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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詩 같은 삶을 위하여
☞ 문학의 뜨락

윤희상 시 모음

by 石右 尹明相 2022. 9. 11.

 

윤희상 시인(1961) 전남 나주 출생.

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 졸업.

1989세계의 문학무거운 새의 발자국으로 등단.

시집 고인돌과 함께 놀았다』『소를 웃긴 꽃』『이미, 서로 알고 있었던 것처럼.

 

 

윤희상 시 모음

 

 

소를 웃긴 꽃

 

나주 들판에서

정말 소가 웃더라니까

꽃이 소를 웃긴 것이지

풀을 뜯는

소의 발밑에서

마침 꽃이 핀 거야

소는 간지러웠던 것이지

그것만이 아니라,

피는 꽃이 소를 살짝 들어 올린거야

그래서

소가 꽃 위에 잠깐 뜬 셈이지

하마터면,

소가 중심을 잃고

쓰러질 뻔한 것이지

 

 

점잖은 구름

 

구름이 자연스러워야 합니다

성난 구름은 찍지 마세요

괜히 오해받습니다

뭉쳐 있는 구름도 좋지 않습니다

슬라이드 필름을 현상해놓고 보면,

햇빛 아래에서 눈으로 보는 것보다

더 어둡거든요

그리고 렌즈 안에서

미리 트리밍하지 말아요

편집 디자이너가 재미없습니다

거센 바람에 휩쓸리는 구름도 그렇겠지요

짙은 가을 하늘에 잠시 머물러 있는 구름이 좋아요

그렇다고, 일부러 꾸며놓은 듯한

모습은 부담스럽습니다

무엇보다, 점잖은 구름을 찾으세요

보는 사람들이 딴생각을 할지도 모르니까

구름이 어떤 현상을 지니고 있어도 불편합니다

그냥, 이미지로만 갑시다

편집자로서 하는 말입니다

 

 

못 이야기

 

변두리 다방에 가서 앉는다.

종업원 아가씨는

두 잔의 커피를 가지고 와서 옆에 앉는다.

그 무렵부터

여자는 옷을 벗기 시작한다.

내게는 쉽게 벗는 것처럼 보인다.

벗은 몸에는 여러 개의 못들이 박혀 있다.

들여다보면 못의 머리에는

남자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반쯤 덜 박힌 못이 있다.

때로는 속옷이 걸려서 찢어진다고 그런다

 

 

걸어 다니는 무덤

 

지난겨울,

나의 친구는

일곱 살 된 딸을

가슴에 묻었다

 

 

돌을 줍는 마음

 

돌밭에서 돌을 줍는다

여주 신륵사 건너편

남한강 강변에서

돌을 줍는다

마음에 들면, 줍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줍지 않는다

마음에 드는 돌이 많아

두 손 가득

돌을 움켜쥐고 서 있으면,

아직 줍지 않은 돌이 마음에 들고,

마음에 드는 돌을 줍기 위해

이미 마음에 든 돌을 다시 내려놓는다

줍고, 버리고

줍고, 버리고

또다시 줍고, 버린다

어느덧, 두 손에 마지막으로 남는 것은

빈 손이다

빈 손에도 잡히지 않을

어지러움이다

해는 지는데,

돌을 줍는 마음은 사라지고

나도 없고, 돌도 없다

 

 

사랑

 

풋풋하게 둥둥 뜬다.

남자를 좋아하는 여자가

남자가 좋아질 때

남자를 여자의 속에 감춘다.

자기 것은 자기 것이 아닐수록 좋다.

여자를 좋아하는 남자가 여자가 좋아질 때

여자를 남자의 속에 감춘다.

남자가 좋아하는 여자를 바라보는 옆에서

여자가 좋아하는 남자를 바라본다.

서로의 속으로 들어간다. 남자와 여자가 없어졌다.

모양을 잃어버리고도 살아 있다. 꿈틀 움직인다

 

 

가을

 

일하는 사무실의 창밖으로

날마다 모과나무를 본다.

날마다 보는 모과나무이지만,

날마다 같은 모과나무가 아니다.

모과 열매는 관리인이 따다가

주인집으로 가져가고,

모과나무 밑으로 낙엽이 진다.

 

나의 눈이

떨어지는 낙엽을 밟고

하늘로 올라간다.

낙엽이 계단이다.

 

 

시월

 

너를 버리면

무엇을 버리지 않을 수 있을는지 나는

걸어가다가 몇 번이나

주저앉아버리고 싶었다

 

우리들 곁으로

겨울이 오기 전에

갑자기 비가 내리지

 

아마 사람들은

거리에서 젖어 있을 거야

 

이제 편지하지 말아다오

누가 지친 생활을 세 번 깨우기 전에는

 

 

뉴욕제과 주인아저씨는 보청기를 끼고 있다

 

뉴욕제과 주인아저씨는

보청기를 끼고 있다

그래서 내가

아저씨 건포도 식빵을 주세요 그러면

아저씨는 나에게 건포도 식빵을 주고,

아저씨 소보로빵을 주세요 그러면

아저씨는 나에게 소보로 빵을 준다

 

 

고인돌과 함께 놀았다

 

강화도에 갔다.

내가면 사무소에 들러

고인돌이 있는 곳을 물어보았더니,

가르쳐주었다.

선산에 갈 때처럼 고인돌이 있는 곳으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참깨 밭 한켠에 놓여 있는

고인돌 옆에 돗자리를 깔았다.

과일을 먹었다.

똥을 싸고, 오줌을 쌌다.

다섯 살 된 딸은

고인돌 위에서 춤을 추었다.

우리는 고인돌과 함께 놀았다.

나뭇잎 사이에서 해가 지고 있었다.

 

 

영진이 여동생

 

며칠 전부터,

나는 건너편 하숙집 이층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광주에서 19805월에 계엄군이 쏜 총에 맞아

죽은 영진이, 영진이 죽은 뒤로 그의 여동생이

이층 뒤켠 베란다에 나와서

하루 종일 앉아 있었다

흰 벽에 기대어 앉았다 일어섰다

앉았다 일어섰다 앉아 있었다

 

 

너는 좋겠구나

 

아빠가 나주 사람이라서

너는 좋겠구나

엄마가 밀양 사람이라서

너는 좋겠구나

 

나주 배와 밀양 감을 함께 먹을 수 있으니

너는 좋겠구나

 

나주 할아버지가

너를 만나러 오시면서

나주 배를 가지고 오셨구나

밀양 외할아버지가

너를 만나러 오시면서

밀양 감을 가지고 오셨구나

 

나주 배와

밀양 감을 먹고

예쁜 똥을 싸면

먼 뒷날 똥 끝에서 자운영 꽃이 핀단다

 

너는 좋겠구나

자운영 꽃을 볼 수 있어서

 

온 들판에

자운영 꽃이 피면

너는 좋겠구나

 

 

 

벽 속의 개구리

 

딸이 친구의 집에서 올챙이를 얻어 왔다

올챙이의 뒷다리가 먼저 나오고,

며칠 더 있다가 앞다리가 나왔다

올챙이는 올챙이였지만,

내가 올챙이를 큰 소리로 개구리라고 불러버렸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올챙이는 개구리가 되었다

개구리가 없어진 것은 523일 새벽이다

아파트에 열린 문도 없었는데 개구리는 보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 이후로도

아파트에서 개구리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개구리는 아파트의 벽 속으로 들어갔다

꼬리를 잡아당기면 벽 속에서 나올 것 같은데,

개구리의 꼬리가 이미 떨어지고 없다는 것을

나는 그제서야 알았다

알고 보면 올챙이는 저 혼자 개구리가 되었다

오늘도 아파트에서 개구리 울음소리를 들었다

 

 

농담할 수 있는 거리

 

나와 너의 사이에서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거나, 눈이 내린다

 

나와 너의 사이는 멀고도, 가깝다

그럴 때, 나는 멀미하고,

너는 풍경이고, 여자이고,

나무이고, 사랑이다

 

내가 너의 밖으로 몰래 걸어나와서

너를 바라보고 있을 즈음,

나는 꿈꾼다

 

나와 너의 사이가

농담할 수 있는 거리가 되는 것을

 

나와 너의 사이에서

또 바람이 불고, 덥거나, 춥다

 

 

어떤 물음

 

가끔 찾아가는 돈가스집 주인은

지난해까지 서점 주인이었다

그래서 책표지를 잘 싼다

 

내가 가방에서 두 권의 책을 꺼내

돈가스 집 주인에게

책표지를 싸달라고 했다

 

한 권은 불교 법요집이고

한 권은 기독교 성경 해설집이다

 

돈가스 집 주인은

책표지를 싸다가

나에게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죽어서 어디로 갈라고 그러요?”

 

 

말의 감옥

 

혀끝으로 총의 방아쇠를 당겨 혀를 쏘았다

쏟아지는 것은 말이 아니라, 피였다

오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입안에서 자라는 말을 베어 물었다

그렇더라도,

생각은 말로 했다

 

저것은 나무

저것은 슬픔

저것은 장미

저것은 이별

저것은 난초

 

끝내는 말로부터 달아날 수 없었다

눈을 감아도 마찬가지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말을 가지고 실컷 떠들고 놀 것을 그랬다

 

꽃을 만들고

그림을 그리고

향을 피울 것을 그랬다

온종일 말 밖으로 한 걸음도 나서지 못했다

 

아무도 몰래, 불어가는 바람 속에

말을 섞을 것을 그랬다

 

 

도너츠

 

눈 내리는 날,

한가운데 텅 빈 마음자리를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

스산한 바람만 불었다

비움으로 끝내는 남아 있는

중심의 괴로움을 처음에는 몰랐다

중심은 사라지고

주변은 드러나는 풍습이 그만큼 낯설다

그렇다고, 마음이 갇히지도 않았고

열리지도 않았다

흥미로운 것은

다 먹혔을 때만

둘이 서로에게 고요히 번진다

안과 밖이 서로에게 스민다

둘이 다투지 않는 고즈넉함이다

너와 내가 하나이듯이

빛과 어둠이 하나이듯이

밤과 낮이 하나이듯이

마치 정신과 육체가 둘이 아니라 하나이듯이

그대로 하나의 몸이다

그리고 흩어진다

이미, 서로 알고 있었던 것처럼

 

 

 

길은 끝이 없다

그러니까, 길은 끝나지 않는다

내가 막다른 길에서 보았던,

길은 여기서 끝났습니다라는 친절한 말은

틀린 말이다

길이 끝났다는 곳에서

되돌아오는 길은 가는 길과

전혀 다른 오는 길이다

 

 

화가

 

화가는

바람을 그리기 위해

바람을 그리지 않고

바람에 뒤척거리는 수선화를 그렸다

바람에는 붓도 닿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어떤 사람들은

그곳에서 바람은 보지 않고

수선화만 보고 갔다

화가가 나서서

탓할 일이 아니었다

 

 

 

불어가는 바람이 잠깐

옷을 입어보는 것이다.

 

 

눈처럼 게으른 것은 없다

 

나주 장날

할머니 한 분이

마늘을 높게 쌓아놓은 채

다듬고 있다.

 

그 옆을 지나가는 낯선 할아버지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말을 남기고 간다.

 

그것을 언제 다 할까

그러자 할머니가 혼잣말을 한다.

눈처럼 게으른 것은 없다.

 

 

종이로 만든 마을

 

일찍이 이 마을에는 종이로 만든 하늘이 있었고

종이로 만든 땅이 있었다

종이로 만든 사람들은 종이로 만든 집을 짓고,

종이로 만든 아이를 낳고 살았다

종이로 만든 나무도 있고 종이로 만든 숲도 있었다

당연히 종이로 만든 새도 있었다

이 마을 사람들은 더러 종이로 만든 새소리를 들었다

그렇지만 종이로 만든 장애인 학교는 세우지 않았다

종이로 만든 쓰레기 시설을 만드는 것도 싫어했다

종이로 만든 화장터를 짓는 것도 싫어했다

이미 알고 있듯이, 이 마을 사람들은 아프지 않고

쓰레기를 버리지 않고, 결국 죽지도 않았다

 

 

몸에게 말하다

 

새벽하늘을 홀로 건너는 달을 보면서 고통으로 다듬었다

그렇게 다듬어진 말이 있다

그렇게 다듬어진 말로 자신의 몸에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

 

자니는 날카로운 칼로 팔목에 선을 그었다

선영은 허벅지에 문신했다

미키는 젖꼭지에 피어싱했다

 

피 흘렸다

 

아파도, 아프지 않았다

 

누가 읽거나 말거나,

이 세상에서 오직 한 사람만 알고 있는 말이 있다

 

말의 뿌리를 알 수 없다

 

어쩌다가, 혹시 누가 읽었다고 했을 때,

그 말은 이미 좀처럼 열리지 않는 방으로 들어간 뒤였다

 

 

갈 수 없는 나라

 

자고 일어나 방문을 열면 감나무 밑이 환했다

아침마다 누나와 함께 떨어진 감꽃을 주웠다

꽃밭에서 피는 꽃마다 하늘을 하나씩 들고 있었다

꽃이 지면 들고 있던 하늘도 무너졌다

아버지의 양복 호주머니에서 돈을 훔쳤다

훔친 돈을 담장 기왓장 아래 숨겼다

앵두나무 그늘이 좋았다

둥근 그늘 밑으로 들어가 돗자리를 깔았다

해질 무렵, 어머니가 이름을 부르며 찾았다

대답하지 않았다

뒤뜰에서 죽은 것처럼 누워 있었다

비가 오면, 마당의

백일홍 나무는 비가 오는 쪽만 젖었다

 

 

일본 여자가 사는 집

 

내가 동네 앞에서 아이들과 함께 놀고 있을 때

동네 밖에서 찾아온 낯선 사람이

아이들에게 물었다

일본 여자가 사는 집이 어디냐고

아이들은 저기 기와집이라고 말했다

일본 여자는 우리 동네에서 사는 무면허 안과 의사였다

그렇다고 돌팔이 의사라고 부르는 사람은 없었다

멀리까지 소문난 일본 여자는 본래 간호사였다

일본 여자는 동네에서 태어나는 아기들을 받았다

돈은 받지 않았다

일본 여자는 조선 남자를 사랑했다

일본 여자가 사는 집은 우리집이고

일본 여자는 나의 엄마였다

 

 

강경애라는 소설가

 

이상하지, 현대문학사전을 읽을 때마다

자주 그 이름 앞에 눈길이 머문다는 것

황해도 장연 사람이라는 것

1906년에 태어나 1944년에 죽었다는 것

길지 않은 삶을 어렵게 살았다는 것

이 땅에 와서 소설을 썼다는 것

내가 그의 장편소설 인간문제를 읽고,

단편소설 지하촌을 읽었다는 것

그러니까,

그가 지은 말의 집에 내가 잠깐 다녀왔다는 것

그러는 사이,

그가 살았던 식민지의 하늘 아래 눈 내리고 비 온다는 것

바람 분다는 것

이처럼 펼쳐진 배경 속에서 두 손으로 옷깃을 붙잡고,

땅 위에 발을 붙이고, 한 사람이 걷고 있다는 것

그는 무슨 말을 하고 싶었다는 것

쓴다는 것과 읽는다는 것

혹은, 말한다는 것과 듣는다는 것

마침내 사람은 없고, 작품만 남았다는 것

가끔은 이렇게 문득 만난다는 것

그래서 오늘, 강경애라는 소설가

 

 

시인에게, 숲 해설가는 말한다

 

단풍이 참 좋습니다

나뭇잎에

단풍이 드는 것은

 

단지,

겨울을 견디기 위해

나무들이

미리 구조조정을 하는 것입니다

 

 

장닭

 

큰 누님이 결혼한다고 도배하는 날,

방안의 장롱을 마당으로 꺼내놓았다

그래서, 마당에서 놀던 장닭과

장롱 거울 속의 장닭이 만났다

 

한쪽에서 웃으면, 다른 한쪽에서 웃고

한쪽에서 폼을 잡으면, 다른 한쪽에서 폼을 잡고

한쪽에서 노래하면, 다른 한쪽에서 노래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장닭이 장닭에게 덤벼들었다

서로 싸웠다

놀란 사람들은 하던 일을 멈췄다

누가 먼저 덤벼들었는지 모른다

다행히 장닭은 크게 다치지 않았다

거울이 깨졌다

 

사람들은 눈앞의 장닭이

거울이 깨지면서

거울 속에서 걸어나온 장닭인지

마당에서 놀다가 거울 속으로 걸어들어간 장닭인지

아니면, 또다른 장닭인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돌을 줍는 마음

 

돌밭에서 돌을 줍는다

여주 신륵사 건너편

남한강 강변에서

돌을 줍는다

마음에 들면, 줍고

마음에 들지 앟으면, 줍지 앟는다

마음에 드는 돌이 많아

두 손 가득

돌을 움켜쥐고 서 있으면

아직 줍지 않은 돌이 마음에 들고

마음에 드는 돌을 줍기 위해

이미 마음에 든 돌을 다시 내려놓는다

줍고, 버리고

줍고, 버리고

또다시 줍고, 버린다

어느덧, 두 손에 마지막으로 남는 것은

빈 손이다

빈 손에도 잡히지 않을

어지러움이다

해는 지는데

돌을 줍는 마음은 사라지고

나도 없고, 돌도 없다

 

 

마음

 

가두지 않았다

담이 없다

울타리도 없다

부드러운 짐승들이 산다

날카로운 발톱을 지녔다

돌보는 사람도 없다

어디로 뛸지 모른다

 

 

필담

 

대학도서관 큰 책상에서 책을 읽고 있는데

옆에서 마주앉은 남학생과 여학생이

빈 종이를 사이에 두고 서로 필담을 나눈다

 

그러기를 한참이다

그래서 나도 그 빈 종이에 필담을 남기고 싶었다

괜찮아요 말로 하세요

 

​▶ 버드나무로부터의 편지

 

이른 아침부터 언덕을 거닐며 안으로부터

울컥 차오르는 마음을 읽고 있다

그리움이거나

미움이거나

목마름이거나 그럴 테지만, 뜨겁다

 

이내 바람이 불어 부러지는 것은 나뭇가지이지만,

아픈 것은 마음이다

이제 다치지 않는 바람이 되고 싶다

날마다 그런 마음을 드리운 그림자를 물 위로 띄워보지만,

아무도 건져서 읽지 않는다

 

그렇더라도, 바람에게로 간다

이미, 풀어내린 긴 나뭇가지의 잎사귀들이

바람 속으로 먼저 들어서고 있다

언덕에서 바람에게 몸과 마음을 다 맡기고 있다

벌써 바람과 함께 놀고 있다

 

 

​▶ 땅이 책이다

 

책을 읽지 못하면서 사는 것이 안타깝다는

농부에게 내가 말했다

 

별말씀을요

괜찮아요

땅이 책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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