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 잊었다… 요즘 젊은이들 '빵점'
“어버이날이요? 잊고 산 지 오래됐어요. 자식들이 어렸을 때에만 카네이션을 받아 봤지
지금은 얼굴 보기도 어려워요.”
어버이날인 5월 8일을 사흘 앞둔 5일 오후 화창한 봄 날씨에 서울의 주요 공원과 쉼터,
복지관 등에서 만난 60~70대 노인들은 ’어버이날’은 자신과 전혀 관계없는 단순한
휴일이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오히려 최장 6일의 긴 연휴를 즐기려는 자녀에게 방해되지 않으려고 주말에 일부러
친구들 모임에 가거나 혼자 공원 등에서 산책하겠다는 노인들이 꽤 많았다.
서울 중구 장충동 공원에서 만난 김모(60.여)씨는 “아들이 어렸을 때 빼고는
카네이션을 받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며 “자식들이 주말 여행을 가려는 것 같은데
같이 살아서 그런지 별로 서운하지는 않다”고 애써 웃음을 보였다.
김씨는 “이번 주 토요일에 동창 모임이 있다고 해서 대전에 내려갔다가 올라올
예정”이라고 전했다.
어버이날에도 이 공원에서 시간을 보낼 것 같다는 이모(64)씨는 자녀에 대한
아쉬움을 털어놨다.
이름 밝히기를 꺼린 그는 “자식들이 이번 주말에 온다고는 했는데 실제 올지
안 올지 모르겠다”며 “오늘은 날씨도 좋고 해서 친구들과 막걸리 한잔하러 나왔다.
적적할 때 일주일에 3∼4번씩 공원에 나온다”고 했다.
서로 잘 아는 사이가 아니더라도 장충동 공원은 혼자 오게 되면 비슷한 처지인
사람끼리 어색하지 않게 대화를 주고받으며 시간을 보낼 수 있다고 이씨는 말했다.
서울 신당동에 산다는 김모(64)씨는 “주말에 자식들이 식사를 같이 하자는데
그냥 귀찮아서 친구들 모임에 나가려고 생각 중”이라고 전했다.
그는 “자식들이 함께 나들이를 하자고 했지만 나까지 합류하면 더 복잡해지고 해서
그냥 혼자 좀 쉬겠다고 했다”고 덧붙였다.
’어버이날’이 오히려 자녀를 성가시게 할까 부담스럽다는 얘기가 많았다.
서울 효창공원에서 친구들과 떡을 나눠 먹던 박모(72.여)씨는 “어버이날은
어린이들이 있는 가정에서나 의미가 있는 날이지 나 자신은 잊고 산지 오래됐다”며
“경기도에 있는 아들 한 명과 연락을 거의 못 하고 지낸다”고 했다.
벤치에서 김치와 깍두기를 안주 삼아 친구 3명과 함께 소주를 나눠 마시던
김모(68)씨는 “같이 늙어가는 술친구가 더 좋다”며 “아들 세 명 모두 성격이
무뚝뚝해 무슨 일이 있을 때나 전화하지 평소엔 연락을 잘 안 한다”고 서운해했다.
강아지 두 마리를 데리고 혼자 산책을 나온 오모(76)씨는 “딸 세 명에게서 가끔
연락이 오지만 직접 본 것은 작년 여름쯤 되는 것 같다”며 “딸들이 반찬가게 등
다 일을 하고 있고 바빠서 얼굴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강아지들이 딸 노릇을 한다”며 한동안 강아지를 쓰다듬더니 “내 생일인
3월에도 연락이 잘 안 됐다. 어버이날에도 자식들이 바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연락이 없어도 괜찮다”고 했다.
한쪽 다리가 불편한 정모(68.여)씨는 “강원도에 사는 아들 내외가 용돈을 보내
주지만 얼굴 못 본 지 삼 년이 지났고 농사짓는 딸은 명절 때도 보기 어려울 정도”라며
“빨리 몸이 나아져 예전처럼 자식들과 손자들 보러 다니고 싶다”고 말했다.
서울 구로구의 한 복지기관 인근 공원에서 장기나 바둑을 두거나 이를 지켜보던
50대∼70대 노인 10여 명은 ’어버이날’엔 다들 비슷한 처지에 있다고 말했다.
정모(59)씨는 “혼자 살기 때문에 어버이날이라고 특별한 일이 없다.
올해 어버이날에도 여기에 와서 장기나 바둑을 두고 놀 것”이라며
“딸들이 가장 보고 싶은데 최근 7∼8년간 못 본 것 같다”고 했다.
서울 송파구의 한 요양원에서 생활하는 신모(80)씨는 “요즘 사람들,
특히 배운 사람일수록 부모 봉양을 잘 안 하려고 한다”며 “요즘 사람들이
부모에 대하는 태도는 아주 ‘빵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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