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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詩 같은 삶을 위하여
☞ 윤명상 목회 칼럼

군림하는 교회 [윤명상목사]

by 石右 尹明相 2008. 3. 21.

 

군림하는 교회

 

 

지금 한국의 기독교는

전반적으로 사회로부터 심한 배척과 질시를 받고 있다.

개인적으로 기독교를 싫어하거나 거부하는 수준을 넘어

집단화 조직화된 기독교 안티그룹으로 교회에 대한

비판의 전면에서 사회적인 여론몰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교회가 비호감 내지는 혐오집단으로 매도되는 현실은

각종 매스컴이나 인터넷,

그리고 차갑고 적대적인 여론에서 쉽게 발견된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 기독교가 받는 질타의 원인이

기독교에 대한 일반 사람들의 오해나 편견 때문이 아니라

그동안 교회가 세상에 보여준 탐욕스러운 이기적인 모습에 대한

당연한 결과라는 점에서 가슴이 아프고 답답하다.

아니, 분노하게 된다.

 

한국 교회는 본연의 사명인 구원의 문

스스로 닫는 우를 범하고 있다.

구원을 외치며 전도에 열을 올리면서도 그 관심과 열성이

오히려 부정적인 모습으로 비춰지는 데는

전적으로 교회의 책임이라 할 것이다.

 

한때는 한국의 기독교인 수가 12백만 명이라 했지만

지금은 그 수를 현재의 기독교인 규모로 이야기하는

목회자나 신자는 거의 없다.

대부분의 주요 교단들은 매년 교세가 줄어들고 있는데,

특히 청년층 청소년층 유년층으로 내려갈수록

크리스천의 감소는 심각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전체적인 신자의 감소는 분명 엄청난 충격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충격은 한국 교회가

전도해야 할 (세상)사람들로부터 신뢰를 잃었다는 것이다.

그것도 한술 더 떠 혐오의 대상으로.

 

작금의 이러한 형태는 교회의 종교권력에 대한

세상의 견제가 시발일 것이다.

여기에는 교회가 우리와는 다른 특별한 부류라는 이질감,

그리고 날로 확장되고 높아지고 웅장해지는 교회의 규모만큼 커지는

사회적 약자들의 허탈감과 배신감 등이 가미되어 있는 것이다.

수백억 원을 들여 건축하는 교회의 높이만큼

세상과는 허물 수 없는 담이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고아와 과부들의 보호자요

병들고 헐벗은 거지들의 친구이자 구세주이셨다.

한국 교회가 엄청난 자금을 불우이웃 돕기와 선교에 쏟아 부으면서도

칭찬은커녕 욕을 먹는 이유는 겉으로는

예수님을 이야기 하면서 예수님을 본받는 데는 시늉만 내고,

속으로는 교회당 건축과 편의시설을 내세운

각종의 호화시설에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면서 빚은 결과인 것이다.

 

물론 모든 교회가 그런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한국 교회들은(대략 80% 정도) 가난하며,

심지어 목회자 가족이 끼니조차 자체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교회들이

허다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기업화된 중대형 교회들이 물을 흐려 놓았다.

목회의 우선순위는 언제부터인가 교회건축으로 바뀌었고,

교회 건물을 건축하면 목회 성공했다는 자자한 칭찬이

후발 교회들에게 자극이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교회당 건축 붐과 풍요로운 교회의 외형을 바라보는 세상 사람들은

스스로 왕관을 쓰고 대중 위에 군림하는 종교권력의 실상으로

느끼고 있는 것이다.

교회의 고급화, 귀족화는 주님의 친구였던 그들을

결국 더 이상 친구로 남아있지 못하게 막는 꼴이 되어 버렸다.

 

한 때는 교회가 문화를 통해 세상과의 간격을 좁혀보려고 애도 썼다.

예컨대 열린예배며 CCM(contemporary christian music)

보급 등이 좋은 예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이었고, 이단적 요소와 말초적 접근으로

세상을 품기는커녕 오히려 거리는 점점 멀어짐을 느낀다.

 

그 이유는, 문제의 원인은 그대로이거나 더욱 확대되고 있는데

나팔만 분다고 될게 아니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의 상황을 음미해야 한다.

눈높이를 가장 낮게 하심으로

누구에게나 눈을 마주보실 수 있었던 주님을

지금은 어느 교회가 마주볼 수 있을까?

 

 

[윤명상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