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현석 기자 winwin@chosun.com
입력 : 2009.08.18 03:10
집앞 버려진 아기 입양해 키워준 70세 양어머니를 유산 안준다고 청부살해
챙긴 돈도 경마로 탕진
17일 오후, 갓난아기 때부터 자신을 키워준 양어머니를 청부살해한 혐의로
서울 서초경찰서에 붙잡혀온 이모(34·중고차 딜러)씨는 키 1m76㎝에
몸무게 110㎏의 거구였다.
그는 수갑을 차고도 주눅 들지 않았다.
이씨와 경찰에 따르면, 그는 1975년 갓난아기 때 유모(사망 당시 70세)씨 부부가
운영하는 경기도 하남시의 철물점 앞에 버려졌다.
아이가 없었던 유씨는 이씨를 입양해 키우기로 했다.
이씨는 "고등학교 때 자신이 '업둥이'인 걸 알았지만, 어머니가 철마다
보약을 해주며 나를 친자식처럼 키워주셔서 더 고맙게 생각했다"고 했다.
양어머니 유씨는 1989년 남편(71)과 합의이혼할 때도 이씨를 맡겠다고 나섰다.
학창시절 유도선수로 활약한 이씨는 서울시내 모 사립대에
체육특기생으로 입학했다가 학점 미달로 제적당했다.
양어머니는 이혼할 때 받은 합의금으로 아들의 사업 밑천을 대주고,
2001년 아들을 결혼시키면서 용인시에 9000여만원짜리 아파트를 사줬다.
이씨는 여러가지 사업을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경마에 빠진 탓이 컸다.
작년 3월, 이씨는 자신을 키워준 어머니를 살해하기로 마음 먹었다.
이씨는 "여러가지 사업에 차례로 실패해 1억원쯤 빚을 졌다"며
"어머니가 '3억원을 주겠다'고 하셔서 철석같이 믿고 있었는데
사회복지사들 꼬임에 빠져서 별안간 '재산 전액을 사회에 기부하겠다.
한 푼도 줄 수 없다'고 하시니 너무나 화가 났다"고 말했다.
이씨는 모 전과자 인터넷 카페에 '시키면 무슨 일이든 다 한다'는 글을 올린
박모(31·특수강도 등 전과3범)씨, 전모(25·강도 등 전과10범)씨와 접촉해
"유씨를 살해하면 1억3000만원을 주겠다"고 제안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작년 4월 유씨가 아침운동을 할 때 자동차 사고로 위장해
살해하려고 일주일 동안 유씨를 미행했으나 실패했다.
이들은 유씨가 장기간 당뇨병을 앓고 있었다는 점에 착안했다.
작년 5월2일 오전 4시쯤 박씨와 전씨가 경기도 성남시에 있는
유씨의 아파트에 이씨가 알려준 전자열쇠 비밀번호를 누르고 잠입해
비닐랩으로 유씨 얼굴 전체를 감싸 살해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이씨는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 용인시 자택에 있었다.
경찰에 따르면, 이씨는 당시 의사에게 "어머니가 평소 당뇨병을 앓고 있었다"고
증언했고, 의사는 이를 믿고 사인을 '당뇨병에 의한 혼수(昏睡)'라고 결론지었다.
이씨는 유산으로 아파트, 점포, 예금, 보험 등 약 20억원을 받았다.
이씨는 이 중 4억5000만원으로 경기도 광주시에 전원주택을 구입했다.
겉보기에는 7살, 5살 아들 형제를 키우는 평범한 가장이었다.
경찰은 사건 발생 1년3개월 만인 이달초 '유씨 사망 과정이 수상하다'는
첩보를 입수한 뒤 수사를 시작했다.
경찰 관계자는 "계좌추적 결과, 유씨가 사망한 직후 이씨 통장에 있던
뭉칫돈이 박씨에게 흘러간 것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지난 3월 특수강도 혐의로 경기도 모 교도소에 수감돼 있던
박씨를 추궁해 범행 일체를 자백 받은 뒤 지난 14일 오후 4시쯤 분당의
모 PC방에서 인터넷 경마를 하고 나오던 이씨를 붙잡았다.
이씨는 "처음 울컥하는 마음에 어머니를 살해하려고 마음 먹었지만,
교통사고로 위장하려고 어머니를 차로 미행할 때 '이래선 안되겠다' 싶어
청부 살인을 취소했다"며 "박씨가 마음대로 살인을 강행한 뒤
'살인 청부 정황이 담긴 녹취 테이프가 있다'고 협박해 돈을 받아갔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박씨는 경찰 조사에서
"이씨가 살인 청부를 철회하려 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씨는 유산 20억원 가운데 15억원을 불법 사설 경마로 탕진하는 등
수중에 남은 돈은 2억원 남짓인 것으로 알려졌다.
상속세 4억원도 아직 납부하지 않은 상태다.
경찰은 17일 이씨를 구속하고, 다른 사건의 강도 혐의로 수감 중인
박씨와 전씨에 대해 강도·살인 혐의를 추가해 입건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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