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량 목회에 대한 소고
근래 목회자들 사이의 팽팽한 논쟁거리가 된 사안은
다름 아닌 ‘자비량 목회’에 대한 것입니다.
주로 자비량 목회가 ‘성경적이다’ ‘아니다’의 문제로
사실은 양쪽 견해가 팽팽 하다기 보다는
‘아니다’ 쪽으로 기울어버린 느낌입니다.
그러나 자비량 목회에 대한 문제는
‘성경적이다’ ‘아니다’의 이분법적 접근보다는
현재 한국교회 목회자들이 안고 있는 윤리적인 문제인식에서
조명하고 접근해야 할 문제라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한국교회에서 가장 힘들어하는 것 가운데 하나는
목회자의 은퇴와 더불어 제기되는 퇴직금 문제입니다.
규모가 작은 교회에서는 목회자의 퇴직금을 적립한다거나
노후를 대비할만한 여력이 없다보니
목회자가 나이 70세를 전후하여 은퇴할 때쯤이면
“앞이 막막하다”는 선배 목회자들의 탄식처럼
막막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후임 목회자에게서 수천만 원의 뒷돈을 받고
부득이 임지를 넘겨주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평생을 어렵고 힘들게 사역하면서 존경 받던 목회자가
은퇴하면서 교인들 몰래 후임자에게서 뒷돈을 받아야 하는 상황은
충분히 납득이 되고 부득이한 현실이라지만
“임지(목회) 매매”라는 부도덕한 굴레는 어쩌겠습니까?
한국 교회에 만연한 이러한 ‘뒷돈 거래’는
단지 규모가 작은 교회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수천, 수만 명이 모이는 교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들 교회에서는 수십억대의 퇴직금과 아파트,
승용차 제공은 물론 매월 만만찮은 사례비도 받지만
대부분 그러한 예우에 대하여 목회자는 “적다”고,
교회 측에서는 “많다”고 몇 년을 두고 실랑이를 벌이다
심각한 내분 사태까지 벌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목회자의 생활과 은퇴 이후까지 모든 비용을
교회의 사례에 의존하다보니 과도한 헌금 강요는 물론이고
축재에 따른 교회의 탈선도 나타납니다.
이 같은 목회의 부도덕한 현상을 방지하고
끝까지 겸허하고 섬기는 자세로 사역할 수 있는 길이
바로 자비량 목회라는 것입니다.
“형제들아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을 너희가 기억하리니
너희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과 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였노라.”(살전2.9)
사도 비울처럼 신자들에게 ‘누’가 되지 않기 위한 마음가짐이
오늘날 목회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 중 하나라고 봅니다.
목회자가 노동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입니까?
아닙니다. 부끄럽게 여기는 마음이 어리석은 것입니다.
어떤 이는 “나는 잠 잘 때도 넥타이 매고 잔다.”고 자랑하지만
그것은 목회자라는 우월감과 특권의식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양복 벗어 버리고, 넥타이도 풀어 버리고
삶의 현장으로 뛰어들 수 있을 때
신자들의 천 원짜리 헌금에도 감동하고
그 땀과 수고를 마음 속 깊이 느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목사”라는 직임이 권력도 명예도 아닌 섬김의 직책인데
이제 더 이상 교회에 ‘누’를 끼치는 목회자가 되지 말고
‘자기 손으로 일하여 일용할 양식과 구제할 것이 있는’
목회자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새생명교회 윤명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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