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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를 팔아먹지 말라

by 石右 尹明相 2015. 6. 11.



"종교를 팔아먹지 말라"

종교 개혁 500년 역사가 주는 교훈


어느덧 루터가 종교 개혁을 시작한지 500년이 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필자가 느끼는 솔직한 심정은 '종교는 결코 쉽게 개혁되지 않는다'는

슬픈 결론뿐입니다. 한국교회 130년 역사도 이를 잘 증거하고 있습니다.

선교 초기엔 비교적 순수했던 개혁 교회가 일제강점기부터 점차 변절하더니

개혁은 커녕 갈수록 개악하고 타락하여

이젠 '개신교 역사상 가장 부패한 교회'란 말까지 듣고 있습니다.

지도자나 신도나 모두 한 덩어리가 되어 오로지 집안이 번창해서 잘 먹고

잘사는 복을 구하니 이게 토속 무당집과 무슨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과연 그게 진정한 그리스도의 교회입니까.

더구나 그 조직적인 부패 전통이 얼마나 견고하고 단단한지 개혁과 갱신을 갈망하는

목회자들조차 도대체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할 지 염두가 나지 않을 정도입니다.

하여튼 매일 아침 자고 일어나면 여기저기에서 만신창으로 터지는 것이

'교회 비리'와 '목회 부정'입니다.

진리가 잘못 포장되어 외면화하고 형식화하면 '종교의 늪'에 빠지게 되고

결국은 이런 흉한 모습이 되는 것입니다.

종교든 정치든 일단 한번 잡은 '돈과 권력'은 절대로 놓지 않고

끝까지 움켜쥐려 하는 것이 타락한 인생의 본성이니까요.

그래서 많은 직분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구조적인 부패에 오염되어

상습적인 '종교 장사꾼'으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단지 소수의 양심 세력만이 예외일 뿐입니다.

 

이 성전을 헐라

오죽하면 최근 어느 보수 교단 소속의 한 신학 교수께서 "이 바닥에서 점점 더

뼈저리게 깨닫는 것은 예수님 시대나 지금이나 최악의 인간 말종들은

사창가나 감옥이 아니라 교계와 신학계에 있다는 사실이다."라고 탄식하셨을까요.

그리고 이 점이 바로 기득권 종교지도자들에 의한 개혁은 항상 말뿐이고,

반대로 '지속적인 세속화'가 종교의 속성이 되는 태생적 이유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고 하신 것처럼

차라리 "종교라는 껍데기는 부수어야 한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전해준 이 놀라운 진리는 고작 종교라는

그런 진부한 틀에 가둘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예수님의 말씀을 거꾸로 시행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성전을 헐라고 명령했더니 도리어 한낱 벽돌 구조물을 끝까지 '성전'이라고 우기며

더 크게 더 호화스럽게 세우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하는 말이 더 가관입니다. "하나님께서 다 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이 헐라고 명하신 건물 성전을

다시 세우실 리가 없는 것이지요.


아무튼 어떤 목사님들은 벽돌 덩어리를 그리도 좋아하시지만,

오히려 예수님께서는 이 땅 위에 단 하나의 교회당 건물도 지으신 적이 없습니다.

단 하나의 단체도 만드신 적이 없습니다.

단 하나의 신학교도 세우신 적이 없습니다.

단 하나의 종교 사업도 하신 적이 없습니다.

단 한번도 주일 예배를 인도하신 적이 없습니다.

단 한번도 제사장 가운을 착용하신 적이 없습니다.

단 한번도 돈 받고 설교를 하신 적이 없습니다.

단 한번도 헌금채를 돌린 적이 없습니다.

단 한번도 나를 따르면 부자가 된다고 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단 한 권의 책도 쓰지 않으셨습니다.

그냥 그 분의 삶 자체가 진리이고 생명이었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제자들은 성경신학, 조직신학, 그리고 실천신학을 별로 몰랐어도

사역을 잘 감당했습니다.

비록 천대받던 세리와 못 배운 어부들이었지만 신학교 졸업장이 없었어도

온 세상에 흩어져서 죽기까지 충성을 했습니다.

 

새로운 멋진 신학이 더 필요한가

그러니 신학이 미흡하다며 너무 신학만 탓하지 말자는 이야기입니다.

개혁이 실패하고 있는 근본적 이유는 신학 탓이 아닙니다.

지난 이천 년 동안 주야장천 연구한 것이 신학인데 아직도 특별한 교리가

더 필요하고, 또한 아직도 새로운 멋진 신학이 더 필요한가요?

차라리 초대 사도들의 단순명료한 무공해 신학으로 돌아가야 옳지 않을까요.
   
더구나 "예수를 믿으면 무병장수하며 만사형통한다"고

거짓말을 하는 자들은 누구입니까.

성경은 오히려 부자는 천국에 가기 힘들다고 단언합니다.

십일조하고 부자로 사는 사람도 제법 있겠지만, 실상은 십일조를 아주 잘 해도

부자가 되지 못 하는 사람들이 그보다 훨씬 더 많습니다.

게다가 십일조를 전혀 안 해도

아주 건강하게 갑부로 사는 재벌들은 어찌 설명하시려는지요.

그래서 요즘 '십일조 왕국'의 귀족 목사들에게 정녕 묻고 싶습니다.

사도들이 평생 가난하게 고생하며 산 것도 모두 십일조를 못 해서인가요?


이는 단순히 교회당을 부수고,

조직을 없애고, 또는 교회 제도를 폐하자는 말이 아닙니다.

건물과 조직과 제도는 모두 필요하고 좋은 것들이지만,

그런 껍데기들을 이용하여 교권화하거나 거기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언제나 신앙의 본질을 잊지 말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교단이라는 조직에 가두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예배라는 예식에 가두고, 그리고 성령님의 역사를

전통이라는 제도에 가두는 어리석음을 타파하자는 뜻입니다.


성경의 진리를 교회당 건물 속에 가두고 세속적 부귀과 기득권을 누리던

중세 성직자들의 탐욕과 타락을 또 다시 반복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교황과 주교는 물론 말단 사제에 이르기까지 남몰래 처첩을 두고 부귀를 탐하던

그 위선적 교회사를 결단코 잊지 말자는 것입니다. 

기독교인이 되는 순간부터 인간의 제한된 이성에 의존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며 사는 것은 매우 귀한 일입니다.

그러나 교인이 되는 순간부터 우리와 똑같이 부족하고

연약한 인간에 불과한 목회자들의 일방적 설교에 너무 의존하여

상식의 끈을 놓는 것은 지극히 어리석은 일입니다.

 

중세 교회는 '범죄 집단'이었다

많은 개혁자들이 종교 개혁에 동참했던 이유는

단순히 중세 교회가 부패했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당시 교회가 더 이상 신앙의 공동체가 아니었고,

당시 교황이나 고위 성직자들이 더 이상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교황과 성직자들이 세상의 황제나 전혀 다를 바 없는

범죄 행위를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그것은 진정한 기독교가 아닌

그저 세속적 종교인들을 위한 '종교 공동체'였을 뿐입니다.

아니 '종교 집단'으로 간주하는 것조차 사치일 정도였습니다.

큰 건물에 십자가를 높히 세워 놓았다고 저절로 교회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상 중세 교회는 오히려 '범죄 집단'에 가까웠으니까요.


하여튼 자칭 성직자란 자가 틈만 나면 교회 돈을 주무르며 고급차를 타거나,

그의 부인이나 가족들이 교회가 준 돈으로 비싼 옷과 장식과 골프채를 자랑하며

재물로 사치하는 집단은 무조건 사이비입니다.

예수님의 제자인 목회자로서 이와 같이 기름진 처신은

가난한 사람들을 멸시하는 명백한 증거일 뿐입니다.

소위 이단과 사이비 목사들 중에 사실상 신도들을 앵벌이로 내몰며

교회를 대형화하고 부를 챙기지 않은 인간을 본 적이 없습니다.

처음엔 성령의 은사다 치유다 하며 난리를 피다가 나중에 보면 전부 다

거액의 교회 돈을 빼돌려 터무니 없는 '종교 귀족'들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젠 소위 정통이란 간판을 건 교회들마저

그런 사특한 길을 뒤따르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 무슨 종교 집단이든 예수님의 이름으로 사람들을 모아 놓고

시도 때도 없이 헌금통을 내미는 곳은 일단 무조건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진리를 돈 받고 팔지 말라

기독교는 이방 종교들처럼 기복이나 낙원을 팔아먹고 사는 약장사 종교가 아닙니다.

화려한 예배당에 신도들 가득 모아 놓고 이름다운 음악을 깔고,

순진한 교인들 동원하여 무대에 세우고, 애절한 목소리로 설교하고,

구복을 기도하고, 찬양으로 분위기 잡아 헌금채 열심히 돌리고,

기타 기도회다 부흥회다 하며 감성을 자극하는 이벤트 집회에 제 아무리 열을 내도

'신령과 진리'가 없는 예배는 그저 선무당의 푸닥거리요 울리는 꽹가리일 뿐입니다.


중세 교회가 화려한 건물이 부족했습니까. 수도원이 부족했습니까.

성직자가 부족했습니까. 재물이 부족했습니까. 권력이 부족했습니까.

아니면 신도 수가 부족했나요.

그들은 오직 한 가지만 빼고는 모두 다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진리를 빙자하며 긴옷을 입고

종교 장사에 분주한 무리들에게 주시는 주님의 답변은 명확합니다.

예수님은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마7:23)."고 단호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요즘 많은 교회들은 불법을 너무나 관대하게 용인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 정의'가 바람난 고멜의 허리끈보다도 더 느슨합니다.

심지어는 불법을 보호하고 편드는 무리들도 많습니다.

맹신화한 신도들은 설교 유창하고 교회 성장만 잘 시키면

성추행 목사도 좋고, 횡령 목사도 예쁘고, 표절 목사도 아멘이고,

그리고 세습 목사 정도는 아예 할렐루야입니다.

그러니 오늘날 예수님보다 돈과 권력을 더 사랑하는 교회들이

진정한 종교 개혁에 계속 실패하고 있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결과입니다.

심은 대로 거두고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성경은 가룟 유다처럼 진리를 배신하고

은으로 팔아먹는 자들에게 분명히 말합니다.

"진리를 사들이되 팔지는 말아라(잠23:23)."

 

신성남/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