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부흥과 거짓 부흥
미국뿐 아니라 다른 많은 나라에 있는 기독교 교회내의
공통적인 고민이 있는데
그것은 매년마다 많은 교인들이 교회를 떠난다는 것이다.
특히 미국에 있는 많은 기독교회들에서
청년들이 신앙에 흥미를 잃고 교회를 떠나는 모습을 보면서
지도자들과 목사들은 축제식 예배 형식을
교회 안으로 도입하기 시작하였다.
축제식 예배 형식은 원래 천주교회에서 시작하였는데,
오순절파(순복음) 교회들에서 가장 활발하게 사용되고 있고,
지금은 거의 모든 기독교회에서 행해지고 있는 예배 형식이다.
교회 지도자들은 떠나간 교인들에게 영적인 각성을 불러일으키고
다시 신앙으로 돌아오도록 만드는 신앙부흥을 일으키려는
노력 대신에, 교인들이 떠나가는 것을 막기 위한 흥미 위주로,
또한 교회를 성장시키기 위한 일환으로
축제식 예배 형식을 교회에 받아들였다.
* 진짜 부흥
모든 진짜 부흥들에서 남녀들은 죄를 깊이 자각하고
구세주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낌으로 자백과 회개로 용서를 발견하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다.
그들은 믿고 세례를 받으며,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새 생애를 하기 위하여 일어난다.
그들은 전에 행하던 그들의 정욕을 따라 자기 자신들을 이끌지 않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주님의 발자취를 따르고,
주님의 품성을 반사하며,
그 분의 깨끗하심과 같이 그들 자신을 깨끗하게 한다.
그리하여 전에 미워하던 것을 이제는 사랑하고, 전에 사랑하던 것을
이제는 미워하게 된다.
교만하고 자기주장만 하던 사람들의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게 되며,
허영적이고 교만한 사람들이 착실하고 조심성 있게 된다.
이것이 하나님의 영이 하시는 일의 결과이다.
개혁이 없는 회개는 참된 회개가 아니다.
* 거짓 부흥
거짓 부흥들의 성격을 살펴보자.
1. 상상력에 호소
2. 감정을 자극
3. “무언가 새롭고 깜짝 놀랄만한 것에 대한 사랑”을 불러일으킴.
4. 성경 진리에 과히 귀를 기울이려고 하지 않음
5. 어떤 감정을 일으키는 색채를 원함
6. 조용한 이성에 호소하는 기별 같은 것엔 아무 반응이 없음
7. 진짜를 거짓과 혼합함 - 많은 사람들이 그 실상은
전연 다른 신의 공작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저들을 위하여
놀라운 일을 행하신다고 기뻐함
8.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그릇된 태도
9. 마음과 생애에 근본적인 변화가 없음
10. 그리스도로 더불어 연합함이 없는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참가하게 됨
* 거짓부흥의 특징들
1. 큰 소리로 외치는 것, 드럼과 요란한 음악과 춤이 따름
2. 악기들의 남용과 오용
3. 혼잡한 소리와 광적인 태도
4. 이지적인 인간의 감각들은 혼란을 일으켜 올바른 결정들을
할 수 없게 됨
올바르게 사용되었더라면 축복이 될 음악이 잘못 사용될 때는
사단의 효과적인 도구가 된다.
시끄러운 음악과 요란한 리듬들이 축제 교회 예배 형식을 타고
교회에 자리 잡았다.
어떤 이들은 이런 질문을 던진다.
“만일 축제 예배가 전혀 교회에 나가지 않던 자들을
교회에 오도록 한다면 좋은 것이 아니냐..?”고.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난잡한 음악으로써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보다는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을 더 좋아하실 지도 모르며,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참 예배만을 받으신다는 것을 기억하자.
진정한 신앙의 부흥이란, 마치 옛적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의 종을 통하여 견책의 기별을 받았을 때
즉시 마음을 겸비하게 하여 하나님께로 돌아간 것처럼,
열광적인 기쁨은 별로 없을지 모르나 오히려 마음을 깊이 살피고,
죄를 고백하고, 세상을 버리며, 주님을 만나기 위해 간절히 소원하며
끈기 있는 기도와 확고한 헌신을 주께 드리는 것이다.
오순절파 형식의 프로그램들이 무리들, 심지어는 “대중...”을
끄는 데 있어서 굉장히 성공적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표면적으로 부흥을 판단할 수는 없다.
축제식 예배 형태를 도입한 교회들에 몰려드는 대중들을 보면
그것을 판단할 수 있을 것인데, 거기에는 피상적인 회심이 넘칠 것이며,
그리스도와 진정으로 연합하고 산 관계를 맺은 적이 없는 피상적인
많은 신자들로 교회가 가득 차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축제 예배...”라 불리는 오순절 교회의 예배 형식을 보면,
그 예배는 크고 꿍꽝거리는 음악으로 이루어지며, 또 손과 몸을 흔들고
성경은 아주 조금만 가르치는 형식의 예배이다.
또한 기도로 병을 고치는 치유의 기적들이 일어난다고 하고
(나중에 가서 보면 다시 증상이 되돌아오는 경우가 많음),
진정으로 회개하여 예수님을 마음에 받아들임으로 새로운 생애와
성품으로 변화하는 참된 개심의 경험이 전혀 수반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죄를 회개하지 않고 죄 된 생활에서
돌이키지 않는사람들의 질병을 고쳐주실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그들 스스로를 위해 예배드리는 것이기 때문에 그러하다.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예배가 아니라 그들의 귀를,
아니 오감을 즐겁게 하기 위한 한 “축제...”에 불과할 뿐이다.
참된 성령의 역사는 조용하며 깊다.
그곳에서는 진정한 개심의 변화가 수반된다.
자신의 마음대로 또는 기호에 따라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주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볼...” 것이다(엡 5:10).
그리고 그에 합당한 성령의 열매를 즉,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갈 5:22) 등을 그들의 삶 속에서 맺을 것이다.
온 우주에 셀 수 없이 수많은 별들(행성들)을 창조하시고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아주 정확하게 움직이시는 질서의 하나님께서,
어떻게 무질서하고 방정맞게 소리 지르는 인간의 예배를
받으실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우리 주위의 자연계를 볼 때에도 상식적으로도 “축제 식 예배...”는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갈멜산에서 850명의 이교도 제사장들과 홀로 하나님 편에 서서 싸운
엘리야의 경험을 통해 볼 때에도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우리의 예배는
시끄럽게 정신없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또 몸을 상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신령과 진정으로 간구할 때 받으실 만한 것이 되는 것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엄숙하고, 신성하며,
지성적이어야 한다.
어떠한 세상적이나 표면적인 예배가 있어서는 안 된다.
성경은 하나님께 드리는 우리의 예배가 최후의 선과 악의 싸움에 있어서
참된 백성인지 아닌지를 구분하는 마지막 시금석이 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하나님의 성령으로부터 떨어져 나간 사람들에 의해 모양뿐인 신앙은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계속 진행 될 것이다.
그러므로 안전하게 하나님의 편에 서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을 찾고 말씀대로 행할 때에만 위험이 없다.
지금 많은 교회들에서 축제식 예배를 드리고 있다.
그리고 그 예배 형식은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을 교회로 끌어 모으고 있다.
교회들은 단지 교인 숫자의 “성장...”만을 추구하여
축제예배 형식을 따르고, 칭송하고, 확장시키며,
오순절주의로 쏠려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때에 우리는 진정한 예배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하며,
하나님 앞에 진정한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이 축제예배 형식은 마지막 하나님의 백성들 사이에 일어날 진짜 부흥이
있기 전에 나타날 사단의 거대한 거짓 부흥의 시작일지 모른다.
함께 휩쓸려 껑충껑충 뛰기 전에 한번 생각해 보자!
그리고 하나님 앞에 진정한 예배를 드리자!
<예배인가! 쇼인가!> 저자 : AW 토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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