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안에 들어 온 연예오락
오늘 날에는 연예오락 없이는 살 수 없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들은 연예오락 없는 삶을 도저히 견딜 수 없다.
마치 마약 중독자가 날마다 헤로인을 맞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것처럼,
그들은 연예인이나 기타 심리적 중독이 주는
위안을 얻지 않고서는 살 수 없다.
여러 세기 동안 교회는 온갖 형태의 세상적 연예오락에 대해
반대 입장을 분명히 견지해 왔다.
왜냐하면 교회는 연예오락의 본질을 간파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예오락은 우리의 시간을 빼앗는 도둑이요,
마음을 불안하게 만드는 양심의 소리로부터 피할 수 있는 피난처요,
도덕적인 책임으로 관심을 돌리지 못하게 막는 교묘한 수단이었다.
이런 교회의 태도 때문에이 세상에 속한 사람들은 교회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나 교회는 점점 세상의 비판에 염증을 내며 세상에 굴복하기 시작했다.
교회는 지금 ‘연예오락...’이라는 큰 신(神)을 이길 수 없을 바에야
차라리 그와 연합하여 그의 힘을 이용하는 편이 더 낫다고
잠정 결론을 내린 것처럼 보인다.
그 결과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세상 적 연예오락을 제공하는 데
수백만 달러의 돈을 쏟아 붓는 놀랍고 희한한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그리하여 기독교적 연예오락이 정말 중요한 하나님의 일들을 몰아내고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하는 일이 여러 곳에서 급속도로 퍼져나가고 있다.
많은 교회가 삼류 극장과 유사해진 것이다.
거기서 삼류 제작자들이 저급한 작품을 퍼뜨리고 있으며,
더욱 놀라운 것은 복음주의 지도자들이 그들의 비행(非行)을
변호하기 위해 성경 본문까지 인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연예오락이라는 큰 신이 그의 추종자들을 즐겁게 해주는 방법은
주로 그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다.
본래 어린아이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성향...’이
오늘 날 ‘성장이 더딘 교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성숙한 신앙에 이르지 못한 부끄러운 기독교인들이 자꾸
기독교가 재미있어야 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희한한 단체들이 생겨나서 그들의 비위를 맞추려 애쓴다.
이런 사람들을 위해 기독교와 연예오락을 혼합하겠다는 목적 하나로
설립되고 존재하는 단체들이 생겨난 것이다.
이렇게 연예오락을 받아들인
현대 복음주의자들의 실패의 원인은 무엇인가?
그것은 과거의 성도들이 소중히 여겼던 하나님과의 관계,
진정한 예배와 경건의 훈련이 그들에게 없기 때문이다.
현대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런 것은 너무 진부하고 느리다.
그들은 화려한 매력과 빠른 극적인 활동을 원한다.
그들은 성경을 한 장 읽고 짧게 기도한 다음 황급히 바깥으로 나간다.
왜냐하면 또 다른 집회에 가거나 아니면 최근 먼 곳에서 돌아왔다는
종교적 모험가의 스릴 넘치는 간증을 듣고 자기 내면의 깊은 영적인
공허를 메우기 위해서이다.
이런 얄팍한 신앙의 비극적인 결과는 도처에서 발견된다.
깊이 없는 사랑, 속 빈 신앙관, 재미에 치우치는 신앙 집회,
예배에 들여 온 세속적인 음악, 축제식 예배 형태,
사람에게 영광을 돌리는 일, 종교적인 형식에 의지하려는 태도,
동호회 모임과 같은 친교 활동, 세상 적 판촉 활동의 도입,
인간의 열정을 성령님의 능력으로 착각하는 오해,
이런 것들이 바로 그런 비극적 결과들이다.
<예배인가! 쇼인가!> 저자 : AW 토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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