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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무신론자의 기도 2 / 이어령

by 石右 尹明相 2011. 4. 30.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 2 / 이어령

 

당신을 부르기 전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당신을 부르기 전에는

아무 모습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아닙니다

어렴풋이 보이고 멀리에서 들려옵니다

 

 어둠의 벼랑 앞에서

내 당신을 부르면

기척도 없이 다가서며

“네가 거기 있었느냐

“네가 그동안 거기 있었느냐

물으시는 목소리가 들립니다

 

 달빛처럼 내민 당신의 손은

왜 그렇게도 야위셨습니까

못자국의 아픔이 아직도 남으셨나이까

도마에게 그렇게 하셨던 것처럼 나도

그 상처를 조금 만져볼 수 있게 하소서

그리고 혹시 내 눈물방울이

그 위에 떨어질지라도 용서하소서

 

 아무 말씀도 하지 마옵소서

여태까지 무엇을 하다 너 혼자 거기 있느냐고

더는 걱정하지 마옵소서

그냥 당신의 야윈 손을 잡고

내 몇 방울의 차가운 눈물을 뿌리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