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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詩 같은 삶을 위하여
☞ 윤명상 목회 칼럼

화 있을진저… [윤명상목사]

by 石右 尹明相 2008. 3. 21.

 

 

   ★ 화 있을진저…

 

마태복음 23장 15절에

예수님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향하여 책망하신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지난 봄에 있었던 일화이다.

필자가 담임하는 교회에 50대 후반의 여성 두 분이

예배에 참석했다.

그들은 자매간으로 동생은 이미 신앙생활을 하는 권사였고

언니는 난생 처음으로 교회에 나와 보는 것이라 했다.

동생은 언니를 전도할 목적으로 4시간 넘게 차를 타고 와서

교회로 데려왔던 것이다.

언니를 교회에 등록 시키고 동생 권사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그 날부터 2주 동안 그 부인은 저녁마다 퇴근길에 교회에 들러

필자와 성경공부를 하면서 기본적인 신앙생활의 지침들을 배웠다.

그는 몹시 만족해하며 교회에 나오게 된 것에 대해 자랑스러워했다.

그런데 3주째 되던 주일에 그는 교회에 나오지 않았다.

교회는 그 부인에게 줄 선물을 준비하고 기다렸지만

모습을 보이지 않은 것이다.

예배 후 전화 통화를 하고난 뒤에야 상황을 알게 되었다.

그는 미안하고 죄송하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교회에 나가게 된 것이 얼마나 기쁘고 자랑스러운지

가깝게 지내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나도 교회에 나가게 됐노라고

말했더니 교회 집사인 그 친구는 대뜸 어느 교회냐고 묻더란다.

그러더니 왜 힘들게 고생하려고 개척교회에 나가느냐,

내가 다니는 큰 교회로 가자며 설득을 하더니,

결국 주일날 아침에 일찍 데리러 오는 바람에

할 수 없이 따라갔는데 그 교회에 자신을 등록시키고

인사까지 시켜서 면목 없다며 전화를 끊었다.

 

탄식이 나왔다.

교인을 빼앗겼다는 세속적인 생각이나 피해의식에서가 아니라

한국 교회의 현주소를 보는 것 같아서였다.

예전, 어느 교계신문에 “명목상 그리스도인이 늘고 있다”는

특집기사 내용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상식 밖의 상황에 대해 수용해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빗나간 신앙윤리와 목회 정서가 더욱 가슴을 아프게 했다.

 

필자는 전도를 다니다가 교회를 다니는 사람을 만나면

의례히 그 교회의 좋은 일꾼이 되라거나

믿음으로 승리하라는 말을 해왔기에

“고생하니깐 개척교회 가지 말라”는 말에는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전도하면서 십자가를 회피시키고 취미활동 하듯

교회와 신앙생활을 외곡해서

인식시킨다면 그 영혼은 어찌 되겠는가.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주님의 책망처럼 안타까울 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가 한국 교회 전반에 걸쳐

자행되고 있기에 더 큰 문제다.

이름 하여 교인쟁탈전이다.

아무런 죄의식도 없이 버젓이, 그리고 당연한 듯

신자들을 빼돌리고는 사뭇 본인이 전도한양 떠벌린다.

목회자들도 알면서 묵인하고 오히려 은근히 부추기는 상황이다.

많은 교회들이 각종의 고급 편의시설로 사람들을 유혹하는  이면에는

수고나 희생 없이 편하게 문화 혜택을 보면서 교회에 다니려는

명목상 그리스도인을 양산하는 함정에 다름없다.

 

신앙생활, 곧 신앙으로 산다는 것은 주님을 따르며 주님을 본받고

주님의 분부하신 바를 행하며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신앙생활에서 고생스러움도 부담도 책임도 다 빼버리고

편의만 추구한다면 그것은 결코 믿음일 수 없다.

오히려 더 많이 일할 수 있는 교회, 더 많이 봉사하고

섬길 수 있는 교회를 찾아가는 것이 주님의 기쁨이다.

그리고 한 알의 밀알처럼 희생하기 위해서

교회를 찾는 믿음이 가장 절실한 때이다.

 

 

 [윤명상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