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詩 같은 삶을 위하여
☞ 문학의 뜨락

천상병(千祥炳) 시 모음

by 石右 尹明相 2022. 6. 18.

 

 

천상병 시인(1930~1993), 경남 마산.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중퇴, 호는 심온(深溫).

1949년 문예 '갈매기' 등단,

죽순(竹筍)에 시 공상(空想)1편을 처음 발표.

1971년 제1시집 발간, 이후 5집까지 발간.

2003. 은관문화훈장

 

 

 

천상병(千祥炳) 시 모음

 

 

歸天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구름

 

저건 하늘의 빈털터리 꽃

뭇 사람의 눈길 이끌고

세월처럼 유유하다.

 

갈 데만 가는 영원한 나그네

이 나그네는 바람 함께

정처 없이 목적 없이 천천히

 

보면 볼수록 허허한 모습

통틀어 무게 없어 보이니

흰색 빛깔로 상공 수놓네.

 

 

 

봄을 위하여

 

겨울만 되면

나는 언제나

봄을 기다리며 산다.

입춘도 지났으니

이젠 봄기운이 화사하다.

 

영국의 시인 바이론도

'겨울이 오면

봄이 멀지 않다고'했는데

내가 어찌 이 말을 잊으랴?

 

봄이 오면

생기가 돌아나고

기운이 찬다.

 

봄이여 빨리오라.

 

 

 

청녹색

 

하늘도 푸르고

바다도 푸르고

산의 나무들은 녹색이고

하나님은 청녹색을

좋아하시는가 보다.

 

청녹색은

사람의 눈에 참으로

유익한 빛깔이다.

이 유익한 빛깔을

우리는 아껴야 하리.

 

이 세상은 유익한 빛깔로

채워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니

안타깝다.

 

 

 

젊음을 다오!

 

나는 올해 환갑을 지냈으니

젊음을 다오라고

부르짖지 않을 수 없다.

 

나 자신도 모르게

젊음이 다 가벼렀으니

어찌 부르짖지 못하겠는가.

 

내가 젊어서도

시인이 되겠지만

그러나 너무나 시일이 짧다.

 

다시 다오 청춘을!

그러면 나는 뛰리라.

마음껏 뛰리라.

 

 

 

곡차

 

나는 무수한 우수한 사람들 아는데

이분들께 감사론 말씀 이는데

다만 묵묵부답이다.

 

나의 18번은

그저 곡차(막걸리)마시는 것뿐인데

저녁 6시에 한통 사면

옆의 처남 부르고

몇 시간이고 가니

어찌 술이라 하겠는가?

 

인생은 소중하고

고귀한 것이니

함부로 헛되게 쓸소냐?

 

중국의 만만디이(慢慢的)란 말은

일을 서둘지 않고

급하거든 멀리 가라는

인생 탐욕인데

이 탐욕 앞에서는

그저 허허 웃음뿐이다.

 

우리는, 시간을 아껴 쓰는 것 좋고

다 좋지만은

인생을 느슨하게 복되게 사는 것을

무슨 일 하고도

바꾸지 말 일이다.

 

 

 

 

술 없이는 나의 생을 생각 못한다.

이제 막걸리 왕대포집에서

한잔 하는 걸 영광으로 생각한다.

 

젊은 날에는 취하게 마셨지만

오십이 된 지금에는

마시는 것만으로 만족한다.

 

아내는 이 한잔씩에도 불만이지만

마시는 것이 이렇게 좋은 줄을

어떻게 설명하란 말인가?

 

 

 

맥주

 

나는 지금 육십 둘인데

맥주를 하루에 두병만 마신다.

 

아침을 먹고

오전 5시에 한 병 마시고

오후 5시에 또 한 병 마신다.

 

이렇게 마시니

맥주가 맥주가 아니라

음료수가 다름이 없다.

 

그래도 마실 때는 썩 마음이 좋고

기분이 상쾌해진다.

 

 

 

막걸리

 

나는 술은 좋아하되

막걸리와 맥주 밖에 못 마신다.

 

막걸리는

아침에 한 병(한 되)사면

한홉짜리 적은 잔으로

생각날 때만 마시니

거의 하루 종일이 간다.

 

맥주는

어쩌다 원고료를 받으면

오백 원짜리 한잔만 하는데

마누라는

몇 달에 한번 마시는 이것도 마다한다.

 

세상은 그런 것이 아니다.

음식으로

내가 즐거움을 느끼는 때는

다만 이것뿐인데

어찌 내 한가지뿐인 이 즐거움을

마다하려고 하는가 말이다.

 

우주도 그런 것이 아니고

세계도 그런 것이 아니고

인생도 그런 것이 아니다.

목적은 다만 즐거움인 것이다.

즐거움은 인생(人生)의 최대목표이다.

 

막걸리는 술이 아니고

밥이나 마찬가지다.

밥일 뿐만 아니라

즐거움을 더해주는

하나님의 은총인 것이다.

 

 

 

맥주 두병주의

 

나는 오전 5시에 맥주 한 병 마시고

오후 5시에 또 한 병 마신다.

이렇게 마시니 참 몸에 좋다.

 

한 병씩 마시니

음료수나 다름이 없다.

많이 마시면

병에 걸린다는 걸

나는 너무도 잘 안다.

 

입원까지 하지 않았는가!

나는 앞으로

이 주의(主義)를 지켜 나갈 것이다.

 

 

 

한가위 날이 온다

 

가을이 되었으니

한가윗날이 멀지 않았소.

추석이 되면

나는 반드시

돌아간 사람들을 그리워하오.

 

그렇게도 사랑 깊으시던 외할머니

그렇게도 엄격하시던 아버지

순하디 순하던 어머니

요절한 조카 영준이!

지금 천국에서

기도하시겠지요.

 

 

 

청교도(淸敎徒)

 

나는 원체가 천주교도(天主敎徒)인데

신부(神父)라는 이름이

도통 안 맞고

그리고 또

인공중절(人工中絶)을 금하다니

마음에 안 들어서

내 혼자만의

청교도(淸敎徒)라고

자부(自負)하고 있소.

 

신부(神父)라니

하나님 아버지란 말입니까?

개신교(改新敎)

목사(牧師)라는 말이

응당하다고 보아요.

 

오늘날

세계인구가

이렇게도 팽창하여

온갖 불합리의 원인이 되어 있는데

인공증절(人工中絶)을 금한단 말입니까?

 

청교도인 천주교도

이것이 나의 신분증입니다.

 

 

 

서울, 평양 직통전화 · 27

 

얍삽하게 뭉클 덮인 구름면이,

달빛으로 환하게 비친다.

정말이지 얍삽한 구름뭉치구나.

구름사이에 운하이듯 한 하늘 강물이 푸르고,

마치 하늘나라 선녀(仙女)이기도 하고,

천사(天使)의 숨바꼭질이기도 하고,

하느님의 외출이기도 하고,

세계지도이기도 하고,

숲을 멀리 바라보는 듯도 하고,

도저히 구름이면서도

아예, 그런 냄새도 안 나게 아름답다.

구름이 예술품이라는 것을,

이제 알겠다.

이것도 좋고 기쁜 소식은 혜존이다.

 

 

 

西洋 사람들의 나이와 우리들의 나이

 

서양 사람들의 나이는

엄마 뱃속에서 나올 때부터인데

우리들의 나이는

잉태부터이다.

 

서양 사람들의 나이는

저들이 만들어낸

태교를 괄시하는 말이고

동양 사람들의 나이는

태교를 인정하는 말이다.

 

그러니

서양 사람들의 나이는

가짜고

우리들의 나이는

정당한 나이다.

 

 

 

책을 읽자

 

일본이 경제대국으로

세계를 제패하듯 하고 있는 것은

그 이유를 따지면

그들의 독서력이 그렇게 한 것이다.

 

일본사람들은

우리나라의 몇 배나 더

독서를 할 것임에 틀림이 없다.

 

일본사람들의 베스트셀러는

5, 6백만 부를 헤아린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책을 가까이 하여

독서를 생활화함으로써

우리도 선진국에 끼이도록 하자!

 

 

 

초가을

 

'89년의 초가을은

세계 한민족 체육대회로

막이 오르고

 

그 폐회식으로

초가을은 갔어요.

우리 겨례가 기다리던 가을이

훌쩍 떠나버린 느낌입니다.

 

세계의 우리 동포여

아무쪼록

조국을 잊지 말아 주시오.

 

저물어 가는 가을은 온 겨레의 가슴에

풍성한 열매를 안겨주는

따스한 햇빛이며 행복의 미소입니다.

 

 

 

12월이란 참말로 잔인한 달이다.

 

엘리어트란 시인은

4월이 잔인(殘忍)한 달처럼 말했지만

사실은 12월이 가장 잔인한 달이다.

 

생각해보라.

12월이 없으면

새해가 없지 않는가.

 

1년을 마감하고

새해가 없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우리가 새 기분으로

맞이하는 것은

새해뿐이기 때문이다.

 

 

 

아끼자 모든 것을

 

모든 걸 아껴 씁시다.

이 지구의 자원이

차차 줄어들고 있어서

인류의 앞날이 어둡습니다.

 

이젠 석유만 해도

중동(中東)지방에서만

나오고 있는 판국입니다.

 

모든 국민들이여

아껴 써야만

인류의 장래가 있습니다.

 

뭐 하나라도

꼭 쓰일 때 쓰고

그렇지 않은 것은

아예 욕심을 버립시다.

 

 

 

신부에게

 

온실에서 갓 나온 꽃인 양

첫걸음을 내디딘 신부여

처음 바라보는 빛에 눈이 부실 테지요.

세상은

눈부시게 밝은 빛이 있는가 하면

어두운 빛도 있답니다.

또한 기쁜 일도 있을 것이고

슬픈 일도 있답니다.

그러나

세상을 살다보면

쓴맛이 더 많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고

이 세상은 괴로움만도

또한 아닙니다.

 

신부님 곁에는 함께 살아갈

용감하고 튼튼한 신랑이 있습니다.

서로 위로하고 사랑하고 양보하며는

더 큰 복을 받을 테지요.

신부여,

성실과 진실함이 함께 한다면

두 사람은 누구보다 행복의 승리자가

될 것입니다.

용기와 힘을 합쳐 보세요.

그러면 아름다운 꽃이 필 것이며

튼튼한 열매가 맺어질 것입니다.

 

 

 

전국의 농민들이시여!

 

수고하시는

전국의 농민들이여!

정부에서도

국회에서도

농민들을 위한 대책에

골머리를 앓고 있으니

언젠가는 풀릴 날이 올거라

나도 믿고 있고

여러분들도 그러리라 생각합니다.

 

사는 일에

쉬운 일은 없습니다.

한 가지씩 노력하면서

풀도록 합시다.

천하의 농민들에게

다복한 날이 올 것이라

나는 굳게 믿고 있습니다.

 

 

 

신세계의 아가씨 사원들에게

 

'공작'89년의 86호를 우연히 보면서 읽으면서,

61살 먹은 노인은 그저 지난 청춘이

다시 어떻게 좀 안될지 모르겠다고 탄식할 뿐이다.

61살이 되었다는 것은

사실은 주민등록증과

성적무능력증(性的無能力症)에만 나타난 것뿐인 줄 알고

느끼면서 애오라지 무기력하게 살고 지내지만,

지금 금방 읽은 '신세계(新世界)'

젊은 아가씨사원들의 청청(靑靑)

청춘고백(靑春告白) 통에 이 나의 무기력이

어찌 기력이 될려고 요동하지 못하겠는가 이 말이오!

 

 

 

고향이야기

 

내 고향은 세 군데나 된다.

어릴 때 아홉 살까지 산

경남 창원군 진동면이 본 고향이고

둘째는 대학 2학년 때까지 보낸

부산시이고

셋째는 도일(渡日)하여 살은

치바켄 타태야마시이다.

그러니 고향이 세 군데나 된다.

 

본 고향인 진동면은

산수(山水)가 아름답고

당산(堂山)이 있는 수려한 곳이다.

바다에 접해 있어서

나는 일찍부터

해수욕을 했고

영 어릴 때는

당산 밑 개울가에서

몸을 씻었었다.

 

2고향은

부산시 수정동인데

산중턱이라서

오르는데 힘이 들었다.

 

2의 고향인

일본 타태야마시에서는

국민학교 2학년부터

중학교 2학년까지 살았는데

일본에서도 명소다.

후지산이 멀리 바라보이고

경치가 아주 좋은 곳이요,

해군 비행장이 있어서

언제나 하늘에는

비행기가 날고 있었다.

 

 

 

최저재산제를 권합니다.

 

세계평화 위해서도

사회복지 위해서도

필자는 최저재산제(最低財産制) 권합니다.

 

최저임금제(最低賃金制) 있잖아요?

최저한도(限度)의 임금(賃金)을 말하는데

왜 최저재산제가 있을 수 없어요?

박정희 정권 때

박장군 쿠데타 모의 때

여러 가지 인쇄물을 담당한

()로라는 실업가가

박 정권 성공 후의 비호를 받아

5백억 환의 재산을

모았다는 보도에 접하여

나는 아연실색한 일이 있어요!

 

미국 같은 선진국에서는,

부자는 부자대로, 많은 재산을,

대학이나 병원이나,

사회복지시설에,

끊임없이 기부하면서

사회환원을 기어코 한다는데,

우리나라서는 그러지 못해요!

 

그래서 필자가 말씀드리는 것이

이 최저재산제입니다요!

 

10억 원 정도로

사유재산고(私有財産高)를 제한하는 것이

앞으로 유익한 자유주의체제가 될 것이며,

 

이북 동포들의 제국주의(帝國主義)소리도 줄 것이고

일반 노무자들도 큰 혜택을

보리라 생각합니다!

 

 

 

김형(金兄)

 

나는 일주일에 네번 다섯 번은

기원(棋院)에 나갑니다.

김형(金兄)은 더 자주 나오는 사람인데

장애자에 속할 것입니다.

등이 약간 굽어져 있으니까요.

그러나 김형(金兄)은 어찌 그리도

마음씨가 곱고

바둑도 아주 센 급()인데

꼭 이기겠다는 생각 없이

여유 있게 너그럽게 두기만 합니다.

 

UN이 올해는 '장애자의 해'라고

못 박았는데

휴머니즘이 드디어 발화(發花)했습니다.

인류가 비로소 눈뜬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언제나 김형(金兄)은 떳떳하고 의젓하니 -

되레 내가 장애자 같구나!

 

 

 

날개

 

날개를 가지고 싶다.

어디론지 날 수 있는

날개를 가지고 싶다.

왜 하나님은 사람에게

날개를 안 다셨는지 모르겠다.

내같이 가난한 놈은

旅行이라고는 新婚旅行뿐이었는데

나는 어디로든지 가고 싶다.

날개가 있으면 소원성취다.

하나님이여

날개를 주소서 주소서

 

 

 

구름

 

하늘에 둥둥 떠있는 구름은

지상을 살피러 온 천사님들의

휴식처가 아닐까.

 

하나님을 도우는 천사님이시여

즐겁게 쉬고 가시고

잘되어 가더라고 말씀하소서.

 

눈에 안보이기에

우리가 함부로 할지 모르오니

널리 용서하소서.

 

 

 

나의 가난함

 

나는 볼품없이 가난하지만

人間의 삶에는 부족하지 않다.

내 형제들 셋은 부산에서 잘 살지만

형제들 신세는 딱 질색이다.

 

文學社에서 날 돌봐주고

몇몇 文人들이 날 도와주고

 

그러니 나는 불편함을 모른다

다만 하늘에 감사할 뿐이다.

 

이렇게 가난해도

나는 가장 행복을 맛본다.

돈과 幸福은 상관없다

부자는 바늘귀를 통과해야 한다.

 

 

 

참새

 

참새 두 마리가

사이좋게 날아와서

내 방문 앞에서 뜰에서

氣分좋게 쫑쫑거리며 놀고 있다.

 

저것들은

친구인가 부부인가?

하여튼 아주 즐거운 모양이다.

저들같이 나도 좀 안될지 모르겠다.

 

本能으로만 사는 새들이여 참새여

사람은 理性이니 哲學이니 하여

너희들보다 순결하지 못하고

아름답게 기쁘게 살 줄을 모른다.

 

 

 

무궁화

 

나의 처가집은

우리집 가까이 있는데

무궁화가

해마다 곱게 핍니다.

 

무궁화는 우리들 나라꽃입니다

그 나라꽃을

해마다 바로 옆에서 즐길 수 있다니

그저 고맙고도 고마운 일입니다.

 

그것도 다섯 송이나 사랑할 수 있다니

장모님과 처남에게

따뜻한 을 더구나 느끼게 됩니다

나라꽃이여 나라꽃이여 永遠하여라.

 

 

 

광화문 근처의 행복

 

광화문에,

옛 이승만독재와

과감하게 투쟁했던 신문사.

그 신문사의 論說委員

소설가 오상원은 나의 다정한 친구,

 

어쩌다 만나고픈 생각에

전화 걸면

기어코 나의 단골인

아리랑다방에 찾아온 그.

모월 모일, 또 그랬더니

와서는 내 차값을 내고

그리고 천원짜리 두개 주는데-

나는 그때

 

오늘만은 나도 이렇게 있다,

포켓에서 이천원 끄집어 내어

명백히 보였는데도

귀찮아! 귀찮아!’ 하면서

자기 단골 맥주집으로의 길을 가던 사나이!

그 단골집은

얼마 안 떨어진 곳인데

자유당때 休刊당하기도 했던

신문사의 部長 지낸 양반이

경영하는 집으로

셋이서

그리고 내 마누라까지 참석케 해서

自由幸福의 봄을-

꽃동산을-

이룬 적이 있었습니다.

 

하나님!

저와 같은 버러지에게

어찌 그런 시간이 있게 했습니까?

 

 

 

 

이른 아침에 집에 들렀더니

위선 홍차를 주고 나는 커피를 시킨다.

내 친구들은 어디 있을까.

가야 형편없으므로 기역 기역가지 않을까.

가는 는 가고 오는 는 오너라.

孔子님은 외롭기 짝이 없었다.

그래서 글자를 많이 쓰고 儒敎(?)를 퍼뜨렸다네.

나와 꼭 같은 거야.

 

 

 

어린애들

 

正午께 집 大門 밖을 나서니

여섯, 일곱쯤 되는 어린이들이

활기차게 뛰놀고 있다.

 

앞으로 저놈들이 어른이 되서

이 나라 主人이 될 걸 생각하니

발걸음을 멈추고 그들을 본다.

 

총명하게 생긴 놈들이

아기자기하게 잘도 놀고 있다.

그들의 영리한 눈에 축복 있기 빈다.

 

 

 

피리

 

피리를 가졌으면 한다

달은 가지 않고

달빛은 교교히 바람만 더불고-

벌레소리도 죽은 이 밤

내 마음의 슬픈 가락에 울리어 오는

! 피리는 어느 곳에 있는다

옛날에는

달 보신다고 다락에선 커다란 잔치

피리 부는 樂官이 피리를 불면

고운 宮女들 춤을 추었던

나도 그 피리를 가졌으면 한다

볼 수가 없다면은

만져라도 보고 싶은

이 밤

그 피리는 어느 곳에 있는가.

 

 

 

한 가지 所願

 

나의 다소 명석한 지성과 깨끗한 영혼이

흙 속에 묻혀 살과 같이

문드러지고 진물이 나 삭여진다고?

 

야스퍼스는

과학에게 그 자체의 의미를 물어도

절대로 대답하지 못한다고 했는데-

 

억지밖에 없는 엽전 세상에서

용케도 이때껏 살았나 싶다.

별다른 불만은 없지만,

 

똥걸레 같은 지성은 썩어 버려도

이런 시를 쓰게 하는 내 영혼은

어떻게 좀 안될지 모르겠다.

 

내가 죽은 여러 해 뒤에는

꾹 쥔 십 원을 슬쩍 주고는

서울길 밤버스를 내 영혼은 타고 있지 않을까?

 

 

 

편지

 

점심을 얻어먹고 배부른 내가

배고팠던 나에게 편지를 쓴다.

 

옛날에도 더러 있었던 일,

그다지 섭섭하진 않겠지?

 

때론 호사로운 적도 없지 않았다.

그걸 잊지 말아 주기 바란다.

 

내일을 믿다가

이십년!

 

배부른 내가

그걸 잊을까 걱정이 되어서

 

나는

자네한테 편지를 쓴다네.

 

 

 

 

외롭게 살다 외롭게 죽을

靈魂의 빈 터에

새날이 와, 새가 울고 꽃잎이 필 때는,

내가 죽는 날

그 다음 날.

 

산다는 것과

아름다운 것과

사랑한다는 것과의 노래가

한창인 때에

나는 도랑과 나뭇가지에 앉은

한 마리 새.

 

情感에 그득찬 季節

슬픔과 기쁨의 週日,

알고 모르고 잊고 하는 사이에

새여 너는

낡은 목청을 뽑아라.

 

 

 

바다 생선

 

바다 생선은 각종각류이지만

무엇보다 바닷물이 선결 조건이다.

하기야 우리를 비롯한 인간도 수분이 꽉 차 있다.

 

플랑크톤이 제일 작은 생선일 것이다.

힘이 약하고 작은 것은

유력하고 덩치가 큰 놈이 처먹게 마련.

 

인간의 플랑크톤은

어떻게 잔존할 수가 있었던 것일까?

불가사의한 사실이다.

 

맛도 괜찮고 양분소도 많다.

칼로리는 오징어가 많다는데

알다가도 모를 만한 일이다.

 

나는 생선을 매우 입에 알맞다고

밥 때마다 먹고 즐기지만,

선조의 시초라고 생각하면 언짢다.

 

 

 

소릉조

 

아버지 어머니는

고향 산소에 있고

 

외톨배기 나는

서울에 있고

 

형과 누이들은

부산에 있는데

 

여비가 없으니

가지 못한다.

 

저승 가는 데도

여비가 든다면

 

나는 영영

가지 못하나?

 

생각느니, ,

인생은 얼마나 깊은 것인가.

 

 

 

바람에게도 길이 있다

 

강하게 때론 약하게

함부로 부는 바람인 줄 알아도

아니다! 그런 것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길을

바람은 용케 찾아간다.

바람길은 사통팔달이다.

 

나는 비로소 나의 길을 가는데

바람은 바람길을 간다.

길은 언제나 어디에나 있다.

 

 

 

초롱꽃

 

이 시를 쓰는 지금은

92510일입니다.

방문을 열어놓고

뜰을 보니

초롱꽃이 활짝 피어 있습니다.

 

초롱꽃의 빛깔은

내 마음에 안 들지만은

그래도 싱싱하게 핀 초롱꽃에

나는 맥주를 한 병 마셨습니다.

 

우리 집 뜰은 넓진 않지만

가지각색의 나무들이 있습니다.

초롱꽃도 그 한가지입니다.

 

 

 

 

부슬부슬 비 내리다.

지붕에도 내 마음 한구석에도-

멀고먼 고향의 소식이

혹시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아득한 곳에서

무슨 편지라든가...

나는 바하의 음악을 들으며

그저 하나님 생각에 잠긴다.

나의 향수(鄕愁)여 나의 향수여

는 직접 비에 젖어보고 싶다.

향이란 무엇인가,

선조(先祖)의 선조의 선조의 본향(本鄕)이여

그곳은 어디란 말이냐?

그건 마음의 마음이 아닐런지-

나는 진짜가 된다.

 

 

 

 

'☞ 문학의 뜨락' 카테고리의 다른 글

최금녀 시 모음  (0) 2022.06.25
모윤숙(毛允淑) 시 모음  (0) 2022.06.23
박인환(朴寅煥) 시 모음  (0) 2022.06.14
양녕대군(讓寧大君)의 시조 3편  (0) 2022.04.26
송수권(宋秀權) 시 모음  (0) 2022.0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