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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詩 같은 삶을 위하여
☞ 윤명상 목회 칼럼

교회의 심각한 빈부격차 [윤명상목사]

by 石右 尹明相 2008. 3. 21.

  

 

교회의 심각한 빈부격차

 

목사란 직임은 고유한 성직이자 사회적 책임을 요구 받는 지도층이다.

한 때는 인기 있는 직업의 상위권에 올랐고,

서울의 유수한 여자대학교 학생들의 선호하는 신랑감 순위에도

빠지지 않았다는 기록도 있다.

 

그러나 현재의 목회자의 생활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인터넷에 수없이 올라오는 교회에 대한 비난의 글들을 보면

모든 목회자들을 싸잡아 비판한다.

호의호식하고 자녀들을 외국에 유학 보내고

고급승용차와 주택을 소유한 막강한 권력자로,

월 수천만 원의 사례비와 활동비를 사용한다는 등의 고발성 글들이다.

 

그러나 그만한 부를 누리는 목회자가 몇 명이나 될까.

일반적으로 한국교회의 80%는 작은 교회, 혹은 미자립교회로 본다.

문제는 작은 교회(미자립교회)를 담임하는

목회자들과 부교역자들이다.

이들에 대한 정확하고 전체적인 조사 내용은 없지만,

막노동 등 부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목회자들을

우리 주변 곳곳에서 너무도 쉽게 볼 수 있다.

 

목회자가 직접 돈벌이에 나서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부인들은

예외 없이 생계를 위해 노동 현장을 기웃거릴 수밖에 없다.

목회자 부인들 중 전문직은 제외 하더라도 주로 식당일을 도와주는

단순노동이 가장 많은 것으로 보여 진다.

 

필자가 알고 있는 경우만 볼 때,

사모들은 슈퍼점원, 텔레마케터, 정수기회사 코디, 카드회사 영업사원,

유치원이나 어린이집 보모, 학원 통학차 운전,

심지어는 남편 목사와 함께 대리운전으로

밤을 꼬박 지새우는 이들도 있다.

목회자들의 부업실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어떤 이는 기념품 가게에서 주문받은 물건을 포장하거나

스티커를 붙이는 일을 하기도 하고, 오후 3시쯤부터 새벽 1시까지

아파트 골목길에서 붕어빵 장사를 하기도 한다.

이런저런 기술이 없는 목회자들은 주로 건설현장에서 막노동을 하거나

택배회사에서 밤을 새며 물건을 나르는 일도 하고 있다.

 

이러한 목회자들의 삶의 실상을 모두,

그리고 자세히 언급하기에는 너무도 벅차다.

그러나 최근에 생계를 위해 대리운전을 하던 개척교회 목회자가

사고로 숨졌다는 보도는 짚고 넘어갈 일이다.

이 개척교회 목회자의 불행한 사고가 있은 며칠 후

필자는 인터넷에서 자료를 검색하다가 우연히 그 사고 기사와

누리꾼들이 달아 놓은 답글을 보게 되었다.

 

그 답글들을 읽으면서 사건기사를 읽을 때 보다

마음이 더욱 슬퍼짐을 느꼈다.

아니, 개척교회의 실상과 목회자들의 열악한 생활에 대한

몰이해는 차치하고서라도 불행에 대한 동정이나 염려는 고사하고,

목사가 대리운전을 했다는 것에 대한 비난과 야유가

주를 이루고 있었기에 마음이 아팠던 것이다.

댓글 중에는 “목사가 기도에 목숨을 걸어야지 새벽에 무슨 대리운전이냐.

그러니깐 죽었지”라는 악담도 있었다.

혹은 “목회에만 전념해야 한다” “죽어도 교회에서 죽어야 한다” 등의

글도 올랐다.

 

개척교회 목사가 대리운전대를 잡기까지는 몸부림치며

르짖고 기도했을 것은 분명하다.

낮에도 이 사람 저 사람이 동네 저 동네 골목마다 다니며

전도했을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알만한 상황이다.

교회부흥을 이뤄보자고 각종 세미나인들 마다했겠는가.

한국 목회자들, 특히 개척교회 목회자들은 부흥을 꿈꾸며

목숨을 건 특심이 남다르지 않던가.

 

그러나 우리 모두는 오늘 날 전도가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안다.

요즘 부흥했다는 교회들 모두가 새신자로 부흥된 것이 아니라

주변 교회 신자들이 이동해 와서 채워짐으로 성장한 것임을

누구도 부인 못한다.

 

그러니 개척교회, 작은 교회는 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

게다가 목회자의 자녀들이 자라면서 돈의 씀씀이는 커져만 간다.

부지런히 전도하면서 틈만 나면 기도하던 목회자도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상황이 된다.

목회자 혼자는 어떤 상황인들 견디지 못할게 있겠는가마는

아이들이 보챌 때는 삶의 현실을 외면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일거리를 찾기에 이르는 것이다.

 

당장 생활이 어려워 부득이 일을 해야 하는 목회자와

‘쪽팔려서’ 그랜저(승용차)를 버리고 에쿠스를 타야겠다는

대형교회 목회자를 우리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

교회 강단에 앉아 기도 안하고

그 시간에 대리운전을 한 목회자는 죄인이고,

1억 원짜리 승용차를 몰고 다니며 집회 장소마다 가서

“기도응답 받았다”고 “축복 받았다”고

자랑하는 목회자는 의인이란 말인가?

 

다윗이 백향목궁에 거하면서 여호와의 궤를 생각했을 때

하나님 앞에 민망하고 송구스러워 어찌할 줄을 몰라 했던

겸손한 심정이 그에게는 왜 없는 것일까?

 

 

 [윤명상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