먹어 한녀름을 보낸다

이렇게 한녀름을 보내면서 나는 하늑이는

물살에 나이금이 느는 꽃조개와 함께

허리도리가 굵어가는 한 사람을 연연해 한다

 

 

 

물계리(物界里) - 물닭의 소리 2

 

物界里 물밑 이 세모래 닌함박은 콩조개만 일다

모래장변 바다가 널어놓고 못믿없어 드나드는

명주필을 짓궂이 발뒤축으로 찢으면

날과 씨는 모두 양금줄이 되어

짜랑짜랑 울었다

 

 

 

대산동(大山洞) - 물닭의 소리 3

 

비얘고지 비얘고지는

제비야 네말이다

저 건너 노루섬에 노루없드란 말이지

신미도 삼각산엔 가무래기만 나드란 말이지

 

비얘고지 비얘고지는

제비야 네말이다

푸른 바다 힌한울이 좋기도 좋단 말이지

해밝은 모래장변에 돌비 하나 섰단 말이지

 

비얘고지 비얘고지는

제비야 네말이다

눈앵이 갈매기 발앵이 갈매기 가란말이지

승냥이처럼 우는 갈매기 무서워 가란 말이지

 

 

 

 

남향(南鄕) - 물닭의 소리 4

 

푸른 바다가의 하이얀 하이얀 길이다

아이들은 늘늘히 청대나무말을 몰고

대모풍잠한 늙은이 또요 한 마리를 드리우고 갔다

이 길이다

얼마 가서 감로(甘露) 같은 물이 솟는 마을

하이얀 회담벽에 옛적본의 장반시게를 걸어놓은 집

홀어미와 사는 물새 같은 외딸의 혼사말이

아지랑이같이 낀곳은

 

 

 

야우소회(夜雨小懷) - 물닭의 소리 5

 

캄캄한 비 속에

새안 달이 뜨고

하이얀 꽃이 퓌고

먼바루 개가 짖는밤은

어데서 물의 내음새 나는밤이다

 

캄캄한 비 속에

새안 달이 뜨고

하이얀 꽃이 퓌고

먼바루 개가 짖고

어데서 물의 내음새 나는 밤은

 

나의 정다운 것들 가지 명태 노루 뫼추리 질동이 노

랑나비 바구지꽃 메밀국수 남치마 자개짚섹이 그리고

천희(天姬)라는 이름이 한없이 그리워지는 밤이로구나

 

 

 

꼴두기 - 물닭의 소리 6

 

신새벽 들망에

내가 좋아하는 꼴두기가 들었다

갓 쓰고 사는 마음이 어진데

새끼 그믈에 걸리는 건 어인 일인가

갈매기 날어온다

 

입으로 먹을 뿜는 건

십년 도를 닦어 퓌는 조환가

앞뒤로 가기를 마음대로 하는 건

손자(孫子)의 병서(兵書)도 읽은 것이다

갈매가 쭝얼댄다

 

그러나 시방 꼴두기는 배창에 너불어저 새새기 같은

울음을 우는 곁에서 뱃사람들의 언젠가 아이서 회를 처먹고도 남어

한 깃씩 논아가지고 갔다는 크디큰 꼴두기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슬프다

갈매기 날어난다

 

 

 

황일

 

한 십리 더 가면 절간이 있을 듯한 마을이다

낮 기울은 볕이 장글장글 하니 따사하다

흙은 젖이 커서 살같이 깨서 아지랑이 낀 속이 안타까운가보다

뒤울안에 복사꽃 핀 집엔 아무도 없나보다

뷔인 집에 꿩이 날어와 다니나보다

울밖 늙은 들매나무에 튀튀새 한불 앉었다

흰구름 따러가며 딱장벌레 잡다가 연두빛 닢새가 좋아 올라왔나보다

밭머리에도 복사꽃 피였다 밭머리에도 복사꽃 피였다

새악시도 피였다

새악시 복사꽃이다 복사꽃 새악시다

어데서 송아지 매-하고 운다

골갯논드렁에서 미나리 밟고 서서 운다

복사나무 아래 가 흙장난하며 놀지 왜 우노

자개밭둑에 엄지 어데 안 가고 누웠다

아릇동리선가 말 웃는 소리 무서운가

아릇동리 망아지 네 소리 무서울라

담모도리 바윗잔등에 다람쥐 해바라기하다

조은다 토끼잠 한잠 자고 나서 세수한다

흰구름 건넌산으로 가는 길에 복사꽃 바라노라 섰다

다람쥐 건넌산 보고 부르는 푸념이 간지럽다

저기는 그늘 그늘 여기는 챙챙

저기는 그늘 그늘 여기는 챙챙

 

 

 

목구

 

오대나 나린다는 크나큰 집

다 찌그러진 들지고방 어득시근한 구석에서

쌀독과 말쿠지와 숫돌과 신뚝과

그리고 녯적과 또 열두 데석님과 친하니 살으면서

 

한 해에 멫 번 매연지난 먼 조상들의 최방등 제사에는

컴컴한 고방 구석을 나와서 대멀머리에 외얏맹건을 지르터

맨 늙은 제관의 손에 정갈히 몸을 씻고

교우 우에 모신 신주 앞에 환한 촛불 밑에

피나무 소담한 제상 위에

떡 보탕 식혜 산적 나물지짐 반봉 과일 들을 공손하니 받을고

먼 후손들의 공경스러운 절과 잔을 굽어보고

또 애끓는 통곡과 축을 귀에하고

그리고 합문 뒤에는 흠향 오는 구신들과 호호히 접하는 것

 

구신과 사람과 넋과 목숨이 있는 것과 없는 것과

한줌 흙과 한점 살과 먼 녯조상과

먼 훗자손의 거륵한 아득한 슬픔을 담는 것

내 손자의 손자와 손자와 나와 할아버지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와

수원밲시 정주백촌의 힘세고 꿋꿋하나 어질고

정 많은 호랑이 같은 곰 같은 소 같인 피의 비

같은 밤 같은 달 같은 슬픔을 담는 것 아 슬픔을 담는 것

 

 

안동(安東)

 

이방(異邦) 거리는

비오듯 안개가 나리는 속에

안개 같은 비가 나리는 속에

 

이방 거리는

콩기름 쪼리는 내음새 속에

섭누에번디 삶는 내음새 속에

 

이방 거리는

도끼날 벼르는 돌물레 소리 속에

되광대 켜는 되양금 소리 속에

 

손톱을 시펄하니 기르고 기나긴 창꽈쯔를 즐즐 끌고 싶었다

만두(饅頭)꼬깔을 눌러쓰고 곰방대를 물고 가고 싶었다

이왕이면 향()내 높은 취향리() 돌배 움퍽움퍽 씹으며

머리채 츠렁츠렁 발굽을 차는 꾸냥과 가즈런히 쌍마차 몰아가고 싶었다

 

 

 

두보(杜甫)나 이백(李白)같이

 

오늘은 정월(正月) 보름이다

대보름이 명절인데

나는 말리 고향을 나서 남의 나라 쓸쓸한 객고에 있는 신세로다

예날 두보나 이백 같은 이 나라의 시인도

먼 타관에 나서 이 날을 맞은 일이 있었을 것이다

 

오늘 고향의 내집에 있는다면

새 옷을 입고 새 신도 신고 떡과 고기도 억병 먹고

일 가 친척들과 서로 모여 즐거이 웃음올 지날 것이였만

나는 오늘 때묻은 입든 옷에 마른 물고기 한 토막으로

예날 그 두보나 이백 같은 이 나라의 시인도

이날 이렇게 마른 물고기 한 토막으로

외로이 쓸쓸한 생각한 한 적도 있었을 것이나

나는 이제 어느 먼 외진 거리에 한 고행 사람의 조그마한 가업

집이 있을 것을 생각하고 이 집에 가서

그 맛스러운 떡국이라고 한 그릇 사먹으리라 한다

 

우리네 조상들이 먼먼 옛날로부터 대대로

이 날엔 으레히 그러하며 오듯이

먼 타관에 난 그 부도나 이백 같은 이 나라의 시인도

이날은 그 어느 한 고향 사람의 주막이나 반관(飯館)을 찾아가서

그 조상들이 대대로 하든 본대로 원소(元宵)라는 떡을 입에 대며

스스로 마음을 느꾸어 위한하지 않았을 것인다

 

그러면서 이 마음이 맑은 옛 시인들은

먼 훗날 그들의 먼 훗자손들도

그들의 본을 따서 이날에는 원소를 먹을 것은

외로이 타관에서 나서도 이 원소를 먹을 것을 생각하며

그들이 아득하니 슬펐을 듯이

나도 떡국을 놓고 아득하니 슬플 것이다

 

, 이 정월(正月) 대보름 명절인데

거리에는 오독독이 탕탕 터지고 호궁(胡弓) 소리 삘삘 높아서

내 쓸쓸한 마음엔 자꾸 이 나라의 옛 시인들이

그들의 쓸쓸한 마음들이 생각난다

내 쓸쓸한 마음은 아마 두보나 이백 같은

사람들의 마음인지도 모를 것이다

아무려나 이것은 옛 투의 쓸쓸한 마음이다

 

 

 

수박씨, 호박씨

 

어진 사람이 많은 나라에 와서

어진 사람의 짓을 어진 사람의 마음을 배워서

수박씨 닦은 것을 호박씨 닦은 것을 입으로 앞니빨로 밝는다

 

수박씨 호박씨를 입에 넣는 마음은

참으로 철없고 어리석고 게으른 마음이나

이것은 또 참으로 밝고 그윽하고 깊고 무거운 마음이라

 

이 마음 안에 아득하니

오랜 세월이 아득하니 오랜 지혜가 또 아득하니

오랜 인정이 깃들인 것이다

 

태산(泰山)의 구름도 황하(黃河)의 물도

옛님군의 땅과 나무의 덕도

이 마음 안에 아득하니 뵈이는 것이다

 

이 적고 가부엽고 갤족한 희고 까만 씨가

조용하니 또 도고하니 손에서 입으로 입에서 손으로 오르나리는 때

벌에 우는 새소리도 듣고 싶고 거문고도 한 곡조 뜯고 싶고

 

한 오천 말 남기고 함곡관(函谷關)도 넘어가고 싶고

기쁨이 마음에 뜨는 때는 희고 까만 씨를 앞니로 까서 잔나비가 되고

근심이 마음에 앉는 때는 희고 까만 씨를 혀끝에 물어 까막까치가 되고

 

어진 사람이 많은 나라에서는

오두미(五斗米)를 버리고 버드나무 아래로 돌아온 사람도

그 옆차개에 수박씨 닦은 것은 호박씨 닦은 것은 있었을 것이다

 

나물 먹고 물 마시고 팔벼개하고 누었든 사람도

그 머리맡에 수박씨 닦은 것은

호박씨 닦은 것은 있었을 것이다

 

 

 

호박꽃 초롱

 

한울은

울파주가에 우는 병아리를 사랑한다

우물돌 아래 우는 돌우래를 사랑한다

그리고 또

버드나무 밑 당나귀 소리를 임내내는 시인을 사랑한다

한울은

풀 그늘 밑에 삿갓 쓰고 사는 벗을 사랑한다

모래 속에 문 잠그고 사는 조개를 사랑한다

그리고 또 두툼한 초가지붕 밑에

호박꽃 초롱 혀고 사는 시인을 사랑한다

 

 

 

산숙(山宿)

 

여인숙이라도 국수집이다

모밀가루포대가 그듣가히 쌓인 웃간은 들믄들믄 더웁기도하다

나는 낡은 국수분틀과 그즈런히 나가 누어서

구석에 데굴데굴하는 목침들을 베여보며

이 산골에 들어와서

이 목침들에 새까마니 때를 올리고 간 사람들을 생각한다

그 사람들의 얼골과 생업과 마음들을 생각해 본다

 

 

 

가키사키의 바다

 

저녁밥 때 비가 들어서

바다엔 배와 사람이 흥성하다

 

참대창에 바다보다 푸른 고기가 께우며

섬돌에 곱조개가 붙는 집의 복도에서는

배창에 고기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슥하니 물기에 누긋이 젖은

왕구새자리에서 저녁상을 받은 가슴앓는

사람은 참치회를 먹지 못하고 눈물겨웠다

 

어득한 기슭의 행길에 얼굴이 해쓱한 처녀가

새벽 달같이 아 아즈내인데

병인(病人)은 미역 냄새 나는 덧문을 닫고 버러지같이 누었다

 

 

 

바다

 

바닷가에 왔드니

바다와 같이 당신이 생각만 나는구려

바다와 같이 당신을 사랑하고만 싶구려

구붓하고 모래톱을 오르면

당신이 앞선 것만 같구려

당신이 뒤선 것만 같구려

그리고 지중지중 물가를 거닐면

당신이 이야기를 하는 것만 같구려

당신이 이야기를 끊은 것만 같구려

바닷가는

개지꽃에 개지 아니 나오고

고기바늘에 하이얀 햇볕만 쇠리쇠리하야

어쩐지 쓸쓸만 하구려 섧기만 하구려

 

 

 

동해

 

동해여, 오늘 밤은 이렇게 무더워

나는 맥고모자를 쓰고 삐루를 마시고 거리를 거닙네.

맥고모자를 쓰고 삐루를 마시고 거리를 거닐면

어데서 닉닉한 비릿한 짠물 내음새 풍겨오는데,

동해여 아마 이것은 그대의 바윗등에

모래장변에 날미역이 한불 널린 탓인가 본데

 

미역 널린 곳엔 방게가 어성기는가,

도요가 씨양씨양 우는가,

안마을 처녀가 누구를 기다리고 섰는가,

또 나와 같이 이 밤이 무더워서

소주에 취한 사람들이 기웃들이 누웠는가.

 

분명히 이것은 날미역의 내음새인데

오늘 낮 물기가 쳐서 물가에 미역이 많이 떠들어온 것이겠지.

이렇게 맥고모자를 쓰고 삐루를 마시고

날미역 내음새 맡으면 동해여,

나는 그대의 조개가 되고 싶습네.

 

어려서는 꽃조개가, 자라서는 명주조개가,

늙어서는 강애지조개가.

기운이 나면 혀를 빼어 물고 물 속 십 리를 단숨에 날고 싶습네.

달이 밝은 밤엔 해정한 모래장변에서 달바라기를 하고 싶습네.

궂은비 부슬거리는 저녁엔 물 위에 떠서 애원성이나 부르고,

그리고 햇살이 간지럽게 따뜻한 아침엔 이남박 같은

물바닥을 오르락내리락하고 놀고 싶습네.

 

그리고 그리고 내가 정말 조개가 되고 싶은 것은

잔잔한 물 밑 보드라운 세모래 속에 누워서

나를 쑤시러 오는 어여쁜 처녀들의 발뒤꿈치나 쓰다듬고

손길이나 붙잡고 놀고 싶은 탓입네.

 

동해여! 이렇게 맥고모자를 쓰고 삐루를 마시고

조개가 되고 싶어하는 심사를 알 친구란 꼭 하나 있는데,

이는 밤이면 그대의 작은 섬 사람 없는 섬이나

또 어느 외진 바위판에 떼로 몰려 올라서는 눕고 앉았고

모두들 세상 이야기를 하고 지껄이고 잠이 들고 하는 물개들입네.

 

물에 살아도 숨은 물 밖에 대고 쉬는 양반이고

죽을 때엔 물 밑에 가라앉아 바윗돌을 붙들고

절개 있게 죽는 선비이고

또 때로는 갈매기를 따르며 노는 활량인데

나는 이 친구가 좋아서

칠월이 오기바쁘게 그대한테로 가야 하겠습네

 

 

 

나 취했노라

 

나 취했노라

나 오래된 스코틀랜드의 술에 취했노라

나 슬픔에 취했노라

나 행복해진다는 생각에 또한 불행해진다는 생각에 취했노로

나 이 밤의 허무한 인생에 취했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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