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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명상 목회 칼럼

하향운동성(下向運動性)을 지향하며 - 윤명상

by 石右 尹明相 2016. 6. 27.

 

 

 

 

하향운동성(下向運動性)을 지향하며

 

 

헨리 누웬(Henri J. M. Nouwen)의 글에

‘하향운동성’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하향운동성이란 ‘낮은 데로 향하고자 하는 성질’을 의미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회규범처럼 되어 버린

상향운동성에 익숙해져 있고 그 같은 가치를

인생의 목표와 덕목으로 여기고 있는 사회에서

하향성을 지향한다는 것은 아둔하고 불건전하고

심지어 어리석음으로까지 간주되지만

긍휼의 삶은 바로 하향운동성의 삶에 있다고

헨리 누웬은 강변합니다.

 

높은 보수를 주는 일자리가 있는데

누가 기꺼이 낮은 보수를 주는 일자리를 택하겠습니까?

부를 잡을 수 있을 때 누가 가난을 택하겠습니까?

같은 시간에 많은 사람을 도울 수 있을 때

누가 큰 곤경에 처한 한 사람과 함께 있기를 택하겠습니까?

사방에서 시급한 요구들이 밀려드는데

누가 고독과 기도의 자리로 물러가기를 택하겠습니까?

이러한 반문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당연한 인식이고 현상입니다.

 

헨리 누웬도 평생 동안 "더 높이 올라가라"는

선의의 격려를 수없이 받아왔다고 말하는데,

이는 누구라도 귀가 따가울 정도로 듣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흔히 하는 덕담에는

성공해라, 부자가 되라, 출세해라, 으뜸이 되라,

혹은 교회나 목회자들에게는 목회 성공해라,

큰 교회를 이루어라, 훌륭한(유명한) 목사가 되라, 등등

거의 모두가 상향운동성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상향운동성의 격려나 충고는

결코 복음도 아니고 기독교의 가치도 아닙니다.

교회행사 때 빠지지 않는 축사나 격려사에는

어김없이 상향운동성의 발언들이 쏟아져 나오지만

정작 가슴에 새겨들어야 할 통절한 권면은 부족합니다.

 

예수님은 역설적으로 말씀하십니다.

낮아지라고, 섬기는 자가 되라고, 세상에 대하여 가난해지라고,

살고자 함이 아닌 죽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라고,

심지어 ‘자기 생명을 사랑하지 말고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라’고…

또한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라’ 하셨고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종이 되어야 한다’면서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정신이고 가치입니다.

하향운동성의 길은 예수님이 걸어가신 길이며

예수님이 우리에게 분부하신 길입니다.

이는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기 위한

긍휼을 구하는 모든 교회가 가야 할 길입니다.

 

주님이 보여주셨고 교회가 가야 할 하향운동성의 길은

추하거나 부끄럽지도, 실패이거나 무능력의 결과도 아닙니다.

오히려 믿음으로만 갈 수 있는 십자가의 길이요

진정 생명과 면류관의 길인 것입니다.

 

근래 담임목사의 갑질이 노란이 되고

기관이나 총회의 회장이 되려고 선거부정이 난무하는 시대에

반드시 교회가 실현해야 할 낮아짐의 정신,

그것이 바로 하향운동성의 마음입니다.

 

이제라도 한국교회는 낮은 데로 향해 가야합니다.

세상은 치열하게 상향운동성에 매달린다 하더라도

교회만큼은, 목사들만큼은

묵묵히 주님을 따라 철저히 낮아져야 합니다.

그렇게 낮아지다 보면

비로소 세상을 밝히는 빛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2016. 6. 27  새생명교회 윤명상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