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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詩 같은 삶을 위하여
◈ 이단 자료실

신천지에 이렇게 대응하라

by 石右 尹明相 2010. 5. 15.

 

 

전민용 기자

‘신천지 증거장막성전’(이하 신천지)는 자신들의 교주를 예수

또는 하나님이라며 추앙하거나,
사회적으로 파장을 일으키며 ‘집단행동’을 통해서 이슈를 만들지 않습니다.
대신 이들은 ‘신학’이라는 미끼를 이용하거나 ‘성경의 비유 해석’이라는 방법을 통해서
표면적으로는 숨기고, 이면적으로 성도들의 영혼을 병들게 만듭니다.  
신천지가 가르치는 성경, 무엇이 잘못 됐나.

이들이 주장하는 성경의 교리는 그야말로 허무맹랑하기 짝이 없는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가장 두드러진 몇 가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신천지에서는 성경의 '비유'(parable)가 '비밀'(secret)이다(?).    
이들이 성경을 해석하는 첫 번째 키워드는 바로 ‘비유’입니다.
신천지에서 시몬교회의 박영준목사는 동영상강의로 잘 알려진 사람입니다.
주로 그가 성경을 쉽게 이해하도록 해석해 주고 있습니다. 그에 따르면
(마태복음 13장 10~11절)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어찌하여 저희에게 비유로말씀하시나이까. 11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저희에게는 아니 되었나니.." 에서

11절의 ‘너희’와 ‘저희’를 구별하는데,
천국의 비밀을 알도록 허락된 ‘너희’는 신천지에서 교육받는 사람들을 가리키며,
그 비밀이 허락되지 못한 ‘저희’는 기존교회의 목사들과 교인들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그러나 정작 그가 ‘비밀’이라고 했던 그 부분은 바로 뒤에 18절에서 예수님이 직접 해석을
해 주고 있습니다.
다시 말 해 예수는 그 ‘비유’를 ‘비밀’로 붙여서 숨겨놨다가, 2천년이 지난 후에
대한민국의 이만희에게 특별히 알려주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서 바로
비밀을 풀어 줬다는 것입니다.
또 마태복음 13장 전체를 읽어보면 누구나 쉽게 그 ‘비유’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씨’가 무엇을 뜻하는 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11절’의 ‘천국의 비밀’이라는 단어를 파고들며 마치 신천지에만
특별한 ‘비밀’의 열쇠를 준 것처럼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들은 거의 모든 성경을 이런 식으로 풀고 있습니다.
‘비유’는 ‘원문’으로 귀결되는 것이 이치입니다. 예를 들어 ‘인생은 가시밭이다.’ 라고
비유할 때 ‘가시밭’의 뜻은 ‘인생의 고달픔’을 말할 뿐 다른 의미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인생은 가시밭이다’ 라고 한 뒤에 “가시밭은 제거해야 한다,
따라서 빨리 죽는 게 상책이다”는 식으로 함정에 빠져버렸습니다. 

‘천국비밀’ 자신들만 깨달아? .. 삼층천 다녀온 사도바울은 왜 ‘침묵’했다.
한마디로 신천지는 예수의 ‘비유’를 ‘천국의 비밀’로 동일하게 이해하면서 동시에
자신들이야말로 ‘천국의 비밀’을 알도록 허락받은 몇 안 되는 ‘너희’에 속하게 된다는
논리입니다.
하지만 성령의 이끌림으로 삼층천에 다녀온 사도바울조차 하나님이 눈으로 보여주신
그 ‘천국의 비밀’을 입 밖에 내지 않고 죽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이들의 노림수가 무엇인지 눈에 보이는 것입니다. 

2. 성경을 ‘다빈치코드’로 착각하는 ‘신천지’
그런데 이들의 이런 해석에 대해서 신기하다거나 기가 막힌 해석이라는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지금까지 교회의 목사들 또한 이런 식의 엉터리 해석을 심심찮게 해 왔기 때문입니다.
곁길로 빠져나가는 각도가 조금 다를 뿐, 신천지에서 해석하는 것이나 기존 교회의 목사들이
성경을 해석하는 방향이 크게 다르지 않고, 교인들 또한 이런 식의 허무맹랑한 성경해석을
마치 ‘깊이 있는’ 해석인양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런 설교에 버릇이 된 목사들은 더 ‘신비로운’ 설교를 하고 싶은 유혹에 빠집니다.
즉 “이제는 내가 직접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를 받아서 어느 누구도 풀지 못한 비밀을
풀어 보리라” 는 욕심 말입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바로 ‘이만희’아닌가요.
마치 성경 글자 하나하나에 ‘암호’코드가 걸려 있는 듯 후벼 파서 전체적인 맥락과는 전혀
동떨어져버린 설교가 판을 치고 있는 상황이야말로 제2의 ‘신천지’가 탄생할 위험이
매우 높습니다.

이들이 이처럼 성경에 나오는 특정한 구절이나 단어에 집착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이만희 스스로가 성경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고, 그 아류들 또한 그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마치 글자 하나를 찾아내 그와 관련된 각종 예문을 달고, 그것을 깊이 있게 이해하고
비밀을 푼 것처럼 주장합니다. 
그러면서 점점 성경 전체가 말하려는 것과는 동 떨어져 갑니다.
안타깝게도 이런 습성은 한국교회의 전횡이기도 합니다. 지나치게 '단어'에 빠져서
그것을 해석하고 분해하는 것을 마치 '신령한 깊이의 말씀' 인 것 처럼 오해를 해 왔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어느 책 한 권도 제대로 처음부터 끝까지 이해하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야고보서를 읽으면서 야고보의 의도를 모르고, 누가복음을 읽고 있지만 누가의 참 의도는
모르고,  베드로의 편지를 읽으면서 편지의 전체 내용은 모르고 단어와 구절에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어느 날, 50년 동안 오직 ‘요한복음’만 연구하고 약 2백여권의 요한복음 강해서를 쓴
한 신학교수가 죽어 천국에서 요한을 만나 자기가 쓴 책을 전부 선물했더니,
요한이 반가워하며 모두 읽어보고는 "도대체 내가 언제 이런 말을 했더라?" 라며
고개를 갸우뚱 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습니다.
또 하나의 예로 구약의 가장 마지막 책인 ‘말라기’를 떠 올리면 흔히 ‘십일조 하라는
책’으로 이해합니다.
그러나 그 내용 전체를 보면 포로 귀환 이후의 교회가 메너리즘에 빠진 채
엉터리 재물을 바치고, 야훼의 성전을 더럽힌 데 대한 진노의 책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거기에서 유독 ‘십일조’ 만 빼서 강조하는 것은 대단히 잘못 된 신앙을
야기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마치 말라기가 십일조를 하라고 기록된 책인 것처럼 말입니다.

지금 신천지의 이만희가 스스로 계시를 깨달았다고 주장하는 거의 대부분의
성경해석들이 이런 식입니다.
거기에다 일부 학자들과 목사들, 그리고 신학을 했다는 사람들까지 가세하면서
자신들 나름대로 '교리'라는 것을 만들었고, 이를 토대로 마치 대단한 '비밀'이라도
깨달았다는 듯 기존 교인들을 설득하는 것입니다.

3. 성경을 체계적으로 안 가르치는 교회...신천지는 노린다.
이들이 접근하는 또 하나의 방식은 대부분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교회에서 이 말씀의 ‘진짜’ 뜻이 뭔지 배운 적 있나요?"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진짜 뜻? 그런 게 있나?” 라는 생각과 동시에 “이거 내가 지금까지 엉터리 교인노릇
한 거 아냐?” 라는 자괴감이 들 겁니다.
물론 이들은 절대로 자신들이 ‘신천지’소속이라고 밝히지 않습니다.
소위 각 지파에 소속된 ‘영험한 선교사’들을 만나보도록 유도할 뿐입니다.
그리고 미안한 말씀이지만 기존 교회들이 설교시간에 그 본문의 뜻과 배경을 설명할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별도의 시간을 내서 ‘성경공부’를 한다면 다들 먹고살기 바빠서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목사는 생각합니다. “그래 주일 설교만 잘 하면 됐지”..

그러나 한국 교회의 설교 패턴은 대부분 ‘본문 = 현실적용’일 뿐 정작 ‘성경본문’에 대해서
깊이 있는 나눔은 제외됩니다.
이런 현실을 누구보다 신천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최근 이들이 기존 교회 속으로 파고들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참 많은 교인들이
미혹을 받겠구나”라고 느낀 바 있습니다. 

결국 이들이 그런 교인들을 데리고 가는 곳은 바로 ‘무료성서신학원’입니다.
즉 신학 공부를 제대로 해 보자는 것입니다.
하지만 요즘은 이 이름이 알려지면서 여러 가지 다른 이름으로 바꿉니다.
'무료성경신학'이라는 이름 외에도 '시온기독교신학원', '평신도성경교육원'을 비롯해
최근에는 '대한예수교교역자선교협의회', '세계교역자연합선교회',
'세계복음화선교협의회' 등의 단체이름을 앞세워 기성교회 교인들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4. “나 신학 좀 했어”.. ‘신학’이라는 미끼 덥석 물지 마라.

우리나라 교인들은 왠지 '신학'이라는 말 앞에서 기가 죽는 경향이 있습니다.
오늘날 수 백 개의 무인가신학교가 난립하게 되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물론 신학을 공부하면서 좀 더 성경을 알기 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평신도'들과의 수준차이를 자랑하고 싶은 욕망으로
신학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좀 더 심하게 말하면 "난 너희들과 급수가 달라" 라는 자랑거리를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
오죽하면 “신학교 1학년은 부흥사”라는 말까지 유행을 할까요.
거기에다 가르치는 교수들 또한 수업을 하는 건지 설교를 하는 건지 구별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고, 신학교에서조차 '무조건 믿으라'는 말로 성경을 이해하는 논리적인
사고체계를 마치 믿음이 없는 듯 몰아가기 일쑤입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과정을 거친 사람들이 너무도 쉽게 '목사'안수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단'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거기서 나온 검증되지 않은 목사들이 양산되면서
교회 숫자는 늘어나지만 불신자들이나 세상과의 '소통'은 뒷전이 돼 버리고 맙니다.
신천지에 빠지는 많은 사람들은 바로 이런 유혹에 쉽게 넘어가는 경향을 보입니다.
대부분 '신학'을 하기에는 돈과 시간이 부족한 사람들이며, 이들에게 일주일에 한 번씩
참석하는 '무료성경신학'은 그야말로 매력적인 '미끼' 가 틀림없습니다. 
5. 사이비집단의 단골메뉴 ‘요한계시록’은 과연 ‘비밀의 책’인가? 
이단들이 보통 계시록을 들고 나오면 기존교회는 “쉿” 하며 언급을 회피합니다.
아니 아예 거부반응을 보입니다. 필자가 청년회시절 ‘다미선교회’가 ‘휴거’할 거라며
‘생쑈’를 벌였습니다.
그 때 모 교회 목사님께 진지하게 물었습니다.
“이들이 엉터리라면 우리는 요한계시록을 제대로 배워야 되지 않습니까.”라고 말입니다.
그 때 들었던 답변이 “요한계시록은 성경의 두껑이다. 창세기는 앞두껑, 계시록은 뒷두껑..
그러니 말세 때까지 비밀로 남겨놔야 된다..”
그래서 저는 그 후로 오랫동안 계시록 근처에는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왜 그 때는
(계시록 1장 3절)에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구절을 발견하지 못했을까요.
아마도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이단들이 바로 ‘요한계시록’을 근거로 자신들 집단의
정체성을 주장합니다.
‘신천지’ 뿐 아니라 전 세계의 대다수 사이비집단들이 그렇습니다.
문제는 기존 교회가 계시록에 거부반응을 일으킬수록 아무것도 모르는 교인들은 그야말로
사이비들의 ‘낚시’질에 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엉터리로 가르치는 것 보다는 안 가르치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적어도 앞서 소개한대로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 복이 있나니”라는 구절에 대해 적용이라고 해 봐야하지 않겠습니까.

이 또한 ‘계시록’에 무슨 ‘암호’가 곳곳에 널려있는 것처럼 겁을 집어먹은 탓이 아닐까요.
일단 내용을 자세히 읽어보면 줄거리가 파악될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요한에게 계시를 보여준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사실’은 반드시 ‘사건’이 있습니다.
만일 ‘사건’이 있다면 ‘상황의 전개’라는 형식을 띠게 됩니다.
따라서 요한계시록을 읽으면서 그 시대의 상황을 연상하고, 그림을 그려보면
충분히 하나님의 의도가 파악되리라고 봅니다.

6. 요한계시록은 ‘암호풀이를 해야 한다(?)’  

신천지의 핵심적인 주장은 계시록의 14만4천명에 대한 것입니다.
그들은 14만4천명의 숫자가 '신천지'에 들어온 사람에 국한된다고 주장합니다.
마치 지난 대선 때 출마했던 모 후보가 자신은 '공중부양'을 하고 '축지법'을 할 줄
안다고 주장했던 것과 마찬가지 수준이라고 보면 됩니다.
만일 이들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하나님이 '신천지'에 강림할 순서만 남았습니다. 
물론 이들은 성경에 등장하는 유대인 12지파 또한 자신들이 전국에 가지고 있는
12지역의 '프랜차이즈'라고 주장합니다.
뭐 이만희를 '보혜사'라고 하는 마당에 무슨 주장을 못하겠습니까만,
안타깝게도 이런 주장에 대해 수 만명의 사람들이 '아멘'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쯤 되면 천국에는 이만희를 위한 특별보좌가 마련돼 있을 법도 합니다.

그렇다면 계시록의 14만4천명의 진실은 무엇일까요.
여기에 대해 주먹구구식으로 접근을 했다가는 또 다른 이단이 등장할까봐 목사들이
쉽게 거론하지 않으려 합니다.
필자 또한 이 부분에 대해서는 철저히 성경의 내용만을 토대로 상황을 보겠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예수께서 사도 요한에게 보여준 것들이 또 다른 해석이 필요하거나
설명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다만 요한이 봤던 것들 가운데 '말'이나 '꼬리를 가진 짐승' 등의 묘사는 시간차에서 오는
설명이라고 봅니다.
즉 말세에 세계전쟁이 일어날 때를 보여주고 탱크와 미사일이 날아다니고, 큰 항공모함과
제트기가 날아다니는 모습을 요한이 봤다면, 그가 무슨 말로 그걸 설명했을까요.

따라서 요한은 자신이 본 '미래의 물건들'에 대해서는 그 당시 자신이 알고 있는
'과거의 물건들'로 밖에는 설명이 안 됩니다.
그래서 그런 부분들이 이해하기 어려울 따름이지, 불이타고, 사람이 죽고, 나팔을 불면서
나타나는 전쟁과 참상 등은 얼마든지 이해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요한계시록'이 무슨 '다빈치코드'인 것처럼 겁을 먹어서 이단들이 먼저 엉망으로
해석하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됩니다. 


7. ‘14만 4천명’이 한국인이라고?... 어떤 근거로 

분명한 것은 성경 전체를 통해 볼 때 하나님은 반드시 ‘인간이 상식적으로 판단해서’
이해할 수준으로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언자’들과 ‘대언자’ 또는 ‘선견자’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들의 입을 통해서 재해석해서 일반 백성들을 교육했습니다.
요한계시록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도 요한을 통해서 충분히 ‘알아듣기 쉬운’ 말로 가르쳤고,
보여주었으며 지시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요한이 기록한 부분들만 자세히 검토하면 됩니다.

계시록을 대할 때 14만4천명에 대해서 말이 많습니다.
어떤 이들은 ‘영적인 숫자’라는 둥 이상한 해석을 합니다만,
요한이 환상으로 보고 12지파의 각 1만2천명씩을 숫자로 파악한 것입니다.
거기에 무슨 ‘신묘막측’한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면 곁길로 빠지는 첫 걸음입니다.
여기서 14만4천명이 무슨 ‘대단하고 오묘한’ 숫자라고 한다면 다른 성경의 모든 숫자는
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계시록은 특별한 책”이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단지 지금 이루어지지 않았을 뿐 다른 책들과 마찬가지로 계시록 또한 아주 평이한
책임에 틀림없습니다. 조만간 그 예언의 말씀이 완성될 뿐입니다.

그렇다면, 이 14만4천명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본문을 보시면 7장과 14장에 두 차례 등장합니다.
7장에는 이들의 이마에 ‘인’을 치는 장면이 나오고, 14장에는 ‘이미’ 인을 맞은 상태의
14만4천명이 다시 등장합니다.
따라서 추측하면 요한은 7장에서 본 14만4천명을 14장에서
다시 언급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계시록 7장 2~4절) “또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받은 네 천사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들을 해하지 말라 하더라.  내가 인침을 받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침을 받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계14장1절)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사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


8. 유대인 14만4천명을 구별하는 하나님, 한국인은 질투난다 (?)
14만4천명에 대한 오해가 발생하는 이유는 마치 14만4천명이라는 숫자 속에 우리 한국인,
특히 ‘나’ 자신이 들어가야 된다는 강박관념 때문입니다.
그러나 순수하게 계시록 7장의 본문만으로 살펴보면 천사가 이마에 인을 치는 사람들
14만4천명 그 속에 ‘한국기독교인’은 없습니다.

억지로 ‘한국인’을 포함시키려고 하다 보니 “그 숫자는 영적인 숫자”라는 해괴한
‘암호풀이’를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거기에다 또 등장하는 수많은 숫자와 짐승, 그리고 온갖 진노의 현상들까지...
사실 계시록이 가장 이해하기 어려웠던 사람은 바로 ‘사도요한’ 이었습니다.
그는 무려 2천년 이후의 현상들을 보면서 “도대체 저게 뭐야?” 라는 질문을
수도 없이 했을 것입니다.
마치 ‘BMW를 본 이순신장군’같은 느낌 아니었을까요?
인류의 종말에 등장하는 온갖 핵무기와 전투기, 탱크, 무너지는 빌딩들을 보지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고 생전 처음 보는 것들뿐입니다.

그래서 요한은 묘사하기를
“또 전갈과 같은 꼬리와 쏘는 살이 있어 그 꼬리에는 다섯 달 동안

사람들을 해하는 권세가 있더라”(계9:10) 
그러면 우리는 생각합니다.
“광화문 네거리에 전갈이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괴롭힌다고?..ㅋㅋ 역시 계시록은 신화야”
9. ‘14만4천명’ 핵심, ‘한 번 택한 민족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
이것입니다. 죄악을 이기고 끝까지 믿음을 지켜 낸 유대인 14만4천명은
하나님의 영원한 약속의 실천입니다.
태초에 선택하신 한 민족, ‘이스라엘’.. 그들은 비록 하나님을 배신하고 우상을 숭배하며,
악한 길에서 돌이키지 않았고, 결국 독생자까지 십자가에서 죽였지만, 선하신 하나님은
자신이 ‘이스라엘’과 했던 약속을 끝까지 지켜내고야 말 것입니다.
그래서 각 지파별로 정확하게 1만2천명씩을 뽑아 구원의 첫 열매로 만국 앞에서
자랑거리로 만들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계14:4~5)


물론 이들 14만4천명 외에도 더 있습니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서 있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이르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하더라”(계 7:9~12)

아마도 9절의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들 속에 한국인도 포함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구약이든 신약이든, 하나님의 구원의 첫 열매는 반드시
‘이스라엘’에 해당된다는 점입니다.

너무 ‘한국인 중심적인 성경해석’에 빠져서 거기에 다른 해석을 붙이거나 빼는 행위 또한
옳지 못합니다.
(계시록 22장 18절)에는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고 경고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0. “교인이 성경을 많이 알도록 하지 말라”(?)
필자가 실제로 들었던 이야기를 하나 더 해 보겠습니다.
약 10년 전에 모 교단의 강도사훈련에 참가한 바 있습니다.
교단의 강도사 고시에 합격한 사람들을 모아 기도원을 빌려 2박3일의 영성수련회를
하는 자리였습니다.
물론 교단의 총회장을 비롯해 꽤 잘나가는(?) 선배 목사들의 설교가 진행됩니다.
그 자리에서 교단 총무 정도의 직함을 가졌고, 당시 부흥강사로 인기를 끌었던 한 목사는
후배들에게 자신의 목회 노하우를 자랑하며 한 가지를 당부를 했습니다.

"교인들을 훈련시킬 때는 절대로 성경을 많이 알게 하면 안 돼, 나중에는 꼭 그런 것들이
설교가 어떻고 하면서 기어올라" 기가막인 이야기는 그 다음이었습니다.
"목사가 자기들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는 느낌을 줘야 순종을 하게 돼 있어 !" ..." 아멘 !"
물론 10년 전이었으니 지금은 달라졌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 글을 읽는 많은 신학생들과 목회자들은 한 번 쯤 들어본 이야기일 것입니다.
 한국교회가 이런 수준에 머물러 있는 동안 온갖 이단들과 사이비들은 교회를 좀먹고 있고,
또 자정능력을 잃어버린 교회는 스스로 침체의 나락에 빠져 버린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입니다.

11. 목사여, 교인들이 성경을 많이 알도록 ‘제발’ 가르치라.문제를 발견하면 해답도 발견됩니다.
또한 성경을 전체적으로 보는 눈을 기르거나 성경의 진리에 박식하면,
신천지의 가르침이 무엇이 잘못 된 것인지를 분별하게 됩니다.
사람은 어떤 한 쪽의 '이념'에 물들면 그 반대편은 '적군'으로 보입니다.
신천지 또한 마찬가지 입니다.
이들은 지금 성경에 등장하는 모든 '의인'들은 자신들이라고 믿습니다.
그 반대로 성경에 등장하는 모든 '악인'들과 '배도자'들은 기존 교회라고 굳게 믿습니다.
이런 믿음이 변하게 될 가능성이 많지는 않습니다. 설령 그들의 가르침에 반대하고
벗어나려고 해도 그들은 쉽게 빠져나가도록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신천지에서 탈출했다는 박 모씨는 지난 2006년 10월 15일 안산의 모 교회에서
간증을 하면서 "탈출하려는 자신과 가족들에게 신천지 사람들이 폭력을 행사 했다" 며
"그들은 기존 교회에서 자기를 감금하고 폭행했다며 신천지 교인들에게
거짓말을 했다"고 밝혔습니다.
이처럼 이단의 함정은 빠지기는 쉬우나 벗어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다행히도 많은 이단연구단체를 비롯해 이단 상담사들이 지금도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기존 교회에서는 이단이라는 말조차 꺼내기를 싫어하거나, 성경을 깊이 있고
전체적으로 가르치지 못한 채 기초적인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단은 결코 이단 스스로 발생하지 않습니다.
구더기가 생기는 것은 그런 환경이 조성되기 때문인 것처럼, 이단도 생성하게 되는
계기와 환경이 있습니다.
지금처럼 교회가 '성경'에 대해 무지하거나, 오로지 '은혜'를 '감정적인 희열' 정도로만
이해하고, 설교의 분석이나 성경통독, 그리고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성경접근을 외면하게
된다면, 신천지와 유사한 이단들은 더욱 활개를 치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지금부터라도 경계를 늦추어서는 안 됩니다.

12. 신천지에 던지는 질문 하나.끝으로 이 글을 읽는 신천지 관계자가 있다면 질문을 한 가지 드리겠습니다.
필자가 알기로는 신천지에서는 다른 성경번역본 보다 '개역성경'만을 고집할 만큼
한 글자도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것이 없다며 강조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아래의 두 구절들은 하나님의 말씀일까요 아닐까요.
(고전 7:25) 개역성경 : 처녀에 대하여는 내가 주께 받은 계명(Lord said) 이 없으되

주의 자비하심을 받아서 충성된 자가 되어 의견을 고하노니.. (고후 11:17)

개역성경 : 내가 말하는 것은 주를 따라 하는 말이 아니요 

오직 어리석은 자와 같이 기탄없이 자랑하노라. 위 두 구절을 보면,
대 사도바울이 하나님의 '계명도 받지 않고' 거기에다 '주를 따라 하는 말도
아니'라며 자기 자랑을 늘어놓는데 성경 66권에는 포함 돼 있으니...무엇이 오류일까요.
바울이 잘못일까요 아니면 성경 편집자가 잘못일까요.
아니면 이 두 책은 성경(bible)이 그냥 일반 책(book)에 불과한 것일까요.
그것도 아니면 또 어떤 ‘비밀’이 숨어 있는 것일까요...
신천지는 모든 계시에 능통하다니 이 정도 문제는 간단하지 않을지 싶습니다만..

13. 왜 교인들은 '환상' 에 '환장' 하는가 ...사족(蛇足)이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계시와 환상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신비로운 체험으로 여기는 경향이 많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통해서 얼마든지 하나님의 의도와 예수그리스도를 알아가는 데
부족함이 없는 시대에, 성경을 외면한 채 신기한 현상만을 쫓아가는 것은
매우 위험한 신앙이 아닐 수 없습니다.

특히 많은 경우에 “내 영력은 이정도야” 라는 ‘과시형’,
또는 “나는 직통계시를 받는 몸이니까 나를 건드리지 마”라는 ‘협박형’,
또 극히 드문 경우에는 “당신의 미래를 봤다”는 ‘무당형’ 등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자기 마음대로 해석하려는 탐욕이 깔려 있는 인간의 마음에
어떻게 성령이 거하겠습니까.
사도바울은 삼층천을 경험하고 와서 거기서 본 어떤 내용도 함부로 발설하지 않았습니다.
진정한 계시는 바로 그런 태도로 지켜져야 하는 것입니다.
끝으로, 앞서 소개한 요한계시록에 대한 필자의 견해는 철저히 성경 본문의
앞뒤 문맥만을 통한 해석이자 개인적인 견해임을 밝혀두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