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십자가, 하나님의 지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복음의 핵심이라고 성경을 말씀한다.
그래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가리켜 "오직 복음"이라는 강조적 수식어를 덧붙인다.
우리가 복음을 이야기할 때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과하지 않는 복음을 말하면
그것이 다른 복음 혹은 유사 복음이 아닌지 우리에게 질문을 해보아야한다.
작금의 시대에 와서 복음을 훼손하고 정교하게 조작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도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다른 복음, 다른 예수를 언급한다.
여기서 다른 복음이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미와 본질을 모르고
그와 유사한 복음을 만들거나 조작하는 것을 말한다.
가령 복음을 말하면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추가적으로 계명과 율법의 준수나
할례와 세례 등과 같은 의무성과 당위성을 언급하는 경우,
혹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복음만으로 구원이 불충분하다는 논리를 펼칠 때
우리는 그것을 다른 복음 혹은 유사 복음이라 정의할 수 있다.
갈라디아 지역에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에
복음의 편지를 쓰고 있는 사도바울의 입장에 그러했다.
(갈 1:6)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갈 1:7)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갈라디아서를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이라고 부를 수 있다.
그러니까 갈라디아서 전체적 맥락과 흐름을 살펴보면,
유대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율법 준수와 계명으로 죄인이 구원에 이를 수 없음을 보게 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하나님의 복음임을 믿는 성도다.
오직 복음을 통해 죄인에게 영원한 구원과 영원한 생명과
예수님이 우리의 주님과 구원자임을 성령님을 통해 믿게 되었다.
또한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세상의 지혜가 아닌
하나님의 지혜란 것도 성령님을 통해 믿는 성도다.
이 세상 지혜로 알 수 없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하나님의 지혜로
우리에게 성령님을 통해 계시하시고 알게 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의와 사랑의 결정체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이다.
우리가 어디에서 하나님의 의를 발견할 수 있는가?
우리가 어디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할 수 있는가?
그리스도의 십자가 이외에 하나님의 결정적 의와 사랑을 찾을 수 없다.
이 진리를 성령님으로 인정하는 자가 성도가 아니겠는가!
그리스도의 십자가 이외에 첫 사람 아담과
그 죄에 출생한 모든 인간이 저지른 죄를 향한 하나님의 공의적 심판과 저주
그리고 분노를 해결할 것이 이 세상과 우주에 존재하는가? 없다.
하나님의 의와 사랑을 완벽하게 충족시키고 영광으로 돌린 사건이
우리가 알고 믿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이다.
또한 우리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보자.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죄인이었던 우리를 의인되게 하고
하나님의 영광스럽고 거룩한 자녀와 기쁨의 성도로 바꾸어 놓았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이다.
여기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단지
우리 구원만을 위한 것인지를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그 대답은 "아니다"란 것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죄인이었던 우리를 하나님 앞에 완전한 의인되게 하시고
또한 그 의인인 우리를 주님 안에서 의와 영광의 나라를 추구하며
이 땅에 살게 만든다는 것이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며 살라"고 말씀하셨듯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진리와 성령님으로 거듭나고 중생된 자녀는
이 땅의 나라와 가치관에 매여 살 수 없는 자다.
그리스도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며 사는 방식을
신약성경 야고보 사도가 그의 서신서에서 잘 표현해주고 있다.
물론 이 야고보 서신서도 성령님의 감동하심으로 기록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의가 있는 의인 곧 성도는 이 땅의 가치관과 방식으로 뭍여서 살지 못한다.
이 사실을 성령님이 주님의 영으로 오셔서 깨닫게 해주신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불평할 일이 아니라 항상 감사하고 고마워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땅에 속한 사람이 아닌
하늘에 속한 신령한 하나님의 자녀임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 때문이다.
사도바울이 성령님에 이끌려 그의 서신서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윗의 것을 찾으라!"
(골 3:1)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골 3:2)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여기서 "위의 것을 생각하고"는 영어로 "Set your minds on things that are above,"인데,
이 말뜻은 이것이다. 즉 "너희 마음을 위의 것(들)에 두어라"는 의미이다.
우리 성도에게 "위의 것들'이 무엇일까?
먼저 본인이 말하지 않아도 조금만 생각해보면 다 알 것이다.
우리에게 위의 것이라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이룬 하나님의 의와
사랑을 생각해보면 다 알 수 있다.
물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이론과 실제가 우리의 삶 속에서 서로 충돌이 생기지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인격적으로 요구하시는 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드러난
하나님의 의와 사랑의 삶을 사는 것이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 말씀처럼, 우리 자신의 유익과 정욕과
이기심과 탐심과 잘남을 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성령님으로 못박고
하나님의 의와 사랑으로 이 땅에 사는 것이다.
물론 이런 삶이 우리 자신에게 구원을 가져다주는 결정적 근거가 된다는 말이 아니다.
하나님의 지혜인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 모든 성도에게 구원과 삶의
모든 여정과 과정을 통합하는 오직 복음이라 말이다.
정리해보자.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하나님의 의와 사랑으로 받은 자는
그 은혜의 고마움으로 감격하여 그 십자가를 자신의 삶속에서
전달하고 증거하고 증인하며 사는 자이다.
성도됨의 증거가 무엇인가?
단지 보이지 않는 믿음의 세계를
아무 의미없이 세월 허송하며 바라만 보고 허상을 좇고 있는 자인가?
그것이 아닐 것이다.
적어도 성도됨의 증거가 있다면,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자신에게 하나님의 지혜가 되어 삶속에
그 십자가가 녹아들어 하나님의 의와 사랑을 드러내며 사는 자일 것이다.
(히 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히 11:2)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지금 당신은 무엇을 바라고 무엇을 보고 있는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당신에게 허상이 아니기를 바란다.
오히려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당신에게 영원한 실상과
그 복음의 증거로 믿어지고 사는 성도 곧 하나님의 영광스런 자녀이기를 원한다.
창골산 봉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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