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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명상 목회 칼럼

기도의 우상화를 경계하며 - 윤명상

by 石右 尹明相 2015. 7. 25.

 

 

 

기도의 우상화를 경계하며

 

 

인터넷 검색창에 기도응답의 비결을 쓰면

그와 관련된 글이 끝도 없이 이어져 나옵니다.

기도에 대한 응답에 무슨 비결이 있을 수 있으며

또한 그 같은 자극적이고 충동적인 제목을

굳이 붙여야 할 이유가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기도응답의 비결이라는 말은 달리,

밥 먹으면 배부르다는 말과 같은 것입니다.

당연히 밥을 먹으면 배부른 것이 기정사실이듯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에서 나누는 기도에는

굳이 응답이라는 말 자체가 의미가 없습니다.

 

왜냐면 기도는

하나님과의 인격적이고 의지적인 대화인데

응답이 없는 대화란 이미 기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기도는 이미 응답이 전제되어 있고

그러한 믿음과 신뢰에서 하는 것이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어떤 방법이나 수단이 비결이라는 이름으로

기도에 동원되고 적용되어 응답에 이르러야 한다면

그것은 정상적인 기독교의 신앙이 아닙니다.

 

응답의 비결이니 축복의 비결이니 하여

비결이라는 그럴듯한 속임수로 설교하는 것은

하나님을 기만하고 성도들을 우롱하는 행태입니다.

기도의 응답에는 어떤 비결이 아닌

신자 개개인의 순수한 믿음이면 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때로는 기도응답 받으라고 명령을 하거나

권면 조로 설교하는 경우도 봅니다.

그러나 그것은 다름 아닌 사이비입니다.

기도응답의 비결이나 기도응답 받으라고 명령할 게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순수한 믿음을 권면해야 합니다.

기도의 응답은 어떤 비결을 동원하여 이루어 내는

개개인의 노력의 결과가 아니고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이고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는 기도응답을 위해

헌금을 하라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

이는 명백한 사기입니다.

 

한국교회는 기도를 마치 무소불위의 존재처럼

각색하여 가르치고 선포합니다.

그래서 기도만 하면 만사형통하고 무병장수하고

안될 게 없는 무형의 우상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렇다 보니 기도에 쏟는 정성이 남다를 수밖에 없고

그러한 기도의 분위기를 이용하여

비결이라는 포장을 씌워 기도만능을 외치니

허공을 향한 메아리 없는 기도만 난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기도의 응답이란 가장 보편적인 하나님의 은혜의

일부분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밥 먹으면 배부른 것처럼

기도하면 당연히 하나님은 응답하시는 것입니다.

거기에 무슨 비결이 별도로 있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다만 기도를 인간적 욕심으로 하게 되면

기도의 모양은 갖춰졌다 할지라도

기도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것이 반복되면서 종교인으로 전락하는 것입니다.

 

이제 더는 비결이라는 미끼로

신앙을 유린하는 일은 없어야겠습니다.

기도는 단지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행위이지

기도 자체가 권능이 있다거나 응답을 주는

주체가 아니기에 비결을 운운할 일도 아닙니다.

더 이상 비결이라는 말에 현혹되지 맙시다.

 

 

2015. 7. 25 / 새생명교회 윤명상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