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유명 시조 모음(1)
◈충무공 이순신(1545~1598)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홀로 앉아
큰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는 차에
어디서 *일성호가는 나의 애를 끊나니
* 일성호가 : 한 곡조의 피리 소리
십년(十年) 온 칼이 갑리(匣裏)에 우노라.
관산(關山)을 바라보며 때때로 만져보니
장부(丈夫)의 위국공훈(爲國功勳)을 어에 드리올고.
▶십 년이나 갈아온 칼이 갑(칼집) 속에서 우는구나.
관문(關門)을 바라보며 때때로 만져 보니,
대장부 나라를 위한 큰 공을 어느 때에 드리울꼬.
◈동창이 밝았느냐 - 남구만(南九萬)
동창(東窓)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지저귄다
소를 칠 아이는 여태 아니 일어났느냐
재 넘어 사래 긴 밭을 언제 갈려 하느냐
▶약천(藥泉) 남구만(南九萬.1629~1711).
조선 숙종 때 영의정을 지낸 문신.
◈조헌(趙憲, 1544년~1592년)은 조선 중기의 문신, 의병장.
지당에 비 뿌리고 양유에 내 끼인제
사공은 어디가고 빈 배만 매었는고
석양에 무심한 갈매기는 오락가락 하더라
◈작자 미상 -청구영언(靑丘永言)
말하기 좋다고 남의 말을 말을 것이
남의 말 내하면 남도 내 말하는 것이
말로서 말이 많으니 말 말을까 하노라
◈남 이 (조선 세조 때의 장군)
적토마(赤兎馬) 디게 먹여 豆滿江)에 싯겨 셰고
용천검(龍泉劍) 드 칼을 선 쳐 두러메고
장부(丈夫)의 입신양명(立身揚名)을 시험(試驗)헐까노라.
◈이 개 (조선 세조 때)
방(房) 안에 혓는 촉(燭)불 눌과 이별(離別)엿관,
것츠로 눈믈 디고 속 타는 쥴 모르는고.
뎌 촉(燭)불 날과 갓트여 속 타는 쥴 모로도다.
◈박팽년 (조선 세조 때)
金生麗水(금생여수)ㅣ라 들 물마다 金(금)이 남여
玉出崑崗(옥출곤강)이라 들 뫼마다 玉(옥)이 날쏜야
암으리 思郞(사랑)이 重(중)타 들 님님마다 좃츨야.
▶아름다운 물에서 금이 난다고 한들,
물마다 금이 나며, 곤강(옥이 나는 산)에서 옥이난다 한들
산마다 옥이 나겠는가 아무리 사랑이 중하다고 한들 임마다 따르랴.
◈성삼문 (조선 세조 때)
수양산(首陽山) 바라보며 이제(夷齊) 한(恨)노라.
주려 주글진들 채미(採微)도 것가.
비록애 푸새엣 거신들 긔 뉘 헤 낫니.
▶(백이와 숙제가 들어가 고사리를 캐 먹었다는)
수양산을 바라보며 그들을 한탄한다.
차라리 굶어 죽을지언정 고사리를 캐어 먹었단 말인가.
고사리가 푸성귀일망정 그것은 뉘 땅에 난 것인가.
(주나라 땅에 난 것이 아닌가.)
◈성삼문
이 몸이 주거 가서 무어시 될 니,
봉래산(蓬萊山) 제일봉(第一峰)에 낙락장송(落落長松) 되야 이셔,
백설(白雪)이 만건곤(滿乾坤)제 독야청청(獨也靑靑)리라.
◈원 호 (조선 세조 때)
간밤의 우뎐 여흘 슬피 우러 지내여다.
이제야 각니 님이 우러 보내도다.
져 물이 거스리 흐르고져 나도 우러 녜리라.
▶지난밤에 울며 흐르던 여울, 슬프게 울면서 흘러가도다.
이제야 생각하니 그 슬픈 여울 물 소리는 임이 울어 보내는 소리로다.
저 물이 거슬러 흘러 내 마음을 전하도록 나도 울면서 가리라.
◈왕방연 (조선 세조 때)
천만리(千萬里) 머먼 길에 고흔 님 여희압고
마음 둘 업셔 냇의 안쟈시니,
져 믈도 여 우러 밤길 녜놋다.
▶천만 리 머나먼 곳(영월)에다 고운 임(단종)을 이별하고(돌아와),
슬픈 마음을 달랠 길이 없어 냇가에 앉아 있으니,
흘러가는 저 냇물도 내 마음 같아서 울면서 밤길을 흘러가는구나.
◈성 혼 (조선 선조 때)
말 업슨 청산(靑山)이오, 태(態) 업슨 유수(流水)ㅣ로다.
갑 업슨 청풍(淸風)이오, 님 업슨 명월(明月)이라.
이 중(中)에 병(病) 업슨 이 몸이 분별(分別) 업시 늘그리라.
▶말없이 푸르기만 한 것은 청산이요, 모양 없이 흐르기만 하는 것은 유수로다.
값이 없는 것은 맑은 바람이요, 임자 없는 것은 밝은 달이라.
이 아름다운 자연에 묻혀 사는 병 없는 이 몸이 근심 없이 늙으리라.
◈월산대군 (조선 성조 때)
추강(秋江)에 밤이 드니 물결이 노라.
낙시 드리치니 고기 아니 무노라.
무심(無心) 빗만 싯고 뷘 저어 오노라.
▶가을 강에 밤이 되니 물결이 차도다.
낚시를 드리우니 고기가 물지 않는구나.
사심 없는 달빛만 배에 가득히 싣고 돌아오도다.
◈송 순 (조선 선조 때)
십년(十年)을 경영(經營)여 초려삼간(焦慮三間) 지여 내니,
나 간 간에 청풍(淸風) 간 맛져 두고,
강산(江山)은 들일 듸 업스니 둘러 두고 보리라.
▶십년이나 기초를 닦아서 보잘 것 없는 초가를 지어내니,
나 한 칸, 달 한 칸과 맑은 바람도 한 칸을 맡겨두고,
청산과 맑은 강은 들여 놓을 곳이 없으니 주위에다 둘러 두고 보리라.
◈황 희 (조선 세종 때)
대쵸 볼 불근 골에 밤은 어이 드르며,
벼 뷘 그르헤 게 어이 리고.
술 닉쟈 체 쟝 도라가니 아니 먹고 어이리.
▶대추가 발갛게 익은 골짜기에 밤이 어찌 (익어) 뚝뚝 떨어지며,
벼를 벤 그루에 게까지 어찌 나와 다니는가.
술이 익었는데 체 장수가 (체를 팔고) 돌아가니 (새 체로 술을 걸러서) 먹지 않고 어찌하리.
◈성종 (조선 9대 왕)
이시렴 브디 갈? 아니 가든 못쏜냐?
무단(無端)이 슬튼야? 의 말을 드럿는야?
그려도 하 애도래라, 가는 을 닐러라.
▶있으려므나, 부디 가겠느냐? 아니 가지는 못하겠느냐?
공연히 내가 싫어졌느냐? 남이 권하는 말을 들었느냐?
그래도 너무 애닯구나. 가는 뜻이나 분명히 말해 보려므나.
◈조식 (조선 중종 때)
삼동(三冬)에 뵈옷 닙고 암혈(巖穴)에 눈비 마자
구름 볏뉘도 적이 업건마,
서산(西山)에 지다 니 눈물겨워 노라.
▶한겨울에 베로 지은 옷을 입고, 바위 굴에서 눈비를 맞고 있으며
구름 사이에 비취는 햇볕도 쬔 적이 없지만
서산에 해가 졌다(임금께서 승하하셨다)는 소식을 들으니 눈물이 난다.
◈서익 (조선 중종 때)
녹초(綠草) 청강상(晴江上)에 굴레 버슨 이 되여
로 멀이 들어 북향(北向)야 우는 은
석양(夕陽)이 재 넘어 감애 님자 글여 우노라.
▶벼슬을 그만두고 녹초 청상강에 내려와 살고 있지만,
때때로 고개를 들어 북쪽을 향해 우는 뜻은,
석양에 해 넘어갔다(임금께서 승하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그리워 운다.
◈황진이 (조선 중종~명종 때)
동지(冬至)ㅅ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버혀 내여,
춘풍(春風) 니불 아레 서리서리 너헛다가,
어론님 오신 날 밤이여든 구뷔구뷔 펴리라.
▶동짓달 긴긴 밤의 한가운데를 베어 내어,
봄바람처럼 따뜻한 이불 속에다 서리서리 넣어 두었다가,
정든 님 오신 밤이면 굽이굽이 펴리라.
◈홍랑 (조선 선조 때)
묏버들 갈 것거 보내노라 님의손,
자시 창(窓) 밧긔 심거 두고 보쇼셔.
밤비예 새닙 곳 나거든 날인가도 너기쇼셔.
▶산에 있는 버들가지를 골라 꺾어 임에게 보내오니,
주무시는 방의 창문가에 심어 두고 보십시오.
밤비에 새 잎이 나거든 나를 본 것처럼 여기소서.
◈계랑 (조선 명종 때)
이화우(梨花雨) 흣릴 제 울며 잡고 이별(離別) 님,
추풍낙엽(秋風落葉)에 저도 날 각가.
천리(千里)에 외로운 만 오락가락 노매.
▶배꽃이 흩날리던 때에 손잡고 울며 헤어진 님,
가을바람에 낙엽지는 것을 보며 나를 생각하여 주실까
천리 길 머나먼 곳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는구나.
◈맹사성 (조선의 개국 공신)
가마귀 검다 고 白鷺(백로)야 웃지 마라.
것치 검은들 속조차 거믈소냐.
아마도 것 희고 속 검을손 너인가 노라.
▶까마귀의 겉모습이 검다고 백로야 비웃지 마라.
겉모습이 검다고 그 속까지 검기야 하겠느냐
아마도 겉모습은 희고 속이 검은 것은 너뿐인가 한다.
◈유응부 (조선 단종 때)
간밤의 부던 람에 눈서리 치단말가.
落落長松(낙락장송)이 다 기우러 가노라.
믈며 못 다 픤 곳이야 닐러 모슴 리요.
▶간밤에 불던 바람에 눈서리가 친단 말인가.
낙락장송이 다 기울어져 가는구나.
하물며 아직 못 다 핀 꽃이야 더 말해서 무엇하리오.
◈작자 미상 (화원악보)
山村(산촌)에 밤이 드니 먼딋 즈져온다.
柴扉(시비)를 열고 보니 하늘이 챠고 달이로다.
뎌야, 空山(공산) 잠든 달을 즈져 리오.
▶산촌에 밤이 드니 먼 곳의 개가 짖어온다.
사립문을 열고 보니 하늘은 차고 달빛만 가득하구나.
저 개야 빈 산에 잠든 달을 보며 짖어 무엇하리오.
◈작자 미상 (청구영언)
雪月(설월)이 滿窓(만창)듸 람아 부지 마라.
曳履聲(예리성) 아닌 줄을 判然(판연)히 알건마
그립고 아쉬온 적이면 혀 긘가 노라.
▶겨울 눈 속에 달빛은 창가에 가득한데 바람아 불지 마라.
예리성 아닌 줄은 분명히 알건마는
그립고 아쉬울 때면 행여 님인가 속기도 한단다.
◈이 황 (조선 명종 때)
이런 엇다며 뎌런 엇다료.
草野愚生(초야우생)이 이러타 엇다료.
며 泉石膏肓(천석고황)을 고텨 무슴료.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시골에 묻혀 사는 어리석은 사람이 이렇게 산들 어떠하리.
하물며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 고질병처럼 고쳐서 무엇하리.
春風(춘풍)에 花滿山(화만산)고 秋夜(추야)애 月滿臺(월만대)라.
四時佳興(사시가흥)ㅣ 사과 가지라.
며 魚躍鳶飛(어약연비) 雲影天光(운영천광)이아 어늬 그지 이슬고.
▶봄바람에 꽃은 온 산에 가득차고, 가을밤에 달빛이 가득하구나.
4계절의 좋은 흥치가 사람과 한가지라.
하물며 오묘한 천지자연과 만물의 이치야 어찌 그 한도가 있겠는가.
當時(당시)에 녀 길흘 몃 려 두고,
어듸 가 니다가 이제 도라온고.
이제나 도라오나니 년 듸 마로리.
▶젊은 시절에 힘쓰던 학문의 길을 몇 해를 버리고
어디에 다니다(벼슬길에 올랐다)가 이제야 돌아왔는고.
이제라도 돌아왔으니, 이제라도 학문 수양에 전념하리.
古人(고인)도 날 몯 보고 나도 古人(고인) 몯 뵈.
古人(고인)을 몯 뵈도 녀던 길 알 잇.
녀던 길 알 잇거든 아니 녀고 엇뎔고.
▶고인도 나를 못 보고 나도 고인을 볼 수 없네.
고인을 못 뵈도 그 분들이 살아가던 도리를 적어 놓았네.
그 분의 삶의 도리가 있으니 어찌 그 뜻을 가지 않으리.
靑山(청산) 엇뎨야 萬古(만고)애 프르르며,
流水(유수) 엇뎨야 晝夜(주야)애 긋디 아니고.
우리도 그치디 마라 萬古常靑(만고상청)호리라.
▶푸른 산은 어찌하여 영원히 푸르며,
흐르는 물은 또 어찌하여 밤낮으로 그치지 않는가.
우리도 저 물같이 흘러 산처럼 언제나 푸르리라.
◈이이 (조선 선조 때)
高山九曲潭(고산구곡담)을 살이 몰으든이,
誅募卜居(주모복거)니 벗님네 다 오신다.
어즙어, 武夷(무이)를 想像(상상)고 學朱子(학주자)를 리라.
▶ 고산의 아홉 굽이 계곡의 아름다움을 세상 사람들이 모르더니,
터를 닦아 집을 지어 사니 벗님네들이 모두들 찾아오는구나.
아, 朱子(주자)가 읊은 무이산 구곡계를 생각하면서 주자학을 연구하리라.
一曲(일곡)은 어드고 冠巖(관암)에 빗쵠다.
平蕪(평무)에 거든이 遠近(원근)이 글림이로다.
松間(송간)에 綠樽(녹준)을 녹코 벗 온 양 보노라.
▶일곡은 어디인가 우뚝 솟은 관암에 아침 해가 비쳤도다.
들판에 안개가 걷히니 遠近(원근)의 경치가 그림 같구나.
소나무 숲속에 술동이를 놓고 벗이 찾아온 양 바라보노라.
八曲(팔곡)은 어드고 琴灘(금탄)에 이 다.
玉軫金徽(옥진금휘)로 數三曲(수삼곡)을 노론 말이,
高調(고조)를 알리 업쓴이 자 즑여 노라.
▶팔곡은 어디인가? 가야금 소리 구르는 여울물에 달이 밝다.
아주 좋은 거문고로 여러 곡조를 들어 보면,
옛 곡조를 알 사람이 없으니 혼자서 즐겨 듣노라.
九曲(구곡)은 어드고 文山(문산)에 歲暮(세모)커다.
奇巖怪石(기암괴석)이 눈 쏙에 뭇쳤셰라.
遊人(유인)은 오지 안이고 볼 없다 드라.
▶구곡은 어디인가? 기암괴석이 뒤섞인 산에 한 해가 저물도다.
기암괴석이 눈 속에 묻혀 있도다.
노는 사람은 와 보지도 않고 볼 것 없다 하더라.
◈김상헌 (병자호란 때 예조 판서, 선조~효종 때)
가노라 三角山(삼각산)아, 다시 보쟈 漢江水(한강수)야.
故國山川(고국산천)을 나고쟈 랴마,
時節(시절)이 하 殊常(수상)니 올동말동여라.
▶(나는 오랑캐에게 끌려)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물아.
(할 수 없이) 조국 강산을 등지려 한다마는,
시국이 하도 뒤숭숭하니 다시 올지 어떨지 모르겠구나.
◈윤선도 (조선 광해군 때)
슬프나 즐거오나 옳다 하나 외다 하나
내 몸의 해올 일만 닦고 닦을 뿐이언정
그 밧긔 여남은 일이야 分別(분별)할 줄이시랴
▶슬프나 즐거우나 옳다 하나 그르다 하나
내 몸의 할 일만 닦고 닦을 뿐이로다!
그 밖의 다른 일이야 생각하거나 근심할 필요가 있겠는가?
내 일 망녕된 줄 내라 하여 모랄 손가
이 마음 어리기도 님 위한 탓이로세
아뫼 아무리 일러도 임이 혜여 보소서
▶나의 일이 잘못된 것인 줄 내가 모르겠는가?
이 마음 어리석은 것도 모두가 임(임금)을 위한 탓이로구나.
아무개가 아무리 헐뜯더라도 임께서 헤아려 주십시오.
秋城(추성) 鎭胡樓(진호루) 밧긔 울어 예는 저 시내야
무음 호리라 晝夜(주야)에 흐르는다
님 향한 내 뜻을 조차 그칠 뉘를 모르나다
▶경원성 진호루 밖에 울며 흐르는 저 시냇물아!
무엇하러 밤낮으로 그칠 줄 모르고 흐르는가?
임 향한 내 뜻을 따라 그칠 줄을 모르는가?
뫼흔 길고 길고 물은 멀고 멀고
어버이 그린 뜻은 많고 많고 하고 하고
어디서 외기러기는 울고 울고 가느니
▶산은 끝없이 길게 이어지고 물은 멀리 이어지고
부모님 그리운 뜻은 많기도 많다.
어디서 외기러기는 울고 울어 나를 슬프게 하는가?
어버이 그릴 줄을 처엄부터 알아마는
님군 향한 뜻은 하날이 삼겨시니
진실로 님군을 잊으면 귀 不孝(불효)인가 여기노라
▶어버이 그리워할 줄을 처음부터 알았지마는,
임금 향한 뜻은 하늘이 만드셨으니,
진실로 임금을 잊으면 그것이 불효인가 하노라.
◈송시열 (선조~효종 때)
임이 헤오시매 나 전혀 미덧니
날 랑던 情(정)을 뉘손 옴기신고.
처음에 믜시던 거시면 이대도록 셜오랴.
▶임이 (나를) 생각하시매 나는 전적으로 믿었더니,
나를 사랑하던 정이 누구에게 옮기셨습니까.
처음부터 미워하시던 것이면 이토록 서럽겠는가.
◈김천택 (조선 영조 때)
江山(강산) 죠흔 景(경)을 힘센이 닷톨 양이면,
힘과 分(분)으로 어이여 엇들쏜이.
眞實(진실)로 禁(금)리 업쓸씌 나도 두고 논이노라.
▶아름다운 경치를 두고 힘센 사람이 다툴 것 같으면,
미약하고 가난한 내가 어찌 얻을 수가 있겠는가.
진실로 금할 사람이 없으니 나도 즐기며 노닐 수 있노라.
◈김수장 (조선 영조 때)
草菴(초암)이 寂蓼(적료) 벗 업시 자 안
平調(평조) 한닙 白雲(백운)이 절로 존다.
언의 뉘 이 죠흔 을 알 리 잇다 리오.
▶초가 암자가 적적하고 고요한데, 찾아오는 벗 하나 없이 홀로 앉아,
평조의 노래 한 葉(엽)을 읊으니 흰 구름이 제 스스로 졸고 있다.
어느 누가 이 좋은 뜻을 알아 줄 사람이 있다 하겠는가?
◈김천택 (조선 영조 때)
白鷗(백구)야 말 물어 보자 놀라지 말아스라
名區勝地(명구 승지)를 어디 어디 보았는다
날다려 자세히 일러든 너와 게 가 놀리라
▶갈매기야 말 물어보자 놀라지 말려무나.
산수 경치 좋기로 이름난 곳을 어디 어디 보았느냐.
나에게 자세히 말해 주면 너와 같이 가 놀리라.
◈김천택 (조선 영조 때)
田園(전원)에 나믄 興(흥)을 전나귀에 모도 싯고
溪山(계산) 니근 길로 흥치며 도라와셔
아 禁書(금서)를 다스려라 나믄 를 보내리라.
▶전원을 완상하고 남은 흥을 (다리를 저는) 나귀에 모두 싣고,
계곡을 낀 산 속 익숙한 길을 흥겨워하며 돌아와서,
아이는 거문고와 서책을 적당히 읽어라. 남은 해를 흥겹게 보내리라.
◈윤선도 (조선 인조 때)
잔 들고 혼자 안자 먼 뫼흘 라보니
그리던 님이 오다 반가옴이 이러랴
말도 우움도 아녀도 몯내 됴하 노라.
▶잔을 들고 혼자 앉아서 먼 산을 바라보니,
그리워하던 임이 온다고 이렇게까지 반갑겠는가?
(산은) 말도 웃음도 아니 하여도 못내 좋아하노라.
◈박인로 (조선 인조 때)
盤中(반중) 早紅(조홍)감이 고아도 보이다.
柚子(유자)ㅣ 안이라도 품엄즉도 다마
품어 가 반기리 업슬 글노 설워 이다.
▶소반(쟁반)에 놓인 붉은 감이 곱게도 보이는구나!
비록 유자가 아니라도 품어갈 마음이 있지마는,
품어 가도 반가워해 주실 부모님이 안 계시니 그를 서러워합니다.
◈신 흠 (조선 인조 때)
노래 삼긴 사 시름도 하도할샤
닐러 다 못닐러 불러나 푸돗가
眞實(진실)로 플릴거시면은 나도 불러 보리라.
▶노래를 처음 만든 사람, 시름이 많기도 했겠구나.
말로 하려 하나 다 못하여 (노래로) 풀었단 말인가!
진실로 풀린 것이면 나도 불러 보고 싶구나.
◈신 흠 (조선 인조 때)
山村(산촌)에 눈이 오니 돌길이 무쳐셰라.
柴扉(시비) 여지 마라 날 즈리 뉘 이시리.
밤즁만 一片丹心(일편단심)이 긔 벗인가 노라.
▶산촌에 눈이 많이 오니 돌길이 묻혔구나.
사립문을 열지 마라 나를 찾을 이가 어디 있으리.
밤중에 밝은 달은 일편단심이니 그가 내 벗인가 하노라.
◈김삼현 (조선 숙종 때)
功名(공명)을 즐겨마라 榮辱(영욕)이 半(반)이로다.
富貴(부귀) 貪(탐)치 마라 危機(위기)를 니라.
우리 一身(일신)이 閑暇(한가)커니 두려온 일 업세라.
▶이름을 높이는 것을 즐겨 말라. 영예와 치욕이 반이로다.
부귀를 탐내지 말라, 위기를 불러일으키리라.
우리는 이 한 몸 한가로우니 두려운 일이 업구나.
◈송시열 (선조~효종 때)
님이 헤오시매 나 전혀 미덧니
날 랑던 情(정)을 뉘손 옴기신고
처음에 믜시던 거시면 이대도록 셜오랴.
▶님께서 나를 사랑해 주시어 나는 전혀 의심치 않았더니,
나를 사랑하던 정을 누구에게 옮기셨는고.
처음부터 미워하시던 것이면 이토록 서럽지는 않으련만.
◈김상용 (조선 인조 때)
梧桐(오동)에 듯는 빗발 無心(무심)히 듯건마는
나의 시름 하니 닙닙히 愁聲(수성)이로다.
이 後(후)야 입 넙은 남기야 시물 줄이 이시랴.
▶오동잎에 떨어지는 빗소리 무심히 듣건마는,
나의 시름이 많으니 잎마다 쓸쓸한 소리로구나.
이 후엔 다시는 잎 넓은 나무는 심을 리가 있으랴.
◈안민영 (조선 헌종 때)
어리고 성 긘 梅花(매화) 너를 밋지 아녓더니,
눈 期約(기약) 能(능)히 직혀 두세 송이 퓌엿고나.
燭(촉) 고 갓가이 랑헐 졔 暗香(암향)좃 浮動(부동)터라.
▶어리고 가지 듬성한 매화여서 꽃을 피울까 믿지 아니하였더니,
눈 올 때 피겠다고 하던 약속을 능히 지켜 두세 송이가 피었구나.
촛불 잡고 너를 가까이 할 때 그윽한 향기조차 떠도는구나.
◈안민영 (조선 헌종 때)
고울사 저 꽃이여 半(반)만 여읜 저 꽃이여
더도 덜도 말고 매양 그만 허여 있어
春風(춘풍)에 향기 좇는 나뷔를 웃고 맞어 허노라.
▶곱기도 하여라 저 꽃이여, 반 정도 마른 모습의 저 꽃이여.
더도 덜도 말고 지금 그 상태의 하얀 모습을 계속 지녀,
봄바람에 향기 따라서 오는 나비를 웃으며 맞이하노라.
◈윤선도 (조선 인조 때)
내 버디 몇치나 니 水石(수석)과 松竹(송죽)이라
東山(동산)의 오르니 긔 더옥 반갑고야
두어라 이 다 밧긔 또 더야 머엇리.
▶나의 벗이 몇이나 되나 헤아려 보니 물과 돌과 소나무와 대나무다.
거기에다 동산에 달이 떠오르니 그것이 더욱 반갑구나.
그만두어라, 이 다섯 가지면 족하지 그밖에 더 있은들 무엇 하리.
구룸 빗치 조타 나 검기 로 다
람 소 다 나 그칠 적이 하노매라
조코도 그츨 뉘 업기 믈뿐인가 노라.
▶구름 빛이 깨끗하다고 하지마는 검기를 자주 한다.
바람 소리가 맑다고 하나 그칠 때가 많도다.
깨끗하고도 그칠 적이 없기는 물뿐인가 하노라.
고즌 므스 일로 퓌며셔 쉬이 디고
풀은 어이야 프르 누르니?
아마도 변티 아닐 바회뿐인가 노라.
▶꽃은 무슨 까닭으로 피자마자 곧 져 버리고,
풀은 어찌하여 푸르러지는가 하면 곧 누른빛을 띠는가?
아마도 영원토록 변하지 않는 것은 바위뿐인가 하노라.
더우면 곳 퓌고 치우면 닙 디거,
솔아 너 얻디 눈서리를 모다.
九泉(구천)의 블희 고 줄을 글로 야 아노라.
▶따뜻해지면 꽃이 피고, 추워지면 나무의 잎이 지는데,
소나무야, 너는 어찌 눈서리를 모르느냐?
깊은 땅 속까지 뿌리를 뻗은 것으로 하여 알겠노라.
나모도 아닌 거시 플도 아닌 거시
곳기 뉘 시기며 속은 어이 뷔연다.
뎌러코 四時(사시)에 프르니 그를 됴하노라.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곧기는 누가 시켰으며 속은 어찌하여 비었는가.
저렇게 사시에 푸르니 그를 좋아하노라.
쟉은 거시 노피 떠서 萬物(만물)을 다 비취니
밤듕의 光明(광명)이 너만 니 또 잇냐
보고도 말 아니 니 내 벋인가 노라.
▶작은 것이 높이 떠서 세상 만물을 다 비취니,
밤중의 광명중에서 달만 한 것이 또 있는가.
세상의 모든 것을 알면서 말을 안 하니 내 벗인가 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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