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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 교회'와 종교 상인들

by 石右 尹明相 2013. 10. 12.

 

 

 

'유사 교회'와 종교 상인들

주류 교회의 변절

 

'유사 교회(Pseudo Church)'란 겉모양은 보편적인 교회의 모습인데

그 내용에 있어서 '교회의 본질'을 크게 벗어난 교회를 의미합니다.

대부분의 경우 교회의 머리가 그리스도라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특정 직분자들이 예수의 이름을 팔아 신도들을 모으고

이들을 우민화하거나 기복화하여 교회를 사유화한 경우를 말합니다.

어느 시대이건 이처럼 종교라는 신성한 이미지를 이용하여 성직자란 허울을 쓰고

자신의 배를 채우는 사람들이 항상 있었습니다.

우선은 흔히 말하는 이단이나 사이비 교회가 일차적으로 이에 해당됩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소위 정통이라고 하는 교단에 소속된

일부 교회들도 이런 사악한 대열에 점차 합류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유사 교회 역시 잘 알려진 대형 교단에 속해 있을 수 있고,

번듯한 교회당이 있고, 목사와 장로가 있고, 당회와 제직회 등

그 직분과 조직에 있어 외형상 흠을 잡을 수 없는 정상적인 모습을 갖추고 있습니다.

적어도 겉으로는 있을 것이 다 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일반인들은 진짜 교회와 가짜 교회를 구분하기가 그리 쉽지 않습니다.

오히려 유사 교회일수록 더욱 정통인 양 위장하기 때문에

보통의 교회들보다 더 겉 치장에 열을 올립니다.

그래서 선교나 사회 봉사 그리고 구제 등에도 좋은 모습을 보이려고 더욱 애씁니다.

교회론 왜곡

당연히 담임목사의 설교도 유창합니다.

그리고 그 상당 부분은 나름 성경적이고 옳은 내용입니다.

문제는 결정적인 부분에 있어서 진실을 숨기거나 왜곡한다는 데에 있습니다.

이단이 아닌 경우라면 그래도 비교적 구원론은 잘 가르칩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해야 천국 백성이 된다고 가르칩니다.

일단 구원론을 확실히 해야 종교 상인들이 성직자 행세를 하며

신도들을 휘어잡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성경공부나 제자훈련도 열심히 합니다.

'종교라는 틀' 속에 신도들을 잘 가둘수록

자신들의 힘과 이익이 확대됨을 잘 알고 있습니다.

반면에 유사 교회가 가장 엉터리로 가르치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교회론'입니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자신들의 '세속적 이권'이 크게 걸려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암묵적으로 직분을 수직화하고 계급화합니다.

즉 '성직자'와 '평신도'라는 차별적 구분입니다.

자신들은 구약 제사장같은 성직자이고 나머지 교인들은

모두 이들의 지시에 순종해야 하는 평신도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교회론을 왜곡하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일단 교회를 권위주의적인 수직 구조로 체계화한 후

거기에서 사익을 최대로 취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이런 이분법은 감히 예수님의 제자들조차 시도하지 않은

매우 반기독교적인 작태입니다.

사도들의 가르침처럼 모든 신자들은 다 '왕같은 제사장'의 대등한 신분입니다.

그 직분이 목사이든 장로이든 집사이든 또는 교회학교 교사이든

그것은 단지 사역의 구분을 의미할 뿐입니다.

따라서 어느 목사라도 자신이 다른 교인들보다 특별히 우월하거나

높은 직분처럼 처신한다면,

그는 이미 사이비의 문지방을 넘고 있다고 보셔도 무방합니다.

교회의 세력화, 권력화, 그리고 사유화가

종교 상인들의 궁국적인 목표임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성전 건축'이라는 기만적 명분으로

신도들에게 가시적인 '건물 신앙'을 부추깁니다.

일단 무리해서라도 교회당을 크게 지으면 신도가 늘고

교세가 크게 확장되는 것이 일반적인 추세이기 때문입니다.

목사 개인의 야망과 탐심을 '성전 건축'이라는 미명하에 숨기고

아주 당당히 강력하게 추진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많은 유사 교회들은 이런 수법으로 세계 교회사에 보기 드문

외적 성장을 단기간에 이루어냈습니다.

거짓 목사와 우민화한 신도

그런데 이처럼 유사 교회가 증식될 수 있는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요.

다른 요인들도 있겠으나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고 봅니다.

첫째는 많은 신도들이 세속적 복을 갈망하며 마치 미신이나 무당을 의지하듯

교회당을 찾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를 진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의지하고 믿을 만한 종교로 보는 것이지요.

그래서 많은 경우 스스로 땀 흘려 일해서 보답을 받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 하고,

덤으로 종교적인 힘에 기대어 세상에서 좀 더 부요하고 평탄하게 살기를 기원합니다.

그 동기가 전통적인 원시 무속 신앙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물론 이는 복음을 크게 오해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목숨을 걸고 전해 준 복음은 그런 수준의 것이 결코 아니지요.

'예수님을 믿으면 잘먹고 잘산다'는 그런 어린애 사탕발림같은 유치한 보장은

성경 어디에도 없습니다.

오히려 예수님께서는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주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 역시 대부분 가난하게 고생하며 살다가 순교를 했습니다.

둘째 원인은 바로 이런 기복적 욕구를 악용하는 종교 상인들에게 있습니다.

이들은 목사 가운을 입고 성경을 입에 달고 설교하고 있지만

실상은 바리새인들보다 더 가증한 사람들입니다.

진실한 목회자는 성경 한 구절이라도 더 잘 지키기 위해 모든 수고와 희생을 감수합니다.

때로는 생명까지 바칩니다.

반면에 이 종교 상인들은 입에 가시가 돋을 정도로 늘 성경을 노래하지만

실제로는 결코 성경대로 살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십자가의 도'를 진실하게 따르지 않는 자들입니다.

결국 유사 교회의 두 축은 '거짓 목사'와 '우민화한 신도'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즉 가르치는 자나 배우는 자 모두가 함께 합심하여 예수님과는 상관 없는

엉뚱한 종교 놀음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니 갈수록 가관이 됩니다.

일단 이 둘이 적당히 조합하게 되면 저절로 유사 교회로 변질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교회에서는 필연적으로 경건을 가장한 종교적 압제와 착취가

은밀하게 작동하게 됩니다.

종교 상인들은 십일조와 수십 종의 헌금을 강요하여 부를 축적하고

나중에 갖은 명분을 만들어 결국 이 돈을 자신들의 주머니에 채웁니다.

겉으로는 성전 건축과 전도나 선교와 구제를 부르짖지만

이는 신도들의 신앙심을 자극하여 헌금을 더 짜내기 위한 기만적 전술일 뿐입니다.

유사 교회를 판별하려면

그런데 유사 교회가 아무리 진짜 교회처럼 위장하고 연기해도

이를 판별하는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종교 상인들의 본래 목적을 조금 생각해보면 그 실마리가 보입니다.

이들은 기독교 진리를 '종교화'하여 신도들을 종교라는 초법적 울타리에 가두고

이를 이용하여 돈을 갈취합니다.

따라서 많은 경우 '헌금을 어떻게 걷고 또한 어떻게 쓰는가' 하는 것만

잘 관찰해도 유사 교회 여부를 어렵지 않게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진짜 목사인지 짝퉁 목사인지 알 수 있습니다.

어떤 목회자가 아무리 설교를 잘 하고, 은사가 뛰어나고, 병을 잘 고치고,

선교를 잘 하고, 그리고 교회를 크게 성장시키더라도

결단코 그것만으로 그를 섯불리 판단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정도는 뛰어난 종교 상인들의 기본적인 필수 스펙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중요한 사항은 그 목사가 정말 제자된 삶을 실천하고

십자가의 길을 따르고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이 점은 사실 종교 상인들 스스로도 매우 고민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그들도 자신들이 호의호식하며 사는 것이 떳떳하지 못함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겨우 둘러 대는 궁색한 변명이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서 잘사는 것처럼 말하거나,

아니면 재산을 가족이나 친인척 명의로 부지런히 숨깁니다.

하여튼 이런 불순한 의도로 교회 재정을 공개 안 하거나

교회 장부를 숨기는 교회가 있다면

유사 교회로의 가능성을 우선적으로 의심하셔도 좋을 것입니다.

돈에 깨끗하지 못한 목회자치고 바른 목회자를 본 기억이 없으니까요.

따라서 돈 주머니가 회개하지 않는 목회자는 절대로 믿지 마십시요.

변절한 목회자들 대부분의 업보는 '돈'이 아니면 '이성 문제'입니다.

성전을 헐라

유사 교회는 진리를 떠난 교회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교가 그러했습니다.

율법의 정신인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외면한 채,

백성들에게 율법의 짐만을 무자비하게 강요하던 교회였습니다.

오죽하면 예수님께서 '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는 자'라고 하셨을까요.

그런데 지금 한국교회는 어떻습니까.

교회가 가난한 이들을 제대로 돕던가요.

교회가 압제받는 사람들과 함께 고난을 받습니까.

교회가 공의를 실천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교회가 도리어 사회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권력자와 부자의 편에 서서 함께 성찬을 나누고 있습니까.

중세 교회는 주류 교회가 통채로 부패하여 유사 교회의 수준에 이른 경우입니다.

극히 일부의 교회나 사제가 예외일 수는 있겠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그 견고한 부패 구조 속에서 진리에 도달한 이들이 과연 몇이나 있었을까요.

그런데 그런 어두운 시대가 앞으로 다시는 없을 것이라고 누가 장담하겠습니까.

지금은 영적으로 어려운 시기입니다.

성도들이 각성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다시 중세 시대처럼 유사 교회가 주류가 되어 그들이 노회나 연회의 수장이 되고,

기독교연합단체의 요직을 차지하고, 또한 그들이 '대통령조찬기도회'를 주관하는

불행한 시대가 올 수 있습니다.

아니 우리는 이미 그런 전조를 충분히 맛보고 있습니다.

최근 감리교 감독회장 선거를 보십시요.

성직을 돈으로 사고 파는 일이

중세 시대만의 전유물이 아님을 아주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우리 교단은 그래도 좀 낫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아마 지각이 있는 분이라면 그것도 결국 도토리 키재기라는 것을 본인도 잘 아실 것입니다.

아직도 주변에 신실하신 목회자들이 많고

또한 제자도를 따르려는 바른 교회가 분명히 많이 있습니다만,

그것이 갈수록 천연기념물 보기만큼이나 어려워지고 있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이 그토록 자랑하던 "이 성전을 헐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율법의 정신은 따르지 않고 율법 조항만을 문자적으로 따르는

'율법 신앙'과 '건물 신앙'에 빠져 잘못된 길을 가고 있던 유대 교회에 대한

선전포고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다시 일으키시려던 성전은 결코 요즘 흔히 보는

그런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따위가 결코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지체인 성도들이 모인 신약 교회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한국교회도 이제는 그릇된 성전 신앙을 헐어야 합니다.

왜곡된 교회론을 허물고 바른 교회론을 정립해야 합니다.

성도 중심 교회

특정 직분이 교회 운영을 과도하게 주도하는 '목사 중심' 교회를 극복하고,

그리스도의 지체인 모든 직분자들이 대등하게 동역하는 '성도 중심'의

바른 교회를 이루워야 합니다.

지역 교회들은 큰 교회당으로 위세부리려 하지 말고

유대교적 의미의 건물 성전을 헐어야 합니다.

참된 성전은 부활하신 주님의 몸이며, 또한 그 분의 지체가 된 성도들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성도들이 교회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이 땅에 다시는 유사 기독교, 유사 복음,

그리고 유사 기독교인이 없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종교 상인이 독주하고 맹신도가 화답하는 교회는 참된 교회가 아니라,

거짓과 짝퉁이 좌판을 깔고 설치는 유사 교회입니다.

어느 분의 지적처럼 "이스라엘은 웅장한 석조 성전보다 천막에서 더 신실했다.

이스라엘은 몇 십 년씩 걸려서 건설한 거대한 예루살렘 석조 성전보다

광야의 보잘것없는 먼지투성이 천막 앞에 엎드렸을 때 훨씬 더

하나님을 전심전력으로 섬기고 예배했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될 것입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교회가 있습니다.

진짜 교회가 있고, 이를 불법 복사한 유사 교회가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출석하시는 교회는 과연 어떤 모습의 교회입니까?

샬롬!

"예수께서 성전 뜰 안으로 들어가 상인들을 쫓아내시며(눅19:45)..."

 

 

2013년 10월 10일 신성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