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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詩 같은 삶을 위하여
☞ 문학의 뜨락

김삿갓 시 모음

by 石右 尹明相 2023. 8. 5.

 

김삿갓(1807~1863) 본명은 병연(炳淵),

삿갓을 쓰고 다녀 흔히 김삿갓 또는 김립(金笠)이라고 부른다.

그의 조상은 19세기에 들어와 권력을 온통 휘어잡은 안동 김씨와 한 집안이었다.

그의 할아버지는 익순(益淳)이요, 그의 아버지는 안근(安根)이다.

자신의 조부를 조롱하는 시로 장원급제를 했다.

 

   

김삿갓 시 모음

 

 

 自顧偶吟-나를 돌아보며 우연히 짓다

 

笑仰蒼穹坐可超(소앙창궁좌가초)-푸른 하늘 웃으며 쳐다보니 마음이 편안하건만

回思世路更초초(회사세로경초초)-세상길 돌이켜 생각하면 다시금 아득해지네.

居貧每受家人謫(거빈매수가인적)-가난하게 산다고 집사람에게 핀잔 받고

亂飮多逢市女嘲(난음다봉시녀조)-제멋대로 술 마신다고 시중 여인들에게 놀림 받네.

萬事付看花散日(만사부간화산일)-세상만사를 흩어지는 꽃같이 여기고

一生占得月明宵(일생점득월명소)-일생을 밝은 달과 벗하여 살자고 했지.

也應身業斯而已(야응신업사이이)-내게 주어진 팔자가 이것뿐이니

漸覺靑雲分外遙(점각청운분외요)-청운이 분수밖에 있음을 차츰 깨닫겠네.

 

 세속의 번잡스러움에서 벗어나 자연과 더불어 유유자적하며 지내는

   자신의 생활을 감회에 젖어 읊은 시이다.

 

 

 是是非非詩-시시비비

 

年年年去無窮去(년년년거무궁거)-이 해 저 해 해가 가고 끝없이 가네,

日日日來不盡來(일일일래부진래)-이 날 저 날 날은 오고 끝없이 오네.

年去月來來又去(년거월래래우거)-해가 가고 날이 와서 왔다가는 또 가니

天時人事此中催(천시인사차중최)-천시(天時)와 인사(人事)가 이 가운데 이뤄지네.

是是非非非是是(시시비비비시시)-옳은 것 옳다 하고 그른 것 그르다 함이 꼭 옳진 않고

是非非是非非是(시비비시비비시)-그른 것 옳다 하고 옳은 것 그르다 해도 옳지 않은 건 아닐세.

是非非是是非非(시비비시시비비)-그른 것 옳다 하고 옳은 것 그르다 함, 이것이 그른 것은 아니고

是是非非是是非(시시비비시시비)-옳은 것 옳다 하고 그른 것 그르다 함, 이것이 시비일세.

 

 

 蘭皐平生詩-난고 평생시

 

鳥巢獸穴皆有居 顧我平生獨自傷 조소수혈개유거 고아평생독자상

새도 둥지가 있고 짐승도 굴이 있건만,

내 평생을 돌아보니 너무나 가슴 아파라.

芒鞋竹杖路千里 水性雲心家四方 망혜죽장로천리 수성운심가사방

짚신에 대지팡이로 천 리 길 다니며,

물처럼 구름처럼 사방을 내 집으로 여겼지.

尤人不可怨天難 歲暮悲懷餘寸腸 우인불가원천난 세모비회여촌장

남을 탓할 수도 없고 하늘을 원망할 수도 없어,

섣달그믐엔 서글픈 마음이 가슴에 넘쳤지.

初年自謂得樂地 漢北知吾生長鄕 초년자위득락지 한북지오생장향

초년엔 즐거운 세상 만났다 생각하고,

한양이 내 생장한 고향인 줄 알았지.

簪纓先世富貴人 花柳長安名勝庄 잠영선세부귀인 화류장안명승장

집안은 대대로 부귀영화를 누렸고,

꽃 피는 장안 명승지에 집이 있었지.

隣人也賀弄璋慶 早晩前期冠蓋場 인인야하농장경 조만전기관개장

이웃 사람들이 아들 낳았다 축하하고,

조만간 출세하기를 기대했었지.

髮毛稍長命漸奇 灰劫殘門飜海桑 발모초장명점기 회겁잔문번해상

머리가 차츰 자라며 팔자가 기박해져,

뽕나무밭이 변해 바다가 되더니

依無親戚世情薄 哭盡爺孃家事荒 의무친척세정박 곡진야양가사황

의지할 친척도 없이 세상인심 박해지고,

부모상까지 마치자 집안이 쓸쓸해졌네.

終南曉鍾一納履 風土東邦心細量 종남효종일납리 풍토동방심세양

남산 새벽 종소리 들으며 신 끈을 맨 뒤에,

동방 풍토를 돌아다니며 시름으로 가득 찼네.

心猶異域首丘狐 勢亦窮途觸藩羊 심유이역수구호 세역궁도촉번양

마음은 아직 타향에서 고향 그리는 여우같건만,

울타리에 뿔 박은 양처럼 형세가 궁박해졌네.

南州從古過客多 轉蓬浮萍經幾霜 남주종고과객다 전봉부평경기상

남녘 지방은 옛 부터 나그네가 많았다지만,

부평초처럼 떠도는 신세가 몇 년이나 되었던가.

搖頭行勢豈本習 口圖生惟所長 요두행세기본습 구도생유소장

머리 굽실거리는 행세가 어찌 내 본래 버릇 이랴만,

입 놀리며 살 길 찾는 솜씨만 가득 늘었네.

光陰漸向此中失 三角靑山何渺茫 광음점향차중실 삼각청산하묘망

이 가운데 세월을 차츰 잊어 버려,

삼각산 푸른 모습이 아득하기만 해라.

江山乞號慣千門 風月行裝空一囊 강산걸호관천문 풍월행장공일낭

강산 떠돌며 구걸한 집이 천만이나 되었건만,

풍월시인 행장은 빈 자루 하나뿐일세.

千金之子萬石君 厚薄家風均試嘗 천금지자만석군 후박가풍균시상

천금 자제와 만 석군 부자,

후하고 박한 가풍을 고루 맛보았지.

身窮每遇俗眼白 歲去偏傷髮蒼 신궁매우속안백 세거편상빈발창

신세가 궁박해져 늘 백안시당하고,

세월이 갈수록 머리 희어져 가슴 아프네.

歸兮亦難佇亦難 幾日彷徨中路傍 귀혜역난저역난 기일방황중로방

돌아갈래도 어렵지만 그만둘래도 어려워,

중도에 서서 며칠 동안 방황하네.

 

 난고는 김삿갓의 호이다.

 

 

주인의 너무한 운자

 

主人呼韻太環銅 (주인호운태환동)

我不以音以鳥態 (아불이음이조태)

濁酒一盆速速來 (탁주일분속속래)

今番來期尺四蚣 (금번래기척사공)

 

주인이 부르는 운자가 너무 '고리''구리',

나는 조와 태를 음으로 하지 않고'새김'으로 해야겠다.

막걸리(탁주) 한 동이를 재빨리 가져오게,

이번 '내기' 에는 '자네'가 진 것이네.

 

유래

어느 고을에서 김삿갓이 시를 잘 한다는 시객과 막걸리 내기를 하였는데,

시객이 운자로 '' ''. ''을 부르자 김삿갓이 그 운을 부르는 대로

시로써 답을 하여 막걸리를 얻어먹었다고 한다.

 

 

老吟(노음) - 늙은이가 읊다

 

五福誰云一曰壽 오복수운일왈수

堯言多辱知如神 요언다욕지여신

舊交皆是歸山客 구교개시귀산객

新少無端隔世人 신소무단격세인

筋力衰耗聲似痛 근력쇠모성사통

胃腸虛乏味思珍 위장허핍미사진

內情不識看兒苦 내정부식간아고

謂我浪遊抱送頻 위아랑유포송빈

 

오복 가운데 수()가 으뜸이라고 누가 말했던가,

오래 사는 것도 욕이라고 한 요임금 말이 귀신같네.

옛 친구들은 모두 다 황천으로 가고,

젊은이들은 낯설어 세상과 멀어졌네.

근력이 다 떨어져 앓는 소리만 나오고,

위장이 허해져 맛있는 것만 생각나네.

애 보기가 얼마나 괴로운 줄도 모르고,

내가 그냥 논다고 아이를 자주 맡기네.

 

유래

요임금이 말하기를 아들이 많으면 근심이 많아지고

부귀하면 일이 많으며 장수하면 욕된 일이 많아진다고 했다.

오복(五福)의 첫째는 장수(長壽)라 하나 늙으면 버림받고 외로워지니,

요임금이 이를 알고 장수(長壽)는 다욕(多辱)이라 했다.

 

 

詠笠영립 - 내 삿갓

 

浮浮我笠等虛舟 부부아립등허주

一着平生四十秋 일착평생사십추

牧堅輕裝隨野犢 목수경장수야독

漁翁本色伴沙鷗 어옹본색반사구

醉來脫掛看花樹 취래탈괘간화수

興到携登翫月樓 흥도휴등완월루

俗子依冠皆外飾 속자의관개외식

滿天風雨獨無愁 만천풍우독무수

 

가뿐한 내 삿갓이 빈 배와 같아,

한번 썼다가 사십 년 평생 쓰게 되었네.

목동은 가벼운 삿갓 차림으로 소 먹이러 나가고,

어부는 갈매기 따라 삿갓으로 본색을 나타냈지.

취하면 벗어서 구경하던 꽃나무에 걸고,

흥겨우면 들고서 다락에 올라 달구경하네.

속인들의 의관은 모두 겉치장이지만,

하늘 가득 비바람 쳐도 나만은 걱정이 없네.

 

유래

*자신의 조부를 탄핵하고 시작한 방랑 생활에 언제나 벗이 되어 주며

비바람에도 몸을 보호해 주는 삿갓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했다.

*'병연'은 그 이름과 함께 사라지고 말았다.

이때부터 이 시인은 '병연'이란 이름을 스스로 숨기고 잊어 버렸다.

그리고 삿갓을 쓴 이름 없는 시인이 되었다.

그가 읊은 자신의 '삿갓' 시는 유연자적하는 자연과

풍류 속의 자기 운명을 그린 자화상이었다.(양기원-김삿갓이야기)

 

 

自嘆자탄 - 스스로 탄식하다

 

嗟乎天地間男兒 차호천지간남아

知我平生者有誰 지아평생자유수

萍水三千里浪跡 평수삼천리랑적

琴書四十年虛詞 금서사십년허사

靑雲難力致非願 청운난력치비원

白髮惟公道不悲 백발유공도불비

驚罷還鄕夢起坐 경파환향몽기좌

三更越鳥聲南枝 삼경월조성남지

 

슬프다 천지 사이의 남자들이여,

내 평생을 알아줄 자가 누가 있으랴.

부평초 물결 따라 삼천리 자취가 어지럽고,

거문고와 책으로 보낸 사십 년도 모두가 헛것일세.

청운은 힘으로 이루기 어려워 바라지 않았거니와,

백발도 정한 이치이니 슬퍼하지 않으리라.

고향길 가던 꿈꾸다 놀라서 깨어 앉으니,

삼경에 남쪽 지방 새 울음만 남쪽 가지에서 들리네.

 

월조(越鳥)는 남쪽 지방의 새인데

다른 지방에 가서도 고향을 그리며 남쪽 가지에 앉는다고 한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나타내는 말로 쓰였다.

 

 

竹詩죽시 - 대나무 시

 

此竹彼竹化去竹 차죽피죽화거죽

風打之竹浪打竹 풍타지죽랑타죽

飯飯粥粥生此竹 반반죽죽생차죽

是是非非付彼竹 시시비비부피죽

賓客接待家勢竹 빈객접대가세죽

市井賣買歲月竹 시정매매세월죽

萬事不如吾心竹 만사불여오심죽

然然然世過然竹 연연연세과연죽

 

이대로 저대로 되어 가는 대로,

바람 치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밥이면 밥, 죽이면 죽 이대로 살아가고,

옳으면 옳고 그르면 그르고 저대로 맡기리라.

손님 접대는 집안 형세대로,

시장에서 사고팔기는 세월대로.

만사를 내 마음대로 하는 것만 못하니,

그렇고 그런 세상 그런대로 지나세.

 

한자의 훈()을 빌어 절묘한 표현을 하였다.

 

 

二十樹下이십수하 - 스무나무 아래

 

二十樹下三十客 이십수하삼십객

四十家中五十食 사십가중오십식

人間豈有七十事 인간개유칠십사

不如歸家三十食 불여귀가삼십식

 

스무나무 아래 서른 나그네가(스무나무 아래 서러운 나그네가)

마흔 집안에서 쉰밥을 먹네(망할 놈의 집안에서 쉰밥을 먹네)

인간 세상에 어찌 일흔 일이 있으랴(인간 세상에 어찌 이런 일이 있으랴)

차라리 집으로 돌아가 서른 밥을 먹으리라(차라리 집으로 돌아가 선 밥을 먹으리라)

 

三十食 : 三十'서른'이니 '(未熟)'의 뜻. 설익은 밥.

함경도 지방의 어느 부잣집에서 냉대를 받고

나그네의 설움을 한문 수자 새김을 이용하여 표현한 시이다.

 

 

암야방홍련(暗夜訪紅蓮)-어두운 밤에 홍련을 찾아가다.

 

探香狂蝶半夜行(탐향광접반야행)-향기 찾는 미친 나비가 한밤중에 나섰지만

百花深處摠無情(백화심처총무정)-온갖 꽃은 밤이 깊어 모두들 무정하네

欲採紅蓮南浦去(욕채홍련남포거)-홍련을 찾으려고 남포로 내려가다가

洞庭秋波小舟驚(동정추파소주경)-동정호 가을 물결에 작은 배가 놀라네

 

동정(洞庭)은 중국 호남성에 있는 동정호(洞庭湖)를 말한다.

홍련을 만나려고 여러 여인들이 자는 기생방을 한밤중에 찾아갔는데

어둠 속에서 얼결에 추파라는 기생을 밟고는 깜짝 놀랐다.

 

 

언문풍월(諺文風月)

 

靑松듬성듬성(청송듬성담성립이요)-푸른 소나무가 듬성듬성 섰고

人間여기저기(인간여기저기유라)-인간은 여기저기 있네

所謂엇뚝삣뚝(소위엇뚝삣뚝객이)-엇득 빗득 다니는 나그네가

平生쓰나다나(평생쓰나다나주라)-평생 쓰나 다나 술만 마시네

 

서당에서 있을 유()자와 술 주()자를 운으로 부르자

언문(한글)과 한자를 조합하여 지었다.

 

 

개춘시회작(開春詩會作)-봄을 시작하는 시회

 

데각데각 登高山하니(데각데각 등고산하니)-데걱데걱 높은 산에 오르니

시근뻘뜩 息氣散이라(시근뻘뜩 식기산이라)-씨근벌떡 숨결이 흩어지네.

醉眼朦朧 굶어하니(취안몽롱 굶어관하니)-몽롱하게 취한 눈으로 굶주리며 보니

욹읏붉읏 花爛漫이라(욹읏붉읏 화난만이라)-울긋불긋 꽃이 만발했네.

 

산에서 시회가 열린 것을 보고 올라갔는데

시를 지어야 술을 준다고 하자 이 시를 지었다.

사람들이 언문풍월도 시냐고 따지니 다시 한 수를 읊었다.

 

諺文眞書석거하니(언문진서섞어작하니)-언문과 진서를 섞어 지었으니

是耶非耶皆吾子(시야비야개오자라)-이게 풍월이냐 아니냐 하는 놈들은 모두 내 자식이다.

 

 

독가소제(犢價訴題)-송아지 값 고소장

 

四兩七錢之犢(사양칠전지독을)-넉 냥 일곱 푼짜리 송아지를

放於靑山綠水하야(방어청산녹수하야)-푸른 산 푸른 물에 놓아서

養於靑山綠水러니(양어청산녹수러니)-푸른 산 푸른 물로 길렀는데

隣家飽太之牛(인가포태지우가)-콩에 배부른 이웃집 소가

用其角於此犢하니(용기각어차독하니)-이 송아지를 뿔로 받았으니

如之何卽可乎리요(여지하즉가호리요)-(어찌하면 좋으리까

 

가난한 과부네 송아지가 부잣집 황소의 뿔에 받혀 죽자

김삿갓이 이 시를 써서 관가에 바쳐 송아지 값을 받아 주었다.

 

 

욕설모서당(辱說某書堂)-서당 욕설시

 

書堂乃早知(서당내조지)-서당을 일찍부터 알고 와보니

房中皆尊物(방중개존물)-방 안에 모두 귀한 분들일세

生徒諸未十(생도제미십)-생도는 모두 열 명도 못 되고

先生來不謁(선생내불알)-선생은 와서 뵙지도 않네

 

추운 겨울날 서당에 찾아가 재워주기를 청하나 훈장은 미친개 취급하며 내쫓는다.

인정 없는 훈장을 욕하는 시 소리나는 대로 읽어야 제맛이 난다.

 

 

욕공씨가(辱孔氏家)-공씨네 집에서

 

臨門老尨吠孔孔(임문노방폐공공)-문 앞에서 늙은 삽살개가 콩콩 짖으니

知是主人姓曰孔(지시주인성왈공)-주인의 성이 공가인 줄 알겠네

黃昏逐客緣何事(황혼축객연하사)-황혼에 나그네를 쫓으니 무슨 까닭인가

恐失夫人脚下孔(공실부인각하공)-아마도 부인의 아랫구멍을 잃을까 두려운 거지

 

구멍 공()자를 공공(개 짖는 소리), 공가(), 구멍이라는 세 가지 뜻으로 썼다.

 

 

허언시(虛言詩)

 

靑山影裡鹿抱卵(청산영리녹포란)-푸른 산 그림자 안에서는 사슴이 알을 품었고

白雲江邊蟹打尾(백운강변해타미)-흰 구름 지나가는 강변에서 게가 꼬리를 치는구나

夕陽歸僧三尺(석양귀승계삼척)-석양에 돌아가는 중의 상투가 석 자나 되고

樓上織女囊一斗(누상직녀낭일두)-베틀에서 베를 짜는 계집의 불알이 한 말이네

 

사슴이 알을 품고 게가 꼬리를 치며, 중이 상투를 틀고 계집에게 불알이 있을 수 있으랴.

허망하고 거짓된 인간의 모습을 헛된 말 장난으로 그림으로써

당시 사회의 모순을 해학적으로 표현했다.

 

 

호지화초(胡地花草)-오랑캐 땅의 화초

 

胡地無花草(호지무화초)-오랑캐 땅에 화초가 없다지만

胡地無花草(호지무화초)-오랑캐 땅이라고 화초가 없으랴

胡地無花草(호지무화초)-오랑캐 땅에는 화초가 없더라도

胡地無花草(호지무화초)-어찌 땅에 화초가 없으랴

 

()자에 '오랑캐'라는 명사와 '어찌'라는 부사의 뜻이 있다.

 

 

낙민루(樂民樓. 落民淚)

 

宣化堂上宣火黨(선화당상선화당)-선정을 펴야 할 선화당에서 화적 같은 정치를 펴니

樂民樓下落民淚(낙민루하낙민루)-낙민루 아래에서 백성들이 눈물 흘리네

咸鏡道民咸驚逃(함경도민함경도)-함경도 백성들이 다 놀라 달아나니

趙岐泳家兆豈永(조기영가조기영)-조기영의 집안이 어찌 오래 가랴

 

관찰사가 집무 보는 관아를 선화당이라고 하였다.

*구절마다 동음이의어를 써서 함경도 관찰사 조기영의 학정을 풍자했다.

宣化堂(선정을 베푸는 집) 宣火黨(화적 같은 도둑떼) 樂民樓(백성들이 즐거운 집)

落民淚(백성들이 눈물 흘리다) 咸鏡道(함경도) 咸驚逃(모두 놀라 달아나다),

趙岐泳(조기영) 兆豈永(어찌 오래 가겠는가)

 

 

추미애가 정신병을

 

秋美哀歌靜晨竝(추미애가 정신병)-가을날 곱고 슬픈 노래가 새벽에 고요히 퍼지니

雅霧來到美親然(아무래도 미친연)-아름다운 안개가 홀연히 와 가까이 드리운다.

凱發小發皆雙然(개발소발 개쌍연)-기세 좋은 것이나 소박한 것이나 둘 다 그러하여

愛悲哀美竹一然(애비애미 죽일연)-사랑은 슬프고 애잔하며 아름다움이 하나인 듯하네.

 

 

失題(실제)-제목을 잃어버린 시

 

許多韻字何呼覓(허다운자하호멱)-수많은 운자 가운데 하필이면 ''자를 부르나.

彼覓有難況此覓(피멱유난황차멱)-''자도 어려웠는데 또 ''자를 부르다니.

一夜宿寢懸於覓(일야숙침현어멱)-하룻밤 잠자리가 ''자에 달려 있는데

山村訓長但知覓(산촌훈장단지멱)-산골 훈장은 오직 ''자만 아네.

 

김삿갓이 어느 산골 서당에 가서 하룻밤 재워 달라고 하니 훈장이 시를 지으면

재워 주겠다고 하면서 시를 짓기 어려운 ''()자 운을 네 번이나 불렀다.

이에 훈장을 풍자하며 재치 있게 네 구절 다 읊었다.

 

 

제삿집 욕하기

 

年年臘月十五夜(년년랍월십오야)-해마다 돌아오는 섣달 보름날 밤은

君家祭祀乃早知(군가제사내조지)-그대 집의 제사인 줄 이내 알았노라.

祭尊登物用刀疾(재존등물용도질)-제사에 올린 음식은 칼솜씨가 빨라서

獻官執事皆告謁(헌관집사개고알)-헌관과 집사는 모두 있는 정성을 다하였도다

 

이것이 한자로 쓰여 있다면 모욕을 당하고 있는 이 불운한 사람들이

가 너무도 분명하게 들려주고 있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리라는 사실에 아이러니가 있다.

해마다 섣달이면 十五夜십오야 밤에 네 집의 제사에는 乃早知내조지라.

제사에 올린 음식에는 用刀疾용도질을 치노니 헌관과 집사는 모두 皆告謁개고알 같도다.

 

 

고유명사를 이용 모욕주기

 

六月災天鳥坐睡 趙坐首(유월재천조좌수)-六月災天에 새가 앉아 졸고

九月凉風蠅盡死 承進仕(구월량풍승진사)-九月凉風에 파리가 다 죽더라

月出東嶺蚊簷至 文僉知(월출동령문첨지)-달이 東嶺에 나매 모기가 처마에 이르고

日樂西山烏向巢 吳鄕首(일락서산오쟝소)-해가 西山에 떨어지매 가마귀가 둥우리로 향했더라

 

固有名詞를 이용하여 시에 말장난을 넣음으로써 모욕을 당하는 종류도 있다.

그러나 외설적인 것은 아니다.

네 사람의 양반, 이른바 선비들이 앉아서 상투적 문구를 주고받고 있었다.

삿갓이 그들의 토론에 대해 시를 한 수 지은 것.

 

 

욕윤씨(辱尹氏)-윤씨 모욕주기

 

東林山下春草綠(동림산하춘초록)-동림산 아래에 봄풀이 푸르니

大丑小丑揮長尾(대축소축취장미)-큰 소와 작은 소가 긴 꼬리를 흔들더라.

五月端陽愁裡過(오월단양수리과)-오월 단오에는 잡힐가 해서 근심 속에서 지내었고

八月秋夕亦可畏(팔월추석역가외)-팔월추석에는 또한 죽을까 봐서 두려웁도다

 

삿갓은 씨의 마을에서 푸대접을 받고는 그 울분을 토한 짧은 이나 통렬하다.

왜냐면 소자에 꼬리가 붙으니 자가 되기 때문이다.

 

 

서당학생 모집 홍보글

 

방랑 중 돈이 떨어진 김삿갓은 임시로 글을 가르쳐 돈을 벌려 했는데,

자기에게 와서 배우라는 의미로 自知晩知補知早知.

(혼자서 알려 하면 늦게 알게 되고 도움 받아 알려 하면 빨리 알게 된다.)라고 써 붙였다.

내용만 본다면 홍보용으로 적합한 내용이지만 한자의 음만 읽으면, 매우 저속하다.

 

 

여성 거문고 연주자를 성희롱하는 시

 

爾年十九齡(이년십구령)-너의 나이 열아홉에

乃早知瑟琴(내조지슬금)-일찍이도 거문고를 탈 줄 알고

速速拍高低(속속박고저)-박자와 고저장단을 빨리도 알아서

勿難譜知音(물난보지음)-어려운 악보와 음을 깨우첬구나

 

음만 읽는다면 음담패설로 들린다.

 

 

어떤 여성을 상대로 한 비처녀 논쟁

 

(김삿갓)

毛深內闊(모심내활)-털이 깊고 속이 넓은 것을 보니

必過他人(필과타인)-필시 딴 사람이 먼저 지나갔도다.

 

그런데, 상대 여성도 보통내기가 아닌지라 다음 시로 응수했다고 한다.

 

(여성)

溪邊楊柳不雨長(계변양류불우장)-개울가 버들은 비가 오지 않아도 길게 자라고

後園黃栗不蜂坼(후원황률불봉탁)-뒷마당 알밤은 벌이 쏘지 않아도 벌어지네.

 

 

김삿갓의 연유삼장(嚥乳三章)-시아버지와 며느리

 

一章

父嚥其上 婦嚥其下(부연기상 부연기하)-시아비가 그 위를 삼키고, 며느리가 그 아래를 삼키니

上下不同 其味則同(상하부동 기미즉동)-위와 아래는 같지 않으나 그 맛은 같더라.

 

二章

父嚥其二 婦嚥其一(부연기이 부연기일)-시아비가 그 둘을 삼키고, 며느리가 그 하나를 삼키니

一二不同 其味則同(일이부동 기미즉동)-하나와 둘은 같지 않으나 그 맛은 같더라.

 

三章

父嚥其甘 婦嚥其酸(부연기감 부연기산)-시아비가 그 단것을 삼키고, 며느리가 그 신 것을 삼키니

甘酸不同 其味則同(감산부동 기미즉동)-단것과 신 것은 같지 않으나 그 맛은 같더라.

 

 

중을 욕한 시

 

僧首團團汗馬囊(승수단단한마랑)-중의 둥근 머리는 땀이 찬 말의 X알이며

儒頭尖尖坐狗腎(유두첨첨좌구신)-뾰족뾰족한 선비 머리통 상투는 앉은 개X지로다

聲令銅令零銅鼎(성령동령영동정)-목소리는 구리방울을 구리솥에 굴리듯 요란하고

目若黑椒落白粥(목약흑초락백죽)-눈깔은 검은 후추알이 흰죽에 떨어진 듯 흉하구나.

 

​☞ 하룻밤 신세를 지기 위해 어느 절에 갔더니, 절에 있던 승려와 선비가

김삿갓의 초라한 행색만 보고 하대를 하고 푸대접을 하는 등 매우 고약하게 굴었다.

이에 지필묵을 갖다 달라고 하고 시를 썼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無題무제

 

四脚松盤粥一器(사각송반죽일기)-네 다리 소반 위에 멀건 죽 한 그릇

天光雲影共排徊(천광운영공배회)_하늘에 뜬 구름 그림자가 그 속에서 함께 떠도네.

主人莫道無顔色(주인막도무안색)-주인이여, 면목이 없다고 말하지 마오,

吾愛靑山倒水來(오애청산도수래)-물속에 비치는 청산을 내 좋아한다오.

 

산골의 가난한 농부 집에 하룻밤을 묵었다.

가진 것 없는 주인의 저녁 끼니는 멀건 죽.

죽 밖에 대접할 것이 없어 미안해하는 주인에게 시 한 수를 지어 주지만

글 모르는 그에게 무슨 소용이 있으랴.

 

 

風俗薄-야박한 풍속

 

斜陽鼓立兩柴扉(사양고립양시비)-석양에 사립문 두드리며 멋쩍게 서있는데,

三被主人手却揮(삼피주인수각휘)-집 주인이 세 번씩이나 손 내저어 물리치네.

杜宇亦知風俗薄(두우역지풍속박)-저 두견새도 야박한 풍속을 알았는지

隔林啼送不如歸(격림제송불여귀)-돌아가는 게 낫다고 숲속에서 울며 배웅하네.

 

 

 

難貧-가난이 죄

 

地上有仙仙見富(지상유선선견부)-지상에 신선이 있으니 부자가 신선일세,

人間無罪罪有貧(인간무죄죄유빈)-인간에겐 죄가 없으니 가난이 죄일세.

莫道貧富別有種(막도빈부별유종)-가난뱅이와 부자가 따로 있다고 말하지 말게나

貧者還富富還貧(빈자환부부환빈)-가난뱅이도 부자 되고 부자도 가난해진다오.

 

 

姜座首逐客詩-강좌수가 나그네를 쫓다

 

祠堂洞裡問祠堂(사당동리문사당)-사당동 안에서 사당을 물으니

輔國大匡姓氏姜(보국대광성씨강)-보국대광 강씨 집안이라네.

先祖遺風依北佛(선조유풍의북불)-선조의 유풍은 북쪽 부처에게 귀의했건만

子孫愚流學西羌(자손우류학서강)-자손들은 어리석어 서쪽 오랑캐 글을 배우네.

主窺下低冠角(주규첨하저관각)-주인은 처마 아래서 갓을 숙이며 엿보고

客立門前嘆夕陽(객립문전탄석양)-나그네는 문 앞에 서서 지는 해를 보며 탄식하네.

座首別監分外事(좌수별감분외사)-좌수 별감이 네게는 분에 넘치는 일이니

騎兵步卒可當當(기병보졸가당당)-기병 보졸 따위나 마땅하리라.

 

김삿갓을 내쫓은 주인은 나그네가 갔나 안 갔나 확인하려고 갓을 숙이고 엿보는데

김삿갓은 문 앞에 서서 인심 고약한 주인을 풍자하고 있다.

 

 

開城人逐客詩-개성 사람이 나그네를 내쫓다

 

邑號開城何閉門(읍호개성하폐문)-고을 이름이 개성인데 왜 문을 닫나

山名松嶽豈無薪(산명송악개무신)-산 이름이 송악인데 어찌 땔나무가 없으랴.

黃昏逐客非人事(황혼축객비인사)-황혼에 나그네 쫓는 일이 사람 도리 아니니

禮義東方子獨秦(예의동방자독진)-동방예의지국에서 자네 혼자 되놈일세.

 

 

逢雨宿村家-비를 만나 시골집에서 자다

 

曲木爲椽着塵(곡목위연첨착진)-굽은 나무로 서까래 만들고 처마에 먼지가 쌓였지만,

其間如斗僅容身(기간여두근용신)-그 가운데가 말만해서 겨우 몸을 들였네.

平生不欲長腰屈(평생불욕장요굴)-평생 동안 긴 허리를 굽히려 안했지만

此夜難謀一脚伸(차야난모일각신)-이 밤에는 다리 하나도 펴기가 어렵구나.

鼠穴煙通渾似漆(서혈연통혼사칠)-쥐구멍으로 연기가 들어와 옻칠한 듯 검어진 데다

窓茅隔亦無晨(봉창모격역무신)-봉창은 또 얼마나 어두운지 날 밝는 것도 몰랐네.

雖然免得衣冠濕(수연면득의관습)-그래도 하룻밤 옷 적시기는 면했으니

臨別慇懃謝主人(임별은근사주인)-떠나면서 은근히 주인에게 고마워했네.

 

어느 시골집에서 비를 피하며 지은 것으로

궁벽한 촌가의 정경과 선비로서의 기개가 엿보이는 시이다.

누추하지만 나그네에게 비를 피할 수 있도록 베풀어 준 주인의

따뜻한 마음에 감사하면서 세속에 굽히지 않으려는 의지를 볼 수 있다.

 

 

艱飮野店-주막에서

 

千里行裝付一柯(천리행장부일가)-천릿길을 지팡이 하나에 맡겼으니

餘錢七葉尙云多(여전칠엽상운다)-남은 엽전 일곱 푼도 오히려 많아라.

囊中戒爾深深在(낭중계이심심재)-주머니 속 깊이 있으라고 다짐했건만

野店斜陽見酒何(야점사양견주하)-석양 주막에서 술을 보았으니 내 어찌하랴

 

지팡이에 몸을 의지하고 떠돌아다니는 나그네 길,

어쩌다 생긴 옆전 일곱 닢이 전부지만 저녁놀이 붉게 타는 어스름에

술 한 잔으로 허기를 채우며 피곤한 몸을 쉬어가는 나그네의 모습.

 

 

宿農家-농가에서 자다

 

終日緣溪不見人(종일연계불견인)-골짜기 따라 종일 가도 사람을 못 보다가

幸尋斗屋半江濱(행심두옥반강빈)-다행히도 오두막집을 강가에서 찾았네.

門塗女元年紙(문도여와원년지)-문을 바른 종이는 여와 시절 그대로고

房掃天皇甲子塵(방소천황갑자진)-방을 쓸었더니 천황씨 갑자년 먼지일세.

光黑器皿虞陶出(광흑기명우도출)-거무튀튀한 그릇들은 순임금이 구워냈고

色紅麥飯漢倉陳(색홍맥반한창진)-불그레한 보리밥은 한나라 창고에서 묵은 것일세.

平明謝主登前途(평명사주등전도)-날이 밝아 주인에게 사례하고 길을 나섰지만

若思經宵口味幸(약사경소구미행)-지난밤 겪은 일을 생각하면 입맛이 쓰구나.

 

여와는 중국 전설에 나오는 천지를 만들었다는 인물,

천황씨는 전설에 나오는 고대 중국 임금.

 

 

過安樂見-안락성을 지나다가 배척받고

 

安樂城中欲暮天(안락성중욕모천)-안락성 안에 날이 저무는데,

關西孺子聳詩肩(관서유자용시견)-관서지방 못난 것들이 시 짓는다고 우쭐대네.

村風厭客遲炊飯(촌풍염객지취반)-마을 인심이 나그네를 싫어해 밥 짓기는 미루면서

店俗慣人但索錢(점속관인단색전)-주막 풍속도 야박해 돈부터 달라네.

虛腹曳雷頻有響(허복예뢰빈유향)-빈 배에선 자주 천둥소리가 들리는데

破窓透冷更無穿(파창투냉갱무천)-뚫릴 대로 뚫린 창문으로 냉기만 스며드네.

朝來一吸江山氣(조래일흡강산기)-아침이 되어서야 강산의 정기를 한번 마셨으니

試向人間穀仙(시향인간벽곡선)-인간 세상에서 벽곡의 신선이 되려 시험하는가.

 

벽곡은 신선이 되기 위해 곡식을 먹지 않고 수련하는 방법.

안락성에서 안락하지 않게 밤을 지냈음을 풍자했다.

 

 

自詠-스스로 읊다

 

寒松孤店裡(한송고점리)-겨울 소나무 외로운 주막에,

高臥別區人(고와별구인)-한가롭게 누웠으니 별세상 사람일세.

近峽雲同樂(근협운동락)-산골짝 가까이 구름과 같이 노닐고,

臨溪鳥與隣(임계조여린)-개울가에서 산새와 이웃하네.

銖寧荒志(치수영황지)-하찮은 세상 일로 어찌 내 뜻을 거칠게 하랴,

詩酒自娛身(시주자오신)-시와 술로써 내 몸을 즐겁게 하리라.

悠悠甘夢頻(유유감몽빈)-달이 뜨면 옛 생각도 하며, 유유히 단꿈을 자주 꾸리라.

 

세속에 물들지 않고 시와 술로 근심을 잊으며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풍류객의 모습을 그렸다.

 

 

思鄕-고향 생각

 

西行己過十三州(서행기과십삼주)-서쪽으로 이미 열세 고을을 지나왔건만

此地猶然惜去留(차지유연석거유)-이곳에서는 떠나기 아쉬워 머뭇거리네.

雨雪家鄕人五夜(우운가향인오야)-아득한 고향을 한밤중에 생각하니

山河逆旅世千秋(산하역려세천추)-천지 산하가 천추의 나그네길일세.

莫將悲慨談靑史(막장비개담청사)-지난 역사를 이야기하며 비분강개하지 마세

須向英豪問白頭(수향영호문백두)-영웅호걸들도 다 백발이 되었네.

玉館孤燈應送歲(옥관고등응송세)-여관의 외로운 등불 아래서 또 한 해를 보내며

夢中能作故園遊(몽중능작고원유)-꿈속에서나 고향 동산에 노닐어 보네.

 

오야(五夜)는 오경(五更)으로 오전 3시부터 5시까지이다.

 

 

卽吟-즉흥적으로 읊다

 

坐似枯禪反愧髥(좌사고선반괴염)-내 앉은 모습이 선승 같으니 수염이 부끄러운데,

風流今夜不多兼(풍류금야부다겸)-오늘 밤에는 풍류도 겸하지 못했네.

燈魂寂寞家千里(등혼적막가천리)-달빛마저 쓸쓸해 나그네 혼자 처마를 보네.

月事肅條客一(월사숙조객일첨)-종이도 귀해 분판에 시 한 수 써놓고

紙貴淸詩歸板粉(지귀청시귀판분등불 적막하고 고향집은 천리인데,

肴貧濁酒用盤鹽(효빈탁주용반염)-소금을 안주 삼아 막걸리 한 잔 마시네.

亦是黃金販(경거역시황금판)-요즘은 시도 돈 받고 파는 세상이니

莫作於陵意太廉(막작어릉의태염)-오릉땅 진중자의 청렴만을 내세우지는 않으리라.

 

진중자(陳仲子)는 제나라 오릉(於陵)에 살았던 청렴한 선비.

 

 

 

多睡婦-잠 많은 아낙네

 

西隣愚婦睡方濃 不識蠶工況也農 서린우부수방농 부식잠공황야농

機閑尺布三朝織 杵倦升粮半日春 기한척포삼조직 저권승량반일춘

弟衣秋盡獨稱搗 姑襪冬過每語縫 제의추진독칭도 고말동과매어봉

蓬髮垢面形如鬼 偕老家中却恨逢 봉발구면형여귀 해로가중각한봉

 

이웃집 어리석은 아낙네는 낮잠만 즐기네,

누에치기도 모르니 농사짓기를 어찌 알랴.

베틀은 늘 한가해 베 한 자에 사흘 걸리고,

절구질도 게을러 반나절에 피 한 되 찧네.

시아우 옷은 가을이 다 가도록 말로만 다듬질하고,

시어미 버선 깁는다고 말로만 바느질하며 겨울 넘기네.

헝클어진 머리에 때 낀 얼굴이 꼭 귀신같아,

같이 사는 식구들이 잘못 만났다 한탄하네.

 

 

懶婦-게으른 아낙네

 

無病無憂洗浴稀 十年猶着嫁時衣 무병무우세욕희 십년유착가시의

乳連褓兒謀午睡 手拾裙蝨愛유연보아모오수 수습군슬애첨휘

動身便碎廚中器 搔首愁看壁上機 동신변쇄주중기 소수수간벽상기

忽聞隣家神賽慰 柴門半掩走如飛 홀문인가신새위 시문반엄주여비

 

병 없고 걱정 없는데 목욕도 자주 안 해,

십 년을 그대로 시집 올 때 옷을 입네.

강보의 아기가 젖 물린 채로 낮잠이 들자,

이 잡으려 치마 걷어들고 햇볕 드는 처마로 나왔네.

부엌에서 움직였다하면 그릇을 깨고,

베틀 바라보면 시름겹게 머리만 긁어대네.

그러다가 이웃집에서 굿한다는 소문만 들으면,

사립문 반쯤 닫고 나는 듯 달려가네.

 

 

喪配自輓-아내를 장사지내고

 

遇何晩也別何催 未卜其欣只卜哀 우하만야별하최 미복기흔지복애

祭酒惟餘醮日釀 襲衣仍用嫁時裁 제주유여초일양 습의잉용가시재

窓前舊種少桃發 簾外新巢雙燕來 창전구종소도발 염외신소쌍연래

賢否卽從妻母問 其言吾女德兼才 현부즉종처모문 기언오녀덕병재

 

만나기는 왜 그리 늦은데다 헤어지기는 왜 그리 빠른지,

기쁨을 맛보기 전에 슬픔부터 맛보았네.

제삿술은 아직도 초례 때 빚은 것이 남았고,

염습 옷은 시집 올 때 지은 옷 그대로 썼네.

창 앞에 심은 복숭아나무엔 꽃이 피었고,

주렴 밖 새 둥지엔 제비 한 쌍이 날아 왔는데.

그대 심성도 알지 못해 장모님께 물으니,

내 딸은 재덕을 겸비했다고 말씀하시네.

 

시집 온 지 얼마 안 되는 아내의 상을 당한 남편을 대신하여 지은 시이다.

아내가 떠난 집에 제비가 찾아오고 복숭아꽃이 피니,

아내를 그리는 정이 더욱 간절해짐을 표현했다.

 

 

贈妓-기생에게 지어 주다

 

却把難同調 還爲一席親 각파난동조 환위일석친

酒仙交市隱 女俠是文人 주선교시은 여협시문인

太半衿期合 成三意態新 태반금기합 성삼의태신

相携東郭月 醉倒落梅春 상휴동곽월 취도락매춘

 

처음 만났을 때는 어울리기 어렵더니,

이제는 가장 가까운 사이가 되었네.

주선(酒仙)이 시은(市隱)과 사귀는데,

이 여 협객은 문장가일세.

정을 통하려는 뜻이 거의 합해지자,

달그림자까지 합해서 세 모습이 새로워라.

서로 손 잡고 달빛 따라 동쪽 성곽을 거닐다가,

매화꽃 떨어지듯 취해서 쓰러지네.

 

주선(酒仙)은 술을 즐기는 김삿갓 자신. 시은(市隱)은 도회지에 살면서도

은자같이 지내는 사람. 이백(李白)의 시 월하독작(月下獨酌)"擧杯邀明月

對影成三人"은 달, 자신, 자신의 그림자가 모여 셋이 되었다는 구절이 있다.

* 술을 좋아하는 시객(詩客)이 아름다운 기녀와 대작을 하며 시로 화답하고

봄밤의 취흥을 즐기는 풍류시이다.

 

 

老人自嘲-노인이 스스로 놀리다

 

八十年加又四年 非人非鬼亦非仙 팔십년가우사년 비인비귀역비선

脚無筋力行常蹶 眼乏精神坐輒眠 각무근력행상궐 안핍정신좌첩면

思慮語言皆妄猶將一縷線線氣 사려어언개망녕 유장일루선선기

悲哀歡樂總茫然 時閱黃庭內景篇 비애환락총망연 시열황정내경편

 

여든 나이에다 또 네 살을 더해,

사람도 아니고 귀신도 아닌데 신선은 더욱 아닐세.

다리에 근력이 없어 걸핏하면 넘어지고,

눈에도 정기가 없어 앉았다 하면 조네.

생각하는 것이나 말하는 것이나 모두가 망령인데,

한 줄기 숨소리가 목숨을 이어가네.

희로애락 모든 감정이 아득키만 한데,

이따금 황정경 내경편을 읽어보네.

 

김삿갓이 노인의 청을 받아 지은 것으로, 기력이 쇠해서 근근히 살아가면서도

도가(道家)의 경전을 읽으며 허무에 심취한 것을 읊었다.

 

 

嘲幼冠者-갓 쓴 어린아이를 놀리다

 

畏鳶身勢隱冠蓋 何人咳嗽吐棗仁 외연신세은관개 하인해수토조인

若似每人皆如此 一腹可生五六人 약사매인개여차 일복가생오륙인

 

솔개 보고도 무서워할 놈이 갓 아래 숨었는데,

누군가 기침하다가 토해낸 대추씨 같구나.

사람마다 모두들 이렇게 작다면,

한 배에서 대여섯 명은 나올 수 있을 테지.

 

어린 꼬마 신랑이 갓을 쓰고 다님을 조롱했다.

솔개를 무서워할 나이에 몸을 가릴 만큼 큰 갓을 쓰고

몸집은 대추씨처럼 작은데 벌써 새신랑이 되었음을 표현했다.

 

 

嘲年長冠者-갓 쓴 어른을 놀리다

 

方冠長竹兩班兒 新買鄒書大讀之 방관장죽양반아 신매추서대독지

白晝孫初出袋 黃昏蛙子亂鳴池 백주후손초출대 황혼와자난명지

 

갓 쓰고 담뱃대 문 양반 아이가,

새로 사온 맹자 책을 크게 읽는데

대낮에 원숭이 새끼가 이제 막 태어난 듯하고,

황혼녘에 개구리가 못에서 어지럽게 우는 듯하네.

 

 

訓戒訓長-훈장을 훈계하다

 

化外頑氓怪習餘 文章大塊不平噓 화외완맹괴습여 문장대괴불평허

盃測海難爲水 牛耳誦經豈悟書 여배측해난위수 우이송경기오서

含黍山間奸鼠爾 凌雲筆下躍龍余 함서산간간서이 능운필하약용여

罪當笞死姑舍己 敢向尊前語詰거 죄당태사고사기 감향존전어힐거

 

두메산골 완고한 백성이 괴팍한 버릇 있어,

문장 대가들에게 온갖 불평을 떠벌리네.

종지 그릇으로 바닷물을 담으면 물이라 할 수 없으니,

소귀에 경 읽기인데 어찌 글을 깨달으랴.

너는 산골 쥐새끼라서 기장이나 먹지만,

나는 날아오르는 용이라서 붓끝으로 구름을 일으키네.

네 잘못이 매 맞아 죽을죄이지만 잠시 용서하노니,

다시는 어른 앞에서 버릇없이 말장난 말라.

 

김삿갓이 강원도 어느 서당을 찾아가니 마침 훈장은 학동들에게

고대의 문장을 강의하고 있는데 주제넘게도 그 문장을 천시하는 말을 하고

김삿갓을 보자 멸시를 하는 것이었다. 이에 훈장의 허세를 꼬집는 시를 지었다.

 

 

訓長-훈장

 

世上誰云訓長好 無烟心火自然生 세상수운훈장호 무연심화자연생

曰天曰地靑春去 云賦云詩白髮成 왈천왈지청춘거 운부운시백발성

雖誠難聞稱道賢 暫離易得是非聲 수성난문칭도현 잠리이득시비성

掌中寶玉千金子 請囑撻刑是眞情 장중보옥천금자 청촉달형시진정

 

세상에서 누가 훈장이 좋다고 했나,

연기 없는 심화가 저절로 나네.

하늘 천 따 지 하다가 청춘이 지나가고,

시와 문장을 논하다가 백발이 되었네.

지성껏 가르쳐도 칭찬 듣기 어려운데,

잠시라도 자리를 뜨면 시비를 듣기 쉽네.

장중보옥 천금 같은 자식을 맡겨 놓고,

매질해서 가르쳐 달라는 게 부모의 참마음일세.

 

김삿갓은 방랑 중 훈장 경험도 했지만 훈장에 대한 그의 감정은 호의적이지 못해서

얄팍한 지식으로 식자(識者)인 체하는 훈장을 조롱하는 시가 여럿 있다.

 

 

嘲山村學長-산골 훈장을 놀리다

 

山村學長太多威 高着塵冠揷唾排 산촌학장태다위 고착진관삽타배

大讀天皇高弟子 尊稱風憲好明주 대독천황고제자 존칭풍헌호명주

每逢兀字憑衰眼 輒到巡杯籍白鬚 매봉올자빙쇠안 첩도순배적백수

一飯堂生色語 今年過客盡楊州 일반횡당생색어 금년과객진양주

 

산골 훈장이 너무나 위엄이 많아,

낡은 갓 높이 쓰고 가래침을 내뱉네.

천황을 읽는 놈이 가장 높은 제자고,

풍헌이라고 불러 주는 그런 친구도 있네.

모르는 글자 만나면 눈 어둡다 핑계대고,

술잔 돌릴 땐 백발 빙자하며 잔 먼저 받네.

밥 한 그릇 내주고 빈 집에서 생색내는 말이,

올해 나그네는 모두가 서울 사람이라 하네.

 

풍헌(風憲)은 조선 시대 향직(鄕職)의 하나.

 

 

可憐妓詩-기생 가련에게

 

可憐行色可憐身 可憐門前訪可憐 가련행색가련신 가련문전방가련

可憐此意傳可憐 可憐能知可憐心 가련차의전가련 가련능지가련심

 

가련한 행색의 가련한 몸이,

가련의 문 앞에 가련을 찾아왔네.

가련한 이 내 뜻을 가련에게 전하면,

가련이 이 가련한 마음을 알아주겠지.

 

김삿갓은 함경도 단천에서 한 선비의 호의로 서당을 차리고 3년여를 머무는데

가련은 이 때 만난 기생의 딸이다. 그의 나이 스물 셋.

힘든 방랑길에서 모처럼 갖게 되는 안정된 생활과 아름다운 젊은 여인과의 사랑.

그러나 그 어느 것도 그의 방랑벽은 막을 수 없었으니

다시 삿갓을 쓰고 정처 없는 나그네 길을 떠난다.

 

 

 

離別-이별

 

可憐門前別可憐 可憐行客尤可憐 가련문전별가련 가련행객우가련

可憐莫惜可憐去 可憐不忘歸可憐 가련막석가련거 가련불망귀가련

 

가련의 문 앞에서 가련과 이별하려니,

가련한 나그네의 행색이 더욱 가련하구나.

가련아, 가련한 이 몸 떠나감을 슬퍼하지 말라,

가련을 잊지 않고 가련에게 다시 오리니.

 

 

贈某女-어느 여인에게

 

客枕條蕭夢不仁 滿天霜月照吾隣 객침조소몽불인 만천상월조오린

綠竹靑松千古節 紅桃白李片時春 녹죽청송천고절 홍도백리편시춘

昭君玉骨湖地土 貴花容馬嵬塵 소군옥골호지토 귀비화용마외진

人性本非無情物 莫惜今宵解汝거 인성본비무정물 막석금소해여거

 

나그네 잠자리가 너무 쓸쓸해 꿈자리도 좋지 못한데,

하늘에선 차가운 달이 우리 이웃을 비추네.

푸른 대와 푸른 솔은 천고의 절개를 자랑하고,

붉은 복사꽃 흰 오얏꽃은 한 해 봄을 즐기네.

왕소군의 고운 모습도 오랑케 땅에 묻히고,

양귀비의 꽃 같은 얼굴도 마외파의 티끌이 되었네.

사람의 성품이 본래부터 무정치는 않으니,

오늘 밤 그대 옷자락 풀기를 아까워하지 말게나.

 

*왕소군은 한나라 원제(元帝)의 궁녀. 흉노 땅에서 죽음.

*마외파는 안녹산의 난이 일어났을 때 양귀비가 피난 갔다가 죽은 곳.

 

김삿갓이 전라도 어느 마을을 지나다가 날이 저물어 커다란 기와집을 찾아갔다.

주인은 나오지 않고 계집종이 나와서 저녁상을 내다 주었다. 밥을 다 먹은 뒤에

안방 문을 열어보니 소복을 입은 미인이 있었는데 독수공방하는 어린 과부였다.

밤이 깊은 뒤에 김삿갓이 안방에 들어가자 과부가 놀라 단도를 겨누었다.

김삿갓이 한양으로 과거 보러 가는 길인데 목숨만 살려 달라고 하자

여인이 운을 부르며 시를 짓게 하였다.

 

 

街上初見-길가에서 처음 보고

 

芭經一帙誦分明 客駐程忽有情 파경일질송분명 객주정참홀유정

虛閣夜深人不識 半輪殘月已三更 -金笠詩 허각야심인불식 반륜잔월이삼경 -김립시

難掩長程十目明 有情無語似無情 난엄장정십목명 유정무어사무정

踰墻穿壁非難事 曾與農夫誓不更 -女人詩 유장천벽비난사 증여농부서불경 -여인시

 

김삿갓=그대가 시경 한 책을 줄줄 외우니,

나그네가 길 멈추고 사랑스런 맘 일어나네.

빈 집에 밤 깊으면 사람들도 모를 테니

삼경쯤 되면 반달이 지게 될 거요.

여인=길가에 지나가는 사람이 많아 눈 가리기 어려우니,

마음 있어도 말 못해 마음이 없는 것 같소.

담 넘고 벽 뚫어 들어오기가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내 이미 농부와 불경이부 다짐했다오.

 

김삿갓이 어느 마을을 지나는데 여인들이 논을 메고 있었다. 그 가운데 한 미인이

시경을 줄줄 외우고 있어서 김삿갓이 앞구절을 지어 그의 마음을 떠 보았다.

그러자 여인이 뒷구절을 지어 남편과 다짐한 불경이부(不更二夫)의 맹세를

저 버릴 수 없다고 거절하였다.

 

 

詠影-그림자

 

進退隨莫汝恭 汝酷似實非농 진퇴수농막여공 여농혹사실비농

月斜岸面篤魁狀 日午庭中笑矮容 월사안면독괴상 일오정중소왜용

枕上若尋無覓得 燈前回顧忽相逢 침상약심무멱득 등전회고홀상봉

心雖可愛終無信 不映光明去絶踪 심수가애종무신 불영광명거절종

 

들어오고 나갈 때마다 날 따르는데도 고마워 않으니,

네가 나와 비슷하지만 참 나는 아니구나.

달빛 기울어 언덕에 누우면 도깨비 모습이 되고,

밝은 대낯 뜨락에 비치면 난쟁이처럼 우습구나.

침상에 누워 찾으면 만나지 못하다가,

등불 앞에서 돌아보면 갑자기 마주치네.

마음으로는 사랑하면서도 종내 말이 없다가,

빛이 비치지 않으면 자취를 감추네.

 

아직 그의 파격적인 희롱의 시편들을 예감하기에는 이르다.

그의 마음 가운데 잉태하고 있는 시의 파괴적인 상태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다만 시의 내용에서 어떤 우수나 비애도 내비치지 않은 냉철한 서술이 있는데

바로 이 서술에서 그의 장난스러운 상상력을 얼핏 내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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