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CC총회 개최를 반대하는 주된 이유 3가지의 근거들
『WCC의 정체』, 조영엽 박사, 성경보수개혁교회단체연합회. 에서 발췌
세계교회협의회(World Council of Churches; WCC)는 세계교회의 일치와
연합을 위하여 1948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제 1차 세계총회를 열었지만
종교다원주의와 종교통합의 방향으로 흘러갔으며,
좌경용공주의 사회운동에 착념했고, 동성애와 일부다처제를 허용하는
극도의 도덕적 타락을 양산하고 말았다.
WCC는 참된 교회연합운동이라고 볼 수도, 건전한 사회운동이라고 볼 수도 없다.
따라서 정통기독교인들과 자유대한민국의 국민들은 WCC 제10차 총회가
한국에서 개최되는 것을 결코 용납할 수 없다.
1. 종교다원주의와 종교통합
▷ 1961년 제 3차 총회 - 인도 뉴델리
다른 종교인들과의 대화(Dialogue)를 통한 상호이해와 종교다원주의를 통한 연합 시도
“하나님이 다른 종교를 갖고 있는 사람들과
무종교인들에게 주신 지혜와 사랑과 능력에 대한 이해가 거의 없다.
혹은 타종교가 기독교와 오랫동안 만남으로서 그들 종교 내부에 발생한
변화에 대하여 거의 알지 못한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통하여 그들에게 말씀하시고
또한 그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인식하고서
그리스도에 대하여 그들과 대화를 가져야 한다.” -제1분과, “증거”(Witness).
▷ 1975년 제 5차 총회 – 케냐 나이로비
총회 수준에서는 처음으로 유대교, 이슬람교, 힌두교, 불교, 시크교 등
다른 신앙을 가진 5명의 지도자들을 옵서버(Observer) 자격으로 초청
“우리와 다른 신앙, 문화, 이데올로기를 가진 사람들과 즉, 함께하는 보다 넓은
공동체를 추구한다.” -제3분과, “공동체를 모색하면서”(Seeking Community)
▷ 1983년 제 6차 총회 – 캐나다 벤쿠버
다른 종교지도자들 15명을 공식 손님으로 초청하였다.
그들과 함께 예배드리고 연설 청취
“우리는 우리가 증거하는 예수의 탄생, 생애, 죽음, 부활의 독특성을
주장하는 한편, 다른 신앙들(종교들)을 가진 사람들 가운데도
종교적 진리의 추구에 하나님의 창조적 사역이 있음을 인정한다.”
1985년 - WCC <타종교와 이념과의 대화>
- 분과위원장 웨슬리 아리아라자(S. Wesley Ariaraja)
“절대적 의미에서의 진리는 어느 누구도 파악할 수 없고,
우리는 예수에 관한 기독교의 주장들이 성 요한, 성 바울,
그리고 성경이 그렇게 주장하기 때문에 절대적이라고 말해서는 안된다.”
“만일 당신이 나에게 참된 증거의 가장 큰 방해거리였던 한 가지 요인을
골라내라고 요청한다면, 나는 어떤 그리스도인들의 그리스도에 대한
절대적 주장들이 그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 웨슬리 아리아라자, 『성경과 타 신앙인들』, WCC.
▷ 1991년 제 7차 총회 – 호주 캔버라
15개 종파 지도자들 초청, 가톨릭교 옵저버 25명 초청.
정현경(이화여대 기독교학과 조직신학 교수)의 초혼제
1996년 “신앙과 공동체: 변천하는 아시아에서의 이슬람과 기독교의
협동과 이해” 회의 개최 - 아시아교회협의회, 필리핀교회협의회,
필리핀대학교 이슬람연구소가 공동주최
2. 용공주의
▷ 1948년 제1차 총회 –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기독교인들은 공산주의에게 많은 힘을 갖다 주는 부정의에 반대하는
군중의 폭동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파악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특별히 많은 젊은 남녀들에게 있어서 공산주의는
인간의 평등과 보편적 형제애에 대한 비전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제3분과, 생활 봉사운동, “교회와 사회의 무질서”
▷ 1954년 제2차 총회 – 미국 에반스톤
“반공주의자들의 히스테리를 따르는 유혹과 서구의 정치체제 및 사회체제에 관련한
자기에의 확신에 위험이 있다.” -제3분과, 사회문제들, 제28항.
▷ 1961년 제 3차 총회 - 인도 뉴델리
“압제, 차별, 인종분리가 있는 곳에서 교회는 정의를 이루기 위하여
눌림 받는 인종들의 투쟁에 동참해야 한다.
기독교인들은 기꺼이 이 투쟁을 주도해야 할 것이다.”
- 제2분과, 섬김, 인종적 평등을 위한 투쟁, 43항.
▷ 1968년 제 4차 총회 – 스웨덴 웁살라
“교회는 오늘의 삶 속에서 사람들을 보다 밀접히 연결시킬 수 있는
인종평등(racial equality) 투쟁과 같은 세력들과의 연대를 통해서
교회의 하나 됨을 추구해야 하고...” -제1분과, 성령과 교회의 보편성, 제3항.
그들이 말하는 인종적 평등을 위하여 추구하는 세력들은 어떤 세력들인가?
남부 아프리카의 ANC, SWAPO, PAC, MPLA, MLFIF, PFZ 등을 중심한
소위 해방운동 단체들을 말한다.
소위 해방운동 단체들이란 공산주의 게릴라단체들을 말한다.
▷ 1975년 제 5차 총회 – 케냐 나이로비
“우리는 평화와 정의 그리고 자유를 위한 하나님의 뜻을 사회 구석구석에
실현하기 위하여 투쟁할 것을 명령받았다.”
-제1분과, 그리스도에 대한 오늘의 신앙고백, 제3항
나이로비 총회에서는 웁살라 총회(4차총회)에서 논의하고
WCC 실행위원회(1969)에서 조직화하고 실행해 온 “인종차별투쟁사업”(PCR)을
압도적으로 재지지하였으며, 인종차별투쟁 방법도 “1973년 WCC성명서”에서 밝힌
폭력과 비폭력을 포함한 모든 방법을 다 권장하였다.
1969년 중앙위원회 인종차별투쟁사업(PCR)에 관한 성명서
“급진적 사회 건설의 대행기관이 되어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구조의
급진적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 -WCC 총무, 필립 포터
WCC의 기관지 Ecumenical Press Service(1987년 11월 1일)에 의하면
공산주의 게릴라단체들인 아프리카전국의회, 남아프리카인민기구,
아자니아 범아프리카의회, 남아프리카 무역노조 등을 위시한 수많은
급진좌경단체들에게 막대한 자금과 경제적 지원을 계속하였다.
구세군은 WCC가 1970년 공산주의 게릴라 단체들을 위시하여
극렬좌파 단체들에게 막대한 자금을 지원하여 왔으므로
1981년 WCC를 탈퇴하였다.
월맹 지원: WCC 뉴욕사무소 발표에 의하면 1965년도에는 WCC가
국제적십자사를 통하여 $6,000에 해당하는 의약품을 월맹에 지원하였다.
1966년에는 폴란드 에큐메니칼협의회가 $10,000에 해당하는 의약품을
폴란드 적십자사를 통하여 월맹에 지원하였다.
서유럽에 있는 WCC 회원교회들은 $500,000을 월맹에 제공하였다.
WCC는 1970년 말에 월맹 공산정권에 구호품을 지원하기 위하여
$210,000 모금 캠페인을 전개하였다.
월남이 공산화 된 후에 미국교회협의회(NCC in USA) 구호기관인
교회세계봉사회(CWS)는 “오늘날의 월남은 조국에 충성하는 인민들이
열심히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고 있다”고 하면서 공산정권을 찬양하였다.
아프리카, 남이 공산게릴라 단체 지원: WCC는 1970년 9월 3일
19개 단체들에게 $20,000을 제공할 것을 발표하였는데 이들 중 14개 단체는
로데지아, 앙골라, 모잠비크, 나미비아, 남아프리카 공화국 지역에서 활동하는
게릴라 단체들이며, 이 중에 적어도 3개 단체는 러시아로부터
무기 공급을 받고 있다고 영국분쟁연구소는 발표하였다.
WCC는 1970년부터 1975년까지 인종차별투쟁사업(PCR)으로
미화 100만 불 이상을 지불하였다.
WCC는 1970년부터 2001년까지 인종차별 투쟁사업으로
미화 1200만 불 이상을 지불하였다.
3. 성적인 타락(동성애 및 일부다처)
▷ 1961년 제 3차 총회 - 인도 뉴델리
상당수 회원 교단들의 요청에 의하여 WCC는
인간 성(human sexuality)에 대하여 거론하기 시작하게 되었다.
▷ 1975년 제 5차 총회 – 케냐 나이로비
회원들이 “성에 대한 신학적 연구”(A Theological Study of Sexuality)를
요구하게 되었다.
그리고 교회들로 하여금 각 개인들의 각기 다른 생활(in different life style)
선택을 지지하도록 결의하였다.
▷ 1988년 제 8차 총회 – 짐바브웨 하라레
화란 개혁교회의 카렐 블레이 목사는 WCC 총무 콘라드 레이저에게
짐바브웨의 로버트 무가비 대통령으로 하여금 동성애 목사들의 입국과
신변의 안전을 보장받을 것을 계속 요청하였다.
무가비 대통령은 동성애자들을 엄벌할 것을 수차에 걸쳐서
공적으로 공언한 바 있기 때문이다.
이 총회에서는 동방정교회 산하 불가리아정교회와 에리트리안정교회가
WCC를 탈퇴하였다.
그 이유는 WCC의 회원교단들이 여자 목사, 한 걸음 더 나가서
동성애 목사들을 찬동하기 때문이다.
이 총회에서 일부다처제(Polygamy; 다중혼)를 허용하는
교회의 WCC 가입을 놓고 논란이 됐었다.
하지만 WCC는 기존의 입장대로 이들을 ‘존중’하고 받아들이기로 결론지었다.
2005년 2월 WCC 중앙위원회는 각 지역의 상황, 문화, 생활양식 등에 따라서
인간 성(human sexuality)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도록 권고하였다.
▷ 2006년 제 9차 총회 – 브라질 포르토알레그레
9차 총회에 보고된 “인간의 성에 대한 교회들의 응답(Churches’ response to
human sexuality)”이라는 문서에서는 일부다처제(polygamy)를 비롯한
여러 가지 형태의 성생활을 언급하고 이러한 상황에 따라 교회는 가르침과
목양을 재검토(re-examine)해야 한다고 했다.
이 문서는 결론부에서
“WCC가 이러한 이슈에 사려 깊은 마음으로 참여하는 것은
교회에서 (성적인 문제들로 인해)소외된 형제, 자매(혹은 동료)들의
동료가 된다는 표현”이라고 선언했다.
이는 사실상 온갖 종류의 성적 타락들을 전혀 제재하지 않고 허용하는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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