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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詩 같은 삶을 위하여
☞ 문학의 뜨락

윤동주 시 모음

by 石右 尹明相 2016. 1. 14.

 

  

윤동주 시인:

1917~ 1945

1936년 동시 '병아리' 발표

학력 연희전문학교 문과

1946년 유고 '쉽게 쓰여진 시' 경향신문 발표

1943년 사상불온·독립운동의 죄목으로 일본경찰에 피체

1945216일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했다.

   

 

서시(序詩)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별 헤는 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헬 듯합니다.

 

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슬픈인연

 

단 한번의 눈마주침으로

서로를 그리워하고

서로를 사랑하게 되었으니

슬픔은 시작되었습니다

 

서로를 그리워하면서도

못본체 했고

사랑하면서도 지나쳤으니

서로의 가슴의 넓은 호수는

더욱 공허합니다

 

자신의 초라함을 알면서도

사랑은 멈출 줄을 몰랐고

서로가 곁에 없음을 알면서도

눈물은 그칠줄을 몰랐습니다

 

이제

서로가 한발씩 물러나

눈물을 흘릴 줄 압니다

 

이들을

우린 슬픈 인연이라 합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물어볼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사람들을 사랑했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가벼운 마음으로 말할 수 있도록

나는 지금 많은 사람들을 사랑하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열심히 살았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도록

나는 지금 맞이하고 있는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하며 살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 일이

없었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도록

사람들을 상처 주는 말과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삶이 아름다웠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기쁘게 대답할 수 있도록

내 삶의 날들을 기쁨으로 아름답게

가꾸어 가야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어떤 열매를 얼마만큼 맺었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내 마음 밭에 좋은 생각의 씨를

뿌려 좋은 말과 좋은 행동의 열매를

부지런히 키워야 하겠습니다..

 

 

 

코스모스

 

청초한 코스모스는

오직 하나뿐인 나의 아가씨

달빛이 싸늘히 추운 밤이면

옛 소녀가 못 견디게 그리워

코스모스 핀 정원으로 찾아간다.

 

코스모스는

귀또리 울음에도 수집어지고

코스모스 앞에 선 나는

어렸을 적처럼 부끄러워지나니

내 마음은 코스모스의 마음이요

코스모스는 내 마음이다.

 

 

 

자화상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 봅니다 .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 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잃어버렸습니다

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길에 나아갑니다.

 

돌과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

길은 돌담을 끼고 갑니다.

 

담은 쇠문을 굳게 닫아

길 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

 

돌담을 더듬어 눈물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 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소년(少年)

 

여기저기서 단풍잎 같은 슬픈 가을이 뚝뚝 떨어진다.

단풍잎 떨어져 나온 자리마다 봄을 마련해 놓고

나무가지 위에 하늘이 펼쳐 있다.

 

가만히 하늘을 들여다보려면 눈썹에 파란 물감이 묻어난다.

다시 손바닥을 들여다본다.

 

손금에는 맑은 강물이 흐르고, 맑은 강물이 흐르고,

강물 속에는 사랑처럼 슬픈 얼굴-

아름다운 순이(順伊)의 얼굴이 어린다.

 

소년은 황홀히 눈을 감아본다.

 

그래도 맑은 강물은 흘러 사랑처럼 슬픈 얼굴-

아름다운 순이의 얼굴은 어린다.

 

 

 

청동거울

 

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 속에

내 얼골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욕된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줄에 줄이자

(일만이십사년일개월)一滿二十四年一個月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왔든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

그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告白)을 했든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나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온다.

 

 

 

또 다른 고향

 

고향에 돌아온 날 밤에

내 백골이 따라와 한방에 누웠다.

 

어둔 방은 우주로 통하는

하늘에선가 소리처럼 바람이 불어온다.

 

어둠속에 곱게 풍화작용하는

백골을 들여다 보며,

눈물짓는 것이 내가 우는 것이냐?

백골이 우는 것이냐?

아름다운 혼이 우는 것이냐?

 

지조 높은 개는

밤을 새워 어둠을 짖는다.

어둠을 짖는 개는

나를 쫓는 것일게다.

 

가자 가자

쫓기우는 사람처럼 가자.

백골 몰래

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에 가자.

 

 

 

편 지

 

그립다고 써보니 차라리 말을 말자

그냥 긴 세월이 지났노라고만 쓰자

 

긴 긴 사연을 줄줄이 이어

진정 못 잊는다는 말을 말고

어쩌다 생각이 났었노라고만 쓰자

 

긴 긴 잠 못 이루는 밤이 오면

행여 울었다는 말을 말고

가다가 그리울때도 있었노라고만 쓰자.

 

 

 

()

 

바닷가 햇빛 바른 바위 우에

습한 간을 펴서 말리우자

 

코카서스 산중에서 도망해 온 토끼처럼

둘러리를 빙빙 돌려 간을 지키자.

 

내가 오래 기르던 여윈 독수리야!

와서 뜯어 먹어라, 시름없이

 

너는 살찌고

나는 여위어야지, 그러나

 

거북이야!

다시는 용궁의 유혹에 안 떨어진다.

 

프로메테우스 불쌍한 프로메테우스

불 도적한 죄로 목에 맷돌을 달고

끝없이 침전하는 프로메테우스.

 

 

 

사랑스런 추억(追憶)

 

봄이 오던 아침, 서울 어느 조그만 정거장에서

희망과 사랑처럼 기차를 기다려,

 

나는 플랫폼에 간신한 그림자를 떨어뜨리고

담배를 피웠다.

 

내 그림자는 담배 연기 그림자를 날리고

비둘기 한 떼가 부끄러울 것도 없이

나래 속을 속, , 햇빛에 비춰, 날았다.

 

기차는 아무 새로운 소식도 없이

나를 멀리 실어다 주어,

봄은 다 가고 - 동경(東京) 교외 어느 조용한

하숙방에서, 옛 거리에 남은 나를 희망과

사랑처럼 그리워한다.

 

오늘도 기차는 몇 번이나 무의미하게 지나가고,

오늘도 나는 누구를 기다려

정거장 가까운 언덕에서 서성거릴게다.

 

아아 젊음은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

 

 

 

내일은 없다

 

내일 내일 하기에

물었더니

밤을 자고 동틀 때

내일이라고

 

새날을 찾던 나는

잠을 자고 돌아보니

그때는 내일이 아니라

오늘이더라

 

무리여! 동무여!

내일은 없나니....

 

 

 

공상(空想)

 

공상...

내 마음의 탑

나는 말없이 이 탑을 쌓고 있다.

명예와 허영의 천공에다

무너질 줄 모르고

한 층 두 층 높이 쌓는다.

 

무한한 나의 공상

그것은 내 마음의 바다

나는 두 팔을 펼쳐서

나의 바다에서

자유로이 혜엄친다.

황금 지욕(知慾)의 수평선을 향하여.

 

 

 

거짓부리

 

똑 똑 똑 문 좀 열어주세요

하루밤 자고 갑시다.

밤은 깊고 날은 추운데거 누굴까?

문 열어주고 보니

검둥이의 꼬리가 거짓부리한걸.

 

꼬기요 꼬기요 달걀 낳았다.

간난아 어서 집어 가거라

간난이 뛰어가 보니 달걀은 무슨 달걀

고놈의 암탉이 대낮에 새빨간 거짓부리한걸.

 

 

 

병원(病院)

 

살구나무 그늘로 얼골을 가리고,

病院뒤뜰에 누어,

젊은 女子가 흰옷 아래로

하얀 다리를 드러내 놓고 日光浴을 한다.

 

한나절이 기울도록

가슴을 앓는다는 이 女子를 찾어 오는 이,

나비 한마리도 없다.

슬프지도 않은 살구나무가지에는 바람조차 없다.

 

나도 모를 아픔을 오래 참다

처음으로 이곳에 찾어왔다.

그러나 나의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을 모른다.

나한테는 이 없다고 한다.

이 지나친 시련(試鍊)

이 지나친 피로(疲勞) 나는 성내서는 안된다.

 

女子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깃을 여미고

화단(花壇)에서 금잔화(金盞花) 한포기를 따

가슴에 꽂고 병실(病室)안으로 사라진다.

나는 그 女子의 건강(健康)

아니 내 건강(健康)

()히 회복(回復)되기를 바라며

그가 누었든 자리에 누어본다.

 

 

 

새벽이 올때까지

 

다들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검은 옷을 입히시오.

 

다들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흰 옷을 입히시오.

 

그리고 한 침대에

가즈런히 잠을 재우시오

 

다들 울거들랑

젖을 먹이시오

 

이제 새벽이 오면

나팔소리 들려 올 게외다..

 

 

 

삶과 죽음

 

삶은 오늘도 죽음의 서곡을 노래하였다.

아 노래가 언제나 끝나랴

 

세상 사람은 뼈를 녹여내는 듯한

삶의 노래에 춤을 춘다

사람들은 해가 넘어가기 전 이 노래 끝의

공포를 생각할 사이가 없었다.

 

하늘 복판에 알새기듯이

이 노래를 부른 자가 누구뇨

 

그리고 소낙비 그친 뒤 같이도

이 노래를 그친 자가 누구뇨

죽고 뼈만 남은 죽음의 승리자 위인들..

 

 

 

한란계

 

싸늘한 대리석 기둥에 목아지를 비틀어 맨 한란계,

문득 들여다볼 수 있는 운명한 다섯 자

여섯 치의 허리 가는 수은주,

마음은 유리관 보다 맑소이다.

 

혈관이 단조로워 신경질인 여론동물,

가끔 분수 같은 냉침을 억지로 삼키기에

정력을 낭비합니다.

 

영하로 손구락질 할 수돌네 방처럼 치운 겨울보다

해바라기 만발한 8월 교정이 이상 곱소이다.

피 끓을 그날이-

 

어제는 막 소낙비가 퍼붓더니 오늘은 좋은 날세올시다.

동저고릿바람에 언덕으로, 숲으로 하시구려-

이렇게 가만가만 혼자 귓속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나는 또 내가 모르는 사이에-

 

나는 아마도 진실한 세기의 계절을 따라-

하늘만 보이는 울타리 안을 뛰쳐,

역사 같은 포지션을 지켜야 봅니다.

 

 

 

무서운 시간

 

거 나를 부르는 것이 누구요.

 

가랑잎 이파리 푸르러 나오는 그늘인데,

나 아직 여기 호흡이 남아 있소.

 

한 번도 손들어 보지 못한 나를

손들어 표할 하늘도 없는 나를

 

어디에 내 한 몸 둘 하늘이 있어

나를 부르는 것이오.

 

일을 마치고 내 죽는 날 아침에는

서럽지도 않은 가랑잎이 떨어질 텐데.

나를 부르지 마오.

 

 

 

눈감고 간다

 

태양을 사모하는 아이들아

별을 사랑하는 아이들아

 

밤이 어두웠는데

눈 감고 가거라.

 

가진 바 씨앗을

뿌리면서 가거라.

 

발뿌리에 돌이 채이거든

감었든 눈을 와짝 떠라.

 

 

 

쉽게 씌어진 시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 볼가,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 주신 학비 봉투를 받어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려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를

하나, ,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곰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적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돌아와 보는 밤

 

세상으로부터 돌아오듯이

이제 내 좁은 방에 돌아와 불을 끄옵니다.

불을 켜 두는 것은 너무나 피로롭은 일이옵니다.

그것은 낮의 연장이옵기에-

 

이제 창을 열어 공기를 바꾸어 들여야 할 텐데

밖을 가만히 내다보아야 방안과 같이 어두워

꼭 세상 같은데 비를 맞고 오든

길이 그대로 빗속에 젖어 있사옵니다.

 

하로의 울분을 씻을 바 없어

가만히 눈을 감으면 마음속으로 흐르는 소리,

이제 사상이 능금처럼 저절로 익어가옵니다.

 

 

 

또 다른 고향

 

고향에 돌아온 날 밤에

내 백골이 따라와 한방에 누었다.

 

어둔 방은 우주로 통하고

하늘에선가 소리초럼 바람이 불어온다.

 

어둠속에 곱게 풍화작용하는

백골을 들여다 보며

눈물 짓는 것이 내가 우는 것이냐

백골이 우는 것이냐

아름다운 혼이 우는 것이냐

 

지조 높은 개는

밤을 새워 어둠을 짖는다.

 

어둠을 짖는 개는

나를 쫓는 것일 게다.

 

가자 가자

쫓기우는 사람처럼 가자

백골 몰래

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에 가자.

 

 

 

눈 오는 지도

 

순이(順伊)가 떠난다는 아침에 말 못할 마음으로 함박눈이

나려, 슬픈 것처럼 창 밖에 아득히 깔린 지도 우에 덮인다.

 

방안을 돌아다보아야 아무도 없다. 벽과 천정이 하얗다.

방안에까지 눈이 나리는 것일까, 정말 너는 잃어버린 역사처럼

 

홀홀히 가는 것이냐, 떠나기 전에 일러둘 말이 있든 것을

편지를 써서도 네가 가는 곳을 몰라 어느 거리, 어느 마을,

 

어느 지붕밑, 너는 내 마음속에만 남아 있는 것이냐,

네 쪼고만 발자욱을 눈이 자꼬 나려 덮여 따라갈 수도 없다.

 

눈이 녹으면 남은 발자욱 자리마다 꽃이 피리니 꽃 사이로

발자욱을 찾어 나서면 년 열두달 하냥 내 마음에도 눈이 나리리라.

 

 

 

아우의 인상화(印像畵)

 

붉은 이마에 싸늘한 달이 서리어

아우의 얼굴은 슬픈 그림이다.

 

발걸음을 멈추어

살그머니 앳된 손을 잡으며

"늬는 자라 무엇이 되려니?"

"사람이 되지."

아우의 설은 진정코 설은 대답이다.

 

슬며시 잡았던 손을 놓고

아우의 얼굴을 다시 들여다 본다.

 

싸늘한 달이 붉은 이마에 젖어

아우의 얼굴은 슬픈 그림이다.

 

 

 

십자가

 

쫓아오던 햇빛인데

지금 교회당 꼭대기

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

 

첨탑(尖塔)이 저렇게도 높은데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종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 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참회록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어 있는 것은

어느 왕조(王朝)의 유물(遺物)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가.

나는 나의 참회(懺悔)의 글을 한 줄에 주리자.

 

만 이십 사 년(滿二十四年) 일 개월(一個月)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 왔든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懺悔錄)을 써야 한다.

 

그 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든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어 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隕石)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 온다

 

 

 

오줌싸개 지도

 

빨랫줄에 걸어 논

요에다 그린 지도

지난밤에 내 동생

오줌 싸 그린 지도

 

꿈에 가본 엄마 계신

별나라 지돈가?

돈 벌러 간 아빠 계신

만주 땅 지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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