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님 당시의 안식일 전통 -
예수님의 안식일 신학 이해를 위한 준비
1. 서론
지금부터 우리는 막 2:23-28을 중심으로 예수님의 안식일 신학을 연구하려고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이 본문의 배경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 배경이란 예수님 당시의 안식일에 대한 전통입니다.
당시 역사적 배경 즉 context를 정확히 이해할 때 우리는 본문 즉 text를 정확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배경연구를 하겠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배경연구를 할까요?
당시 배경을 기록해놓은 당시에 출판된 책은 없는데, 어떻게 할까요?
우리는 예수님 당시 보다 일찍 쓰여진 구약과 중간기 문헌, 그리고 예수님 당시 보다 이후에 쓰여진
신약, 랍비문헌들을 통해 당시 배경을 추론하여 재구성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 그러면 배경 재구성을 위해 이 문헌들을 차례로 살펴보겠습니다.
2. 구약의 안식일
- 하나님의 선물
안식일은 본래 인간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창 2:2를 봅시다: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그래서 하나님은 제칠일을 "나의 안식일"이라고 부르십니다.
출 31:13을 봅시다:
"...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
또한, 성경은 이날을 "여호와의 안식일"이라고 부릅니다.
신 5:14 을 봅시다:
"제 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소나 네 나귀나 네 모든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고
네 남종이나 네 여종으로 너같이 안식하게 할지니라."
이러한 표현들은 안식일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 (Lordship)을 암시합니다.
(이점은 한국의 양용희 박사가 그의 박사논문에서 잘 지적했습니다.)
그러므로, 본래 하나님의 것인 안식일을 이스라엘이 지키도록 명해진 것은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이스라엘에게 선물로 주신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애굽에서 중노동에 시달리는 이스라엘을 해방시키신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제도적 휴식 장치인 것입니다. 안식일 계명은 그래서 하나님의 자비의 표현인 것입니다.
- 하나님을 본받음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또한 제칠일에 쉬신 하나님을 본받는 행위입니다.
(이점은 핀란드의 젊은 학자 Back이 그의 박사논문에서 잘 입증하였습니다.)
출 20:8-11을 봅시다: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 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또한, 레 19:2-3에서는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을 닮는 방식으로 제시되어있습니다:
"너희는 거룩하라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따라서, 안식일 계명은 인간이 하나님을 닮아갈 수 있는 가치 있는 존재임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안식일 계명은 인간을 율법의 노예로 만들려고 주어진 것이 아니라 본래 인간이 하나님을 닮게
봉사하도록 주어진 것입니다. 즉 안식일은 인간을 위해 주어진 것입니다.
- 예외 규정들 (제사법과 할례법)
안식일을 지키는 방법은 평일에 하던 일을 멈추고 쉬는 것입니다.
레 23:3을 봅시다: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요 일곱째 날은 쉴 안식일이니 성회라 너희는 무슨 일이든지 하지 말라
이는 너희 거하는 각처에서 지킬 여호와의 안식일이니라."
그러나, 예외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제사장들은 성전에서 제사를 드려야 했고 안식일이 제8일과 중복되면 할례도 실행할 수 있었습니다.
레 24:8을 봅시다:
"항상 매안식일에 이 떡을 여호와 앞에 진설할찌니 ..."
또한 민 28:9-10을 봅시다:
"안식일에는 일년 되고 흠없는 수양 둘과 고운 가루 에바 십분지 이에 기름 썪은 소제와
그 전제를 드릴 것이니 이는 매 안식일의 번제라 ..."
창 17:12와 레 12:3에 나오는 할례법에는 예외가 없으므로 유대인들은
이 법이 안식일법에 우선한다고 해석했습니다.
안식일날 제사가 진행되는 것으로 봐서 제사법도 역시 안식일법 보다 우선한다고 해석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안식일의 종말
호 2:11은 하나님께서 남용된 안식일을 없애실 것을 말씀합니다:
"내가 그 모든 희락과 절기와 월삭과 안식일과 모든 명절을 폐하겠고"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날인 안식일은 "바알들의 날"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예 그 날을 없애시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호 2:15 (한글성경은 2:13) 히브리어 본문은 "예메이 하베알-리-임" 즉 "바알들의 날"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안식일이 없어진다는 것은 하나님의 자비의 선물인 휴식보장책, 노예화 방지책이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존엄성의 실현도구인 안식일이 없어진다는 것은 이제 인간은 하나님을 닮는 존재가 아니라
내어던저져서 방향을 읽고 표류하는 존재 즉 포기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노예화되는 것을 방지하는 장치가 없는 사회들,
인간이 하나님을 닮는 장치가 없는 사회들 속에서 많은 현대인들은 불행하게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 모두가 하나님과 하나님의 법을 망각한 인간과 사회가 필연적으로 겪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3. 중간기 문헌에 나타난 안식일 - 막 2:23-28과 관련하여 -
막 2:23-28과 관련하여 중간기 문헌에 나타난 안식일을 살필 때 특기할 수 있는 것은
안식일에 음식 만드는 것 금지와 금식 금지입니다.
중간기 문헌 희년서 2:29은 안식일에 음식준비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그날에 그들은 먹을 것이나 마실 것은 아무 것도 준비하지 말아야 한다."
다메섹문서 10:22도 역시 동일한 명령을 합니다:
"안식일에는 미리 준비된 것 외에는 먹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음식을 만드는 것을 금지하는 이유는 일하지 말라는 구약의 안식일 계명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또한 안식일에는 불을 피우지 말라는 계명을 적용한 것입니다.
출 35:3: "안식일에는 너희의 모은 처소에서 불도 피우지 말지니라."
음식을 하려면 불을 피워야 하므로 불을 피우지 않아야 한다면 당연히 음식도 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중간기 문헌은 아니지만 요세푸스의 책
"유대전쟁"은 유대인들이 안식일 전날에 음식을 준비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음식을 만들지 말라는 희년서나 다메섹문서의 규율은 실제로 지켜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희년서 50:12-13은 안식일에 금식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날에 일하거나 여행을 하거나 ... 금식을 하거나 ... 이 중에 어떤 것을 안식일에 하는 자는
누구든지 이스라엘 자손들이 안식일을 지키도록 하기 위해서 죽여야 한다."
다메섹문서 11:4-5도 안식일 금식을 금지합니다:
"안식일에 의도적으로 금식하지 말아야 한다."
Judith 8:6은 경건한 유대인이 금식을 하는 경우에도 안식일에는 금식을 중단했음을 보여줍니다.
이처럼 안식일에 금식을 금한 이유는 랍비문헌에 의하면 유대인들에게 안식일은 슬픈 날이 아니라
기쁜 날이었으며, 안식일은 천국의 기쁨을 미리 맛보는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중간기에도 구약의 안식일이 본래 하나님의 자비의 선물임을 인식하고 이날에 금식을 금했을 것입니다.
안식일에 금식도 말고 음식준비도 않으려면 안식일 전날에 음식을 미리 준비하는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안식일 전날에 음식을 준비했을 것입니다.
4. 신약교회에서의 안식일
예수님의 제자들은 안식일을 여전히 지키고 있었습니다.
마 24:20: "너희의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
왜 예수님께서 도망하는 날이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하라고 하셨을까요?
청중들이 안식일 계명을 따라 안식일에는 마을을 떠나 멀리 여행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요?
따라서 안식일에 환란이 닥치면 도망칠 수가 없게 되니 곤란해 지는 것입니다.
눅 23:56은 제자들이 안식일을 지켰음을 분명히 합니다: "계명을 좇아 안식일에 쉬더라."
바울도 안식일을 지켰습니다.
바울은 그의 습관대로 규칙적으로 안식일에 유대인들을 만났습니다.
행 17:2 :"바울이 자기의 규례대로 저희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Bacchiocchi는 로마 교황청 대학에서 박사논문에서 이것은 유대교적 장소와 집회 시간에서부터
철저한 분리가 일어나지 않았기에 가능하다고 지적했습니다.
또한 행 15:1-29에 언급된 이방인의 율법준수 문제를 논의한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안식일 문제는 거론되지도 않았습니다.
이것은 심지어 이방교회도 당시에는 안식일을 지켰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그러면 행 20:7에 나오는 "안식 후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는
도대체 주일이 지켜지기 시작했다는 증거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그러나 자세히 보면 이어서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저희에게 강론할 새..."하고 나옵니다.
즉 이 모임은 Bacchiocchi의 주장대로 바울을 송별하기 위한 특별한 모임이었던 것입니다.
고전 16:2에는 "매 주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이를 얻은 대로 저축하여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고 하는데 이것이 혹시 주일이 안식일 대신 지켜졌다는 증거일까요? 아닐 것입니다.
왜냐하면, Bacchiocchi의 주장처럼 매 주일 첫날은
단지 재정을 지출하기 전에 효과적으로 저축하게 위한 방안이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골 2:16은 어떤가요?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도 안식일 폐지의 증거는 아닙니다.
유명한 주석시리즈인 WBC 주석시리즈에 실린 골로새서 주석을 쓴 O'Brien에 의하면
골로새에서는 성일들이 "우주의 기초 영들"을 위해 지켜졌으며,
바울은 성일들을 이런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반대한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안식일을 다른 신을 위해 사용하는 안식일 남용에 대해
위에 언급한 호세아서의 정신에 의해 경고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관찰한 바에 의하면 신약성경에 나타난 교회들에는 안식일을 폐지한 흔적이 없습니다.
이것은 아직 신약성경의 교회들은 구약과 유대교의 상당히 연속선을 유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5. 랍비문헌에 나타난 안식일 - 막 2:23-28과 관련하여 -
주후 약 200년경에 구두전승을 토대로 결집된 유대인들의 경전 미쉬나 Shabbath 7:2은
39가지 항목의 일들을 안식일에 하는 것을 금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추수 즉, 곡식 베기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마 40에서 하나 감한 것은 40가지가 되면 너무 잔인하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미쉬나를 다시 자세히 토론한 예루살렘 탈무드 Shabbath 7:2에서 랍비 Hiya는 안식일에
곡식 이삭을 훑어내는 것이나 포도, 올리브, 무화과등을 따는 것을 추수의 일부로서 금지합니다.
미쉬나 Pesahim 4:8에서 유대의 현자들이라 부를 수 있는 랍비들은 안식일에
나무 아래 떨어진 과일을 먹는 것도 금지했습니다.
그런데 묘하게도 바벨로니안 탈무드 Shabbath 128a에서 갈릴리 사람인 랍비 Judah는
안식일에 밀이삭을 훑어내어 손바닥으로 비비는 것은 허용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도구를 사용하지만 않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주장은 다른 주류 랍비들에 의해 거절 당했습니다.
다른 랍비들은 손가락 끝으로 소량만을 비벼 먹을 수 있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출애굽기 주석인 메킬타는 출 31:14 주석에서 생명이 위험에 처할 경우에는
안식일 계명을 어길 수 있다고 합니다:
"그가 많은 안식일들을 지키기 위하여 그를 위해 하루의 안식일을 범하라."
미쉬나 Yoma 8:6도 생명이 위험할 경우 안식일 규례를 어길 수 있음을 말합니다:
"생명의 위험이 있을 의문이 있는 모든 경우들은 안식일을 초월한다."
메킬타의 출 31:13 주석에서 랍비 Akiva는 이점을 잘 논증합니다:
"만일 사형이 안식일을 능가하는 제사를 능가한다면, 생명를 살리는 것이 얼마나 더 안식일을 능가하겠는가?"
메킬타의 출 31:13 주석에서 주후 180년 경의 랍비 Simeon ben Menasha는 주장합니다:
"너희들에게 안식일이 주어진 것이지, 너희들이 안식일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다."
이 말은 메킬타 출 31:14에서 약간 바뀌어 반복됩니다:
"안식일이 너희에게 주어진 것이다. 그러나 아니다! 너희가 안식일에게 주어진 것은 ..."
메킬타 출 31:14와 미쉬나 산헤드린 7:8은 경고에도 불구하고 의식적으로 안식일을 어기는 사람은
사형을 당할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막 2:24에서 바리새인들이 제자들이 안식일을 어긴다고 지적한 것은 제자들이 모르고 무의식적으로
안식일을 어기고 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경고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취한 행동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막 2:23-28과 관련해서 우리는 미쉬나 Peah 8:7을 언급할 수 있습니다:
"안식일에 - 세끼의 음식이 가난한 나그네에게 제공되어야 한다."
이 규례는 중간기 문헌에서 살핀 금식금지 규례와 관련됩니다.
금식이 금지되므로, 안식일에 나그네들이 굶는 것을 막기 위해 음식을 주는 것입니다.
6. 예수님 당시 유대교와 안식일
위에서 살핀 자료들은 바로 예수님 당시 유대교를 보여 줄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위의 자료들은 예수님 이전 자료들과 이후 자료들이기 때문입니다.
유대교는 시간 속에서 변해 갔기 때문에 한 시대의 유대교의 모습을 다른 시대와 같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유대교도 여러 가지여서 한 유대교의 모습을 다른 유대교의 모습과 같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유대교의 모습으로 제한해서 어떻게 이 바리새유대교의
안식일 전통을 복원할 수 있을지 살펴봅시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하시딤은 바리새파와 쿰란 공동체의 공통 조상이라고 믿습니다.
또한 E.P. Sanders 등의 학자는 바리새파와 랍비 유대교 사이에는 연속성이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러한 설을 받아들인다면, 쿰란 및 에센파의 공동조상인 희년서 내지 쿰란문헌과 랍비문헌 사이에 일치되는
전통은 결국 그 중간에 끼이는 바리새파에도 동일하게 존재했을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 유대 종파 간에 아무런 연결이 없다고 해도, 연결이 없는 유대교파간의 일치는
그 일치점이 널리 퍼진 보편적 전통이었음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들 문헌들의 일치를 바리새파의 전통을 알아내기 위해 사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희년서와 쿰란문헌에 속하는 다메섹 문서, 미쉬나는 모두 안식일에 금식을 금지합니다.
이러한 일치로 보아 바리새파도 안식일 금식금지 규례를 지켰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바리새파의 전통을 알아낼 수 있는 다른 한 가지 방법은 전통의 변화 경향을 통한 것입니다.
미쉬나 결집에서 빠진 유대구두전승을 모은 토세프타 Shabbath 14;1에서는
바리새파의 두 학파인 샴마이파와 힐렐파의 규율들이 벌써 상당히 느슨해졌음을 암시합니다.
미쉬나 Erubin 5:5은 "현자들은 규례를 더 엄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가볍게 하려고 그것을 말했다."고 합니다.
즉, 랍비들이 이 전의 규례들을 더 느슨하게 만들었다는 경향을 가졌다는 것은
당시 바리새파의 규례의 강도를 미루어 추측하게 합니다.
우리는 이미 랍비들이 나무 아래 떨어진 열매를 먹는 행위도 금지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만일 바리새인들의 규례가 이보다 엄했다면 당연히 밀이삭을 훑어내어 비벼 먹는 것도 금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울러 알렉산드리아의 예수님 당시 유대인 Philo는 그의 책 "모세의 생애" 2:22에서
"잎을 자르는 것이나 어떤 과일이든지 훑어내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썼습니다.
열매를 따는 것이 안식일에 금지되는 전통이 널리 퍼져 있었음을 보여주며,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도 그러한 전통을 따랐을 가능성을 높여 줍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이 안식일에 금식이나 밀이삭을 훑어내는 것
모두를 금하고 있었다고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7. 결론
우리는 막 2:23-28을 위한 배경을 막 파악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본문을 이해할 준비를 한 것입니다.
왜 이 골치 아픈 작업을 길게 하느냐면, 성경을 더 바르게, 더 깊이 있게 이해하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가 다 이런 작업을 한 후에 성경을 읽을 수는 없지만,
학자들은 이런 작업을 해 주어야 하고,
바로 그러한 필요성 때문에 교회는 신학자들을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자 그럼, 이제 다음 시간에는 마가복음 본문을 직접 다루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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