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빈드라나드 타고르(Rabindranath Tagore) 시인
(1861년 ~ 1941년) 출생지 인도
1913년 노벨문학상 수상
★ 동방의 등불
일찍이 아시아의 황금시대에
빛나는 등불이던 코리아,
그 등불 다시 켜지는 날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
마음에는 두려움 없고
머리는 높이 쳐들린 곳,
지식은 자유롭고
좁은 울타리로 세상이 조각조각 갈라지지 않는 곳,
진실의 깊은 곳에서 말씀이 솟아나는 곳,
지성의 맑은 흐름이
굳어진 습관의 모래벌판에서 길을 잃지 않는 곳,
무한히 퍼져나가는 생각과 행동으로
우리들의 마음을 자유의 천국에 인도 하는 곳,
내 마음의 조국 코리아여 깨어나소서.
★ 그때는 몰랐습니다
연꽃 피던 날
마음은 헤매고 있었지만
나는 그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내 바구니는 비어 있는데
그 꽃을 찾아보지도 않았습니다
때때로 슬픔이 나를 찾아왔고
나는 꿈에서 깨어나
남녘 바람에서 불어오는 한 줄기
감미로운 향기를 맡았습니다
그 아련한 감미로움은
내 가슴을 그리움에 고통스럽게 했고
그것은 내게 성숙을 향해
나아가는
여름의 뜨거운 숨결로 느껴졌습니다
그것이 그렇게 가까이 있었음을
그것이 내 것이었음을
이 완벽한 감미로움이
내 자신의 가슴 속에서
꽃피었던 것임을
그때는 정녕 알지 못했습니다.
★ 바닷가에
아득한 나라 바닷가에 아이들이 모였습니다.
가없는 하늘 그림같이 고요한데,
물결은 쉴 새 없이 남실거립니다.
아득한 나라 바닷가에
소리치며 뜀뛰며 아이들이 모였습니다.
모래성 쌓는 아이,
조개 껍데기 줍는 아이,
마른 나뭇잎으로 배를 접어
웃으면서 한 바다로 보내는 아이,
모두 바닷가에서 재미나게 놉니다.
그들은 모릅니다.
헤엄칠 줄도, 고기잡이할 줄도,
진주를 캐는 이는 진주 캐러 물로 들고
상인들은 돛 벌려 오가는데,
아이들은 조약돌을 모으고 또 던집니다.
그들은 남모르는 보물도 바라지 않고,
그물 던져 고기잡이할 줄도 모릅니다.
바다는 깔깔거리고 소스라쳐 바서지고,
기슭은 흰 이를 드러내어 웃습니다.
아득한 나라 바닷가에 아이들이 모였습니다.
길 없는 하늘에 바람이 일고
흔적 없는 물 위에 배는 엎어져
죽음이 배 위에 있고 아이들은 놉니다.
아득한 나라 바닷가는 아이들의 큰 놀이텁니다.
원래 때 묻지 않았던 벌거숭이의 천진무구한 마음,
웃을 줄 모르고 화 낼 줄 모르던 그 때 그 시절
세파에 부대끼지 않고 악에 물들지 않았던 그 옛날이
퍽 그리워집니다. 인간은 연륜이 쌓이고 경험이 많을수록
뭔가 모르게 물들어 가고 있는 것을 느낍니다.
타골은 본원반조, 자성관조, 원형회복, 인간성 회복 등
말은 다르나 뜻은 서로 통하는 말을 하고 있다.
★ 기도
위험에서 벗어나게 하소서'하고 기도하게 마옵시고
위험에도 겁을 내지 말게 하옵소서'하고 고백하게 하소서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주소서' 기도하게 마옵시며
고통 속에서도 견딜 수 있는 인내를 주옵소서' 간구하게 하소서
인생의 싸움터에 동료자를 보내소서' 기도하게 마옵시고
싸움에서 이길 힘을 주시옵소서' 두 손 모으게 하소서
근심과 두려움 속에서 구원해 주소서' 기도하게 마옵시고
두려움을 물리쳐낼 용기를 주옵소서' 소망하게 하소서
겁장이가 되고 싶지 않사오니 도우시옵소서
기쁘고 성공할 때만
하나님이 도우신다 생각하게 마옵시고
하루하루 슬픔과 괴로움
때로는 핍박과 고통 가운데
하나님께서 내 손목을 꼭 잡고 계심을 믿게 하소서
★ 유적(遺謫)의 땅(The Land of Exile)
어머니, 하늘에 햇빛이 어스레해졌습니다.
때가 어찌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놀아도 재미가 없습니다.
그래서 어머니한테 왔습니다.
때는 토요일, 우리의 주일입니다.
일은 그만 두셔요, 어머니.
여기 창가에 오셔서 옛날 이야기의
테판타르 사막이 어디 있는지 말씀해 주세요.
비의 그림자가 끝에서 끝까지 햇빛을 가리웠습니다.
사나운 번개가 손톱으로 하늘을 찢습니다.
구름이 우르렁거리고 천둥이 울리면
가슴이 뛰어 어머니 품에 매달리고 싶습니다.
굵은 비가 대나무 잎을 몇 시간이나 때리고
우리 집 창문이 바람 불 때마다 흔들리고 소리를 낼 때면,
어머니, 나는 어머니와 방에 단둘이 앉아
옛날 테판타르 사막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어머니, 그 사막은 어디 있는가요?
어느 바닷가, 어느 산모통이, 어느 왕의 영토인가요?
거기에는 들판을 표시하는 울타리도 없고,
해가 떨어지면 마을 사람들이
마을을 찾아갈 발자국 조차 없습니다.
숲 속에서 마른 나뭇가지를 줍던 아주머니가
을 저자로 가져간 발자국도 없답니다.
모래밭에 몇 조각의 노란 잔디풀과
약빠른 늙은 새 한 쌍이
보금자리를 마련한 나무 한 그루만 있을 뿐,
테판타르 사막은 그냥 누워 있습니다.
바로 이런 흐린 날이면 임금의 어린 아들이
혼자 회색 말을 타고 사막을 지나 알지 못하는 강 건너
거인의 궁전에 갇혀 있는 공주를
찾아가는 모습을 그려볼 수 있습니다.
먼 하늘에 비안개가 내리고
번갯불이 괴로운 병에 걸린 듯 미쳐 날뛸 때에,
옛날이야기의 테판 타르 사막에 말을 타고 가면서,
왕자는 홀로 떨어진 가엾은 자기 어머니가
눈물을 닦으며 외양간 쓰레질만 하고 있는 것을 잊겠습니까?
어머니, 보셔요,
해가 지기 전에 벌써 날이 거의 어두워 갑니다.
그리고 마을길 너머에는 이미 길가는 사람도 없습니다.
목동은 벌써 목장에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사람들도 이미 들에서 돌아와 오막살이 처마 밑
자리에 앉아 거친 구름을 쳐다보고 있습니다.
어머니, 나는 책을 다 선반에 꽂았습니다.
이제는 나보고 공부하라고 말씀을 하지 마셔요.
내가 자라서 아버지만큼 되면 배울 것을 모두 배우겠지요.
그렇지만 오늘만은 어머니,
옛날이야기의 테판타르 사막이 어디 있는지 말씀해 주셔요.
어느 동화속 왕자가 테판타르 사막을 가로지르는 장면을 상상한다.
테판타르 사막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가.
나는 지금 어떤 사념과 현실의 테판타르 사막을 걸어가고 있는 것일까.
검은 구름이 몰려오고 있고 날이 어둑어둑해지고 있는 어느 오후
어머니에게 테판타르 사막의 얘기를
들려달라고 하는 아이의 감성 깊은 모습이 떠오른다.
삶이 고달프고 세월이 나를 속이고 있을 때
의자에 깊숙이 몸을 기대고 고개를 위로 젖히며 그런 생각을 한다.
그래 오늘만은 나를 위해 살자.
오늘만은 나의 느낌을 위해 살자.
그것이 삶의 치열함에 대한 책임의 회피가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 나 혼자 만나러 가는 밤
사랑하는 이 만나러 나 홀로 가는 밤
새들 조용하고 바람이 불지 않네
길가의 집들도 고요히 서있어서
내 발걸음 소리만 점점 커져 부끄럽구나
발코니에 앉아서 그이의 발자국 소리를 기다릴 제,
나뭇잎들 멈춰 있고 강물 소리도 조용하네
잠든 보초의 무릎에 놓인 칼처럼.
거칠게 뛰는 나의 가슴은
어이해야 진정될까.
사랑하는 이 오시어 내 곁에 앉으시어
내 몸 떨리고 내 눈 감길 때면
밤 어두워지고 바람은 등불을 끄고
구름은 별을 가리우는 구나
내 가슴의 보석은 반짝이며 빛을 발하는데
어이해야 감출 수 있을까
★ 삶, 패자의 노래
퇴각의 길목을 지키면서 패자의 노래를 부르라고
선생은 나에게 요구하나니,
패자란 남몰래 선생이 사랑하는 약혼녀이기 때문이어라.
어두운 빛 너울을 그녀가 쓰고서 여느 사람에게 얼굴을 가리우나,
가슴 안에서는 어두움 속에 빛나는 보배를 간직하였도다.
그녀는 밝은 햇빛에 버림당했거니와 밤에는 반짝이는 눈물 흘리며
이슬에 젖은 꽃 손에 들고 바라고 있네.
신에게 광명을 가져다주기를 말없이 눈을 내리 감은 채로
바람과 함께 불평의 소리 나도는 그의 집을 그녀는 뒤로하였네.
그러나 별들은 고욕을 나타내는 사랑스런 얼굴을 지닌
그녀의 영원한 사랑의 노래에 억양을 준다.
고독의 방문이 열렸구나, 부름이 왔네.
그래서 가슴을 두근거리네, 어두운 가운데서,
뜻 있는 시각의 불안 가운데서
★ 내가 부를 노래
내 진정 부르고자 했던 노래는 아직까지 부르지 못했습니다.
악기만 이리저리 켜보다 세월만 흘러갔습니다.
아직 때가 되지 않았고, 말도 다 고르지 못했습니다.
준비된 것은 오직 바라는 마음뿐입니다.
꽃은 피지 않고, 바람만이 한숨 쉬듯 지나 갔습니다.
나는 당신의 얼굴을 보지 못했고, 당신의 목소리 또한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내가 아는 것은 오직 내 집 앞을 지나는
당신의 가벼운 발걸음 소리뿐입니다.
내 집에 당시의 자리를 마련하는 데 오랜 시간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아직 등불을 켜지 못했으니 당신을 내 집으로
청할 수 없습니다.
나는 늘 당신을 만날 희망 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당신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 경례(敬禮)
백조여, 보라, 황금의 빛.
정상의 빛의 덮개!
황금의 빛을 흩뿌리고,
지상엔 광휘의 발자국!
나무도 둥우리도 모두 눈 뜨고,
뭇 새들의 때는 수런대며,
바람에는 아름다운 노랫소리, -
하늘에는 요란한 날갯소리!
반쯤 열린 꿈의 눈동자에
입 맞추는 황금의 빛
연못에는 백조와 물결
눈 뜬 빛의 파수꾼,
감정은 진작되다.
이 천국의 불멸의 접촉!
안개의 금빛 일순(一瞬)
황금의 빛을 흩뿌리네!
승리에 빛나는 하늘
깃발처럼 자유로운 바람,
구름은 새로운 마음을 품고
마음의 눈은 열리다!
뭇 세대의 암흑을 떨쳐라
이 황금의 빛!
바야흐로 빛의 문은 열리다
새로운 기쁨의 물 튀어 오르며
창조의 영광은 무한해라!
쫓는 자는 누구인가?
지상에 빛을 길러 자라게 하여,
백조여, 보라, 황금의 빛!
★ 원정(園丁)
"아, 신이시여, 저녁때가 다가오나이다.
당신의 머리가 희어지는구려.
당신은 외로운 명상 속에서 저 내세(來世)의 소식을 듣나이까?"
시인은 이렇게 말하였다.
"저녁때입니다. 나는 비록 때가 늦기는 하였지만,
마을에서 누가 부를지도 모르는 까닭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참이오.
행여 길잃은 젊은이들이 서로 만나면,
두 쌍의 열렬한 눈이 자기들의 침묵을 깨뜨리고,
이야기해 줄 음악을 간청하지나 않나 하고 지켜보는 참이올시다.
행여 내가 인생의 기슭에 앉아 죽음과 내세(來世)를 관조(觀照)한다면,
열정의 노래를 엮을 사람은 누구이겠습니까 ?
초저녁 별이 사라집니다.
화장(火葬)연료의 불꽃이 고요한 강가에서 가늘게 사라져 갑니다.
기진한 달 빛 속 외딴 집 뜰에서 승냥이들이 소리를 합쳐 웁니다.
행여 고향을 등지고 떠돌아다니는 이가 여기 와서 밤을 지키고 있어,
머리를 숙이고 어둠속에서 속삭이는 소리를 듣는 때,
내가 문을 닫고 인간의 굴레로부터 해방되고자 애쓰고 있다면,
그 나그네 귀에다 인생의 비밀을 속삭일 사람이 누구겠습니까 ?
내 머리가 희어지는 것쯤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올시다.
나는 이 마을의 젊은이 중에서도 가장 젊고,
또 늙은이 중에서도 가장 늙은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은 상냥하고도 순진한 미소를 띱니다.
또 어떤 사람은 교활하게 눈짓을 합니다.
어떤 사람은 햇빛에 눈물이 솟아오르고,
또 어떤 사람은 어둠 속에 숨어서 눈물을 흘립니다.
그들은 모두 다 나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내세에 대하여 생각할 시간의 여유가 없습니다.
내 나이는 다른 사람과 동갑입니다.
내 머리가 희어진들 어떠하리이까?"
★ 시초(始初)
엄마
나는 어디에서 왔어요
아가야, 너는 내 가슴속에 동경처럼 숨어 있었단다.
너는 내 어릴 적 장난감 인형 속에 있었다.
그리고 내가 진흙으로 아침마다 신의 모습을 빚을 적에
너를 빚었다 부셨다 하였단다.
온갖 내 희망과 사랑 속에,
내 생명과 내 어머니 생명 속에 네가 살아왔다.
처녀가 되어 내 가슴이 꽃잎을 열 때에
너는 그 주위에 향기와도 같이 떠돌아다녔다.
너는 누리의 생명의 흐름 밑에 떠있다가
마침내는 내 가슴의 암초에 걸린 것이었다
★ 당신 곁에
하던 일 모두 뒤로 미루고
잠시 당신 곁에 앉아 있고 싶습니다.
잠시 동안 당신을 못 보아도
마음에 안식 이미 사라져 버리고
고뇌의 바다에서 내 하는 일
모두 끝없는 번민이 되고 맙니다.
불만스러운 낮 여름이 한숨 쉬며
오늘 창가에 와 머물러 있습니다.
꽃 핀 나뭇가지 사이사이에서
꿀벌들이 잉잉 노래하고 있습니다.
임이여 어서 당신과 마주 앉아
목숨 바칠 노래를 부르렵니다.
신비스러운 침묵 속에 가득 쌓인
이 한가로운 시간 속에서.
★ 당신이 나를 영원케 하셨으니
당신이 나를 영원케 하셨으니 그것은 당신의 기쁨 입니다.
이 연약한 그릇을 비우고 또 비우시고 끊임없이
이 그릇을 싱싱한 생명으로 채우십니다.
이 가냘픈 갈대 피리를
당신은 언덕과 골짜기 넘어 지니고 다니셨고
이 피리로 영원히 새로운 노래를 부르십니다.
당신 손길의 끝없는 토닥거림에
내 가냘픈 가슴은 한 없는 즐거움에 젖고
막히었던 말문이 열립니다.
당신의 무한한 선물은 이처럼 작은 내 손으로만 옵니다.
세월은 흐르고 당신은 여전히 채우시고
그러나 여전히 채울 자리는 남아 있습니다.
★ 종이배
매일 매일 나는 종이배를 하나씩
흐르는 물살에 띄워 보냅니다.
크고 검은 글씨로
나는 그 배에 내 이름과
내가 사는 마을 이름을 적어놓습니다
낯선 나라 누군가가
내 배를 발견하고
내가 누구인지 알아주길 바라고 있습니다
나는 우리집 정원에서 따 온
슐리꽃을 내 작은 배에 싣고
이 새벽의 꽃들이
밤의 나라로
무사히 실려가길 바라고 있습니다.
나는 종이배를 띄우고
하늘을 보고
바람 안은 흰 돛 형상의
조각구름을 바라봅니다
하늘의 내 또래 장난꾼이
내 배와 경주하려
바람을 구름에 날리는지 알 수 없어요!
밤이 오면
나는 얼굴을 팔 안에 묻고
한밤의 별 아래
내 종이배가 흘러가는 꿈을 꿉니다.
★ 샴빽꽃
그런 장난으로 만일 내가 샴빽꽃이 되어
그 나뭇가지 높이높이 피어 있어
바람이 불면 산들산들 새로 핀 잎에서 춤을 춘다면,
엄마는 나를 알아보시겠어요?
엄마는 이렇게 부르시겠지요.
“아가야 너 지금 어디 있니?”
그러면 나는 혼자 있겠지요.
나는 살며시 내 꽃잎을 열어
엄마가 일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을 거예요.
엄마가 목욕을 하시고 젖은 머리를 어깨에 드리우고
샴빽나무 그늘을 지나
조그만 정원으로 와서 기도를 올리실 때는,
엄마는 꽃의 향기를 맡으시겠지만
그 향기가 나한테서 풍기는 줄은 까마득히 모르시겠지요.
점심을 마치고 엄마가 창가에 앉아 「라마야나」를 읽고 계실 때
나무 그늘이 엄마의 무릎에 비끼면
나는 아주 조그만 그림자 한 조각을
엄마가 읽는 바로 그 책장에 드리우겠어요.
그렇지만 엄만 그것이 귀여운 아가의
조그만 그림자인 줄을 아예 짐작인들 하시겠어요?
해가 저물어 엄마가 손에 초롱을 들고 외양간으로 가실 때면,
나는 갑자기 다시금 땅에 떨어져
또 한번 아기가 되어 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르겠지요.
“요 장난꾸러기 아가야. 어디 갔다 왔니?”
“나는 말하지 않을 테야, 엄마.”
이렇게만 엄마와 나는 말하겠지요.
[샴빽(Champca)꽃은 동인도에서 서식하는 샴빽나무에서
피어나는 향기가 짙고 노란 꽃.
「라마야나」는 인도 고대 힌두 경전의 서사시임]
★ 당신의 음악
당신께서는 어떻게 노래하는지
나는 알 길이 없읍니다.
고요한 기쁨 속에서
나는 늘 당신의 음악에 귀기울입니다.
당신께서 부르시는 노래
그 빛이 온 세상을 밝게 비칩니다.
당신의 음악
그 생명의 숨결이
하늘에 구비칩니다.
당신의 음악
그 성스러운 물결이
온갖 장애물을 넘어 달려갑니다.
내 가슴은 당신의 노래를 따르고자
얼마나 간절히 바랬던가!
그렇지만 헛되이 헤맬 뿐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습니다.
말은 하지만 그 말이 노래로 변하지 않으니
다만 울 다름입니다.
당신께서는 나의 가슴을
당신의 끝없이 물결치는
음악의 함정에 빠지게 하셨습니다.
★ 혼자서 걸어가라
당신이 불러도 그들이 대답하지 않으면
혼자서 걸어가라
그들이 면벽한 채
움츠리고 떨고 있다면
오 불행한 이여
마음을 열고 혼자 외쳐보라
황야를 건널때
그들이 당신을 버리고 떠난다면
오 불행한 이여
가시밭길을 내딛고
붉은 피를 흩뿌리며,
혼자서 걸어가라
폭풍이 몰아치는 밤
그들이 빛을 밝혀주지 않는다면
오 불행한 이여
고통이 번개불로
당신 가슴에 불을 붙여라
그리고 홀로 타게 내버려 두라
★ 가난한 자의 동냥
이 몸이 시골길로 이 집 저 집
구걸을 하러 나섰을 때에
그대의 황금 수레가 멀리서
마치 호화스런 꿈과도 같이 나타났기에
왕 중의 왕이 누구신가 하고 놀랐나이다!
내 희망은 높이 솟구치고 내 불운의 날은
끝났다고 생각했나이다.
그래 나는 청하지 않아도 그대가 동냥을
주리라고 기다리며 서 있었나이다.
보화가 사방 흙 속에 흩어져 있으니까요.
마침내 내가 선 곳에 임의 수레가 멈췄나이다.
임의 눈길이 이 몸에게 이르더니,
임께서 빙그레 웃으시며 내려오셨나이다.
드디어 생애의 행운이 왔다고 느꼈나이다.
그러나 갑자기 임은 내게 오른손을 내미시며
이렇게 물으셨나이다.
"그대는 내게 무엇을 줄 것이 있느뇨?“
오, 이 거지에게
임의 손바닥을 벌려 구걸하시다니
이 무슨 왕후(王侯)다운 농(弄)이시나이까!
나는 어리둥절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고 서 있었나이다.
그러다가 주머니에서 가만히
제일 작은 낟알 한 개를 꺼내어
임에게 드렸나이다.
마침내 날이 저물어 다 가고, 마룻바닥에 내 자루를 쏟아
초라한 무더기 속에서
황금의 한 작은 낟알을 보았을 때,
내 놀람은 얼마나 컸던고!
나는 애타게 울며, 모든 것을 임께 바칠 마음이
내게 있었더라면 하고 후회했나이다.
★ 마지막 시 (Akhari Kavita) / 결혼에 관하여
한 젊은 남녀가 사랑에 빠졌다.
그래서 당연히 그들은 결혼하기를 원했다.
여자가 말했다.
"한가지 조건이 있어요."
그녀는 대단히 세련되고, 교양있고, 또 부자였다.
남자가 말했다.
"어떤 조건이라도 좋소.
나는 그대 없이는 살 수가 없소."
그녀가 말했다.
"먼저 조건을 듣고 나서 결정하세요.
이것은 평범한 조건이 아닙니다.
조건은,
우리가 한 집에서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나에게는 넓은 땅이 있고,
아름다운 나무들로 둘러싸인 연못과 정원과 잔디밭이 있어요.
당신을 위해 내가 사는 집 반대편에 집을 한 채 지어 주겠습니다."
그가 말했다.
"그렇다면 결혼하는 의미가 없잖소?"
"결혼은 서로를 파괴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당신에게 당신의 공간을 줄 것이며,
나 역시 내 공간을 갖고 있겠습니다.
이따금 정원을 산책하다가 우리는 서로 마주칠지도 모릅니다.
이따금 연못에서 보트를 타다가 우연히 만날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때로 내가 당신을 초대하여 차를 대접할 수도 있고,
또한 당신이 나를 초대할 수도 있습니다."
남자가 말했다.
"그것은 정말 터무니없는 생각이오."
"그렇다면 결혼에 대한 이야기는 없던 것으로 하지요,
다른 도리가 없습니다.
그렇게 해야만 우리의 사랑이 커나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신선하고 새롭게 남아 있을 테니까요.
그래야만 서로가 서로를 당연한 존재로 받아들이지 않을 테니까요.
당신이 내 초대를 거절할 권리를 갖고 있는 것처럼
나 역시 당신의 초대를 거절할 권리를 갖고 있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서로의 자유가 침해당해서는 안 됩니다.
서로의 자유 속에서만 아름다운 사랑이 커나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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