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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詩 같은 삶을 위하여
☞ 문학의 뜨락

정월대보름에 관한 시 모음

by 石右 尹明相 2022. 2. 14.

 

 

정월대보름에 관한 시 모음

 

대보름 - 박경리

 

보름 전야

불 끄고 잠자리에 들다가

환한 창문

보름달을 느꼈다.

 

대보름 아침

연탄을 갈면서

닭 모이를 주면서

손주 네 집에서는 오곡밥을 먹었을까

자역질 하듯

시시로 떠오르는 생각

 

차타면 몇 십 분에 가는 곳

멀고도 멀어라

글을 쓰다가

말라빠진 날고구마 깨물며

슬프지 않는 것이 이상했다

 

 

대보름달을 보며 / 강세화

 

떳떳한 마음으로 소망을 외고 빕니다

가슴을 채우고 남은 여백이 선선하고

내놓아 부끄럽지 않은 속살이 떠오릅니다.

 

대보름달을 보며 달에게 물어봅니다

거짓과 위선이 얼마나 우울한지

빛나고 눈부시지 않은 대답이 들려옵니다.

 

  

달맞이 - 김소월

 

정월 대보름달 달맞이.

달맞이 달마중을, 가자고!

새라 새 옷은 갈아입고도

가슴엔 묵은 설움 그대로,

달맞이 달마중을, 가자고!

산 위에 수면에 달 솟을 때,

돌아들 가자고 이웃집들!

모작별 삼성이 떨어질 때,

달맞이 달마중을 가자고!

다니던 옛 동무 무덤가에

정월 대보름날 달맞이!

 

 

정월대보름 / 고철

 

서툰 쟁기질에도 더는 질주하지 못한 공장 하늘에

고무다라만한 달이 뜬다

어디서 구해 왔는지 빈 윤활유 깡통에

형은 벌써 예리한 야스리로 구멍을 내고 있었다

 

창틀에 채인 바람

누군가 깁고 계실지도 모르는 허울진 옛이야기를

사철 내내 따라다니던 종기자국처럼

어머니 보고 계실

겨울달력 같은

머문 달빛에 불을 지폈다

 

가생이 불꽃이 수평을 이루면

깡통을 닮은 세상은 온통 달빛이 되었다

국물 같은 부적이 내 나이를 낳았 듯

이름을 낳고 호적을 낳고 아버지를 낳고 낳고 낳고

무디고도 아린 큰 길이 보였다

친구가 보이고 학교가 보이고 내 누이가 보였다

누군가의 산소도 보였다

 

일 년 열두 달 만 한 불효를 태운다

몸피 곳 곳 들쑤셔 도는 나의 체온도 태웠다

달맞이 훨훨 타는 밤 병들지 말자고

이빨 물어 내뱉은 고시레 몇 점

세상에서 가장 환한 달밤이었다

 

 

쥐불놀이 - 기형도

 

어른이 돌려도 됩니까?

돌려도 됩니까 어른이?

 

사랑을 목발질하며

나는 살아왔구나

대보름의 달이여

올해에는 정말 멋진 연애를 해야겠습니다.

모두가 불 속에 숨어 있는걸요?

돌리세요. 나뭇가지

사이에 숨은 꿩을 위해

돌리세요, 슬래

는 잠을 자고 있어요

헛간 마른 집 속에서

대보름의 달이여

온 동네를 뒤지고도 또

어디까지?

 

아저씨는 불이 무섭지 않으셔요?

 

 

정월대보름 - 손병흥

 

한 해 처음 시작하는 정월 세시풍속 맞이하여

오곡밥에 아홉 가지 나물 반찬 아홉 번 먹고서

초저녁 떠오르는 달 보며 소원 빌고 기원하는 날

 

비타민 무기질 미네랄 성분 영양소마저도 풍부한

지난 가을날 햇볕에 미리 말려둔 묵은 나물 진채로

귀밝이술 한잔 마셔 귀에다 상승 기운 생기 불어넣던

겨우내 부족했던 식이섬유 섭취 식욕 입맛 돋우던 추억

 

액막이연 높이 날려 연줄 끊어 액은 저 멀리 날려버린 채

늘 조심스레 경건함 삼가하고 배려하는 마음 더 가득해지도록

지신밟기 풍물놀이 쥐불놀이 줄다리기 뒤 달집 태우던 전통 풍습

 

 

대보름, 환하게 기운 쪽 - 손택수

 

대보름 뒷날 택배가 왔다.

나물과 부럼과 과일이

부산에서 일산까지 건너왔다.

찰밥은 먹었느냐 삐뚤삐뚤한 글씨와 함께

 

찰밥에 빈속 채우고

찌그러진 사과 한 알 깎는데

사과, 찌그러진 쪽으로 씨앗이 없다

 

씨앗이 사과를 부풀게 하였구나

씨앗을 먹이기 위해서 사과는

한쪽으로 기우뚱 몸이 무거웠겠구나

 

씨앗을 놓친 달이 기운다

기운 달이 대보름

젖을 물린다.

부산에서 일산까지

택배로 건너온 달

환하게 기운 쪽에서 울컥

찡한 시장기가 치민다

 

 

강강술래 - 이동주

 

여울에 몰린 은어 떼,

삐비꽃 손들이 둘레를 짜면

달무리가 비잉빙 돈다.

 

가아응, 가아 수우월레에

목을 빼면 설움이 솟고.

백장미 밭에

공작이 취했다.

 

뛰자 뛰자 뛰어나 보자

강강술래,

 

뇌누리에 테이프가 감긴다.

열두 발 상모가 마구 돈다.

 

달빛이 배이면 술보다 독한 것,

기폭이 찢어진다.

갈대가 스러진다.

 

강강술래.

강강술래,

 

 

대보름달 - 이향아

 

아파트 베란다에 보름달이 찾아왔다

들판과 바람 속을 거슬러 오느라

달이 창백하다

달이 어색하다

보름달은 피고처럼 떠 있다

 

세상의 어디로도 갈 수 없어서

만민의 소원이 밀물 같아서

얼굴을 붉히고 귀를 막았는지

눈치를 보면서 덩두렇게 떠 있다

 

다 안다. 걱정하지 말거라.

동네 개들은 짖지 말거라

오늘 밤은 다만 대보름달을

넋 놓고 오래오래

바라만 보련다.

당신이신가

달이신가

대보름 달이신가

미안해서 미안해서

올려다만 보련다.

 

 

정월대보름 / 정양

 

머슴 집 아이들 부잣집 아이들

함께 어울려 밥 빌러 다니는 날

아이들 소쿠리에 집집마다

아낌없이 밥을 퍼주는 날

오늘은 하루에 오곡밥 아홉 번을 먹는 날이다

오곡밥이 별거냐, 집집마다 퍼주는 밥을

소쿠리에 섞어 먹으면 오곡밥이지

절구통 위에 걸터앉아서 개하고도 나눠 먹는다

 

있는 집이나 없는 집이나

이렇게 골고루 나눠 먹으면 이 세상에

걱정할 게 뭐 있겠냐고

다가온 보릿고개보다 더 뒤에 다가을

더위나 걱정하자는 듯이

 

내더우내더우내더우

니더우내더우맞더우

 

더위 팔아먹고 되파는 재미로

코앞에 다가온 보릿고개 짐짓 잊어보는

넉넉한 정월대보름

 

 

 정월 대보름 / 석우 윤명상

 

올해

정월 대보름달은

평소보다

18% 더 큰 슈퍼문이래.

 

아무래도

정월 보름달이

그리움으로 부푼

내 마음을 읽었나 봐.

 

나의 그리움을

표현하려면

평소의 크기로는

감당할 수 없을 테니까.

 

 

빗눈 내리는 정월 대보름 / 보하 이문희

 

한 겨울 모진 가뭄 씻어내고

빗눈 내리는 정월 대보름 밤

운수대통 만사형통 온 가족

건강을 담보한 행운을 빈다

 

雨水에 얼음 녹드시 새 싹

땅위의 더러운 것들 씻어내고

빨간 꽃망울 수줍은 젓꼭지

방글방글 피었으면 좋으련만

 

아직 채 녹지 않은 시냇가

살얼음 속 청량한 물소리 반주에

버들치가 꼬리 흔들며 봄맞이

파아란 하늘을 날고 싶은데

 

한 발만 잘 못 내 디디면

천애 낭떠러지 절벽 끝

어디가 바닥인지 분간 못하는

깜깜한 철책선 사슴 한 가족

 

칠천만 가련한 민족 혼

일억사천만 두 손 모아 비는

중천에 높이 뜬 종달새 노래

목 타게 그리운 봄이 오는 소리

 

 

정월 보름달 / 아연 오인숙

 

일기예보에 흐렸어

올해는 '달 보기 힘든 다더라'

포기를 했다

달이 달이지 뭐

언제나 달은 뜨는 것

 

하늘을 보았다

달이 떠 있다

동그란 둥근 달이 아닌

약간 일러진 모습

나뭇가지 걸렸어, 힘겨워한다

 

세상 사람들 소원이 무거워

다 들어 줄 수 없음에

얼굴이 일그러졌나 보다

나마저 무겁게 할 수는 없어

 

얼기 설깃 엉킨 전깃줄에

달을 걸어 두고 돌아왔다

 

 

대보름 귀밝이술 / 태안 임석순

 

정기(精氣)를 나누고

부럼 깨고 정()을 나누는 달

조상께 차례(茶禮)

제사 지주(祭祀之酒) 올렸네

 

아침 밥상머리

남녀노소 귀밝이술 마셔라

아이들은 입술, 술 묻혀

귀 밝아라, 눈 밝아라.”

덕담 되어주노니

함께 밥자리, 술자리

가족 화평, 화목 되어라

 

고유 전통 영원할 지니

우리의 멋! ~~게 되살려

옆집, 앞집, 뒷집 이웃 동네 돌며

()을 나눠 보자꾸나

오곡백과 조화되어

지화자! 좋을 씨구~

나누고 나누어라.

 

 

정월 대보름날 / 김정택

 

휘영청

보름달의

소식이 깜깜하다

 

구름이

시샘하여

온종일 우는걸까

 

허공의

문 활짝 열어

너를 찾아 가련다

 

바람은

오고 가며

저리도 가볍는데

 

해마다

쌓인 염원

무게만 더해가네

 

중생의

아둔한 소원

달님에게 빌고 빈다.

 

 

내 더위 사가라 / 전영금

 

정월 열 나흗날

오곡밥에 아홉 가지나물로

겨울 기운을 떨어내고

보름날 아침이 오면

일어나지도 않은 친구 이름 부르며

내 더위 사가라

 

친구는 깜짝 놀라

속상해하며 또 다른 친구한데 가서

이름을 부르며

내 더위 사가라 더위를 판다

그걸 보고 내가 너무 야비했나

나도 속상해했다

 

더위를 사간 친구는

더위를 또 다른 친구에게 팔기 위해

골목길을 누벼야 했던 친구들

이렇게 보름날 더위를 팔고 사다 보면

어느새 꽃피는 봄이 오곤했다

 

내 더위 사가라

올해는 누구에게 팔까

지금 생각해 보면 웃음이 절로 나오지만

보름날엔 달을 보고 네 이름 부르며

친구야 미안했다

올해는 네 더위 내가 사갈게...

 

 

정월 대보름 밤 / 유등자

 

꽃갈모자 상모 머리 춤추는

풍물단 추동리 사람들

장구 징 꽹과리 신나게 두드려 준다

 

대보름 밤 장독대 촛불 켜 놓은 고사떡

시루채 들고 나와

 

추동 골 나무 어른 가랑이 밑에 놓고

백 년 허리 새끼줄에 붉은 고추 달아주고

논농사 풍년에 백 살까지 살겠다고

 

비나이다 비나이다

아녀자들 삼삼오오 줄을 지어

두꺼비 같은 아들 하나 낳으면 좋겠는데

은하수 절구 찧는 달빛 아래 시는 흐르고

무명실 타래 꼬아놓고

고사 올리고 풍장 치고

 

귀 밝은 술 마시며 기우는

정월 대보름 밤 축제

논두렁에 집 불 깡통

불씨들이 솟아오르고

 

온 마을 평안과 소원 기원하며

역풍에 갈 곳 잃은 한반도 아픔 설움

백 살 나무 어른 혼령님께 두 손 모아...

 

 

대보름 / 노정혜

 

둥근달이 두둥실

동산에 올라 소원을 빌었던 대보름

봄이 오면

농사일에 힘들라

오곡밥에 말려둔 나물 반찬

보름날에는 하루 5식을 먹고

힘을 채우라 힘을 채우라

 

달님께 빌고 빌어

걱정 근심은 없다

동네마다 잔치

집 불놀이 윷놀이

그네 뚜기

 

지금은

대보름이 외로운 도시

교회에서

오곡밥에 나물 반찬 과일

대보름이 행복하다

 

 

정월 대 보름날 / 허정인

 

오직 하나 둥근 달 속에다

어릴적 놀던 동무들 묻어 놓았지

 

영옥이 향옥이 홍자 미숙이

시집가서 죽은 그 친구도

가슴 속에서 유일하게 빛나는

그 맑던 달빛 그 맑던 눈동자들

 

달도 배부르고 우리도 배부르던

정월 대 보름날

 

오늘은

묻어둔 그리움들 캐어 볼 거야

바닷물도 달빛으로 춤추며 놀던

그 신비

그 아름다움도.

 

 

대보름 / 김재덕

 

관솔을

넣은 깡통 횃불을 돌리다가

때때옷 불똥 튀고 대갈빡 커진 혹에

아이고 어찌할까나

보름달이 웃는다

 

나물을

걷어다가 가마솥 비벼 먹고

살얼음 식혜 맛에 조상님 부러울까

부엉이 으슥한 울음

하얀 눈썹 설렌다

 

 

보름놀이 / 이원문

 

하나 둘 그렇게 슬며시 가버린 날

그날은 갔어도 놀이는 남아 있다

밝음에 숨은 놀이 누가 찾아 데려 올까

보름달에 소원 비는 어머니가 찾아 줄까

 

방 안에 등잔불 대청마루에 호야등불

대문 밖 마당 보름달에 환하고

이 보다 더 밝은 것은 달 보는 마음이었다

논가에 냇가에 떠들썩대는 아이들

 

한낮 제기 윷놀이에 그리 떠들어 대더니

밤 되니 밥 훔치고 그 어둠에 짚불 놓고

돌리는 깡통 불이 보름달만이나 할까

성화불 보는 아이들 싸움박질에 울고 웃는다

 

 

정월 대보름의 추억 / 이재환

 

정월 대보름 때면

뒷산에 올라가

관솔을 준비하고

통조림 빈 깡통으로

망우리 준비를 했지

 

보름달이 둥글게

떠올라 환하게 비추면

오곡밥을 일찍 먹고

집 앞 논밭으로 나가

망우리를 돌렸지

 

논에 불을 지펴놓고

빈 깡통에 숯덩이와

관솔을 넣고

망우리를 돌리던

그 때가 생각난다

 

보름달과 망우리

불빛이 어우려지고

빙빙 돌리다 하늘 향해 던지면

불덩이가 흩어져

장관을 이룬다

 

망우리가 끝나면

쥐불 놓기도 하고

풍년을 기원하는

달집태우기로

온 동네가 들썩 됐지

 

정월 대보름날이면

이웃집 다니며

오곡밥 얻어먹고

망우리 싸움 놀이

그때가 그립고 생각난다

 

 

정월 보름날 / 장종섭

 

작년 대보름에

떠올랐던 복스러운

그달이 또 뜨면 좋겠네

 

왜냐하면

빌고 빌었던 나의

잘못과 소원을

올 보름에도 사정하면

 

마음 약하여

외상을 주시는

슈퍼 할머니 같기

때문이다.

 

 

정월 대보름날 / 김원규

 

오곡밥과 묵은 나물 하나하나에

어머니의 정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으니

겨울 동안 잃었던 입맛을 되살려주는

어머니의 지혜를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대보름날 소는 나물까지 주니 신나고

개에겐 밥을 한 끼도 주지 않고 굶겼으니

보름날 개 팔자라는 속담이 생각납니다

 

저 동산 위에 둥근 달이 떠오르면

달을 보며 소원을 빌기로 해요

아마도 밝은 달님은 우리들의 소원을 들어주시겠지요.

 

 

대보름날에 / 이해병

 

월출산 위 붉고 둥근 보름달

이름 모를 새 한 마리

달빛을 흔들며 어디론가

날아가는데

 

이웃집 강아지는 꼬리 치며

사람들을 반긴다

 

수정 수 흘러가는 금강물 따라

어릴 적 친구들 함께 놀던 생각

 

관솔 쥐불 윙윙 돌리고

오곡밥 사이좋게 먹으며

부럼 깨물어 나누던 우정

 

휘영청 밝은 달빛 속에

모두 안녕하신지

지난 추억 살포시 꺼내보며

 

건강히 무탈하게

잘 지내시라고

안부 전하는 옛 친구의 마음

여기에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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