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가 권력이 될 때 얼마나 무섭게 변질되는가
박상익 교수 우석대학교·서양사 | 제86호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종교다원 사회인 우리나라에서 불교와 천주교 신자들은 자신의 종교에 대한 몰입도 가 높을수록 다른 종교 또한 더 좋아 한다. 그러나 유독 기독교 신자들은 종교 몰입도가 높아질수록 자신의 종교를 편애하고 타 종교에 대한 관용도가 낮은 경향을 보인다고 한다. 당연히 기독교인에 의한 종교 갈등 가능성이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다. 울산대 전성표(사회학) 교수의 연구 결과다.
‘기독교가 원래 그런 것 아니냐’는 냉소적인 반응도 나올 수 있지만, 정작 예수에게서는 배타성을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 대체 그런 독선과 배타성은 어디에서 생겨났을까? 기독교 최대 교파를 자랑하는 장로교의 원조 칼뱅이 가공할 독선과 전횡을 휘두른 인물임을 아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칼뱅이 통치한 시기의 제네바 의회 기록에는 칼뱅의 정치적·종교적 무오류성에 의심을 표명했다가 잔혹한 형벌을 받은 사례가 허다하다. 날 때까지 채찍질을 당하고 난 뒤에 화형을 당했다. 술에 취해 칼뱅을 욕한 어떤 출판업자는 불타는 쇠꼬챙이로 혀를 찔린 다음 도시에서 추방당했다. 자크 그뤼에라는 사람은 칼뱅을 위선자라고 불렀다는 이유만으로 고문받고 처형당했다. 어떤 시민은 ‘칼뱅 선생님’이라고 부르지 않고 ‘칼뱅 씨’라고 불렀다는 이유로 감옥에 갇혔다. 이런 사례는 끝없이 이어진다. 칼뱅이 제네바에서 사실상의 통치자로 있던 처음 5년 동안 이 도시에서 13명이 교수대에 매달리고, 10명의 목이 잘리고, 35명이 화형당하고, 76명이 추방당했다. 널리 알려진 역사적 사실이다. 칼뱅의 세르베투스 처형은 볼테르의 말대로 기독교에서 일어난 최초의 ‘종교적 살인’이었다. 그것은 기독교 본래의 이념을 부정한 사건이었다. 사실 ‘이단자’란 개념 자체가 기독교의 가르침에 맞지 않는다. 기독교는 모든 사람에게 성서 해석에 대한 자유로운 권리를 인정했다. 칼뱅 자신은 젊은 날 루터파를 편들었다는 이유로 프랑스에서 쫓겨난 적도 있었고,『기독교강요(綱要)』서문에서 국왕 프랑수아 1세에게 종교적 관용과 신앙의 자유를 요구하기도 했다. 종교가 ‘권력’이 될 때 얼마나 무섭게 변질되는지를 보면서 우리는 인간본성에 대한 약간의 통찰을 얻게 된다. 스튜어트 왕조의 종교적 전횡과 폭정에 맞서 칼뱅의 후예인 장로파를 중심으로 한 청교도 세력이 종교적 자유를 쟁취하고자 일으킨 혁명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혁명이 성공하자 실세인 장로파가 가장 먼저 취한 조치는 ‘출판허가법’의 제정이었다. 장로교의 교리로 영국의 종교를 획일화시켜 반대 의견을 침묵시키려는 의도로 검열제를 시행하려 한 것이다. 장로파의 행태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장로파의 종교 자유 탄압은 혁명정신에 대한 명백한 배신이었다. 밀턴이 ‘혁명동지’였던 장로파의 획일주의를 반박하기 위해 쓴 책이 ‘언론자유의 경전’으로 불리는 『아레오파기티카』다. 장로파는 역사상 최초로 표현의 자유를 천명한 고전이 등장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셈이다. 종교의 속성과 관련해 주목할 만한 조언을 했다. 밀턴은 제2, 제3의 끝없는 종교개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종교개혁’을 ‘The Reformation’ 대신 ‘reformation’이라고 표기했다. 정관사를 없애고 소문자를 써 종교개혁을 일회적인, 유일무이한 사건으로 보지 않는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밀턴은 종교개혁을 낡은 껍질을 벗어던지며 영구히 지속돼야 할 과제로 간주했다. 그 빛은 ‘응시’하기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니다. 섬광을 오래 쳐다보면 앞을 볼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칼뱅주의를 도그마로 만들 것이 아니라 그가 비춰준 빛을 활용해 ‘원천으로(Ad fontes)’ 돌아갈 것을 촉구한 것이다. 기독교의 앞길에 밀턴의 조언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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