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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詩 같은 삶을 위하여
☞ 문학의 뜨락

계간 '문학사랑' 101회 신인작품상 당선작(5편) - 尹明相

by 石右 尹明相 2017. 2. 17.

 

 

계간 '문학사랑' 101회 신인작품상 당선작(5편)

 

 

 

겨울 골목길

- 尹明相

 

태양은

건물 꼭대기를 넘나들며 술래잡고

볕은 골목길 사이사이

끄트머리 섣달의 한기를 쓸어낸다.

 

음지의 매섭던 찬바람도

볕든 골목길에서는

어머니의 손길처럼

부드럽게 행인의 옷깃을 여며주고,

 

행인들의 시선을 훔치다

추위에 지친 낡은 간판들은

볕든 틈에

반짝이는 에메랄드로 옷 입는다.

 

볕이 머문 골목길엔

어느 사이 행인들의 웃음꽃이 피어나는데

태양은 슬그머니 그늘을 드리우며

저만치 볕을 끌고 사라져간다.

 

   

 

봄비 맞으며

- 尹明相

 

오늘 내리는 봄비는

사랑이었다

추억이었다

그리고 그리움이었다

 

사랑을 맞으며

추억에 젖으니

그리움이 흘러내렸다

 

걷는 골목길은

사랑이 동행하고

발걸음 디딜 때마다

얼굴과 가슴에는

추억이 애무했다

 

사랑이 비가 되어

적시는 내 마음엔

먼 기억 속

그대의 정겨운

웃음으로 가득하고

그리운 흔적에

행복을 노래했다

 

오늘 내리는 봄비는

마냥 행복한

그리운 사랑이었다

 

   

 

잡초처럼

- 尹明相

 

아픔은 마디가 되고

외로움은 줄기가 되어도

 

늘 평온한 모습으로

늘 싱그러운 모습으로

 

언제나 그 자리에서

그렇게 변함없는 잡초여

 

밟히고 꺾이어도

다시 고개세우고

 

원망도 탄식도 없이

바람에 몸을 맡기고

 

말없이 하늘을 향해

기도하는 잡초여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천한 듯 무명으로 살더라도

 

그렇게 그 자리에서

일생을 사는 잡초처럼

 

스치는 바람도 사랑하리

꺾이는 아픔도 노래하리

 

잡초처럼 의연히 서서

행복하게 살아가리

 

 

 

세밑에서

- 尹明相

 

숨 가쁜 나날

헐떡이며 뛰어가는

시간에게 물었다

무엇이 그리 바쁘냐고

 

시간이 내게 말했다

세월이 바쁜 게 아니라

인생이 바빠서

그리 느끼는 거라고

 

세월을 따라 가는

내게 나는 물었다

무엇이 아쉬워서

시간에 쫓겨 뛰어가냐고

 

나는 내게 대답했다

사랑할게 많아서

뛰지 않으면 놓칠까봐

부지런히 따라간다고

 

하루를 남긴 세밑

저물어 가는 오늘도

나는 내게 말한다.

사랑할게 너무 많다고

 

 

 

겨울 가로수

- 尹明相

 

이파리 떨군 가로수마다

지난여름 뜨거웠던

사연들만 걸어두고

조용히 침묵에 들어갔다

 

이제는 누구라도

화가가 되어

휑한 가로수 가지가지에

자기 그림만 그려 넣으면 된다

 

아팠던 마음을 그려볼까

그리웠던 추억을 그려볼까

손짓하는 꿈을 그려볼까

환한 웃음을 그려볼까

 

지나쳐 가고 나면

없어질 그림이지만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것이

너와의 인연이겠지

 

옷 벗은 겨울 가로수에는

안개 같은 그림 하나와

속삭이는 세월, 고왔던 추억이

지금도 바람 따라 가늘게 춤을 춘다

 

 

  

 

 

 

* 당선소감

 

초등학교 4학년, 처음 문예부에 들어가면서 눈뜬 글의 세계에서

혼자 헤엄치 듯 거울에 비친 내게 나의 글을 읽어 주며

주거니 받거니 씨름하던 세월이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철부지 시절, 노벨문학상을 꿈꾸던 당찬 소년은 신학의 길을 가게 되면서

문학은 단지 심심풀이 취미로 작은 심호흡에 불과할 뿐이었지요.

어느 날 중년이라는 인생 징검다리 위에서 문득,

한 눈 팔고 있는 제 안의 문학을 꿈꾸던 소년을 발견하고는

조심스레 문학의 새 창을 열게 되었습니다.

내 글을 누가 볼세라 손으로 가림막을 두르던 초등학교 4학년의 마음으로

그렇게 문학의 언저리에서 소꿉놀이만 하다가 이제야 가림막을 거둬 봅니다.

다행이 제 글을 예쁘게 봐주시고 받아 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할 따름입니다.

단 한 번도 누구의 조언이나 지도를 받아 본적이 없어

여전히 망설임은 남아있기에, 자유로이 문학의 날갯짓을 할 수 있도록

많은 지도편달을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문학사랑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