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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詩 같은 삶을 위하여
☞ 문학의 뜨락

솔제니친의 시 몇 편

by 石右 尹明相 2022. 8. 13.

 

솔제니친(Aleksandr Solzhenitsyn) 1918 ~ 2008.

러시아 문호, 1970년 노벨 문학상 받음.

1945년 스탈린을 비판했다가 체포되어 8년간 감옥과 강제노동수용소 생활.

1956년 복권되어 러시아 랴잔에서 수학교사로 글을 쓰기 시작.

소련 연방이 붕괴된 후 199420년간의 망명생활을 마침.

2007년에 러시아 국가문화공로상을 받았다.

 

 

솔제니친의 시 몇 편

 

 

막힘없는 길 [기도]

 

 

주여

나의 방황하는 마음이 망설이며 용기를 잃어버릴 때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 이 저녁에

더 이상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내일에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할 때

 

주여

당신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이토록 평안하고

당신을 믿는 것이 이토록 마음이 놓이는지요.

당신께서 살아 계신

영원한 영광의 정상을 향하여 선하게 인도하시는

모든 길이 막히지 않았음을 보여주시기 위해

당신께서 언제나 염려하고 계시다는

뚜렷한 확신을 저에게 베풀어 주옵소서.

 

지금까지 내가 실의에 빠져 있을 때

내 영혼을 짓누르던 어둠의 깊이를 보려고

가던 길을 돌이키는 순간

놀라움을 금치 못했나이다.

 

기나긴 역사의 여정 동안

인류에게 비추어 주시는 당신의 광명이

내 얼굴에도 흐르게 되었나이다.

그 빛을 언제나 가슴에 새기기 위해

나에게 필요한 것을 베풀어 주옵소서.

 

그리고 나는 잘 알고 있나이다.

마음속에 뜻을 품고도 내가 이루지 못한 일을

다른 이들이 이룰 수 있도록

당신께서 또 다른 길을 예비하였다는 것을

 

 

산 소나기

 

칠흑같이 어두운 어느 날 밤

우리는 고개에 미처 이르기도 전에 느닷없이 폭풍우를 만났다.

우리는 천막에서 기어 나와 한 군데에 움츠리고 모여 앉았다.

소나기는 산등성이를 넘어 우리에게 들이닥쳤다.

 

온통 어둠뿐이었다.

위도 아래도 옆도 없다.

번개가 번뜩이는 찰나에 어둠과 빛이 서로 갈라진다.

그때마다 벨롤라카야와 추구투룰류찻 태산,

그리고 우리 옆에 산같이 높은,

솟은 전나무들이 어둠 속에서 그 모습을 드러낸다.

순간순간이지만 디딜 땅이 있는가 싶으면

도로 어두움뿐이고 심연(深淵)뿐이다.

 

천둥소리가 골짜기를 메우고 계곡의 요란한 물소리를 뒤덮는다.

번개는 쎄바올의 화살처럼 능선을 때리고

그 때마다 마치 바위에 부딪쳐 산산조각이 나듯이

거기 무언가 살아 있는 것을 치고 쪼개는 듯이,

여러 갈래 뱀 혀처럼 날카로운 빛으로 찢어진다.

이 장관에 휩쓸린 우리는

바다 속의 한 방울 물이 풍랑을 두려워하지 않듯

번개와 천둥과 몰아치는 비를 두려워할 것을 잊어버렸다.

우리는 이 세상의,

오늘 처음으로 우리 눈앞에서 창조된 이 세상의 하찮은

고마운 한 부분이 되었던 것이다.

 

 

호흡

 

지난 밤 가랑비가 내렸다.

지금도 이따금 가볍게 비가 흩뿌리고

비구름 하늘을 지나가고 있다.

 

나는 꽃 시들어 떨어진 사과나무 밑에 홀로 서 있다.

나는 숨을 깊이 몰아쉬었다.

사과나무는 어느 것 하나 열매를 맺지 못했다.

다만 사방에 깔려 있는 풀들만이 비 맞은 뒤

이슬방울을 달고 있을 따름이다.

 

, 이 산뜻한 대기에 취한

달콤한 향기를 어떻게 다 말하리.

나는 이 대기를 허파 가득히 빨아 들이켰다.

나의 가슴으로 그 감미로운 향기를 느꼈다.

그래서 나는 숨을 내쉬며 공기를 자꾸 들이마셨다.

어떻게 공기를 마셔야 할지 몰라서

어쩌다가는 눈을 뜬 채,

때로는 살며시 눈을 감은 채.

 

, 이게 자유라는 것일 게다.

우리들로부터 굴레를 벗어버리게 하는

오직 하나의 값진 자유라는 것일 게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그리고 이곳에서

숨을 내쉬며 들이마시고 있는 것이다.

 

이 세상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아무리 감미로운 술도

또한 아무리 달콤한 여자의 입술도

나로선 이 대기에 비길 바 못된다.

 

이 꽃과 이 습기, 이 신선함을 듬뿍 머금고 있는

대기보다 더 감미로운 것은 아마도 없으리.

5층 건물의 야수 같은 우리 속에 짓눌리고 있는

조그맣고 하찮은 정원일지라도 좋다.

나는 총알 쏘아대는 것 같은 모터사이클 소리를

북을 치는 듯한 확성기 소리를 더는 듣고 싶지 않다.

 

나는 비 온 뒤의

사과나무 밑에서 한동안 더 숨 쉬련다.

, 나는 좀 더 살련다.

 

 

느릅나무 둥치

 

우리는 통나무 톱질을 하던 중

느릅나무 둥치를 하나 썰려고 들었다가

그만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지난 해 그 나무를 켜서 쓰러뜨린 다음

트랙터로 끌어내어 통으로 있던 것을 토막을 내고

토막을 다시 끌 것과 트럭에 싣기도 하고 떼로 엮어 물에 띄우고 해서

여기까지 운반해 온 이래 아무렇게나 땅에 굴러 두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이 느릅나무는 항복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줄기에서 싱싱한 푸른 싹이 돋아나고 있었다.

언젠가는 제대로 생긴 느릅나무가 되거나

아니면 적어도 바람 소리가 나도록 우거진 가지가 될 싹이었다.

 

우리는 이 나무토막을 사형대에 걸 듯이

벌써 모탕 위에 얹었었다.

그러나 톱으로 그 목을 켤 수가 없었다.

어떻게 그대로 켜버린단 말인가?

그렇게도 살려고 하는데. 우리보다도 더 강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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