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즈라 파운드(Ezra Pound) 미국, 1885년~1972년.
20세기 초 모더니즘 시의 선구자 중 한사람.
1969년 《파운드 칸토스 선집》 펴냄, 〈칸토스 CX-CXVII〉 발표.
1972년 11월, 베네치아에서 숨을 거둠.
에즈라 파운드(Ezra Pound) 시 모음
◈ 부도덕성(An immorality)
사랑과 한가함을 노래하라,
Sing we for love and idleness,
다른 어떤 것도 가질 만한 가치 없으니.
Naught else is worth the having.
많은 나라에서 살아보았지만,
Though I have been in many a land,
삶이 별 것 아니네.
There is naught else in living.
난 차라리 인생의 달콤함을 가지리라,
And I would rather have my sweet,
장미 꽃잎이 슬픔으로 죽는다 해도,
Though rose-leaves die of grieving,
헝가리에서 숭고한 사명을 수행하기 보다는
Than do high deeds in Hungary
그 누구도 믿기 어려운.
To pass all men's believing.
◈ 장안(The city of Choan)
봉황대 위에 봉황들이 놀고 있네.
The phoenix are at play on their terrace.
봉황들은 가 버리고, 장강만 홀로 남았네.
The phoenix are gone, the river Hows on alone.
꽃과 풀은
Flowers and grass
오나라 궁궐이 있던
Cover over the dark path
어두운 길을 덮었네
where lay the dynastic house of the Go.
진나라의 화려한 옷과 투구들은
The bright cloths and bright caps of Shin
이제 오래된 언덕 바닥에 깊이 묻혔네.
Are now the base of old hills.
삼산은 저 먼 하늘 너머 떨어졌고,
The Three Mountains fall through the far heaven,
백로주 섬은
The isle of White Heron
두 강을 나누고 있네
splits the two streams apart.
높이 뜬구름들이 지금 해를 가려
Now the high clouds cover the sun
멀리 떨어진 장안을 볼 수 없으니,
And I can not see Choan afar
난 슬프네.
And I am sad.
◈ 친구와 이별하며
Taking leave of a friend
푸른 산은 성벽 북쪽까지 이어져 있고
Blue mountains to the north of the walls,
흰 강은 그 주위를 돌아가네
White river winding about them;
여기서 우리는 헤어져야 하네
Here we must make separation
그리고 수 천리 불모의 초원을 가야 하리
And go out through a thousand miles of dead grass.
마음은 떠도는 광활한 구름 같고
Mind like a floating wide cloud,
지는 해는 오랜 친구의 헤어짐 같아라
Sunset like the parting of old acquaintances
저 멀리서 손을 모아 인사하는
Who bow over their clasped hands at a distance.
우리 헤어짐에
Our horses neigh to each others
말들도 마주 보며 슬피 우네
as we are departing.
◈ 소녀(A girl)
나무는 내 손을 파고들었고,
The tree has entered my hands,
수액은 내 팔을 타고 올라오네,
The sap has ascended my arms,
나무는 내 가슴속에서 자라나네-
The tree has grown in my breast-
아래로,
Downward,
가지가 내 몸에서 자라 나오네, 두 팔처럼.
The branches grow out of me, like arms.
너는 나무이고,
Tree you are,
너는 이끼이고,
Moss you are,
너는 바람이 그 위로 부는 제비꽃이네.
You are violets with wind above them.
너는 -너무도 고결한- 아이,
A child -so high- you are,
이 모든 것이 세상에는 어리석게 보이네.
And all this is folly to the world.
◈ 강변 상인의 아내 : 편지
The river-merchant's wife : A letter
내 머리칼이 겨우 내 이마를 덮을 동안,
While my hair was still cut straight across my forehead
꽃을 꺾으며 문 앞에서 놀았네.
I played about the front gate, pulling flowers.
그대는 대나무 말을 타고 와서는
You came by on bamboo stilts, playing horse,
침상을 맴돌며, 매실로 장난쳤지.
You walked about my seat, playing with blue plums.
장간 마을에 함께 살면서,
And we went on living in the village of Chōkan:
둘 다 어려, 싫고 의심할 일이 없었지.
Two small people, without dislike or suspicion.
열넷에 그대 아내 되어,
At fourteen I married My Lord you.
수줍기만 하여, 웃은 적이 없었네.
I never laughed, being bashful.
머리를 숙이고, 벽만 바라보았네.
Lowering my head, I looked at the wall.
천 번을 불러도, 돌아본 적이 없네.
Called to, a thousand times, I never looked back.
열다섯에 얼굴을 펴고,
At fifteen I stopped scowling,
티끌이 되도록 그대와 함께 살길 원했네
I desired my dust to be mingled with yours
영원히, 영원히, 영원히.
Forever and forever, and forever.
그런데 왜 멀리 바라보며 그대를 기다려야 하나요?
Why should I climb the look out?
열여섯에 그대는 떠났네,
At sixteen you departed
물살 사나운 강가, 구당의 쿠타엔으로 가셨네.
You went into far Ku-tō-en, by the river of swirling eddies,
떠난 지 다섯 달이 지났네.
And you have been gone five months.
원숭이들은
The monkeys make
머리 위에서 슬프게 울고 있네.
sorrowful noise overhead.
당신은 발을 끌며 마지못해 떠나갔네.
You dragged your feet when you went out.
문 옆에는 이끼가 자랐네, 여러 다른 이끼들이,
By the gate now, the moss is grown, the different mosses,
너무 깊어 쓸어낼 수가 없네!
Too deep to clear them away!
올가을엔 잎이 바람에 일찍 지네.
The leaves fall early this autumn, in wind.
팔월이라 이미 노래진 나비들은 쌍쌍이
The paired butterflies are already yellow with August
서쪽 정원 수풀 위에서 노네.
Over the grass in the West garden;
그 모습이 내 마음을 아프게 하네.
They hurt me.
난 늙어 가는데.
I grow older.
그대가 양자강 협류를 떠나올 때면
If you are coming down through the narrows of the river Kiang,
미리 기별을 해 주세요,
Please let me know beforehand,
그대를 만나러
And I will come out to meet you
초푸사까지 나갈 테니까요.
As far as Chō-fū-Sa.
◈ 찻집(The tea shop)
찻집의 처녀는
The girl in the tea shop
예전처럼 그렇게 예쁘지 않네,
Is not so beautiful as she was,
8월이 그녀를 거칠게 다루었네.
The August has worn against her.
층계도 이젠 힘차게 오르지 않고,
She does not get up the stairs so eagerly;
그래, 그녀도 중년이 되는구나.
Yes, she also will turn middle-aged,
우리에게 머핀을 갖다 줄 때
And the glow of youth that she spread about us
그녀가 펼쳐 냈던 젊음의 빛은
As she brought us our muffins
더 이상 우리를 감쌀 수 없으리라.
Will be spread about us no longer.
그녀도 역시 중년이 되는구나.
She also will turn middle-aged.
◈ 양자강에서의 이별
Separation on the River Kiang
옛 친구 황학루에서 서쪽으로 가고,
Ko-jin goes west from Ko-kaku-ro,
강 위엔 꽃 같은 안개가 어려 있네.
The smoke flowers are blurred over the river.
외로운 돛배는 먼 하늘을 가리네,
His lone sail blots the far sky.
그리고 난 지금 하늘까지 닿은
And now l see only the river,
긴 양자강만 볼 뿐이네.
The long Kiang, reaching heaven.
◈ 지하철역에서
In a Station of the Metro
군중 속 유령처럼 나타나는 얼굴들,
The apparition of these faces in the crowd;
까맣게 젖은 나뭇가지 위의 꽃잎들
Petals on a wet, black bough.
◈ 귀향
보라, 그들이 돌아오는 것을
아, 보라, 시험하는 듯한 그 움직임.
그 느린 발길을
그 어렴풋한 흔들림과 걸음걸이 속의 고뇌를
보라 그들이 돌아오는 것을,
하나씩하나씩,
잠에서 반쯤 깨어난 듯 공포에 휩싸여
마치 눈발에 멈칫거리며 바람 속에서
살랑대다가 방향을 바꾸듯
이들은 두려움의 날개를 가진 새들.
신성한
날개달린 신발을 신은 神들
그들과 함께 공기의 흔적을 냄새 맡는 은빛 사냥개들!
헤이, 헤이,
이들은 유린당한 영원들
이들은 후각이 예민한 것들
이들은 피의 영혼들
가죽 끈에 매어 느릿느릿
속박당한 사람들의 창백함이여!
◈ 휴전협정
월트 휘트만,
난 당신과 휴전협정을 맺겠소.
이미 오랫동안 당신을 미워했으니,
난 성장한 아이가 되어 당신에게 왔소.
한때는 심보 사나운 자의 자식이었지만,
이제 난 당신과 교제할 나이도 되었소.
새로운 숲을 파괴한 건 바로 당신
지금은 목각을 할 시기요.
우리는 같은 수액 뿌리도 하나,
이제 서로 교역을 하게하오.
◈ 가을(Autumn)
가을밤의 차가운 촉감…
A touch of cold in the Autumn night―
나는 여기저기 걸어 다니다가
I walked abroad,
붉은 농부의 얼굴처럼 생긴
And saw the ruddy moon lean over a hedge
달이 생 울타리에 기대고 있는 것을 보았네.
Like a red-faced farmer.
나는 말하지 않았지만 고개를 끄덕였네.
I did not speak, but nodded,
주위에는 생각에 잠긴 별들이
And round about were the wistful stars
도시 아이들처럼 흰 얼굴을 하고 있었네.
With white faces like town children.
◈ 나무
나는 숲속에 조용히 서서 나무가 되어
전에 보지 못한 것들의 진실을 알게 되었네:
더프네1)와 월계수의 인사
그리고 숲 속에서 느릅나무 상수리나무로 변한
저 신을 대접하던 늙은 부부,2)
신들을 친절히 초청하여, 안으로,
마음 속 가정의 노변爐邊 에 모시고야
그들은 그 경이로운 일을 이루었는지 모르네.
그럼에도 나는 숲 속에 나무가 되어
많은 새로운 것들을 이해하게 되었네,
전에는 나의 머리에 지독한 어리석음이었던 것들을.
*1)그리스 신화에서 아폴로 신에 쫓기어 월계수가 되었다는 요정.
*2)변장한 제우스와 헤르메스를 잘 대접하였기 때문에 그 보답으로
나무로 변신한 가난한 늙은 부부 바우키스와그 남편 필레몬.
◈ 다락방
오라, 우리보다 유복한 자들을 불쌍히 여기자,
오라, 내 친구여, 그리고 부자는 하인은 있어도
친구가 없다는 것을 기억하자.
하지만 우리는 친구는 있어도 하인은 없다.
오라, 우리 기혼자들과 미혼자들을 불쌍히 여기자.
새벽은 작은 발걸음으로
도금한 파블로바같이 다가온다.
나에게 욕정이 다가온다.
하지만 그 속의 생명력엔 이 맑은 서늘한 시간,
함께 깨어나는 시간보다 더 나은 것이 없다.
◈ 호수의 섬
오, 신이여, 비너스여, 도둑 떼의 신 머큐리여,
간청하노니, 내게 주소서. 조그만 담배 가게를,
선반들에 가지런히 쌓여 있는
작고 반짝이는 상자들과 함께,
묶이지 않은 향기로운 씹는담배와
독한 살담배와
반짝이는 유리 진열장 아래 흩어진
반짝이는 버지니아 담배가 있고,
너무 번들거리지 않은
천칭 저울도 하나쯤 있는,
잠시 머리를 매만지며, 버릇없는 말로
한두 마디 수작을 거는 매춘부들도 있는.
오, 신이여, 비너스여, 도둑떼의 신 머큐리여,
조그만 담배 가게를 빌려 주거나
아니면 다른 일자리라도 주소서,
쉴 새 없이 머리를 써야 하는
이 빌어먹을 글 쓰는 일만 아니라면.
O God, O Venus, O Mercury, patron of thieves,
Give me in due time, I beseech you, a little tobacco-shop,
With the little bright boxes
piled up neatly upon the shelves
And the loose fragrant cavendish
and the shag,
And the bright Virginia
loose under the bright glass cases,
And a pair of scales
not too greasy,
And the whores dropping in for a word or two in passing,
For a flip word, and to tidy their hair a bit.
O God, O Venus, O Mercury, patron of thieves,
Lend me a little tobacco-shop,
or install me in any profession
Save this damn’d profession of writing,
where one needs one’s brains all the time.
◈ 계절은 이렇게 깊어 가는데
중년 남자가 단골 찻집에 혼자 앉아 있습니다.
문득 그 생기발랄하던 찻집 아가씨의 동작이 조금 느려지고
얼굴에는 삶의 그림자가 드리웠다는 걸 느낍니다.
그녀도 자신과 같이 중년이 된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고 슬픕니다.
삶을 열두 달로 나눈다면 8월은 언제쯤일까요.
서른다섯? 마흔? 6, 7월 청춘의 야망은 이제
가슴속에 추억으로 담은 채 조금씩 순명을 배워가는 나이입니다.
삶의 무게를 업고 위태롭게 줄타기를 하는 때입니다.
자꾸 커지는 세상에 나는 끝없이 작아지고,
밤에 문득 눈을 뜨면 앞으로 살아내야 할 삶이 무섭습니다.
그러나 이제 자아탐색의 치열한 여름을 보내고 세상을,
그리고 남을 조금씩 이해하는 성숙의 가을이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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