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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詩 같은 삶을 위하여
☞ 문학의 뜨락

헤르만 헷세 시(詩) 모음

by 石右 尹明相 2016. 1. 11.

 

 

 

 

 

헤르만 헷세 시() 모음

 

헤르만 헤세(Herman Hesse) ; 시인, 소설가

(1877~ 1962) 독일 - 데뷔 1899

시집 '낭만적인 노래'

 

 

 

안개

 

안개 속을 거니는 이상함이여,

덩굴과 돌들 모두 외롭고,

이 나무는 저 나무를 보지 못하니

모두가 다 혼자로구나!

 

나의 삶이 밝았던 때에는

세상엔 친구들로 가득했건만

이제 여기 자욱한 안개 내리니

아무도 더는 볼 수 없어라.

 

회피할 수도 없고 소리도 없는

모든 것에서 그를 갈라놓는

이 어두움을 모르는 이는

정녕 현명하다고는 볼 수 없으리.

 

안개 속을 거니는 이상함이여,

산다는 것은 외로운 것,

누구도 다른 사람 알지 못하고

모두는 다 혼자인 것을!

 

 

 

기도

 

하나님이시여, 저를 절망케 해 주소서

당신에게가 아니라 나 자신에게 절망하게 하소서

나로 하여금 미혹의 모든 슬픔을 맛보게 하시고

온갖 고뇌의 불꽃을 핥게 하소서

온갖 모욕을 겪도록 하여 주시옵고

내가 스스로 지탱해 나감을 돕지 마시고

내가 발전하는 것도 돕지 마소서

그러나 나의 자아가 송두리째 부서지거든

그 때에는 나에게 가르쳐 주소서

당신이 그렇게 하셨다는 것을

당신이 불꽃과 고뇌를 낳아 주셨다는 것을

기꺼이 멸망하고 기꺼이 죽으려고 하나

나는 오직 당신의 품속에서만 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의 어머님께

 

이야기할 것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너무나 오랫동안 나는 멀리 객지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가장 나를 이해해 준 분은

어느 때나 당신이었습니다.

 

오래 전부터 당신에게 드리려는

나의 최초의 선물을

수줍은 어린아이 손에 쥔, 지금

당신은 눈을 감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읽고 있으면

이상하게도 나의 슬픔을 잊는 듯합니다.

말할 수 없이 너그러운 당신이,

 

천가닥의 실로

나를 둘러싸고 있기 때문입니다.

 

 

 

누이에게

 

어찌할 바를 몰라

슬픔에 젖어 이곳에 서 있다.

고향을 멀리 떠나

나는 헤매이며 왔다.

 

내가 알고 있던 곳이여

푸른 높은 산이여

인간이여, 들판이여

이제 나는 너희들을 모른다.

 

다만, 너의 입에서만

옛날의 소리를 듣고

다정한 동화의 말처럼

옛날의 소식을 듣는다.

 

멀지 않아 착한 원정인 죽음이

부모가 기다리는 저녁노을 속으로

그의 정원으로

나를 데리고 갈 것이다.

 

 

 

 

언제나 같은 꿈이다.

빨간 꽃이 피어 있는 마로니에

여름 꽃이 만발한 뜰

그앞에 외로이 서 있는 옛집

 

저 고요한 뜰에서

어머니가 어린 나를 잠재워 주셨다.

아마도, 이제는 오랜 옛날에

집도 뜰도 나무도 없어졌을 것이다.

 

지금은 그 위로 초원의 길이 지나고

쟁기가 가래가 지나 갈 것이다.

고향의 뜰과 집과 나무를

이제는 꿈에서만 남을 것이다.

 

설레이는 마음으로 떠올리는

무수한 낯모르는 얼굴들...

서서히 하나,

불빛이 흐려간다.

그 여린 빛이 회색이 되고

 

 

어린 시절부터

 

지난날 어린 시절부터

나에게 행복을 약속한

하나의 음향이 나에게로 다가온다.

만일 이것이 없으면 살기가 너무나 괴로울 것이다.

이 마력의 음향이 울리지 않는다면

나는 빛없이 서서

주위에 불안과 암흑만을 볼 것이다.

그러나 슬픔과 죄에 다치지 않는 소리가

행복에 찬 달콤한 음향이 울린다.

슬픔과 죄악에도 파멸되지 않는 그 음향이.

너 자랑스런 목소리여

내 집의 불빛이여

다시는 꺼지지 말고

그 푸른 눈을 감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세계는

부드러운 빛을 모두 잃고

크고 작은 별들이 차례로 떨어져

나만 홀로 남게 될 것이다.

 

 

 

내 젊음의 초상

 

지금은 벌써 전설이 된 먼 과거로부터

내 청춘의 초상이 나를 바라보며 묻는다.

지난날 태양의 밝음으로부터

무엇이 반짝이고 무엇이 타고 있는가를 !

 

그때 내 앞에 비추어진 길은

나에게 많은 번민의 밤과

커다란 변화를 가져 왔다.

그 길을 나는 이제 다시는 걷고 싶지 않다.

 

그러나 나는 나의 길을 성실하게 걸었고

추억은 보배로운 것이었다.

잘못도 실수도 많았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혼 자

 

세상에는 크고 작은 길들이 너무나 많다.

그러나

도착지는 모두가 다 같다.

 

말을 타고 갈 수도 있고, 차로 갈 수도 있고

둘이서 아니면, 셋이서 갈 수도 있다.

그러나 마지막 한 걸음은

혼자서 가야 한다.

 

그러므로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혼자서 하는 것보다는

더 나은 지혜나

능력은 없다.

 

 

 

때때로 인생은

 

때때로 강렬한 빛을 띠며

인생은 즐겁게 반짝거린다.

그리고 웃으며 묻지도 않는다.

괴로와하는 사람들을, 멸망하는 사람들을.

 

그러나 나의 마음은

언제나 그들과 함께 있다.

괴로움을 숨기고 울기 위하여

그리움의 저녁에 방으로 숨어든다.

 

괴로움에 얽히어 갈피를 못 잡는

많은 사람들을 나는 안다.

그들의 영혼을 형제라 부르고

반가이 나에게 맞아들인다.

 

젖은 손 위에 엎드려

밤마다 우는 사람들을 나는 안다.

그들은 캄캄한 벽이 보일 뿐,

빛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암흑과 근심으로 하여

따뜻한 사랑의 빛을

남몰래 지니고 있는 것을

그들은 모르며 헤매고 있다.

 

 

 

가을

 

수풀 속의 새여,

너희들의 노래가

단풍 드는 숲을 따라 하늘거린다.

새여, 서둘러라!

 

멀지 않아 바람이 불어오고,

죽음이 수확하러 오고,

회색의 요괴가 와서 웃으면

우리들의 심장은 얼어붙고

정원은 화사함을 잃고

목숨은 모든 빛을 잃고 만다.

 

잎 속에 있는 다정한 새여,

사랑하는 아우여,

함께 노래하고 즐거워하자.

멀지 않아 우리들은 먼지가 된다.

 

 

 

늦가을 여행

 

가을비가 생기 없는 숲을 파헤치고

아침 바람에 골짜기가 추워 몸을 움츠립니다.

상수리나무에서 투둑투둑 열매가 떨어집니다.

갈색의 열매는 벌어져 축축이 웃고 있습니다.

 

가을이 나의 생활을 파헤쳐 버렸습니다.

갈가리 찢긴 이파리를 바람이 모질게 끌어당깁니다.

그리고 차례차례 가지를 흔드는 것입니다.

열매는 어디에 있습니까?

 

나는 사랑을 꽃피웠습니다. 그런데 열매는 슬픔이었습니다.

나는 믿음을 꽃피웠습니다. 그런데 열매는 미움이었습니다.

앙상한 나의 졸가리를 바람이 끌어당깁니다.

나는 바람을 비웃어 줍니다. 아직도 폭풍에 저항하면서.

 

나에게 있어, 열매는 무엇이며 목적은 무엇이겠습니까?

나는 피어났던 것입니다.

피어나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시들었습니다.

시드는 것이 나의 목적입니다. 다른 것은 없습니다.

목적은 순간적인 것입니다. 마음은 그 속에 숨어 있습니다.

 

신은 내 속에서 살고, 죽고, 내 가슴속에서 괴로와 합니다.

이것으로 나의 목적은 충분합니다.

정도(正道)나 사도(邪道), 꽃이나 열매,

모두가 다 같은 것입니다. 모두가 이름에 지나지 않습니다.

 

아침 바람에 골짜기가 추워 몸을 움츠립니다.

상수리나무에서 투둑투둑 열매가 떨어집니다.

떨어진 열매가 밝게 웃습니다. 나도 함께 웃습니다.

 

(졸가리) - 나뭇잎이 다 떨어진 앙상한 가지.

 

 

 

갖가지 죽음

 

이미 갖가지 죽음을 나는 죽어보았다.

갖가지 죽음을 다시 나는 죽으련다.

수목 속의 나무 같은 죽음을

산속의 돌 같은 죽음을

모래 속의 흙 같은 죽음을

살랑이는 여름풀의 잎 같은 죽음을

불쌍하고 피에 젖은 인간의 죽음을.

 

꽃이 되어 다시 태어나련다.

수목이 되어, 풀이 되어,

물고기, 사슴, , 나비가 되어.

이러한 갖가지 모습에서 그리움이

최후의 고뇌, 인간 고뇌의 계단으로

나를 이끌 것이다.

 

, 떨면서 팽팽해지는 활이여,

그리움의 광포한 주먹이

삶의 양극을

서로 맞서게 굽히려 한다면!

때때로 또는 다시 여러 번

고난에 찬 형성의 길인

성스러운 형성의 길인 탄생으로, 너는

죽음에서 나를 몰아칠 것이다.

 

 

 

밤 길

 

개암나무 덤불에 아직도 새가 한 마리 잠들지 않고 있다.

그러나 파리한 달빛 속에 골짜기와 숲은 잠잠하다.

청춘의 그림자들이 나를 뒤따라와

갖가지 꿈노래를 불러준다.

 

삶의 폭풍과 격정에서 빠져나와

모든 꿈의 무리가 포근히 쉬고

나의 마음이, 많은 실 가닥에 이어져 있는

세상의 피안인 초록의 골짜기로 왔을까?

 

꿈꾸듯 사랑하는 이름들을 불러본다.

멀리 어디론가 사라져 간 옛날의 이름을.

그리곤 추억의 은은한 나라를

정처 없이 헤매어 간다.

 

그러자 어스름 속에서, 너의 이름이 반짝여 온다.

오직 한 사람인 네가.

나는 언뜻 눈을 뜬다.

모든 괴로움이 되살아나고

가슴 태우며 너의 자취를 더듬어 간다.

 

 

 

순례자

 

나는 항상 방랑의 길에 있었다.

순례자였다.

내가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기쁨도 슬픔도 흘러갔다.

 

나는 방랑의

의미도, 목적도 알지 못한다.

몇 천 번을 쓰러지고

그때마다 다시 일어났다.

 

, 내가 찾고 있었던 것은

성스럽고 멀리 높은

하늘에 걸려 있었던

사랑의 별이었다.

 

그러나 그 별을 안 지금은

목적을 알지 못하던 동안에는

마음 편히 걸어갔고

기쁨과 행복을 가질 수 있었다.

 

나 마침내 그 별을 찾았지만

이미 늦었다.

별은 돌아서 버리고

아침에 거센 바람이 불어왔다

 

 

 

안개 속에서

 

안개 속을 거니는 것은 신기하다

덤불과 돌은 저마다 외롭고

나무들도 서로가 보이지 않는다

모두들 다 홀로다

내 인생이 아직 밝던 때는

세상은 친구로 가득했다

하지만 지금 안개 내리니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인간을 어쩌지도 못하게

슬그머니 떼어 놓는 어둠을

전혀 모르는 이는 모든 면에서

진정 현명하다고 할 수 없다

안개 속을 거니는 것은 신기하다

산다는 것은 외롭다는 것이다

사람은 서로를 알지 못한다

모두가 다 혼자다

 

 

 

혼자

 

세상에는 크고 작은 길이 너무나 많다.

그러나 도착지는 모두가 같다.

말을 타고 갈 수도, 차로 갈 수도 있다.

둘이서, 아니면 셋이서 갈 수도 있다.

 

하지만 마지막 한 걸음은

혼자서 가야 한다.

그러므로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혼자서 하는 것보다 더 나은 지혜나 능력은 없다.

 

 

 

나는 여인을 사랑하네

 

천 년이나 전에

시인들이 사랑하고 노래한

그러한 여인들을 사랑하네.

 

황폐한 성벽이

옛날의 왕족을 서러워하는

그러한 도시를 사랑하네.

 

지금 살고 있는 사람이

다 사라질 때 되살아나는

그러한 도시를 사랑하네.

 

태어나지 않고

세월의 품안에서 쉬고 있는

날씬하고 아리따운 여인들을 사랑하네.

 

별 같은 그들의 아름다움이

언젠가는 내 꿈의 아름다움과

같아질 것을.

 

 

 

고난기에 사는 친구들에게

 

사랑하는 벗들이여, 암담한 시기이지만

나의 말을 들어주어라

인생이 기쁘든 슬프든, 나는

인생을 탓하지 않을 것이다.

 

햇빛과 폭풍우는

같은 하늘의 다른 표정에 불과한 것

운명은, 즐겁든 괴롭든

나의 훌륭한 식량으로 쓰여져야 한다.

 

굽이진 오솔길을 영혼은 걷는다.

그의 말을 읽는 것을 배우라!

오늘 괴로움인 것을, 그는

내일이면 은총이라고 찬양한다.

 

어설픈 것만이 죽어간다.

다른 것들에게는 신성(神性)을 가르쳐야지.

낮은 곳에서나 높은 곳에서나

영혼이 깃들인 마음을 기르는

 

그 최후의 단계에 다다르면, 비로소

우리는 자신에게 휴식을 줄 수 있으리.

거기서 우리는 하느님의 목소리를 들으며

하늘을 우러러 볼 수 있으리.

 

 

 

꽃가지

 

바람결에 끊임없이 일렁일렁

꽃가지가 버티며 흔들립니다.

아이처럼 그침 없이 일렁일렁

이 마음이 흔들립니다,

맑은 날과 흐린 날 사이에서,

욕망과 체념 사이에서.

 

바람에 꽃잎이 떨어지고,

가지에 열매가 매달릴 때까지.

어린 시절을 지나

이 마음이 안식을 찾고,

인생의 쉼 없는 놀이는 즐거웠으며

헛되지 않았다고 고백할 때까지.

 

 

 

부러진 나뭇가지의 삐걱 소리

 

툭 부러진 나뭇가지,

벌써 여러 해 동안 그대로 매달려,

바람 불면 삐걱대며 메마른 노래를 부른다,

잎사귀도 다 떨어지고, 껍질도 없이,

벌거벗고 창백한 모습, 기나긴 인생길에,

기나긴 죽음의 길에 이젠 피곤한가 보다.

그래도 단단하고 끈질기게 울리는 그의 노랫소리,

버팅기는 소리, 하지만 남몰래 두려운 소리,

여름 한 철 만 더,

겨울 한 철 만 더.

 

 

 

생의 계단

 

만발한 꽃은 시들고

청춘은 늙음에 굴복하듯이

인생의 각 계단도, 지혜도 덕도 모두

영원히 존재하지는 않는다.

 

삶이 부르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마음은 용감하게, 그러나 슬퍼하지 말고

새로운 단계에 들어갈 수 있도록

새로운 시작을 준비해야만 한다.

 

생의 단계의 시초에는

우리를 지켜주고 살아가게 하는 마력이 깃들어 있다.

우리는 이어지는 생의 공간을 명랑하게 지나가야 하나니.

 

우리가 어떤 생활권에 뿌리를 내리고

마음 편히 살게 되면 무기력해지기 쉽나니,

새로운 출발과 여행을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자 만이

우리를 게으르게 하는 습관에서 벗어나게 하리라.

 

 

 

그대 없이는

 

밤이면 나의 베개는

비석처럼 날 덧없이 바라본다.

 

홀로 있는 것이,

당신의 머리카락에 싸여 있지 않는 것이,

이처럼 쓰라리다는 것은 미처 몰랐다.

 

적막한 집에 홀로 누워

등불을 끄고는

당신의 손을 잡으려고

가만히 두 손을 뻗으며,

뜨거운 입술을 살며시

당신 입에 대고 지치기까지 애무한다.

 

그러나 갑자기 눈을 뜨면

주위엔 차가운 밤이 깔리고

창에는 별이 빛나고 있다.

 

,

그대의 금발은 어디 있는가?

달콤한 그 입술은 어디 있는가?

 

지금은 어느 기쁨도 슬픔이 되고,

포도주 잔마다 독이 된다.

 

홀로 있는 것,

홀로 당신 없이 있다는 것,

그것이 이리 쓰린 것은 미처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