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詩 같은 삶을 위하여
☞ 윤명상 목회 칼럼

기도와 기도회 - 윤명상

by 石右 尹明相 2013. 7. 6.

 

 

 

기도와 기도회

 

 

한국 교회에는 다양한 이름의 기도회가 있다.

명칭의 다양성만큼이나 기도회가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히 기도회천국이라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대부분의 기도들이 기도회라는 프로그램으로 행해진다.

그렇다 보니 문제가 되는 것은

기도회 이외의 일상에서의 기도는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사실 기도회는 인위적인 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

기도의 특성을 외곡하고 하나님과의 긴밀한 관계를

저해하는 문제를 안고 있다.

 

일반적으로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이며 영적 호흡이라 말하는데,

여기에는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와 적극적인 의지가 전제된다.

다시 말하면,

기도란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에서 나누는 대화이며

누구의 강요나 억지,

혹은 프로그램의 순서에 의한 인위적 행위가 아닌

신자 개인의 강렬한 의지와 믿음에 의한

하나님과의 교제(교통)인 것이다.

 

그러나 한국교회에는 기도회가 너무 빈번하고

신자들이 이 같은 기도회에 익숙해져 있다 보니

개인의 의지로서의 기도보다는

대중적이고 일관되게 진행되는 각종 기도회에

더욱 몰입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한 기도회는

효율적으로 신자들을 교회당으로 불러 모을 수 있는

목회수단이 되어 버렸다.

어쩌면 현대 목회자들이 지향하는

내 교인 만들기의 가장 손쉬운 목회의 방편일지도 모른다.

 

그만큼 기도회는 신앙생활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기도회를 비판한다거나

불편하게 여기는 신자들이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기도회에 참석하지 못하는 것에

죄의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만사 제쳐두고

적극적으로 기도회에 참석하는 경향이다.

 

이제 한국교회는

신자들에게 진리 안에서 자유를 누리게 해야 한다.

기도회를 통한 기도가 아니라

일상에서의 하나님과의 진실한 관계를 강조하고

생활 속에서의 자연스럽고 의지적인 하나님과의 대화가

가능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기도회에서 쏟아내는 카타르시스에 위안을 얻지만

기도회 속의 기도는 진정성을 담보할 수 없음을 인지해야 한다.

 

하나님은 시위(示威)하듯

한날한시 같은 장소에 모여 떼쓰는 기도회보다는

은밀한 중에 마음을 토하며

진실 되게 고백하는 회개와

생활이 뒷받침 되는 경건한 간구에

귀를 기울이시고 응답하신다.

 

한국교회는 기도회라는

인위적 집단기도에 더 이상 얽매이지 말아야 한다.

예배당에서의 격정적인 합심기도에

군중심리가 곁들여진 열정적인 기도보다는

생활 속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는,

삶이 진실한 그리스도인으로 양육하기 위해서라도

기도회가 아닌 일상에서의 기도하는 삶이 필요한 것이다.

 

기도란 앞서 언급했듯이 살아계시고 언제나 함께하시는

하나님과의 대화이기에

그때그때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는 것이

예배당에서의 어떤 기도회보다도 우선되는 것이다.

하루나 며칠, 혹은 일주일 동안 정해진 기도회 때까지

기다렸다가 하는 기도는

쌓였던 욕구불만을 쏟아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제 더 이상 기도만능이니 기도계획이니 하여

기도를 마치 인간의 욕구를

성취시킬 수 있는 방편처럼 호도하거나

특별한 종교적 행사로 전락시키지 말고

경건하고 책임 있는 삶을 위해 호흡하듯

하나님과의 열린 대화로서의 기도가 되도록 해야 한다.

 

 

새생명교회 윤명상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