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복(鄭然福) 시인
1957년 서울. <목회자>
정연복 시 모음
◈ 초가을
흰 구름 흘러가는
파란 하늘만 바라보아도
가슴이 확 넓어지고
삶의 근심걱정 사라진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고
코스모스 춤추는 들길을 걸으면
발걸음 깃털같이 가볍고
사랑하는 사람이 문득 그립다.
◈ 초가을의 기도
아침저녁으로 부는
산들바람이 시원합니다
한낮에는 여전히
따뜻해서 참 좋습니다.
여름과 가을을 잇는
징검다리
초가을은 참으로
아름다운 계절입니다.
삶의 기쁨과 슬픔
한데 엮어
나의 생도 계절같이
천천히 깊어가게 하소서.
◈ 코스모스
코스모스처럼
명랑하게
코스모스처럼
단순하게
코스모스처럼
다정다감하게
코스모스처럼
단아하게
코스모스처럼
가볍게
세월의 바람에
흔들리면서도
코스모스처럼
꺾일 듯 꺾이지 않으며!
◈ 낙엽을 보며
변함없는 사랑으로
너와 나
한세월
다정한 동행이었다가
우리의 목숨
낙엽 되어 지는 날
너는
나의 가슴에
나는
너의 가슴에
그저
단풍잎 한 장의
고운 추억으로
남고 싶어라
◈ 가을
하늘 저리도 높은데
가을은 벌써 깊다
말없이
자랑도 없이
나뭇잎마다 단풍이나
곱게 물들이면서
하루하루 가만가만
깊어 가는 가을
아!
나는 얼마나 깊은가
나의 생도 고운
단풍으로 물들고 있는가
◈ 가을 하늘
오늘 하늘은
거대한 연파랑 도화지
솜사탕 모양의 구름들
함께 어우러져
그대로 한 폭의
평화로운 그림이다.
푸른 하늘
따스한 햇살 아래
나무들의 가벼운 춤도
참 보기 좋다.
오늘 하루만큼은 세상살이
깨알 같은 근심 걱정 다 잊고
가슴 가득히 넓은
하늘 하나 펼쳐야겠다.
◈ 코스모스의 독백
나 하나 춤춘다고
뭐 달라질 건 없겠지
나 하나의 명랑함으로
이 세상 슬픔이 옅어지진 않겠지.
그래도 이따금 내 앞에
멈췄다 가는 사람들이 있네
웃는 내 얼굴을 한참 들여다보곤
가슴 여미는 사람들이 있네.
어차피 삶이야
많이 힘들고 쓸쓸한 거라지만
그래도 난 너른 들녘의
한 점 해맑은 웃음으로 살다 가겠어.
◈ 꽃 앞에 서면
작은 풀꽃 하나
눈에 쏙 들어왔습니다
순간, 세상이 밝아 보이고
마음이 환해집니다.
야트막한 채송화를 보려고
몸을 바싹 낮추었습니다
세상 욕심 눈 녹듯 사라지고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꽃 앞에 서면
작고 낮은 꽃 앞에 서면
문득 나도
한 송이 꽃이 됩니다.
◈ 바람처럼
어제는 하늘이 폭삭 내려앉을 듯
맹렬한 폭풍우 속에
나무들도 덩달아
심하게 몸살을 앓더니
오늘은 맑게 개인
유월의 밝은 햇살 아래
살랑살랑 춤추는
저 푸른 이파리들
보이지는 않아도
지금 이파리들의 사이마다
바람이 불어
바람이 머물러
이파리들은 저렇게 사뿐히
흔들리고 있는 게다
나도
바람처럼 살고 싶다
없는 듯 있는
저 보이지 않는 바람
◈ 바람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
가만히 뒤돌아보니
허공에 휘익
한줄기 바람이 스쳤을 뿐인데
어느새 반백 년 세월이
꿈결인 양 흘러
나의 새까맣던 머리에
눈꽃 송이송이 내리고 있네
바람에 꽃잎 지듯
생명은 이렇게도 짧은 것을
덧없는 세월이기에
어쩌면 보석보다 소중한 목숨
이제는 마음이야 텅 비워
바람 되어 흐르리라
◈ 겨울나무
매서운 한파 몰아쳐
세상이 꽁꽁 얼어붙고
거리의 사람들
종종걸음을 치는데도
빈 가지들뿐인
알몸의 겨울나무들
참 의연한 모습이다
꿈쩍없이 곧게 서 있다.
연초록 새순이 돋아나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기까지는
어차피 견뎌야 할
혹독한 시련이라면
끝내 견디리라
끝끝내 참아내고 말겠다는
비장한 결의 하나로
하늘 아래 우뚝 서 있는
당당하기 이를 데 없는
겨울나무들.
◈ 나목(裸木)
봄, 여름, 가을
잎새들 무성한
찬란한 세 계절에는
스치는 바람에도 뒤척이며
몸살을 앓더니
겨울의 문턱에서
그리도 빛나던 잎새들
털어 내고서는
생명의 기둥으로
우뚝 서 있는 너
떨칠 것 미련 없이 떨치고
이제 생명의 본질만 남아
칼바람에도 미동(微動) 없이
의연한 모습의
오! 너의 거룩한 생애
◈ 아가의 눈
아가의 눈은
세상에서 가장 맑은 창문
아가의 눈은
세상에서 가장 깊은 호수
아가의 눈에 부서지는 햇살은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보석
아가의 눈에 맺힌 눈물은
세상에서 가장 영롱한 이슬
그분이 만드신
세상에서 가장 예쁜 꽃
아가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나도 잠시 아가가 된다
◈ 아가 눈동자
세상에서 가장 작고도
가장 깨끗한 창(窓).
정녕 그분이
뜸들여 빚고 또 빚으셨을
실단추 같은 눈꺼풀 틈새
아가 눈동자 속
엄마의 맑은 영혼과
아빠의 선한 마음이 만나
꽃
빛 꽃 한 송이 피었네.
사랑의 신비
살아 있음의 기쁨
한마디 말없이
소리 없이 이야기하는
동트는 태양같이 찬란하고도
까마득히 깊은 저 눈빛.
◈ 아가
이 세상 모든 아가들은
신성한 존재
생명의 주인이신 그분이
아홉 달 넘도록
엄마 뱃속에서
정성껏 빚으신 선물이다
아가들의 눈, 코, 입, 귀
심장과 팔다리와 손톱 발톱까지
이 모두가
그분의 기막힌 걸작품이다.
세상 제아무리 예쁜 꽃들도
아가들 앞에서는 무색하다
세상 그 어떤 눈부신 보석도
아가들 앞에서는 빛 바랜다
세상 모든 슬픔과 괴로움도
아가들 앞에서는 별것 아니다.
아가들은 사랑과 기쁨
믿음과 평화와 희망의 꽃이므로.
◈ 아가의 봄
예배당에 울려 퍼지는
큰 찬송소리 속에서도
엄마 품에 안겨
세상 모르고 평화의 단잠을 자는
아가야 한 잎
꽃잎같이 작은 아가야
너의 쌔근쌔근 고운 숨결 따라
긴 겨울은 끝나고
저만치 연초록
따순 봄날이 오고 있구나
가만히 자면서도
희망의 봄을 밀고 오는
아가야
작은 아가야
◈ 사랑의 천사 - 백일 축시
엄마 아빠의 착한 사랑에
그분께서 빛나는 선물 주시었네
한 올 한 올 숲의
나무들같이 무성한 머리털
광야를 닮은 시원한 이마
초롱초롱 별빛 눈
오뚝한 산봉우리 코
연분홍 앵두 입술
두둥실 환한 보름달
아가 얼굴에 온 우주가 담겨 있네.
네 선하게 잘생긴 모습을 바라만 봐도
아빠는 너무 좋아 웃음꽃 피고
네 보드라운 살갗에 닿기만 해도
엄마의 온몸엔 행복의 전율
너의 작은 몸 하나로
온 세상에 사랑의 불 밝히는
아가야 너는
이 땅에 내려온 사랑의 천사.
◈ 아가 - 첫돌 축시
엄마 뱃속에서
꼼지락대던 그 여린 것
이 세상에 나온 지
어느새 일년
너 하나 있어
세상 풍경이 온통 달라졌네
너의 눈동자에 담겨
햇살과 별빛은 하늘 호수 되고
너의 앵두입술 사이로 흘러나와
옹알이는 천국 음악 되네.
하루가 다르게
쑥쑥 커 가는
어쩌면 크신 그분이 기르시는
생명나무 같은 것
온 우주에서
가장 빛나고 소중한 하나
아가야.
◈ 바람
바람은 꽃잎 위에
머물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꽃잎들에게
찰나의 입맞춤을 하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고요히 사라질 뿐
바람은 꽃잎에
연연(戀戀)하지 않는다.
꽃잎처럼 여리고 착한
영혼들에게
모양도 없이 빛도 없이
그저 한줄기 따스함으로 닿았다가
총총히 떠나간
그분의 삶이 바람이었듯
나의 남은 생애도 바람이기를!
◈ 바람과 햇살과 별빛
꽃잎에 맴돌다 가는 바람에
어디 흔적이 있으랴
그래도 보이지 않는 바람에
꽃잎의 몸은 흔들렸으리
꽃잎에 머물다 가는 햇살에
어디 흔적이 있으랴
그래도 보이지 않는 햇살에
꽃잎의 마음은 따스했으리
꽃잎에 입맞춤하는 별빛에
어디 흔적이 있으랴
그래도 보이지 않는 별빛에
꽃잎의 영혼은 행복했으리
오!
보이지 않는 것들의 힘이여
◈ 바람이 하는 말
바람이 하는 말을
들어보았니
오월의 푸른 잎새들의
갈피마다 살랑대는 바람이
나지막이 속삭이는
말없는 말
흘러라
막힌 데 없이 흘러라
그러면 잎새들은 잠 깨어
깃털처럼 흔들리나니
모양도 빛도 없는
나의 생명의 유일한 힘은
그저 흐름의 힘일 뿐
그것 말고 나는 무(無)일 뿐
◈ 바람
고단하지 않은 생명이
세상에 어디 있으랴
너른 대기를 가로지르는
긴 여정 끝
잎새에 내려앉아
가쁜 숨 잠시 고르다가도
이내 바람은
총총히 떠난다
어디인지 알 수 없는
그 다음의 거처로
흐르고 또 흐르는
바람이여
◈ 바람
바람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부는 것일까
시작도 없이
끝도 없이
모양도 없이
빛도 없이
그저 흐르고 또 흐르는
바람이여
눈물겨운 절대 고독인 듯
찬란한 절대 자유의
기막힌
한 생이여
나의 생도
한줄기 바람이기를!
◈ 봄비
밤새 보슬보슬
내리는 봄비
겨울 너머 먼길
걸어오느라 고단한
새봄의 목마름을
해갈시켜 준다.
이제 추운 겨울은 가고
꽃샘추위도 갔으니
산에 들에
어서 꽃 피우라고
메마른 대지
촉촉이 적시는
보드라운
봄비.
◈ 봄비
보슬보슬
봄비 내리는 날
비에 젖은
이파리들의 연둣빛
눈이 부시도록
영롱하다
보석보다도 빛나는
저 아름다운 빛.
비를 맞으며
비를 흠뻑 맞으니까
더 좋은 빛깔이 되어 가는
저 잎새들같이
살아가다가 이따금
슬픔과 괴로움의 비에 젖더라도
맥없이 울지 말자
희망의 노래를 멈추지 말자
빗속에 연둣빛 희망
감추어져 있음을 잊지 말자.
◈ 봄비
보슬보슬
봄비 내린다
이슬같이
살금살금 내린다
비에 젖은 초록
이파리들 더욱 푸르다.
꽃 피워
세상을 환히 밝히고
또 꽃을 떠나보내고
이제는 사람들에게 초록 희망을 전하는
나무들이 참 수고한다고
좋은 일을 너무 많이 한다고
그래서 고맙다고
땀을 잠시 식히라고
하느님은 은총의 봄비
내려주시는가 보다.
◈ 봄비
오월
열 하룻날
날은 어둡고
주룩주룩 봄비 내려
초록 이파리들
온몸이 흠뻑 젖네
비는 밤새도록
내릴 것 같아
이파리들도 한밤 내내
찬비를 맞아야겠지.
이 밤이 지나면
초록빛 더 짙어지리라
잎새들
더욱 무성하리라.
◈ 소원
몸은
비록 볼품없어도
마음은
꽃같이 아름답기를.
육체는 세월 따라
낡아지더라도
정신은 나날이
새로워지기를.
내 몸이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는 날
영혼은 한줄기
시원한 바람이 되기를.
◈ 나의 소원
하늘의 별같이 빛나는
훌륭한 사람 아니라
지상의 이름 없는 들꽃같이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세상의 외로운 길손에게
잠시 벗이 되어주고
가난하고 슬픈 이들에게
작은 위안이 되는.
◈ 사랑의 소원
나는 너의
긴 슬픔에 스치는
찰나의
빛이고 싶다.
너는 나의
옅은 기쁨에 꽂히는
깊은 슬픔이
되기를.
◈ 내 마음의 소원
하늘은 마음의 키가 커서
세상 모든 것을 굽어살필 수 있다
땅은 마음이 지평선 끝까지 넓어
뭐든지 다 포용할 수 있다
바다는 마음 씀씀이가 깊어
말없이 다 품어줄 수 있다.
내 마음의 키는
하늘 아래 해바라기쯤
내 마음의 넓이는
너른 들판의 한 작은 모퉁이쯤
내 마음의 깊이는
깊은 산 속 옹달샘쯤만 되어라.
◈ 모닥불의 소원
나의 몸
한 그루 나무보다 작고
나의 마음
한 송이 꽃만큼 곱지 못해도
지상에서
살아 있는 동안
나의 몸 나의 마음
모닥불로 아낌없이 태워
세상의 어느 모퉁이
여린 따스함이나 되었다가
이 목숨 다하는 날
어느 것 하나 남지 않고
다만 한줄기 희고
가벼운 연기로 치솟기를.
◈ 생명 서시
온 세상 금은보화로도
살 수 없고
온 우주에서
가장 빛나고 귀한 보석
그것을 지금
내 수중에 갖고 있으니
그 빛 바래지 않도록
혼신의 힘을 다하자.
하늘이 다시
거두어 갈 때까지
내게 잠시 맡겨진
그 소중한 보석 하나를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닦고 또 닦자.
◈ 생명(生命)
생명(生命)은
살라는 명령이다
그러니 내 생명이라고
함부로 할 수 없다
주어진 명령에 따라
소중히 다루어야 한다.
내 생명에 대해
누가 명령을 내리는가
나보다 더 높은 자가
명령을 내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보다
더 높은 자는 누구인가
생명의 주인이신
'그분'이 아니겠는가.
◈ 생명
꽃이 아름다운 것은
생명이 있기 때문
눈부시게 피었다가
쓸쓸히 지기 때문이다.
삶이 아름다운 것은
시작과 끝이 있기 때문
지상을 거닐다가
흙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생명이 아름다운 것은
다채롭기 때문
기쁨과 슬픔이
늘 함께 있기 때문이다.
◈ 사랑은 생명의 불씨
사랑하는 사람 하나
마음속에 살아 있으면
크나큰 고통과 시련
절망의 태풍이 몰아쳐도
생의 희망을 잃지 않고
힘있게 버틸 수 있다.
금방 쓰러질 것 같아도
마음속에 사랑이 살아 있음은
생명의 불씨가
아직은 남아 있다는 것
그 불씨가 꺼지지 않는 한
희망 또한 살아 있기 때문이다.
꺼질 듯하지만
쉽사리 꺼지지 않는
그 작은 불씨 하나만
어떻게든 잘 지켜 가면
언젠가는 다시 활활
불꽃으로 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 생명을 위한 기도
제 생명의
처음과 끝을 생각하게 하소서
생명보다 귀한 것이 없음을
잠시도 잊지 않게 하소서.
생명 있는 모든 것을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소서
생명 살림의 착하고
보람있는 일을 많이 하게 하소서
생명을 경시하고 해치는
세상 풍조에 용감히 맞서게 하소서.
타들어 가는 양초같이
점점 줄어드는 나의 생명
생명의 불꽃으로
잔잔히 타오르게 하소서
온전히 불타서 죽어서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게 하소서.
◈ 꽃 마음
꽃은
함께 피어도 예쁘고
외딴 곳에
홀로 피어도 예쁘다
꽃은 마음이
참 크고 넓은가 보다
자기를 자랑하지 않고
어울려 살아갈 줄도 알고
가만가만 외로움을
삭일 줄도 안다.
◈ 꽃 마음
사람들의
우악스런 손길에
꺾이고서도
잘리고서도
한마디
불평이 없다.
이제는 시들어
죽을 운명이면서도
목숨의 마지막 순간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웃는다
웃어 준다.
용서한다는 말 따위
입 밖에 내지 않고
모든 아픔 모든 운명
가만히 받아들여
그냥 맘속으로 모든 것
덮어주고 용서해 준다.
◈ 꽃 마음
사람의 얼굴이 아무리 예뻐도
꽃보다 예쁠 수는 없다
미스코리아도 미스월드도
꽃 앞에서는 별것 아니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꽃처럼 예쁠 수 있다.
꽃같이
순하고 여린 마음
그러면서도
비바람을 이기는 마음
이런 꽃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여기저기 숨어 있어
세상은 아직
희망이 있는 거다.
◈ 꽃 마음
아무리 나쁜 사람도
꽃에게는 침을 뱉지 않는다
꽃은 늘
밝게 웃는 얼굴이니까.
사람 눈에
드러나게 보이지는 않아도
꽃은 속마음이 착하고
순수하다는 게 느껴지니까.
다른 건 몰라도
마음 하나는 꽃을 닮은 사람들
꽃같이 순하고 예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나면
세상에서 미움과 경쟁과 싸움은
서서히 줄어들고
사랑과 공존과 평화의 기운이
점점 더 많아질 거다.
◈ 영혼의 안부
저 먼 하늘
어딘가
일곱 빛깔 무지개
살고 있으리.
나의 작은 가슴속
어디쯤
나의 영혼
살아 있으리.
오늘 문득
네가 생각났다
나의 영혼이여
안녕한가?
◈ 사랑과 영혼
보이지 않는
마음이란 게 뭔지
영혼이라는 것은
도대체 또 뭔지
영혼이라는 게
과연 있기는 한 걸까.
평소에는 무관심하고
잘 모르다가도
사랑에 빠지면
저절로 알게 된다
가슴 깊이
느낄 수 있다.
사랑으로 기쁘고
사랑으로 행복한
마음과 영혼이
바로 내 안에 살아 있음을.
◈ 나무의 영혼
걸어 다니는 발이
없으면서도
어느 틈에
사람들 곁에 와 있다.
무슨 할 얘기가
있는 것은 아닐까
나무의 영혼도 사람들같이
외로운 것은 아닐까.
◈ 영혼의 집
나이 육십이 된
지금까지도
내 집 한 칸이 없어
전세를 살고 있지만
육체가 거하기에는
아무런 불편함이 없다
몇 년마다 이리저리
전셋집을 옮겨 다니는 게
오히려 낯선 곳으로의 여행 같아
재미있기까지 하다.
그렇다면 지금
내 영혼의 집은 어떠한가
그 집은 육체의 집만큼이라도
안전하고 쾌적한가
그 집에서는 아늑한
사랑의 분위기가 느껴지나.
◈ 영혼의 밥
육신을 위해서는
하루 밥 세 끼
꼬박꼬박
챙겨 먹는 사람들.
육체의 아름다움을 위해서는
땀 흘려 운동하고
비싼 성형수술도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
영혼을 위해서는
무엇을 할까
그들의 영혼은 지금
어떤 모양을 하고 있을까.
영혼의 밥인 사랑
사랑함과 사랑 받음이 부족하여
영양실조에 걸려 있거나
몰골사나운 건 아닐까.
◈ 노을
해가 뜰 때
해가 질 때
하늘이
벌겋게 물든다.
아침 노을과 저녁 노을
겉보기에는 똑같다
하지만
느낌은 전혀 다르다.
아침 노을을 바라보면
가슴속 희망이 용솟음친다
저녁 노을 앞에서는
마음이 차분히 낮아진다.
조석으로 하루에 두 번
펼쳐지는 노을 풍경
인생의 길을 인도하는
하늘의 표징이다.
◈ 노을 꽃
서쪽 하늘 너머로
뉘엿뉘엿
연분홍 고운 빛깔
꽃 한 송이 지고 있다
온 세상에서
제일 큰 꽃이다.
노을 꽃!
◈ 노을 꽃
피는 꽃만
예쁜 게 아니다
지는 꽃도
못지않게 예쁘다
가만히 보면
지는 꽃이 더 예쁘다
슬퍼지니까
가슴 아리도록 예쁘다.
해 뜨고 질 때의 노을도
꽃이랑 비슷하다
새 아침 새 희망을
노래하는 아침노을보다도
저무는 하루를 속삭이는
저녁노을이 더 곱다
아롱아롱 눈물 너머
가슴속 파고들며 곱다.
어느새 이제
나의 생도 지는 꽃이요
해 저물녘
노을 쪽으로 기운 모양이다.
◈ 노을 꽃
해질녘 산마루 넘어가는
연분홍 노을
아침에는 어둠 뚫고 치솟은
불덩이더니
하루종일 온 세상 비추는
따스한 빛이더니
어쩌면 하루의 마감이
이다지도 고울 수 있을까.
지상에 잠시
머물다 가는 동안
나도 환한
마음의 빛으로
세상의 한 모퉁이를
밝히고 따뜻하게 하다가
노을 꽃 한 송이로
생을 끝마칠 수는 없을까.
◈ 석양(夕陽)
서산마루를 넘어가는
석양은 아름다워라
생명의 마지막 한 점까지 불살라
기막힌 노을 빛 하나 선물하고
아무런 미련 없이 세상과 이별하는
저 순하디 순한 불덩이
한낮의 뜨거운 태양은 눈부시지만
석양은 은은히 고와라
내 목숨의 끝도
그렇게 말없이 순하였으면!
◈ 윙크
청춘의 때
가슴속 사랑이 움터
꿈결같이 행복한
연애를 하던 시절
사랑하는 이의
윙크 한번 받아보았다면
그 사람은
사랑에 가난하지 않은 거다.
세월은 바람같이 흘러
그 사람 이제 곁에 없어도
찰나에 주고받았던
황홀한 사랑의 눈짓
그것 하나 영영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았다면
지상의 고단한 한세월도
너끈히 견딜 수 있다.
◈ 작은 믿음
비 온 뒤의 하늘은
참 맑고 푸르다
검은 구름은 사라지고
햇살이 밝다.
지금 나의 생에
쓸쓸히 비 내리고 있으니
이 비가 지나고 나면
좋은 날이 있으리.
◈ 믿음
빛나는 태양도
쓸쓸한 달빛도
모두 그분의
한 하늘 안에 있네.
삶의 기쁨과 괴로움
육신의 건강과 질병도
모두 그분의
선하신 뜻 가운데 있네.
추운 겨울 지나 봄은 오고
마른 가지에 새순 돋듯
믿음의 뿌리가 있는 한
희망 또한 영원하네.
지금까지 나의 발걸음
인도하여 주셨던 그분께서
남은 인생도 굳게 지켜주실 줄
나는 믿고 또 소망하네.
◈ 믿음
사랑이 많으신 그분은
세상 모든 사람을 아끼시지만
티없이 맑은 영혼의 사람을
더 알뜰히 보살펴주시리.
꽃같이 순한 영혼아
살아라 마음껏 살아라
비바람 부는 날에도
눈보라 치는 날에도
사랑과 생명의 굳센 힘을 믿고
소망의 깃발 높이 들어라
강을 지나 더 넓고 깊은
바다에 가 닿듯이
슬픔의 강 너머 더 큰
기쁨과 평화의 바다를 향해
힘차게 명랑하게
노래하며 나아가라고
토닥토닥
등을 두드려 주시리.
◈ 사랑의 믿음
째각째각
시계의 초침 소리
콩닥콩닥
심장의 고동 소리
찰나의
그 소리마다
그 소리와 소리 사이의
이랑마다
당신 생각에 알알이
그리움의 씨앗을 심으면
언젠가는
꿈결같이 꽃은 피리라
마침내는 사랑
꽃 한 송이 피어나리라.
◈ 믿음을 위한 기도
보이는 것에
현혹되지 않게 하소서
번쩍이는 것에
한눈팔지 않게 하소서.
보이지는 않아도
참으로 귀하고 아름다운 것
빛나지는 않아도
한결같고 진실한 것
작고 볼품없어도
참된 가치가 깃들인 것
사랑과 믿음과 우정
선한 마음과 고결한 정신
자유와 평화와 행복
깨끗한 양심과 순결한 영혼에 대하여
늘 깊은 관심을 갖고
하루하루 정성껏 살게 하소서.
◈ 슬픔의 바다
기쁨이 강물이라면
슬픔은 바다.
강물이
바다로 흘러가듯
기쁨은 끝내
슬픔에 안기는 것.
출렁이는 강물도
아름답지만
고요한 바다는
더욱 깊고 아름다워라.
◈ 슬픔의 힘
기쁜 일이 생기면
마음이 들뜬다
세상이 밝아 보이고
인생살이가 쉽게 여겨진다.
슬픈 일이 생기면
마음이 가라앉는다
주변 세상이 회색으로 보이고
삶이 만만치 않게 느껴진다.
기쁨이 찾아오면
마음의 문이 스르르 열린다
남들에게 다정해지고
그냥 친절을 베풀고 싶어진다.
슬픔이 찾아오면
시선이 내면으로 향한다
바쁘게 살면서 잊고 있었던
나의 참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기쁨도 힘있지만
슬픔은 훨씬 더 힘이 세다
슬픔의 시간 동안
삶의 뿌리가 튼튼해진다.
◈ 조용한 슬픔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배가 잔뜩 부르면
별것 아니다
진절머리 난다.
세상 살아가는 게
즐거움과 웃음뿐이라면
오히려 그런 삶은
끔찍한 저주가 될 것이다.
밝은 햇빛 너머
외로운 달빛 있듯이
떠들썩한 웃음과 기쁨 뒤에
찾아오는 조용한 슬픔 있어
세상은 살아갈 만하고
인생살이의 멋도 행복도 있다.
◈ 슬픔 앞에서
억수로 퍼붓는 비를
모두 막을 수는 없어도
작은 우산을 꼭
붙들고 있어야 하듯이
이따금 찾아오는 슬픔의
파도를 어쩔 수는 없어도
그 슬픔에 하염없이
젖어들지는 말자.
제아무리 슬픔이
기쁨의 엄마라고 하여도
슬픔에 맥없이
길들여지지는 말자.
도도히 밀려오는
슬픔의 파도 앞에서도
삶의 희망과 용기를 갖고
몸을 곧추세우자.
◈ 슬픔의 강 너머
막힘 없이 슬슬
흐르는 물도
강을 지나지 않고서는
바다에 닿지 못한다
긴 강줄기의 끝까지
다 통과하고서야 비로소
바다와의 뜨거운
첫 입맞춤이 있는 거다.
지금 가슴속에
슬픔의 강물 흐르는 자여
한줄기 눈물쯤이야
펑펑 쏟아도 되겠지마는
깊은 슬픔 너머
더 깊은 기쁨의 바다 있음을
잠시도 한순간도
잊지 말아라.
◈ 웃음꽃 필 무렵
요즘 들어 나는
슬픔이 짙다
겉으로는 울지 않아도
속울음이 나올 때가 많다
활짝 웃어본 지가
무척 오래된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슬픔에 무너지지 않으리
괴로움 너머
기쁨 있음을 잊지 않으리
어쩌면 바로 지금이
웃음꽃 필 무렵!
◈ 웃음꽃
하마 입 우리 아빠
하하하
앵두 입술 우리 엄마
호호호
나는 새앙쥐 입
히히히
병아리 입 내 동생은
후후후
하하 호호
히히 후후
히히 호호
후후 하하
호호 후후
히히 하하
우리 집 웃음꽃
피어나는 소리
행복의 꽃마차
굴러가는 소리
◈ 까르르
까르르!
골목 어귀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연방 터져 나오는
하나의 웃음이
둘의 웃음이 되고
둘의 웃음이
또 셋의 웃음으로 번지는
한 송이 꽃같이
해맑고 기분 좋은 소리
꽃들도 이 소리 들었는지
더 활짝 웃는 모습이다
◈ 미소
제비꽃 작은
미소 하나
너에게로 띄워 보냈다
나에게로 돌아온
채송화처럼
환한 웃음 한 다발
두둥실 하늘을
나는 마음에
난 다시 너에게로
나팔꽃
싱그러운 웃음 한 바구니
실어 보냈다
미소에서 미소로 이어지는
이 신비한 전염
행복한 미소의
에스컬레이션
◈ 풀꽃의 웃음
좁쌀만 한
하얀 풀꽃 하나
파란 하늘
밝은 햇살 아래
온몸으로
활짝 웃고 있다
남이 보아주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그냥 제 모습 그대로
환한 웃음을 짓고 있다
참 예쁘다
너무나도 당당하다
세상 풍경을
살며시 바꾸어놓는
저 작디작은 것의
눈부신 웃음꽃 한 송이.
◈ 눈물
웬만큼 기쁘면
웃음이 나오지만
진짜로 기쁘면
울음이 나옵니다
고였던 봇물 터지듯
눈물샘 펑펑 터집니다.
웃음도 좋지만
웃는 모습 꽃같이 예쁘지만
울음이 눈물이
한 수 위인 모양입니다.
◈ 웃음과 눈물
얼굴에 피어나는
활짝 웃음이
한 송이
어여쁜 꽃이라면
눈가에 아롱아롱
맺힌 눈물은
세상에서 가장 값진
진주 보석이다.
웃는 얼굴에
행복이 찾아온다지만
눈물 없는 웃음은
생명 없는 종이꽃 같은 것
이제 얼마쯤 남은
지상에서의 내 목숨
부디 눈물로
흠뻑 젖어들었으면!
◈ 꽃잎
꽃잎은 겨우
한 계절을 살면서도
세상에 죄 지은 일
하나 없는 양
언제 보아도
해맑게 웃는 얼굴이다
잠시 살다가
총총 사라지는
가난한 목숨의
저리도 환한 미소
마음 하나
텅 비워 살면
나의 생에도
꽃잎의 미소가 피려나
◈ 코스모스
연분홍 코스모스 더미 속에서
아내가 웃고 있다
분홍빛 루즈를 칠한
입술 사이로
하얀 이빨 가지런히 드러내고
고운 눈웃음을 짓는다.
가을꽃 코스모스
가을에 태어난 아내
둘은 참 잘 어울린다
찰떡궁합 같다.
여덟 장의 꽃잎 벌려
코스모스가 활짝 웃고
아내도 덩달아
밝게 미소짓는 모습을 보니
올 가을에는
좋은 일이 많이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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