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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詩 같은 삶을 위하여
☞ 문학의 뜨락

이채 시 모음

by 石右 尹明相 2022. 2. 12.

 

 

이채 시인. 1961

학력 동국대학교 대학원 법학 박사

경력 영주시립노인요양병원 법률고문

수상 2010. 독서문화대상

 

 

이채 시 모음

 

 

우리라는 이름의 당신이 좋아요.

 

우리 "오늘 만날까?" 라는

당신의 목소리가

산들산들 바람 향기로 스쳐올 때

설레는 내 가슴엔

빠알간 꽃봉우리가 맺혀요.

 

우리라는 이름의 당신을 만날 때면

강변엔 바람

내 마음엔 꽃바람

하늘빛 강물엔 행복이 출렁이죠

만남의 기쁨이란 이렇듯 좋은걸요.

 

파아란 잔디밭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면

안개 낀 하루는 어느덧 사라지고

풀꽃 핀 언덕엔 아지랑이 햇살

당신의 눈망울에 꽃구름이 예뻐요.

 

"우리 차 한잔 할까" 라는

마음과 마음이 생각으로 통할 때

보랏빛 향기 그윽한 찻잔엔

미소 한 모금의 위로가 머물고

사랑 한 모금의 정겨움을 느껴요.

 

언제나 진실한 빛, 그 고운 빛으로

당신과 나, 산새들이 지저귀는

우정의 푸른 숲을 거꾸기로 해요

가끔, 노란 카나리아가 되어

그 숲에서 우리 만났으면 좋겠어요.

 

 

 

2월의 당신에게 띄우는 편지

 

모든 것이 순탄하리라고 믿기로 한다

꼭 그럴 것이라고 믿어보기로 한다

나무에 물이 오르고 꽃이 피고 푸릇푸릇 잎이 자랄 때

나의 하루하루도 그러하리라고

햇살이 따뜻하니 바람도 곱고 아늑하리라고

누구도 대신 걸어줄 수 없는

이 넓은 세상에 새로운 길 하나 내어 보기로 한다

 

길이라 함은 누군가 걸었기에 길이 된 것이리

아무도 걷지 않았다면 길이 될 수 없겠지

큰길에는 분명 수많은 발자욱이 남아 있을 것이다

그 하나하나의 눈물과 고뇌가

흐르고 흘러 강물 같은 길이 되었을 것이다

바람에 가지가 휘어지고 잎새 우는소리 들려와도

담담한 용기를 가져보기로 한다

 

봄은 그리 길지 않고 하루의 절반도 어둠이지 않던가

새들의 노랫소리가 위안이 되고

그 길에서 이름 모를 풀꽃들이 나를 반겨줄 때

더러 힘겨워도 견뎌낼 수 있으리라

조금은 쓸쓸해도 웃을 수 있으리라

풀잎 스치는 바람에도 나 행복하리라

 

하루의 끝에는 늘 밤을 기다리는 노을이 붉지

먼 훗날 나 노을처럼 아름다울 수 있을까

때를 알고 자리를 내어주는 낙엽처럼

그렇게 고요하게 순응할 수 있을까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이 오면

한 알의 씨앗으로 흙 속에 묻힐 수 있을까

사람이여!

 

 

 

봄에 하는 사랑은

 

바람이 따스한

봄에 하는 사랑은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의

푸른 아픔을 몰랐으면 좋겠습니다.

 

알록달록 꽃이 피는

봄에 하는 사랑은

붉어도 얇은 단풍 낙엽의

갈색 외로움을 몰랐으면 좋겠습니다.

 

햇살이 포근한

봄에 하는 사랑은

찬바람에 부서지는 가슴

슬픈 이별을 몰랐으면 좋겠습니다.

 

봄에 하는 사랑은

바람처럼 따스하고

꽃처럼 아름다워

곱고도 포근한 햇살 같은 그대 안에서

영원토록 함께하는 사랑이었으면 좋겠습니다.

 

 

 

5월의 당신에게 띄우는 편지

 

당신이 빨간 장미라면

나는 하얀 안개꽃이 되고 싶어요

나 혼자만으로는 아름다울 수 없고

나 혼자만으로는 행복할 수 없고

당신 없이는 온전한 풍경이 될 수 없는 꽃

 

당신의 향긋한 꽃내음에 취해

하얗게 나를 비워도 좋을 꽃

그 잔잔한 꽃잎마다

방울방울 맺힌 그리움으로

당신만의 고요한 배경이 되고 싶어요

 

가끔 당신의 빛깔이 지칠 때나

가시 돋친 당신의 가슴이 아플 때면

당신을 위해 하얀 노래를 부르겠어요

눈 내리는 어느 날, 한 마리 겨울새가 불렀던

그 순백의 노래를

 

제발 내 곁을 떠나지 말아 달라고

알알이 꽃망울을 터뜨리며

애원하듯 두 손 모아 기도하는 꽃

당신의 어깨에 기대어

이대로 하얗게 잠들었으면

 

당신 곁에 있으면 작아서 더 예쁜 꽃

여린 꽃 숨결이 멈출 때까지

소망의 은방울 종소리를 울리며

당신과 단둘이

사랑의 꽃병에 영원히 갇히고 싶어요

 

 

 

6월에 꿈꾸는 사랑

 

사는 일이 너무 바빠

봄이 간 후에야 봄이 온 줄 알았네

청춘도 이와 같아

꽃만 꽃이 아니고

나 또한 꽃이었음을

젊음이 지난 후에야 젊음인 줄 알았네

인생이 길다 한들

천년만년 살 것이며

인생이 짧다 한들

가는 세월 어찌 막으리

봄은 늦고 여름은 이른

6월 같은 사람들아

피고 지는 이치가

어디 꽃뿐이라 할까

 

 

 

9월의 당신에게 띄우는 편지

 

꽃피는 봄날엔 할말도 많았겠지요

꿈은 땀으로 흐르고

땀은 비처럼 내렸어도

어느꽃도 만날 수 없는 그런날이 있었겠지요

기도하는 꿈빛으로 아침이 찾아와도

누워서도 잠들 수 없는 그런밤이 있었겠지요

별을 보고도 잠언을 읽지 못하고

어리석은 잣대로만 재고 산 가벼움에 대하여

고독한 진실과 홀로 견딘 무거움에 대하여

무심한 달빛창 바라보며 한숨도 지었겠지요

우연히 들었습니다

당신의 허전한 기침소리를

당신이 가을로 깊어갈 때

노을처럼 내리는 그리움이 있다면

잉크처럼 번지는 외로움이 있다면

길어진 시간의 무게 때문입니까

얇아진 낙엽의 부피 때문입니까

9월의 당신이여!

삶에 대해 이야기하기엔 아직 이르니

이 저녁 노을이

저 들녁 낙엽이

왜 이렇게 쓸쓸하냐는 말은 조금 늦어도 좋겠습니다

우연히 보았습니다

타도록 몸을 말리는 울안의 빨간 고추가

번연히 가루가 될 것을 알면서도

제 몸 한번 뒤척이지 않고

버젓이 누워있음을

그렇게 질기게 견뎌내고 있음을

나는 보았습니다

9월의 당신이여!

 

 

 

중년의 여름밤

 

화가는 별을 보고 그림을 그리고

시인은 별을 보고 시를 쓰겠지만

나는 별을 보고 추억에 젖습니다

여름이 오고, 또 밤이 오면

밤바람 시원한 창가에서

어린 날의 눈망울처럼

초롱초롱한 별을 바라봅니다

웃고 있어요. 별도 나도

유난히 내 눈에 빛나는 별 하나

나를 알고 있나 봅니다

퍽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운 별

잊지 않고 기억해줘서 고마운 별

밤마다 별을 심은 적이 있었지요

어른이 되면 그 별을 꼭 따오리라 믿으며

우정의 별로 일기를 쓰고

사랑의 별로 편지를 쓰고

소망의 별로 꿈을 꾸던 나이

세월은 흘러도 별은 늙지 않고

어느덧 나는 중년이 되었지요

눈물의 별로 술을 마시고

추억의 별로 커피를 마시는 나이

이제서야 비로소 깨닫게 되었어요

별은 따오는 것이 아니라

그리워하며, 이렇게 그리워하며

그저 바라보는 것이라고

 

 

 

중년에 아름다운 당신

 

깊어서 고요한 것이 있다면

바다만이 아닐 것이며

넓어서 편안한 것이 있다면

하늘만이 아닐 것입니다.

 

중년에 아름다운 당신의

눈빛이 그러하고 가슴이 그러하고

중년에 온화한 당신의

표정이 그러하고 생각이 그러합니다.

 

세월의 오랜 정을 소중히 여기고

진실한 마음의 참됨을 알기에

문득 그리워지는 사람 하나

어둠 속 별이 되어 빛날 때

 

깊어도 때로는 외롭던가요

외롭다가 슬프기도 한 눈빛으로

흘러도 보이지 않는 가슴 속 눈물

중년에 아름다운 당신의 모습입니다.

 

떠나간 이름 하나

긴 하루로 남았던 기억

어느 날 너와 나의 만남이

엷은 꽃잎으로 다시 피어날 때

 

넓어도 때로는 그립던가요

타다 남은 불씨에 실바람이 불어오면

달래고 재우는 버들잎 손길

중년에 아름다운 당신의 마음입니다.

 

가고 오는 세월은 유수 같아라

부질없는 욕심을 버리고 나니

한줄기 노을빛이 더욱 아름다워

중년인 내 나이를 사랑하렵니다.

 

 

 

솔바람 풀잎 편지를 띄우고

 

그대 사랑하기엔

내 마음이 너무 떨려

솔바람에 풀잎 편지를 띄우고

들녘에 이름 모를 풀꽃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대 가슴 속에 묻어두기엔

이 순간이 너무 아려

솔바람에 풀잎 편지를 띄위고

바위틈에 내려앉은 그늘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대 그리워하기엔

꽃구름이 너무 고와

솔바람에 풀잎 편지를 띄우고

밤하늘에 떠도는 새벽별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대 이대로 잊기엔

저 노을이 너무 붉어

솔바람에 풀잎 편지를 띄우고

석양에 걸린 고독한 밤바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대 기다리기엔

가는 봄이 너무 짧아

솔바람에 풀잎 편지를 띄우고

이대로 잠들어도 좋을 사랑이 되고 말았습니다.

 

삶이란 마음먹기에 달렸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 있는 것은

산의 뜻일지 몰라도

오늘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는

우리 자신의 뜻입니다.

 

오늘 우리 앞에 놓여진 이 길은

어쩔 수 없는 운면이라 할지라도

그 운명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하는 것은

우리 의지에 달렸습니다.

 

도전하는 용기보다

더 큰 희망은 없으며

할 수 있다는 신념은

모든 길을 걷게 합니다.

 

오늘, 또 다른 오늘 우리가

어디에 살든

얼마를 살든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사느냐입니다.

 

왜 사느냐고 묻지 마세요.

오늘 우리가 살아야 할 이유는

다만 없고

있다면 전부이니까요.

 

 

 

연인의 그리움처럼 비가 내려요.

 

창가에 내리는 비는

연인의 눈물처럼 와요

까만 속눈썹이 어여쁜 연인의 눈망울이 젖어요.

 

유리창에 하얀 빗방울은

떠나버린 연인의 눈물인가

가슴을 파고드는 차갑도록 슬픈 눈물

칵테일처럼 마셔버리면

어느새 그리움은 취하는 꽃꿈이네

 

나뭇잎은 바람 편에 말을 걸어오고

안개등은 추억처럼 내 곁에 머물러요

쓸쓸히 떨어지는 꽃잎이, 꽃향기가

빨간 연인의 입술처럼 스치우면

하염없이 쓸려가는 내 사랑의 꽃 무덤이여!

 

희미한 가로등 불빛 아래

참을 수 없도록 젖어가던 두 가슴

, 비에 젖은 연인아! 어떻게 잊을까

그 밤의 전율처럼 창밖에 비가 내리면

빗속을 걸으며 잃어버린 우산을 찾네

 

창가에 내리는 비는

연인의 걸음처럼 와요

유리구두 신고

꽃 같은 연인의 머리결처럼 내려요.

 

 

 

한가위를 맞이하는 마음과 마음

 

사는 일에 묻혀서

안부를 묻기에도 바쁜 나날들, 그러나

반가운 얼굴로 다시 만날 수 있는 명절의 기쁨

부푼 마음에는 벌써부터 보름달이 뜹니다

 

고향의 단풍은 여전히 곱겠지요

이웃과 벗들이 정겨운 그곳엔

나이를 먹어도 어릴 적 꿈이 살아 숨 쉽니다

고향의 들녘은 언제나 풍요로운 가슴

 

작은 선물을 준비하고

정성스레 가을꽃 한 송이의 리본을 달 때

좋아하실까? 라는 생각

엷은 미소 지으며 설레는 마음

그동안 소홀했던 인사도 함께 포장합니다

 

송편처럼 둥글게 빚은 마음으로

우애를 다지며 모나지 않게 살기를

기울면 차고, 차면 또 기운다는

삶의 이치를 깨닫기까지 너무 많이 써버릴 시간들

열어야 비로소 담을 수 있음을, 안을 수 있음을

이제는 알게 하시어

보름달처럼 멀리 비추는 겸허한 빛으로 살 수 있기를

 

생각하면 그립고

그리우면 눈물나는

아버지, 어머니, 부를수록 부르면

어두운 한켠이 서서히 환해지고

비좁던 마음도 넓게 넓게 밝혀주시는

보름달처럼 변함없는 사랑

그 크신 사랑으로 맞이하는 한가위가 마냥 행복합니다

 

 

 

중년에 사랑이 온다면 어쩌겠습니까

 

수정같이 맑은 눈빛은 아니더라도

허기진 가슴에 단수 같은 한 모금으로

뜨거운 태양은 아니더라도

그늘진 표정에 한줌 햇살 같은 포근함으로

 

꽃처럼 어여쁘진 않아도

시든 풀잎에 아침 이슬 같은 촉촉함으로

세련된 감각은 아니더라도

수수한 자태에 여유로운 미소로

 

부담스럽지 않는 옷매무새에

함박꽃처럼 피어나는 웃음으로

어제의 긴장을

내일의 위안으로 풀어주는 편안함으로

 

과거를 몰라도 좋고

미래를 염려하지 않아도 좋을 사람이

새로울 것도

상쾌할 것도 없는 반복의 하루 안에

 

아무도 찾아 올 줄 몰랐던

인생의 정오를 지난 중년의 어느 날

 

빈터에 홀로 핀 들꽃, 들꽃처럼

간밤에 이슬방울로 맺은 인연처럼

 

중년에 사랑이 온다면 당신은 어쩌겠습니까

 

 

 

중년에 찾아 온 당신

 

당신!

어디서 무얼하다

이제서야 날 찾아 오십니까

 

짝 잃은 철새처럼

이리저리 방황하다

아직도 난 둥지가 없습니다

 

오후의 쓸쓸한 가슴으로

당신이 올 줄 알고

많은 것들을 준비해 두었습니다

 

끝없이 외롭고

멀기만 한 여정의 길

이제 중년의 역에서 당신을 만났습니다

 

그리움과 외로움의 세월 속에서도

아무도 자리하지 않던 가슴

이제 당신과 함께 갈등 없이 살겠습니다

 

당신!

거친 손이지만

내 손을 잡아 주지 않겠습니까

 

당신의 희망의 손과

나의 인고의 손을 잡고

아늑한 둥지를 틀고 싶습니다

 

중년에 찾아 온 당신

중년에 찾아 온 소중한 당신

당신을 영원히 사랑하겠습니다

 

 

 

중년이라고 이러면 안됩니까

 

중년이라고 흔들리면 안됩니까

마음조차 세월은 아닐진대

벌거벗은 바람에

흔들리는 마음을 어찌합니까

 

그리움 반

아쉬움 반

미련 반

희망 반

안아줄 사랑도 반은 남았습니다

 

중년이라고 꽃이 피면 안됩니까

세월조차 마음은 아닐진대

뜨거운 가슴에

때깔 고운 꽃바람이 일렁입니다

 

그대 꽃에 머물다

가장 예쁜 빛깔을 보고

가장 고운 향기를 맡고

스스로 황홀하여 돌아서지 못합니다

 

바람도 부는 걸 잊은 채

단잠 든 그대 숲에

노닐다 가는데

 

뭉클한 가슴 볼을 부비며

오늘 밤 그대와 나

별로 뜨는 꿈을 꾸면 안됩니까

중년이라고 이러면 안됩니까

 

 

 

중년의 가슴에 비가 내리면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그대, 푸쉬킨의 가슴이여

사랑이 그대를 아프게 할지라도

눈물을 흘리거나 상처를 받지 말라

 

중년의 가슴에 비가 내리면

삶도 사랑도

고요한 슬픔과 애잔한 아픔이 되어

청춘을 거처 온 인고의 가슴에

성숙한 눈물이 빗방울처럼 맺힙니다

 

뜨거운 가슴앓이에도

지난날의 삶은 엄숙했고

사랑은 밤마다 꽃잎으로 쌓여가는

외롭고도 아름다운

나만의 야상곡이 되었지만

 

중년의 가슴에 비가 내리면

인내의 끈으로 묶어놓은

고독한 연민의 정이

꿈틀거리며 풀려나와

빗물에 바닥까지 젖어들고

 

때론 끝없이 내리는 빗줄기에

가슴 둑이 무너져

조용히 눈을 감고

밤새 소리 없이 흐르는

깊은 강물이 되기도 합니다

 

살다가

얼굴을 붉혀야만 하는 삶이

때론 마음을 아프게 하고

상처를 피할 수 없어

후미진 가슴 숨어서 울어야 했던 눈물

 

중년의 가슴에 비가 내리면

삶도 사랑도

어느듯 빗물처럼 흘러내려

차라리 덧없는 가슴 닫고

철석이는 푸른 바다에

홀로 떠도는 빈 배를 띄웁니다

 

 

 

중년에 부는 바람

 

봄에 피는 꽃만 꽃이 아니고

한 여름 태양만 뜨거운 것이 아니라오

 

중년에 부는 바람이라고

바람마저 중년은 아니겠지요

 

중년에 부는 바람이기에

쉽게 잠재울 수 없는지도 모른다오

 

중년에 부는 바람에도

꽃이 피고

새가 나는 걸 어쩌겠어요

 

중년에 부는 바람은

바람 탓이 아니고

중년 탓도 아니라오

 

술은 취해야 제 맛이고

노래는 불러야 제 맛이고

행복은 누려야 제 맛이고

기분은 좋아야 제 맛인데

바람도 불어야 제 맛인걸요

 

불지 않는 바람은 바람이 아니지요

 

중년에 부는 바람은

바람 탓이 아니고

중년 탓도 아니라오

바람은 불어야 제 맛,그 탓이라오

 

중년에도

바람이 부는 걸 어쩌겠어요

그저 모른 척 할 뿐이라오

 

 

 

중년이라고 그리움을 모르겠습니까

 

햇살 고운 아침에

오후의 쓸쓸한 바람을 알지 못했고

준비 없이 나선 길에서

비를 만날 줄 몰랐다면

이것이 곧 인생이 아니겠습니까

 

한줄기 실바람에도

홀로 앉은 마음이 불어대고

소리 없는 가랑비에

빗장 지른 가슴까지 젖었다면

이것이 곧 사랑이 아니겠습니까

 

많은 것들이 스쳐가고

잊을 만치 지나온 여정에서

저 강물에 던져 버린 추억들이

아쉬움에 또 다시 출렁일 때

중년이라고 그리움을 모르겠습니까

 

흐르는 달빛 따라 돌아오는 길에

가슴 아팠던 눈물

길가 모퉁이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는 돌부리를 적시고

불현듯 걸음을 세울 때

중년의 가슴에도 눈물이 고입니다

 

삶은 저만치 앞질러 가는데

중년은 아직도 아침에 서서

석양에 걸린 노을이 붉게 타는 이유

그 이유로 하여 가슴이 뜨겁습니다

 

 

 

중년에 마시는 술

 

그 바다 건너와서도

잠시 고르지 못하는 호흡으로

술잔을 듭니다

 

젖은 길에 누워 흐르는

노래 한 자락

술잔 속에 부어 마시면

 

손에 든 잔만으로도

어깨가 무거워

이 밤 말고도 많은 밤들이

날 하찮게 만들더이다

 

그 세월 달려와서도

잠시 앉지 못하는 척박함이

쓴 술잔을 기울이지만

 

바지자락 붙들고 놓지 않는

사람의 애와 증에

걸은 걸음만큼이나

등 뒤에 선 그림자도 무겁더이다

 

어둠이 내 세월만큼

밤길의 절반을 걷고 있습니다

 

술이 잠을 청하면

눈을 감고

 

술이 고독을 부르면

가슴을 닫고

 

술이 사랑에 취하면

따르다 만 사랑에 잔을 채울것입니다

 

가슴으로 마시는 중년의 술은

사람이 술에 취하는 것이 아니라

술이 사람에 취할 때가 있습니다

 

 

 

중년에 당신과 사랑을 했습니다

 

어디선가 스친 듯한 모습

낯익은 말투 어색하지 않는 분위기에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마음을

서로 느꼈던 것일까요 당신을

 

사랑하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두려움과 행복으로 물밀듯 밀려올 때

두려움보다 당신을 사랑하는 감정에

솔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어디선가 스친 듯한 모습에서

당신을 짐작하고

낯익은 말투에서

오랜 연인 같은 편안함을 느꼈고

어색하지 않는 분위기에

다가갈 수 있는 걸음이 쉬웠습니다

 

곁에 있어도 없어도

사랑을 표현하지 못하고

눈빛만 바라보는 것은

원숙한 세월 탓이라 할지라도

여름날의 태양보다 뜨거움을 나는 압니다

 

더 이상 없을 줄 알았던

예감치 못한 사랑은

큰 그 무엇을 되찾아 주었고

꿈틀거릴 수 있는 가슴이 있음을 알게 한

기막힌 한편의 러브스토리였습니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눈 속에서 뒹굴며 웃기도 하고

비가 오는 날에는

비처럼 내리는 가슴을 쓸어안고

아무도 몰래 이별 연습을 해야 했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마음

그것만으로도 당신과

나는 사랑하기에 충분했지만

절절한 가슴 억누를 수 없음을 알았을 때

걷잡을 수 없는 두려움이 함께 찾아왔습니다

 

보내야 하고

떠나야 하는 시간 속에서도

오직 사랑만으로 행복했던 날 들

중년에 당신과 사랑을 했습니다

 

 

 

중년에 맞이하는 봄

 

봄은 겨울을 거쳐야 꽃이고

꽃은 당신을 스쳐야만 사랑인가 봅니다

 

백설의 언덕에 묻어 놓은 많은 이야기들

또 다시 그리움에 눈꽃이 필 때

꽃샘추위에 매달린 눈물

마저 익어야 향기인가 봅니다

 

잊을 만치 지나온 여정의 뜰에

철없던 시절의 꽃은 계절 따라 피고

철새도 둥지가 그리워 돌아왔습니다

 

꽃과 사랑의 향기에 춤추던

삶의 뒤안길로

많은 봄이 스쳐가고, 또 스쳐가고

뜨거운 열정도 일치감치 지나갔지만

 

아직도 따스한 가슴 식을까

두 손으로 움켜쥐고 걸어오는

중년에 맞이하는 봄

 

여전히 계절의 꽃이 아름답고

새삼 바람이 반갑고

날마다 정이 든 사람이 고마워

입을 맞추고 가슴 부비고

당신의 풍경에 물든 사랑이고 싶습니다

 

봄은 겨울을 거쳐야 꽃이고

꽃은 당신을 스쳐야만 사랑인가 봅니다

 

 

 

중년이라고 사랑을 하면 안됩니까

 

무뚝뚝하던 가슴을 넘어

월담을 한 당신 때문에

나의 잠이 가루가 되었습니다

 

이리 저리 뒤척여 봐도

잠을 부수기에 충분한 모습

눈을 씻어도

눈을 감아도

 

다가 갈 수 없는 나의 밤과

다가 올 수 없는 당신의 밤이

슬프도록 조각 난 달빛으로 흘러도

 

오직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어둠의 긴 터널을 지나

오아시스를 찾아 헤맬 때

 

삶에 익숙해진 차돌 같던 가슴이

포근한 당신 품에서

고스란히 부서질 것 같습니다

 

예감치 못한 사랑의 희열만큼이나

두려움과 갈등을 감당키 어려워도

애써 모른 척 하는 가슴엔

한 가닥 불같은 청춘이 남아 있습니다

 

아름다움속의 편안함과

연륜속의 원숙함과

때 묻지 않은 순수한 당신의 모습은

은하의 하얀 별빛으로 흘러

 

지우려 해도

지우려 해도

도무지 지울 수가 없습니다

 

밤마다 매달린 눈물의 대화가

먼 훗날 후회와 아픔이 되어

서로의 행복을 유린한다 해도

나는 당신을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이런 당신과

중년이라고 사랑을 하면 안됩니까

 

 

 

중년의 그 사랑에는 상처를 피한 흔적이 있다

 

당신을 만난 적이 없어야 하고

당신에 대해 아는 것이 없어야 하네

 

한때는 당신과의 사랑을

기도하고

애달파하고

가슴 속 진주가 되어 살았고

그런 당신의 바다에 떠 있는

하얀 샛별이었다네

 

한순간 진실로 행복한 꿈이었네

꿈인 줄도 모르고 꿈을 꾸는

상처를 피한 한때의 사랑이 그러했네

 

만난 적이 없어야 하고

아는 것이 없어야 하는 당신과의 사랑을

아직도 꿈을 꾸고 그리워할 때

사랑은 상처를 피하여

참으로 두꺼운 옷을 입고 살아야 하네

 

겹겹이 껴입어도 춥기만 한 살갗으로

비수 같은 바람이 불면

아무도 모르는 비밀한 방

그 문을 열고 들어가 사랑을 만나고

고독으로 푸른 눈물을 보낼 때

 

또 다시 가슴을 굳게 잠궈야 하는

침묵은

당신을 사랑한 적도 없어야 하네

 

슬프고도 슬픈 작별은

눈을 감고 삼켜야 하는 눈물과

가슴으로 울컥 잠긴 울음뿐이라네

 

당신을 만난 적이 없어야 하고

당신에 대해 아는 것이 없어야 하고

당신을 사랑한 적도 없어야 하는

 

중년의 그 사랑에는

상처를 피한 흔적이 있다.

 

 

 

사랑은 중년이라고 피할 수 없다

 

비가 언제 거리를 두고 내리던가

시간도 없이, 간격도 없이

우산을 쓴다고 내리는 비를 막을 수 있던가

다만 피할 수 있을 뿐이지

 

햇살이 닿지 않는 곳이 있던가

깊은 계곡 우거진 숲으로

천지 같은 가슴, 그 후미진 곳에

스스로 그늘을 만들 수밖에 없었지

 

사랑이 어디 나이를 묻고 오던가

한 겹 또 한 겹, 눈 깜짝할 사이

한마디 허락도 없이

유수 같은 세월이 저 홀로 먹었을 뿐이지

 

사랑이 중년이라고 비껴가던가

걸음이 바빠도 차마 다가갈 수 없고

가슴이 넘쳐도 끝내 담을 수도 없는 사랑

눈물을 흘리며 아무도 몰래 가슴에 묻었을 뿐이지

 

 

 

중년에 떠나는 여행

 

말없이 왔다가

말없이 간 것에 대해

의미였다가

무의미로 돌려진 것에 대해

쓸쓸함이란 언제나 그렇듯이

반쯤은 마음을 쓸고 지나간다

 

빈 곳의 공허함이란

색다른 풍경을 채색하기보다

남겨진 여백을 마저 그려내고 싶은

정오를 막 지난 생의 연민이리라

 

고독함과

아주 가끔은 철저히 외로운 것에 대해

정체를 알 수 없는 허전함에 대해

지난 것들을 되짚어 보고

또 다른 내일이 염려되어 질 때

적당히 취한 술기운에 기댄

용기를 빌리고 싶은 날 들

홀로 여행을 떠나고 싶다

 

무엇으로도 털어낼 수 없는 외로움이

가슴을 저미게 만들고

말없이 간 것에 대한 미련과

무의미로 돌려진 것들이

잠시라도 마음을 아프게 한다

 

꿈속에서도 잠들지 않는

생의 애착이어도

내일을 적당히 무의미하게 만드는

포기를 배우고

또 다른 아침

해가 뜨지 않아도 좋을

세월 밖의 시간 속으로

중년엔 홀로 여행을 떠나고 싶다

 

 

 

중년의 겨울밤

 

꽃 지고

낙엽도 진 빈터에

초대하지 않은 썰렁한 바람이 지나면

 

깊은 밤 비집고

자작자작 소리 없이 들어서는

가슴 후비는 쓸쓸함에

중년의 겨울밤은 외롭기만 합니다

 

바람 앞에 등잔 같은

아련한 그리움

앙상한 가지에 눈꽃으로 피고

 

달빛 젖어 더 하얀 눈꽃이

바람에 날리어 가슴까지 덮어도

저린 그리움 가눌 길 없습니다

 

옷고름 풀지 못한 사랑

또 다시 그리워져도

한낱 눈물 속에 흐르다 말

겨울강에 비치는 초승달 같은 사람이여!

 

꿈에라도 나룻배 되어

차가운 강을 건너는 중년의 겨울밤

여름 하늘을 덮고 잠을 청해도

춥기만 한데

 

차라리 눈을 감고

꿈에라도 시린 가슴 녹이고 싶은

중년의 겨울밤은 길기만 합니다

 

 

 

중년에 사랑해 버린 당신

 

중년에 당신을 마주하고

유혹의 바람을 재우지 못한 채

사랑의 이유가 돼 버린

새벽 끝에 반짝이는 별 하나

그만 아린 가슴에 심고 말았습니다

 

길이 아닌 길이 없고

사랑 아닌 사랑이 없다 해도

이유 없는 이유로 하여

아침이 오기 전에 떠나야 했던

첫 하늘이 내린 새벽이슬 같은 당신

 

당신을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그 이유에 복종할 수밖에 없었던 운명

그리고 그 운명 앞에서

당신과 나는 서로에게

이젠 그리움의 이유가 되고 말았습니다

 

어느 땐 바람처럼 사라지고 싶었고

어느 땐 바람처럼 불고도 싶었지만

사라질 수도

또다시 불수도 없었던

중년에 사랑해 버린 당신

 

어느 것도 될 수 없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당신 향한 꿈길마저

하얗게 탈색된 슬픔으로

밤은 언제나 철저한 아픔이었습니다

 

당신과 나 사이에

밤마다 높은 울타리를 세우고도

스스로 그 울타리를 넘어가는

알 수 없는 사랑

알 수 없는 마음

 

방황하는 거리엔

눈이 내리고

비가 내리고

그 미로의 늪에서 차라리

돌아 올 수없는 방랑의 길을 떠나고 싶습니다

 

당신을 사랑할 수밖에 없었듯이

당신을 보낼 수밖에 없었던

새벽 끝에 매달린 이슬 같은 당신

다시 아침이 오고, 우린

서로에게 외로움의 이유가 되고 말았습니다

 

 

 

눈 내리는 아침에

 

밤새 잠겼던 마음 깨어나

문득 창문을 열면

천사들이 다녀간 하얀 겨울을 만납니다

욕심과 불만으로, 미움과 증오로

뒤척이고 또 뒤척이던

겨울보다 시린 사람의 가슴이

알지 못하는 시간에도

하늘은 밤새 눈가루를 뿌리고

온통 그 순수한 빛으로 세상을 덮고 있습니다

 

어느 곳 하나 가리지 않고

골고루 내리는 천상의 마음

그리하여 결국 모든 것을 덮고 마는

아름다운 용서를 이 아침 바라봅니다

무엇을 욕심내며, 무엇을 탓하며

그 누구를 원망할 것인가요

어제 미웠던 사람과

오늘은 손을 잡고 하얀 눈길을 걷다 보면

등불 없이도 길을 밝혀 주는

달빛 같은 저 하얀 빛으로, 그 길에서 또

소중한 등불 하나 가슴에 간직합니다

 

헐벗은 가슴들을 모두 덮어

온기를 채워주는 하얀 옷

그러다 어느새 이 세상 끝까지 녹아

목마른 그 무엇에라도

한 모금의 물이 되어 스미는

하얀 눈, 하얀 마음

행여 누구를 용서치 못해

미움이 쌓여 갈지라도

그 허물 모두 내 것인 양 하얗게 덮어

마지막 가슴까지 감싸 줄 일이라고

그리하여 봄

당신과 내가 분명 꽃으로 피어날 것이라고

 

 

 

12월에 꿈꾸는 사랑

 

12월엔 그대와 나

따뜻한 마음의 꽃씨 한 알

고이고이 심어두기로 해요

찬바람 언 대지

하얀 눈 꽃송이 피어날 때

우리도 아름다운 꽃 한 송이

온 세상 하얗게 피우기로 해요

 

이해의 꽃도 좋고요

용서의 꽃도 좋겠지요

그늘진 외딴 곳

가난에 힘겨운 이웃을 위해

베풂의 꽃도 좋고요

나눔의 꽃도 좋겠지요

 

한 알의 꽃씨가

천 송이의 꽃을 피울 때

우리 사는 이 땅은

웃음꽃 만발하는 행복의 꽃동산

생각이 기도가 되고

기도가 사랑이 될 때

사람이 곧 빛이요 희망이지요

 

홀로 소유하는 부는 외롭고

함께 나누는 부는 의로울 터

말만 무성한 그런 사랑말고

진실로 행하는 온정의 손길로

12월엔 그대와 나

예쁜 사랑의 꽃씨 한 알

가슴마다 심어두기로 해요

 

 

 

 

비오는 거리 혼자는 외로워요

 

비오는 거리

우산도 없이 비를 맞으며 혼자 쓸쓸히

걸어 본 적이 있나요

 

훌쩍 가버린

연인이라도 만날 것 같아 두리번거리며

우연이라도

한번쯤 꼭 만나고 싶다는 비에 젖은

촉촉한 생각을 해본 적이 있나요

 

잊을 수 없는

그 사랑이 그리워 우산속 팔짱 낀 다정한 연인을

부러운 시선으로 물끄러미 바라보다

빗물처럼

흘러간 옛 추억에 젖어 본 적이 있나요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젖은 노래에 걸음을 멈추고 한참을 듣다가

모두 내 얘기 같아서 눈물을 글썽이며

가슴 울먹거려 본 적이 있나요

 

비오는 거리

갈 길도 잊은 채 무작정, 무작정 걷다가

가던 길을 되돌아 올 때

문득 외로움에

소름끼칠 한기를 느껴 본 적이 있나요

비오는 거리 혼자는 외로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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