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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가을날의 편지 - 윤명상

by 石右 尹明相 2021. 10. 27.

 

어느 가을날의 편지

       / 석우 윤명상

 

어느 가을날,

소녀의 슬픈 편지를 받았습니다.

중학교 졸업반,

겨울방학과 함께 식모로 간다며

식모살이 잘할 수 있게 기도해 달라더군요.

 

이름처럼 마음씨도 고왔던 소녀.

어려운 집안 형편에

어린 동생들을 위한 거라며

열다섯 살 소녀는

복잡한 소회를 구구절절 늘어놓았습니다.

 

그러면서 기회가 되면

다시 편지하겠다는 그 가을의 약속은

내가 주소를 옮긴 탓도 있었겠지만

낙엽처럼 지고 말았습니다.

 

지금쯤 중년이 되고

아이들의 엄마가 되었을 35년 전

애써 미소 짓던 소녀,

그 이름 황진이.

 

언제나 가을이 되면

그의 슬픈 눈망울은

찬바람처럼 내 마음에 파고들며

35년을 기도하게 했습니다.

 

내 가슴에 새겨진 그의 슬픈 여운이

이제는 국화꽃 같은 웃음으로

바뀌었으면 싶습니다.

그게 언제쯤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