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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詩 같은 삶을 위하여
☞ 윤명상 목회 칼럼

‘기도’를 오해하고 있는 현대교회 - 윤명상

by 石右 尹明相 2016. 9. 24.

 

 

 

기도를 오해하고 있는 현대교회

 

 

“100일 기도를 해보셨습니까?

이번에 용기를 내서 우리 함께 갑시다.

기도의 불을 켭시다.

불이 꺼져있으면 아무 것도 안 됩니다.

불이 켜지면 모든 것이 움직입니다.

성령의 불길이 어둠과 죽음을 몰아냅니다.

염려하지 말고 기도의 불을 켭시다.

우리 인생이 밝아오고 교회가 살고 민족이 살아날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이 응답하십니다.

우리 모두 기도의 불을 켭시다.”

 

최근 유명 기독카페에서 이메일로 발송된 글입니다.

굳이 토를 달며 왈가왈부할 정도로

이슈가 되거나 심도 있는 글은 아니지만

그러나 일반적인 기독교인들의 기도에 대한 이해와

신앙관을 대변하고 있기에 언급하고자 합니다.

 

먼저, 기도란

행위가 아닌 관계라는 점을 생각해야 합니다.

무릎 꿇고 손을 모으며 눈을 감는 것은

기도 자체가 아니라 기도를 위한 행위에 불과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기도의 자세를 보시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는 마음의 그 진실성을 보시는 것입니다.

 

더더구나 100일 기도, 1000일 기도니 하는 것은

샤머니즘적 신앙의 산물일 뿐입니다.

응답이나 하나님의 특별한 역사를 위해

100일 기도를 해야 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빙자한 종교적 술수이고 기만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영적이며 은밀한 교류이고

무한한 구속적 은혜의 관계이지

짜여진 각본에 의한 도전이나 성취가 아닙니다.

 

또한 기도란

용기를 내서 도전해야 할 과제가 아닙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친밀한 대화이고 교제이지

큰 맘 먹고 도전하거나

‘100일 동안 기도를 해야겠다는 다짐으로

실천해야 하는 단기적 목표가 되어서도 안 됩니다.

 

기도는 성령 안에서 무시로 이루어지는 영적 호흡이며

믿음의 생명력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더구나 기도를 전시용으로 만들어

자기만족에 빠지는 일이 있어서도 안 됩니다.

 

기도의 불을 켜자고 하는 말은

정상적인 성도들에게는 필요 없는 말입니다.

이는 건강한 일반 사람들에게

'호흡하라'고 다그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스스로 호흡을 포기해서 호흡곤란이 왔다면 몰라도

왕성하게 호흡하는 사람에게 호흡하라는 요구는

전혀 의미도 없고 필요도 없는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기도는 하나님과의 영적 호흡이고

건강한 성도의 기본인데,

기도의 불을 켜자고 하는 것은 결국,

행위를 위한 기도로서 신앙적 외식을 부추길 뿐입니다.

 

기도를 하면 우리 인생이 밝아오고

교회가 살고 민족이 살아날 것이라는 주장으로

결국은 기복신앙이 기도의 목적임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현대교회는 기도를 마치 도깨비방망이로 인식하여

기도만 하면 무엇이 성취되고 잘 된다는 입발림으로

기도에 온 정성을 쏟게 하는 모습을 봅니다.

게다가 한국교회만큼

기도를 많이하고 한 세기에 걸쳐 열정적으로

기도를 이어가고 있는 곳이 있을까요?

 

그럼에도 한국교회는 점점 세속화되고

인본주의로 치달아가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결국 경건이 전제된 하나님과의 영적 소통을 위한 기도가

인간의 욕망을 이루는 수단과 방법으로 전락된

기도에 대한 오해와 그릇된 인식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응답을 전제로 기도하는 것은

올바른 기도의 태도가 아닙니다.

응답은 하나님의 구속사의 기본이며

특별함이 아닌 보편적 은혜의 범주인 것입니다.

 

응답은 이미 하나님과의 대화 속에 있음을 알고

무시로 성령 안에서 하나님과 교제하며

영적으로 깨어 있는 성도가 되었으면 합니다.

 

 

2016. 9. 24 / 새생명교회 윤명상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