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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詩 같은 삶을 위하여
☞ 윤명상 목회 칼럼

사육(飼育) 당하는 교인들 - 윤명상

by 石右 尹明相 2012. 7. 22.

 

 

 

사육(飼育) 당하는 교인들

 

 

지난 7월 13일,

소위 ‘전남대 여대생 납치 사건’이라는 기이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단에 빠진 딸을 구하겠다며

그녀의 부모가 딸을 강제로 승용차에 태워 데려가는 과정에서

납치사건으로 신고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다음 날,

자기 집 창문으로 도망쳐 나온 딸은 다시 자신이 몸담고 있던

신천지로 되돌아갔는데 이를 두고 신천지 측에서는

“가족이라는 명목 아래 있어지는 인권을 무시한 폭행과 폭언

 그리고 이어지는 강제개종교육”이라며

그녀의 가족과 기독교계를 향하여 목청을 높여 비난했습니다.

 

이단이나 특정 종교집단에 빠져 가족들을 등지거나

가정을 버리고 사라진 자녀나 가족들의 사연은

이제 흔한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종교의 사이비화를 대변하는 것으로

전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특히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성경의 가르침을 따른다고 하는

기독교나 유사 종교집단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따르던 수많은 인파들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라며 미련 없이 모두 되돌려 보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얼마든지 조직화 세력화 할 수 있었지만

인간적 욕망에 끌리지 않고 끝까지 하나님의 뜻에 충실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다만 그들에게 삶을 가르치셨던 것입니다.

 

교회나 어느 집단에 사람의 수가 많아지면

반드시 권력화와 정치화의 현상이 나타나게 되어있습니다.

따라서 교회는 규모에 연연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문제는 기독교든 이단이든 사람을 불러 모으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불러 모은 교인들을 철저한 ‘내 교인 만들기’에 혈안이 되었지

그리스도인으로 양육하지는 못하는 실정입니다.

 

이번 “여대생 납치 사건”처럼

신앙보다는 신념에 빠진 맹목적 광신은 결국 종교에 의해

‘사육(飼育) 당한 결과’라고 밖에는 볼 수 없습니다.

특정 교회나 특정 종교집단에 지나치게 몰입하고 맹종하는 것은

바른 신앙이 아닙니다.

 

예수님처럼 교회는 신자들의 삶을 가르쳐서

가정에서 직장에서 사회에서

빛이 되고 소금이 되게 해야 할 사명이 있는데,

삶을 가르치고 성숙한 신앙인으로 사회에 내보내기 보다는

자신들의 교세를 확장하고 견고하게 유지하기 위해

폐쇄적인 집단 종교 활동에만 급급하다 보니

반인륜적 반사회적인 병폐들이 교회 안에서 종교집단 안에서

성행하게 된 것입니다.

 

기성 교회들도 ‘교인들의 사육(飼育)’이라는 불편한 표현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너무 많은 강요된 예배”가 한국교회의 문제라는 지적처럼

대부분의 교회들은 가지각색 제목을 붙여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신자들을 교회당으로 불러내는데,

이 같은 교회당 중심의 신앙생활은 그 교회의 신자를 만들 뿐이지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는 양육하지 못합니다.

 

교회 다닌다고, 예수 믿는다고

종교활동에 메이고 교회당에 집착하면서

가정이 파탄나고 자녀들이 탈선하는 일이

교회 안에서도 비일비재한데,

"사탄이 역사한다" "시험들었으니 이겨야 한다"는 말로

더 이상 교회당 안에 교인들을 볼모삼지 말아야 합니다.

 

신자들의 삶은 교회당에서가 아니라

사회 속에서 열매를 맺어야 하는데,

교회에서는 칭찬 받는 교인들이

회 밖에서는 야유와 비난의 대상이 된 현실에서

이제는 교회당으로 교인들을 매일 불러내어

'내 사람' '내 교인'으로 사육(飼育) 하기보다는

주님이 가르치시고 분부하신,

그리고 본을 보여 주신 삶을 가르쳐서

파송하는 교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새생명교회 윤명상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