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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詩 같은 삶을 위하여
☞ 문학의 뜨락

레미 드 구르몽 시 모음

by 石右 尹明相 2022. 1. 22.

 

 

레미 드 구르몽 시 모음

 

구르몽(Remy de Gourmont) 1858~ 1915

프랑스의 시인· 소설가· 문학 평론가이다.

 

 

 

가을의 따님

 

추억 많은 외마대 길을 걸으며,

가을의 따님은 낙엽을 밟고 있어라,

생각하면 그때 일은 이곳인 듯하여라.

 

아아 그러나 지금

바람은 나뭇잎과

나의 희망을 불어 날리어라.

 

아아 바람이여,

내 맘까지 불러가거라,

내 맘은 이리도 무거워라!

 

햇볕 없는 흐릿한 동산에

가을의 따님 국화를 꺾고 있어라

생각하면 내가 사랑하던 흰 장미꽃이 피었던 곳은

저곳인 듯하여라.

 

아아 화심은 새빨간 흰 장미의,

아아 태양이여,

너는 두 번 나의 장미를 꽃피게 하지 않으려는가?

 

떠도는 황혼의 공기에

가을의 따님은 새와 같이 떨고 있어라,

생각하면 그때 일은 이곳인 듯하여라,

하늘빛도 푸르러라.

우리들의 눈은 희망이 가득하였어라.

 

아아 하늘이여,

너는 지금도 별과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

 

가을의 거칠어진 산을 버리고

가을의 따님은 갔어라,

생각하면 그때 일은 이곳인 듯하여라.

우리들의 맘이 만나던 순간은,

 

그러나 지금

바람은 불어 내 몸이 떨리어라.

아아 부는 바람이여,

내 맘까지 불러가거라,

내 맘은 이리도 무거워라.

 

 

 

황혼

 

황혼의 때는 가없어라, 아아 설어라,

장미꽃은 조심스러운 듯이 미소를 띠고,

맑은 향훈을 우리의 맘속에 부어 넣으며

달콤한 말을 하여주어라.

 

버리운 여자와 같이 핼끔한 스러져 가는 햇볕에는

오려는 밤에 지금 생기는 사랑의 다사로움이 있으며

사주의 공기는 몽환에 가득하였어라.

 

맑은 목장의 풀에 누워, 피로를 고치는 인생

샛말간 눈을 뜨며,

그 입술을 고요한 키스에 바치고 있어라.

 

황혼의 때는 가없어라, 아아 설어라,

저녁 안개는 신생의 별을 박사로 싸고 어리우며,

두 나래는 사모하는 듯이도 탄모하는 듯이도

봉래향의 피안까지 바람에 따라 불리어 흘러라.

 

종루의 십자가를 비추이며,

이별을 싫어하는 여영은

파리한 포플러의 높은 가지에 불같이 붉어라.

 

스러져 가는 햇볕은 희멀끔하여

창에 기대어, 하염없이도 머리를 빗는

버리운 여인과 같아라.

 

황혼의 때는 가없어라, 아아 설어라,

피었다가는 스러져 가는 너의 화향의

청량과 습음이 지상에 떠도는 동안에

때는 죽어가며, 밤은 오거라.

 

햇볕은 무디어, 공간으로 가고 말아라.

그윽한 전율은 지구의 흙 위에 내리며,

수목들은 저녁 기도의 천사인 듯하여라.

 

오오 잠깐 머물러라, 가는 때여!

생의 꽃이여! 잠깐 머물러라!

빨리도 한 절반 잠든 너의 곱고도 푸른 눈을 열어라

 

황혼의 때는 가없어라, 아아 설어라,

여인은 눈가에 가슴의 생각을 그윽이 띄우며,

지금 박명에 생기는 사랑의 살뜰함이 보여라

 

오오 세상의 사랑이여,

빛도 흰 부재의 따님이여,

황혼의 때를 사랑하여라.

그 눈에는 하느님이 낡고, 그 손에는

우리가 명일에 맛들 향료가 가득한

황혼의 때를 사랑하여라.

 

죽음이 떠돌며 아득히는

희미한 황혼(黃昏)의 때를 사랑하여라.

인생길의 하루에 피곤한 의 정적 속에서

몽환의 노래를 듣는 시간,

황혼의 때를 사랑하여라.

 

 

 

 

​◈ 전원사계(田園四季)

 

, 떨어지기 쉬운 청색의 아네모네여,

너의 밝은 눈의 핼금한 고뇌의 속에

사랑은 가없는 혼을 감추어 두었으나,

너는 지금 부는 바람에 떨고 있어라.

 

여름, 언덕의 갈대는 나를 보라 하는 듯이,

바다로 흘러가는 물에 그림자를 비추어 있을 때,

애달프게도 저녁 물속에 누워 있는 그림자는

한가하게 소리 없이 물 마시러 가는 암소의 무리여라.

 

가을, 나뭇잎의 비가 내려라,

넋이 ()’의 비가 내려라,

사랑에 몸이 죽은 넋이 의 비가 내려라,

아낙네들은 적막하게도 서방을 바라보나

수목은 공간에 망각의 비를 나타내어라.

 

겨울, 눈 이불을 덥고 누어있는 녹안의 아낙네여!

너의 두발은 서리와 고통과 소금에 쌓이었어라,

너의 미이라 목내이,

또는 저주를 무서워하지 않는 취잔의 맘이여,

설은 홍수정이여, 자거라,

너의 불사의 육체 속에서.

 

 

 

가을의 노래

 

가까이 오렴, 내 사람아,

가까이 오렴, 지금(只今)은 가을이다.

적막도 하고 습기도 있는 가을의 때다,

 

그러나 아직 앵두와 단풍과

다 익은 들장미의 과실은

키스와 같이 빛이 빨갛다,

가까이 오렴, 내 사람아,

가까이 오렴, 지금은 가을이다.

 

가까이 오렴, 내 사람아,

지금 애달픈 가을은

그 외투의 앞깃을 가득히 하고 떨고 있다마는

태양은 아직도 더우며,

네 맘과 같이 가벼운 공기 안에서

안개는 우리의 우울을 흔들며 위로해 준다,

 

가까이 오렴, 내 사람아,

가까이 오렴, 지금은 가을이다.

 

가까이 오렴, 내 사람아,

가까이 오렴, 갈바람은 사람과 같이 흐늑이며 운다,

성글은 수풀 밭 속에,

딸기나무는 피곤한 팔을 흐트러지고 있다마는

떡갈나무는 오히려 새파랗다,

가까이 오렴, 내 사람아,

가까이 오렴, 지금은 가을이다.

 

가까이 오렴, 내 사람아,

갈바람은 모질게 짖으며 우리를 꾸짖는다,

작은 길에는 바람의 말소리가 들리며,

무성한 수풀 밭에는

들비둘기의 고운 나래 소리가 아직도 들린다,

가까이 오렴, 내 사람아,

가까이 오렴, 지금은 가을이다.

 

가까이 오렴, 내 사람아,

지금 애달픈 가을은

겨울의 팔목에 몸을 맡기려한다마는

여름의 풀은 나오려하며, 핀 지초꽃은

아름답게도 마지막의 안개에 싸이어

꽃핀 고사리와도 같다,

 

가까이 오렴, 내 사람아,

가까이 오렴, 지금은 가을이다.

 

가까이 오렴, 내 사람아,

가까이 오렴, 지금은 가을이다,

옷을 벗은 포플라 나무들은 몸을 떨고 있으나

그 잎들은 아직 죽지 아니하고

황금색의 옷을 날리면서

춤을 춘다, 춤을 춘다, 그 잎은 아직도 춤을 춘다,

가까이 오렴, 내 사람아,

가까이 오렴, 지금은 가을이다.

 

 

 

메테르링크의 연극

 

어디인지도 모르나 안개 속에 섬이 있다.

섬에는 성이 있다,

성에는 작은 등불이 빛나는 넓은 방안이 있다,

이 방 안에는 사람이 기다리고 있다.

 

그들이 무엇을 기다리나?

그들은 그것을 모른다,

그들은 누군가 와서 문을 두드리기를 기다린다.

그들은 등불이 꺼지기를 기다린다,

그들은 공포를 기다린다.

그들은 죽음이 오기를 기다린다.

 

그들은 말을 한다.

이리하여 그들은 잠간 동안의 침묵을 말로 깨친다,

하던 말을 중지하고 그대로

그들은 무엇을 듣고 있다,

그들은 들으면서 그들은 기다린다.

 

죽음이 오겠나?

아아 죽음이 오겠나,

어느 길로 죽음이 오겠나,

벌써 밤은 깊었다,

어찌되면 죽음이 내일까지 아니 올지도 모르겠다.

넓은 방안의 작은 등불 아래에 모여든 사람들은

그윽이 미소하며 안심하라고 한다.

그때 누군지 문을 두드린다,

이 뿐이다,

이것이 일생이다,

이것이 인생이다.

 

 

 

폭풍우의 장미꽃

 

폭풍우의 뒤설레는 거칠음에

흰 장미꽃은 부대꼈어라,

그리도 많이 받은 괴로움에

그 꽃의 향훈만은 더욱 많아졌어라.

이 장미를 띠 속에 감추어 두어라,

그리하고 이 상처를 가슴에 넣어 두어라,

폭풍우의 장미꽃과도 너는 같아라,

수함에 이 장미를 넣어 두어라,

그리하고 폭풍우에 부닥친

장미의 내력을 생각하여라.

폭풍우는 그 비밀을 지켜 주리라,

이 상처를 가슴에 품고 있어라.

 

 

 

 

◈ ​흰 눈

 

시몬아, 너의 목은 흰 눈 같이 희다,

시몬아, 너의 무릎은 흰 눈 같이 희다,

 

시몬아, 네 손은 눈과 같이 차다,

시몬아, 네 맘은 눈과 같이 차다,

 

이 눈을 녹이려면 불길의 키스,

네 맘을 녹이려면 이별(離別)의 키스.

 

눈은 적막하게도 소나무 가지에 쌓였다,

네 이마는 적막하게도 흑발의 아래에 있다.

 

시몬아, 너의 누이 되는 흰 눈이 뜰에서 잔다,

시몬아, 너의 나의 흰 눈, 그리하고 내 애인이다.

 

 

 

낙엽

 

시몬아, 나뭇잎 떨어진 수림으로 가자,

낙엽은 이끼와 돌과 소로를 덮었다.

 

시몬아, 낙엽 밟는 발소리를 좋아하니?

낙엽의 빛깔은 좋으나, 모양이 적막하다,

낙엽은 가없이 버린 땅 위에 흩어졌다.

 

시몬아, 낙엽 밟는 발소리를 좋아하니?

황혼의 때면 낙엽의 모양은 적막하다,

바람이 불 때마다, 낙엽은 소곤거린다.

 

시몬아, 낙엽 밟는 발소리를 좋아하니?

가까이 오렴, 언제 한 번은

우리도 불쌍한 낙엽이 되겠다,

 

가까이 오렴,

벌써 밤이 되어 바람이 몸에 스며든다.

시몬아, 낙엽 밟는 발소리를 좋아하니?

 

 

 

과수원

 

시몬, 과수원으로 가자,

버들함을 가지고.

과수원에 들어가면서

임금나무에게 말하자,

지금은 임금(林檎)의 시절,

과수원으로 가자, 시몬,

과수원으로 가자.’

 

임금나무에는 벌이 가득하다,

임금이 잘 익어서.

임금나무 주위에는

붕붕 우는 소리가 난다.

임금나무에는 임금이 가득하다,

과수원으로 가자, 시몬,

과수원으로 가자.

 

둘이 함께 붉은 임금을 따자,

구임금도 청임금도 따자,

과육이 조금 익은

임금주 만들 임금도 따자,

지금은 임금의 시절,

과수원으로 가자, 시몬,

과수원으로 가자.

 

네 손과 옷에는

임금의 냄새가 가득하다,

그리하고 너의 두발에도 가득히

곱다란 가을 냄새가 찼다,

임금나무에는 임금이 가득하다,

과수원으로 가자, 시몬,

과수원으로 가자.

 

시몬, 너는 나의 과수원,

그리하고 나의 임금나무가 되어다오,

시몬, 벌을 죽여 다오,

너의 맘에 있는 벌,

그리하고 내 과수원의 벌을,

지금은 임금의 시절

과수원으로 가자, 시몬

과수원으로 가자.

 

 

 

 

물방아

 

시몬, 물방아는 대단히 낡았다,

바퀴는 돋는 이끼에 푸르다,

바퀴는 돈다 큰 구멍 속을

멋없이도 바퀴는 돈다, 바퀴는 돌아간다.

끝없는 고역이나 받은 듯이

 

사위의 담벽은 흔들린다,

마치 밤에 바다 위를 기선이 지나가는 듯하다,

멋없이도 바퀴는 돈다, 바퀴는 돌아간다.

끝없는 고역이나 받은 듯이.

 

사위는 어둡고 무거운 석구의 우는 소리가 들린다,

석구(石臼)는 조모보다도 착하고 조모보다도 늙었다,

멋없이도 바퀴는 돈다, 바퀴는 돌아간다.

끝없는 고역이나 받은 듯이.

 

석구는 착한 나만한 조모님,

아이의 힘으로도 멈추고, 적은 물도 그것을 움직인다,

멋없이도 바퀴는 돈다, 바퀴는 돌아간다.

끝없는 고역이나 받은 듯이.

 

석구는 중 같이 착하다,

석구는 우리를 살리며 도와주는 땅을 만든다,

멋없이도 바퀴는 돈다, 바퀴는 돌아간다.

끝없는 고역이나 받은 듯이.

 

석구는 사람을 양육한다,

사람을 따르며 사람을 위하여

죽는 종순한 짐승을 양육한다,

멋없이도 바퀴는 돈다, 바퀴는 돌아간다.

끝없는 고역이나 받은 듯이.

 

석구는 일한다, 운다, 돌아간다, 주저린다,

옛적의 옛적부터, 이 세상의 처음부터.

멋없이도 바퀴는 돈다, 바퀴는 돌아간다.

끝없는 고역이나 받은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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