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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詩 같은 삶을 위하여
☞ 문학의 뜨락

이상화(李相和) 시 모음

by 石右 尹明相 2016. 1. 11.

 

이상화(李相和)

1900~1943. 대구.

경성중학 3년 수료하고(1917),

<백조> 창간호에 <말세의 회탄>

민족 시인이자 민중시인, 저항시인

 

 

이상화(李相和) 시 모음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지금은 남의 땅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 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 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 자욱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털을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가쁘게나 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 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웃어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나의 침실로

 

가장 아름답고 오랜 것은 오직 꿈 속에만 있어라 : 내말

'마돈나' 지금은 밤도, 모든 목거지에,

다니노라 피곤하여 돌아 가련도다.

, 너도, 먼동이 트기 전으로, 수밀도(水蜜桃)의 네 가슴에,

이슬이 맺도록 달려오너라.

 

'마돈나' 오려무나,

네 집에서 눈으로 유전(遺傳)하던 진주(眞珠),

다 두고 몸만 오너라.

빨리 가자, 우리는 밝음이 오면,

어딘지 모르게 숨는 두 별이어라.

 

'마돈나' 구석지고도 어둔 마음의 거리에서,

나는 두려워 떨며 기다리노라.

, 어느덧 첫닭이 울고 뭇 개가 짖도다.

나의 아씨여, 너도 듣느냐.

 

'마돈나' 지난밤이 새도록,

내 손수 닦아 둔 침실로 가자, 침실로!

낡은 달은 빠지려는데, 내 귀가 듣는 발자욱 오, 너의 것이냐?

 

'마돈나' 짧은 심지를 더우잡고,

눈물도 없이 하소연하는 내 마음의 촛불을 봐라.

양털 같은 바람결에도 질식(窒息)이 되어,

얄푸른 연기로 꺼지려는도다.

 

'마돈나' 오너라. 가자, 앞산 그리매가,

도깨비처럼, 발도 없이 이곳 가까이 오도다.

, 행여나 누가 볼는지 가슴이 뛰누나,

나의 아씨여, 너를 부른다.

 

'마돈나' 날이 새련다, 빨리 오려무나,

사원(寺院)의 쇠북이 우리를 비웃기 전에.

네 손이 내 목을 안아라.

우리도 이 밤과 같이, 오랜 나라로 가고 말자.

 

'마돈나' 뉘우침과 두려움의 외나무다리 건너 있는 내 침실,

열 이도 없느니!

, 바람이 불도다. 그와 같이 가볍게 오려무나,

나의 아씨여, 네가 오느냐?

 

'마돈나' 가엾어라, 나는 미치고 말았는가, 없는 소리를 내 귀가 들음은 .

내 몸에 피란 피 가슴의 샘이, 말라버린 듯, 마음과 몸이 타려는도다.

 

 

'마돈나' 언젠들 안 갈 수 있으랴,

갈테면 우리가 가자, 끄을려 가지 말고!

너는 내 말을 믿는 '마리아' 내 침실이

부활(復活)의 동굴(洞窟)임을 네야 알련만.

 

'마돈나',밤이 주는 꿈, 우리가 얽는 꿈,

사람이 안고 궁구는 목숨의 꿈이 다르지 않느니.

, 어린애 가슴처럼 세월 모르는 나의 침실로 가자,

아름답고 오랜 거기로.

 

'마돈나' 별들의 웃음도 흐려지려 하고,

어둔 밤물결도 잦아지려는 도다.

, 안개가 사라지기 전으로 네가 와야지,

나의 아씨여, 너를 부른다.

 

 

 

가장 비통한 기욕(祈慾)-간도 이민을 보고

 

, 가도다, 가도다, 쫓겨가도다

잊음 속에 있는 간도(間島)와 요동(遼東)벌로

주린 목숨 움켜쥐고, 쫓겨가도다

진흙을 밥으로, 해채를 마셔도

마구나, 가졌드면, 단잠은 얽맬 것을

사람을 만든 검아, 하루 일찍

차라리 주린 목숨, 뺏어 가거라!

 

, 사노라, 사노라, 취해 사노라

자폭(自暴) 속에 있는 서울과 시골로

멍든 목숨 행여 갈까, 취해 사노라

어둔 밤 말없는 돌을 안고서

피울음을 울으면, 설움은 풀릴 것을

사람을 만든 검아, 하루 일찍

차라리 취한 목숨, 죽여버려라!

 

 

 

통곡(痛哭)

 

하늘을 우러러

울기는 하여도

하늘이 그리워 울음이 아니다.

두 발을 못 뻗는 이 땅이 애닯아

하늘을 흘기니

울음이 터진다

해야 웃지 마라

달도 뜨지 마라

 

 

 

병적 계절(病的季節)

 

기러기 제비가 서로 엇갈림이 보기에 이리도 설은가.

귀뚜리 떨어진 나뭇잎을 부여잡고 긴 밤을 새네.

가을은 애달픈 목숨이 나누어질까 울 시절인가 보다.

 

가없는 생각 짬 모를 꿈이 그만 하나 둘 잦아지려는가.

홀아비같이 헤매는 바람떼가 한 배 가득 구비치네.

가을은 구슬픈 마음이 앓다 못해 날뛸 시절인가 보다.

 

하늘을 보아라 야윈 구름이 떠돌아다니네.

땅 위를 보아라 젊은 조선이 떠돌아다니네.

 

 

 

무제(無題)

 

오늘 이 길을 밟기까지는

, 그 때가 가장 괴롭도다

아직도 남은 애달픔이 있으려니

그를 생각는 오늘이 쓰리고 아프다

 

헛웃음 속에 세상이 잊어지고

끄을리는 데 사람이 산다면

검아, 나의 신령을 돌멩이로 만들어다고,

제 사리의 길은 제 찾으려는 그를 죽여다오.

 

참 웃음의 나라를 못 밟을 나이라면

차라리 속 모르는 죽음에 빠지련다

, 멍들고 이울어진 이 몸은 묻고

쓰린 이 아픔만 품 깊이 안고 죽으련다

 

 

 

말세의 희탄

 

저녁의 피묻은 동굴 속으로

, 밑 없는 그 동굴 속으로

끝도 모르고

끝도 모르고

나는 거꾸러지련다.

나는 파묻히련다.

가을의 병든 미풍의 품에다

, 꿈꾸는 미풍의 품에다

낮도 모르고

밤도 모르고

나는 술 취한 몸을 세우련다.

나는 속 아픈 웃음을 빚으련다.

 

 

 

이별을 하느니

 

어찌면 너와 나 떠나야겠으며 아무래도 우리는 나눠야겠느냐?

남몰래 사랑하는 우리 사이에 우리 몰래 이별이 올 줄은 몰랐어라.

 

꼭두로 오르는 정열에 가슴과 입술이 떨어 말보다 숨결조차 못 쉬노라.

오늘 밤 우리 둘의 목숨이 꿈결같이 보일 애타는 네 맘속을 내 어이 모르랴.

 

애인아 하늘을 보아라 하늘이 까라졌고 땅을 보아라 땅이 꺼졌도다.

애인아 내 몸이 어제같이 보이고 네 몸도 아직 살아서 내 곁에 앉았느냐?

 

어찌면 너와 나 떠나야겠으며 아무래도 우리는 나눠야겠느냐?

우리 둘이 나뉘어 생각하며 사느니 차라리 바라보며 우리는 별이나 되자!

 

사랑은 흘러가는 마음 위에서 웃고 있는 가비어운 갈대꽃인가.

때가 오면 꽃송이는 곯아지며 때가 가면 떨어졌다 썩고 마는가.

 

님의 기림에서만 믿음을 얻고 님의 미움에서는 외롬만 받을 너이었더냐.

행복을 찾아선 비웃음도 모르는 인간이면서 이 고행을 싫어할 나이었더냐.

 

애인아 물에다 물탄 듯 서로의 사이에 경계가 없던 우리 마음 위로

애인아 검은 그림자가 오르락내리락 소리도 없이 어른거리도다.

 

남몰래 사랑하는 우리 사이에 우리 이별이 올 줄은 몰랐어라.

우리 둘이 나뉘어 사람이 되느니 차라리 피울음 우는 두견이나 되자!

 

오려므나, 더 가까이 내 가슴을 안아라 두 마은 한 가락으로 엮어보고 싶다.

자그마한 부끄럼과 서로 아는 믿음 사이로 눈감고 오는 방임을 맞이하자.

 

아 주름 잡힌 네 얼굴 이별이 주는 애통이냐 이별은 쫓고 내게로 오너라.

상아의 십자가 같은 네 허리만 더우잡는 내 팔 안으로 달려오너라.

 

애인아 손을 다고 어둠 속에도 보이지 않는 납색의 손을 내 손에 쥐어다고.

애인아 말해다고 벙어리 입이 말하는 침묵의 말을 내 눈에 일러다고.

 

어찌면 너와 나 떠나야겠으며 아무래도 우리는 나눠야겠느냐?

우리 둘이 나뉘어 미치고 마느니 차라리 바다에 빠져 두 마리 인어로나 되어서 살자!

 

 

 

기미년

 

이몸이 제아무리 부지런히 소원대로

어머님 못뫼시오니 죄롭소다 비옥적에

남이야 허랑타한들 내아노라 우시던일.

 

 

 

빈촌의 밤

 

봉창 구멍으로

나른하여 조으노라

깜작이는 호롱불

햇빛을 꺼리는 늙은 눈알처럼

 

, 나의 마음은,

사람이란 이렇게도

광명을 그리는가

담조차 못 가진 거적문 앞에를,

이르러 들으니, 울음이 돌더라.

 

 

 

어머니의 웃음

 

날이 맛도록

온 데로 헤매노라

나른한 몸으로도

시들푼 맘으로도

어둔 부엌에,

밥 짖는 어머니의

나보고 웃는 빙그레 웃음!

내 어려 젖 먹을 때

무릎 위에다,

나를 고이 안고서

늙음조차 모르던

그 웃음을 아직도

보는가 하니

외로움의 조금이

사라지고, 거기서

가는 기쁨이 비로소 온다.

 

 

 

單調 (단조)

 

비 오는 밤

가라앉은 하늘이

꿈꾸듯 어두워라.

 

나뭇잎마다에서

젖은 속살거림이

끊이지 않을 때일러라.

 

마음의 막다른

낡은 뒷집에선

뉜지 모르나 까닭도 없어라.

 

눈물 흘리는 () 소리만

가없는 마음으로

고요히 밤을 지우다.

 

저편에 늘어섰는

백양나무의 살찐 그림자는

잊어버린 기억이 떠돎과 같이

침울 몽롱한

캔버스 이에서 흐느끼다.

 

, 야릇도 하여라

야밤의 고요함은

내 가슴에도 깃들이다.

 

병아리 입술로

떠도는 침묵은

추억의 녹 낀 창을

죽일 숨 쉬며 엿보아라.

 

, 자취도 없이

나를 껴안은

이 밤의 홑짐이 서러워라.

 

비 오는 밤

가라앉은 영혼이

죽은 듯 고요도 하여라.

 

내 생각의

거미줄 끝마다에서

젖은 속살거림은

주곧 쉬지 않더라.

 

 

 

시인에게

 

한편의 시 그것으로

새로운 세계 하나를 낳아야 할 줄 깨칠 그 때라야

시인아, 너의 존재가

비로소 우주에게 없지 못할 너로 알려질 것이다.

가뭄 든 논에는 청개구리의 울음이 있어야 하듯.

새 세계란 속에서도

마음과 몸이 갈려 사는 줄 풍류만 나와 보아라.

시인아, 너의 목숨은

진저리나는 절름발이 노릇을 아직도 하는 것이다.

언제든지 일식된 해가 돋으면 뭣하며 진들 어떠랴.

시인아, 너의 영광은

미친 개 꼬리도 밟는 어린애의 짬 없는 그 마음이 되어

밤이라도 낮이라도

새 세계를 낳으려 손댄 자국이 시가 될 때에 있다.

촛불로 날아들어 죽어도 아름다운 나비를 보아라.

 

 

 

조선 병()

 

어제나 오늘 보이는 사람마다 숨결이 막힌다.

오래간만에 만나는 반가움도 없이

참외 꽃 같은 얼골에 선웃음이 집을 짓더라.

눈보라 모라치는 겨울 맛도 없이

고사리 같은 주먹에 진 땀물이 구비치더라.

저 하눌에다 문창이나 뚫으랴 숨결이 막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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