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주범 신창원의 절규 몇 년 전 탈주범 신창원으로 사회가 들끓던 적이 있었다. 신출귀몰한 도주행각으로 수천 명의 경찰부대가 동원되기도 했다. 헬기가 뜨고 총성이 울리고 마치 액션영화를 방불케 했다. 나는 신창원의 변호사였다. 3년이 지난 올해 여름 나는 청송교도소에 있는 신창원을 보러 갔다. 안타까울 정도로 그는 피폐해 있었다. 가죽만 남은 얼굴에 퀭한 눈은 초점을 잃은 듯 멍해 있었다. 감방문이 열리면서 들어오기도 하고 어떤 때는 벽에서도 슬며시 나와 나를 바라보고 있어요.” 그에게는 아주 작은 자유와 노동의 기회마저 없었다. 그러나 몇 미터 앞에 내리는 비도 철창 때문에 맞을 수 없었다. 또 교도소 담장 아래 귀엽게 돋아난 풀을 가까이 가서 만져 보고 싶어도 안 되는 게 교도소 생활이었다고 말했다. 공기처럼 항상 곁에 있는 보통 사람의 작은 자유를 그는 그리워한 것이었다. 감옥을 빠져나왔지만 정신적으로는 여전히 철창 안에 있었다. 여관에서 잠을 자도 불안했고 빈 창고에 숨어 있어도 누가 신고할까 봐 신경이 면도날같이 날카로웠다. 다시 잡힌 그는 사형당했으면 좋겠다고 내게 말했다. 체념이 아닌, 인생을 지우개로 지우고 다시 그리고 싶은 마음이라고 설명했다. 그를 보면서 마음의 평화와 작은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았다. 그림의 장인이 되면 어떨까 생각했다. 죽을 때까지 석방될 가망이 없는 절망의 무기수에게 살아갈 힘을 주고 싶었다. 나는 그가 좋아하는 수필을 써 보라고 권했다. 그는 이미 가장 낮은 곳까지 가 본 사람, 벗겨질 대로 벗겨진 사람이다. 허세나 위선의 요소가 없는 그가 느낀 감동의 물결이 종이 위에 진실하게 그려진다면 좋은 수필이 될 것 같았다. 교도소 안에 있지만 많은 책을 읽고 생각하고, 쓰고 또 쓰면서 고친다면 감옥의 두꺼운 벽은 점점 얇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 감옥에서 대학학력을 얻었다는 말콤 엑스 목사처럼 되었으면 했다. 나는 그에게 일생 동안 정성 들여 세공품을 만드는 장인같이 흰 종이 위에 연필로 세밀하게 그림을 그려 보는 게 어떠냐고 말해 주었다. 할 일이 있을 때 세월은 부드럽게 흘러가기 마련이다. 운명에 항거하는 사람에게는 운명이 그를 괴롭게 질질 끌고 가지만 운명에 순응하는 사람에게는 운명은 그를 등에 태우고 편히 가게 한다. 신창원은 나의 얘기를 듣고 그렇게 하겠다며 희망을 가졌다. 믿음은 삶의 근원이고 예술의 원천이기 때문이었다. 몇 달 뒤 나는 그가 감옥에서 편지지 위에 그린 순한 개의 그림을 보았다. 처음 그린 것인데도 종이 속의 개는 살아서 뛰어나온 것처럼 생생했다. 그러나 지금 그의 믿음은 완전히 실패했다. 그런데 그 식이라는 게 너무 이해할 수 없었어요. 목사님이 머리에 물을 끼얹으면서 나보고 '앨랠랠래~'하는 반벙어리 소리를 따라 하라고 했어요. 그게 방언이래요. 그리고는 저를 바닥에 눕히고는 이상한 행동들을 시키잖아요. 그렇게 미쳐 가는 게 크리스천이라면 저는 안 믿고 싶어요.” 믿음의 씨가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새가 날아와 그것을 먹어치운 것이다. 그 밖에도 전도를 가장해 여러 거짓 기독교인들이 그를 괴롭힌 얘기를 했다. 그에게는 감옥생활을 버티게 할 수 있는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지독히도 추운 외로움으로 고통받고 있었다. 옆에 있던 교도관이 안타까운 듯 휴지를 꺼내 주었다. 그는 같은 교도소지만 보다 따뜻한 곳으로 가고 싶어했다. 그는 죄와 벌 이외에도 사회에 대한 책임이 지워져 있었다. 그가 검거될 당시 입었던 알록달록한 이태리제 티셔츠가 청소년 사이에 유행이 될 정도였다. 사실 그는 외국명품을 입은 게 아니라 길거기 좌판에서 파는 3천 원짜리 셔츠를 사 입은 것이었다. 정부당국은 그의 사회적 전염성을 고려해 철저한 격리를 결정했다. 또 어떤 사람에게는 슬기와 지식을 주신다. 행복한 가정이나 무사한 생애를 주기도 하고 고난과 박해 속에서 영혼의 기쁨을 준다. 각 사람에게 좋다고 보시는 것을 주기 때문에 불행하게 보이는 사람도 깊이 감사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그를 끝까지 지켜보고 기도해 주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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