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월 (김정식) (평북 구성)
생애 : 1902년 8월 6일 ~ 1934년 12월 24일
데뷔 : 창조지에 '그리워' 발표 (1920년)
1925년 서정시 '진달래꽃' 발표
김소월 시 모음
▒ 진달래꽃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 초 혼
산산히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심중에 남아 있는 말 한 마디는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붉은 해는 서산 마루에 걸리었다
사슴의 무리도 슬피 운다
떨어져 나가 않은 산 위에서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비껴가지만
하늘과 당 사잉가 너무 넓구나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 먼 후일
먼 훗날 당신이 찾으시면
그때에 내 말이 잊었노라
당신이 속으로 나무라면
무척 그리다가 잊었노라
그래도 당신이 나무라면
믿기지 않아서 잊었노라
오늘도 어제도 아니 잊고
먼 훗날 그때에 잊었노라
▒ 못잊어 ▒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대로 한세상 지내시구려
사노라면 잊힐 날 있으리다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대로 세월만 가라시구려
못 잊어도 더러는 잊히오리다
그러나 또 한끝 이렇지요
그리워 살틀히 못 잊는데
어쩌면 생각이 떠지나요
▒ 부모(父母) ▒
낙엽(落葉)이
우수수 떠러질 때
겨울의 기나긴 밤
어머님하고 둘이 앉아
옛이야기 들어라
나는 어쩌면 생겨나와
이 이야기 듣는가
묻지도 말아라 내일(來日)날에
내가 부모(父母) 되어서 알아보랴
▒ 부부(夫婦) ▒
오오 안해여
나의 사랑
하늘이 묶어준 짝이라고
믿고 살음이 마땅치 아니한가
아직 다시 그러랴 안 그러랴
이상하고 별나운 사람의 맘
저 몰라라 참인지 거짓인지
정분(情分)으로 얽은
딴 두 몸이라면
서로 어그점인들 또 있으랴
한평생(限平生)이라도
반백년(半百年)못 사는
이 인생(人生)에
연분(緣分)의 긴 실이 그 무엇이랴
나는 말하려노라 아무려나
죽어서도 한 곳에 묻히더라...!!
▒ 산유화(山有花) ▒
산(山)에는 꽃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산(山)에
산(山)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산(山)에서 우는 적은 새요
꽃이 좋아
산(山)에서사노라네
산(山)에는 꽃 지네
꽃이 지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지네
▒ 엄마야 누나야 ▒
엄마야 누나야 강변(江邊)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金)모래빛
뒷문(門)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江邊) 살자
▒ 금잔디 ▒
잔디 잔디 금잔디
심심 산천에 붙은 불은
가신 임 무덤 가에 금잔디
봄이 왓네
봄빛이 왔네
버드나무 끝에도 실가지에
봄빛이 왔네 봄날이 왔네
심신 산천에도 금잔디에
▒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 ▒
외눈박이 물고기처럼 살고싶다.
외눈박이 물고기처럼 사랑하고 싶다.
두 눈박이 물고기 처럼 세상을 살기위해
평생을 두 마리가 함깨 붙어다녔다는
외눈박이 물고기 비목처럼 사랑하고 싶다.
우리에게 시간은 충분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만큼 사랑하지 않았을뿐
외눈박이 물고기처럼 그렇게 살고싶다.
혼자 있으면
그 혼자 있음이 금방 들켜 버리는
외눈박이 물고기
비목처럼 목숨을 다해 사랑하고 싶다.
▒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
봄 가을 없이
밤마다 돋는 달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이렇게 사무치게
그리울 줄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달이 암만 밝아도
쳐다볼 줄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이제금 저 달이
설움인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 가는 길 ▒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그냥 갈까
그래도
다시 더 한번......
저 산에도 까마귀, 들에 까마귀,
서산에는 해 진다고
지저귑니다.
앞 강물, 뒷 강물,
흐르는 물은
어서 따라 오라고 따라 가자고
흘러도 연달아 흐릅디다려.
▒ 님의 노래 ▒
그리운 우리 님의 맑은 노래는
언제나 제 가슴에 젖어 있어요
긴 날을 문 밖에서 서서 들어도
그리운 우리 님의 고운 노래는
해지고 저무도록 귀에 들려요
밤들고 잠들도록 귀에 들려요
고이도 흔들리는 노랫가락에
내 잠은 그만이나 깊이 들어요
고적한 잠자리에 홀로 누워도
내 잠은 포스근히 깊이 들어요
그러나 자다 깨면 님의 노래는
하나도 남김없이 잃어버려요
들으면 듣는 대로 님의 노래는
하나도 남김없이 잊고 말아요.
▒ 옛 이야기 ▒
고요하고 어두운 밤이 오며는
어스레한 등불에 밤이 오며는
외로움에 아픔에 다만 혼자서
하염없는 눈물에 저는 웁니다.
제 한 몸도 예전엔 눈물 모르고
조그마한 세상을 보냈읍니다.
그때는 지난날의 옛 이야기도
아무 설움 모르고 외었읍니다.
그런데 우리 님이 가신 뒤에는
아주 저를 버리고 가신 뒤에는
전날에 제게 있던 모든 것들이
가지가지 없어지고 말았읍니다.
그러나 그 한때에 외어 두었던
옛 이야기뿐 만은 남았읍니다.
나날이 짙어가는 옛 이야기는
부질없이 제 몸을 울려 줍니다.
▒ 왕십리
비가 온다
오누나
오는 비는
올지라도 한 닷새 왔으면 좋지.
여드레 스무날엔
온다고 하고
초하루 삭망(朔望)이면 간다고 했지.
가도 가도 왕십리 비가 오네.
웬걸, 저 새야
울랴거든
왕십리 건너 가서 울어나 다고,
비맞아 나른해서 벌새가 운다.
천안에 삼거리 실버들도
촉촉히 젖어서 늘어졌다네.
비가 와도 한 닷새 왔으면 좋지.
구름도 산마루에 걸려서 운다.
▒ 가막 덤불
산에 가시나무
가막덤불은
덤뿔 덤불 산마루로
벋어 올랐소
산에는 가려 해도
가지 못하고
바로 말로
집도 있는 내 몸이라오
길에는 혼잣몸의
홑옷 자락은
하룻밤 눈물에는
젖기도 했소
산에는 가시나무
가막덤불은
덤불덤불 산마루로
벋어 올랐소.
▒ 가을 저녁에
물은 희고 길구나, 하늘보다도.
구름은 붉구나, 해보다도
서럽다, 높아 가는 긴 들 끝에
나는 떠돌며 울며 생각한다, 그대를
그늘 깊어 오르는 발 앞으로
끝없이 나아 가는 길은 앞으로.
키 높은 나무 아래로, 물마을은
성깃한 가지가지 새로 떠오른다.
그 누가 온다고 한 언약도 없건마는!
기다려 볼 사람도 없건마는!
나는 오히려 못물가를 싸고 떠돈다.
그 못물로 놀이 잦을 때.
▒ 개여울
당신은 무슨 일로
그리합니까?
홀로이 개여울에 주저앉아서
파릇한 풀 포기가
돋아 나오고
잔물은 봄바람에 해적일 때에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시던
그러한 약속이 있었겠지요
날마다 개여울에
나와 앉아서
하염없이 무엇을 생각합니다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심은
굳이 잊지 말라는 부탁인지요
▒ 고적한 날
당신님의 편지를
받은 그 날로
서러운 풍설이 돌았습니다
물에 던져달라고 하신 그 뜻은
언제나 꿈꾸며 생각하라는
그 말씀인 줄 압니다
흘려 쓰신 글씨나마
언문 글자로
눈물이라고 적어 보내셨지요.
물에 던져달라고 하신 그 뜻은
뜨거운 눈물 방울방울 흘리며,
마음 곱게 읽어달라는 말씀이지요.
▒ 금잔디
잔디
잔디
금잔디
심심(深深) 산천에 붙는 불은
가신 님 무덤가에 금잔디.
봄이 왔네, 봄빛이 왔네.
버드나무 끝에도 실가지에.
봄빛이 왔네, 봄날이 왔네.
심심산천에도 금잔디에
▒ 길
어제도 하루 밤
나그네 집에
가마귀 가왁가왁 울며 새었소.
오늘은
또 몇 십 리
어디로 갈까.
산으로 올라갈까
들로 갈까
오라는 곳이 없어 나는 못 가오.
말 마소, 내 집도
정주 곽산
차 가고 배가는 곳이라오.
여보소, 공중에
저 기러기
공중엔 길 있어서 잘 가는가?
여보소, 공중에
저 기러기
열십자 복판에 내가 섰소.
갈래갈래 갈린 길
길이라도
내게 바이 갈 길은 하나 없소.
▒ 나는 세상모르고 살았노라
'가고 오지 못한다' 하는 말을
철없던 내 귀로 들었노라.
만수산(萬壽山)을 올라서서
옛날에 갈라선 그 내님도
오늘날 뵈올 수 있었으면
나는 세상모르고 살았노라,
고락에 겨운 입술로는
같은 말도 조금 더 영리하게
말하게도 지금은 되었건만.
오히려 세상모르고 살았으면!
'돌아서면 무심타'고 하는 말이
그 무슨 뜻인 줄을 알았으랴.
제석산 붙는 불은 옛날에 갈라선 그 내님의
무덤엣 풀이라도 태웠으면!
▒ 님에게
한때는 많은 날을 당신 생각에
밤까지 새운 일도 없지 않지만
아직도 때마다는 당신 생각에
축업은 베갯가의 꿈은 있지만
낯모를 딴 세상의 네길거리에
애달피 날 저무는 갓 스물이요
캄캄한 어두운 밤들에 헤메도
당신은 잊어버린 설움이외다
당신을 생각하면 지금이라도
비 오는 모래밭에 오는 눈물의
축업은 베갯가의 꿈은 있지만
당신은 잊어버린 설움이외다
▒ 님의 노래
그리운 우리 님의 맑은 노래는
언제나 제 가슴에 젖어 있어요
긴 날을 문 밖에서 서서 들어도
그리운 우리 님의 고운 노래는
해 지고 저물도록 귀에 들려요
고이도 흔들리는 노래 가락에
내 잠은 그만이나 깊이 들어요
그러나 자다 깨면 님의 노래는
하나도 남김없이 잃어버려요.
들으면 듣는 대로 님의 노래는
하나도 남김없이 잊고 말아요
▒ 동경하는 여인
너의 붉고 부드러운
그 입술에 보다
너의 아름답고 깨끗한
그 혼에다
나는 뜨거운 키스를.
내 생명의 굳센 운율은
너의 조그마한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움직인다.
▒ 등불과 마주 앉았으려면
적적히
다만 밝은 등불과 마주앉았으려면
아무 생각도 없이 그저 울고만 싶습니다,
왜 그런지야 알 사람이 없겠습니다마는,
어두운 밤에 홀로이 누웠으려면
아무 생각도 없이 그저 울고만 싶습니다.
왜 그런지야 알 사람도 없겠습니다마는,
탓을 하자면 무엇이라 말할 수는 있겠습니까마는.
▒ 바람과 봄
봄에 부는 바람 바람 부는 봄
작은 가지 흔들리는 부는 봄바람
내 가슴 흔들리는 바람 부는 봄
봄이라 바람이라 이 내 몸에는
꽃이라 술盞이라 하며 우노라.
▒ 부모 어머니
낙엽이 우수수 떨어질 때
겨울의 기나긴 밤.
어머님하고 둘이 앉아
옛이야기 들어라.
나는 어쩌면 생겨나와
이 이야기 듣는가?
묻지도 말아 내일 날에
내가 부모 되어서 알보랴?
▒ 산
산새도 오리나무
위에서 운다
산새는 왜 우노 시메 산골
영 넘어 갈려고 그래서 울지
눈은 내리네 와서 덮이네
오늘도 하룻길은
칠팔십 리
돌아서서 육십 리는 가기도 했소
불귀(不歸) 불귀 다시 불귀
삼수갑산에 다시 불귀
사나이 속이라 잊으련만
십오 년 정분을 못잊겠네
산에는 오는 눈, 들에는 녹는 눈
산새도 오리나무
위에서 운다
삼수갑산 가는 길은 고개의 길
▒ 엄숙
나는 혼자 뫼 위에 올랐어라.
솟아 퍼지는 아침 햇빛에
풀잎도 번쩍이며
바람은 속삭여라.
그러나
아아 내 몸의 상처받은 맘이여.
맘은 오히려 저리고 아픔에 고요히 떨려라.
또 다시금 나는 이 한때에
사람에게 있는 엄숙을
모두 느끼면서
▒ 접동새
접동
접동
아우래비 접동
진두강 가람가에 살던 누나는
진두강 앞마을에 와서 웁니다.
옛날 우리나라
먼 뒤쪽의
진두강 가람가에 살던 누나는
의붓어미 시샘에 죽었습니다.
누나라고 불러 보랴
오오 불설워
시샘에 몸이 죽은 우리나라는
죽어서 접동새가 되었습니다.
아홉이나 남아 되는 오랍 동생을
죽어서도 못 잊어 차마 못 잊어
야삼경 남 다 자는 밤이 깊으면
이산 저 산 옮아가며 슬피 웁니다.
▒ 팔베개 노래
첫날에 길동무
만나기 쉬운가
가다가 만나서
길동무되지요.
날 긇다 말아라
가장님만 님이랴
오다가다 만나도
정붙이면 님이지.
화문석(花紋席) 돗자리
놋촉대 그늘엔
칠십년 고락을
다짐 둔 팔베개.
드나는 곁방의
미닫이 소리라
우리는 하룻밤
빌어 얻은 팔베개.
조선의 강산아
네가 그리 좁더냐
삼천리서도(西道)를
끝까지 왔노라.
삼천리 서도를
내가 여기 왜 왔나
남포(南浦)의 사공님
날 실어다 주었소.
집 뒷산 솔밭에
버섯 따던 동무야
어느 뉘 집 가문에
시집가서 사느냐.
영남의 진주(晋州)는
자라난 내 고향
부모 없는
고향이라우.
오늘은 하룻밤
단잠의 팔베개
내일은 상사(相思)의
거문고 베개라.
첫닭아 꼬끼요
목놓지 말아라
품속에 있던 님
길채비 차릴라.
두루두루 살펴도
금강 단발령 (金剛 斷髮嶺)
고갯길도 없는 몸
나는 어찌 하라우.
영남의 진주는
자라난 내 고향
돌아갈 고향은
우리 님의 팔베개.
▒ 풀 따기
우리 집 뒷산에는 풀이 푸르고
숲 사이의 시냇물, 모래바닥은
파아란 풀 그림자, 떠서 흘러요.
그리운 우리 님은 어디 계신고.
날마다 피어나는 우리 님 생각.
날마다 뒷산에 홀로 앉아서
날마다 풀울 따서 물에 던져요.
흘러가는 시내의 물에 흘러서
내어 던진 풀잎은 옅게 떠갈 제
물살이 해적해적 품을 헤쳐요.
그리운 우리 님은 어디 계신고.
가엾는 이내 속을 둘 곳 없어서
날마다 풀을 따서 물에 던지고
흘러가는 잎이나 맘해 보아요.
▒ 하다못해 죽어 달려가 올라
아주 나는 바랄 것 더 없노라
빛이랴 허공이랴,
소리만 남은 내 노래를
바람에나 띄워서 보낼밖에.
하다못해 죽어 달려가 올라
좀 더 높은 데서나 보았으면!
한세상 다 살아도
살은 뒤 없을 것을,
내가 다 아노라 지금까지
살아서 이만큼 자랐으니.
예전에 지나 본 모든 일을
살았다고 이를 수 있을진댄!
물가의 닳아져 널린 굴꺼풀에
붉은 가시덤불 뻗어 늙고
어득어득 저문 날을
비바람에 울지는 돌무더기
하다못해 죽어 달려가 올라
밤의 고요한 때라도 지켰으면
▒ 해가 산마루에 저물어도
해가 산마루에 저물어도
내게 두고는 당신 때문에 저뭅니다.
해가 산마루에 올라와도
내게 두고는 당신 때문에 밝은 아침이라고 할 것입니다.
땅이 꺼져도 하늘이 무너져도
내게 두고는 끝까지 모두다 당신 때문에 있습니다.
다시는, 나의 이러한 맘뿐은, 때가 되면,
그림자 같이 당신한테로 가오리다.
오오, 나의 애인이었던 당신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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