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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詩 같은 삶을 위하여
☞ 문학의 뜨락

어머니에 관한 시·동시 모음

by 石右 尹明相 2022. 6. 28.

 

 

어머니에 관한 시·동시 모음

 

 

​◈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 심순덕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루 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찬밥 한 덩이로 대충 부뚜막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한겨울 냇물에 맨손으로 빨래를 방망이질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부르다 생각 없다 식구들 다 먹이고 굶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발뒤꿈치 다 헤져 이불이 소리를 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손톱이 깎을 수조차 없이 닳고 문드러져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화내고 자식들이 속 썩여도 전혀 끄떡없는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외할머니 보고 싶다. 외할머니 보고 싶다,

그것이 그냥 넋두리인 줄만

 

한밤중 자다 깨어 방구석에서

한없이 소리 죽여 울던 엄마를 본 후론

 

!

엄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니께 드리는 노래 / 이해인

 

어디에 계시든지

사랑으로 흘러

우리에겐 고향의 강이 되는

푸른 어머니

 

제 앞길만 가리며

바삐 사는 자식들에게

더러는 잊혀지면서도

 

보이지 않게 함께 있는 바람처럼

끝없는 용서로

우리를 감싸안은 어머니

 

당신의 고통 속에 생명을 받아

이만큼 자라 온 날들을

깊이 감사할 줄 모르는

우리의 무례함을 용서하십시오

 

기쁨보다는 근심이

만남보다는 이별이 더 많은

어머니의 언덕길에선

하얗게 머리 푼 억새풀처럼

흔들리는 슬픔도 모두 기도가 됩니다

 

삶이 고단하고 괴로울 때

눈물 속에서 불러보는

가장 따뜻한 이름, 어머니

 

집은 있어도 사랑이 없어 울고 있는

이 시대의 방황하는 자식들에게

영원한 그리움으로 다시 오십시오, 어머니

 

아름답게 열려 있는 사랑을 하고 싶지만

번번히 실패했던 어제의 기억을 묻고

우리도 이제는 어머니처럼

살아있는 강이 되겠습니다

 

목마른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푸른 어머니가 되겠습니다

 

 

건강하세요 어머니 / 용혜원

 

​​세파에 시달려 늘 뼈골이 아프시면서도

쉴 겨를 없이 움직이며 일하시는 어머니

 

"몸이 좀 어떠세요?" 물으면

"난 괜찮아 견딜만해, 너는 어떠냐?"

하시는 어머니

 

어느 한순간 지난 듯한 삶의 여정에서

늙으신 어머니에게

삶의 흔적인 주름살과

아픔만이 찾아왔다

 

다섯 자식 어린 시절

어머니 손잡고 다니길 원하고

어머니가 목욕 시켜주길 바라고

어머니 젖가슴 만지고 잤는데

 

어느 사이에 어머니보다

더 키가 큰 어른이 되어버렸습니다

 

 

엄마가 죽으면 / 황금찬

 

수동아!

엄마가 죽으면 어느 곳으로 가는지

알고 있느냐.

 

수동아?

수동이는 엄마가 죽어서 가는 곳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엄마, 엄마가 죽으면 어디로 가?

수동이는 엄마에게 물었습니다.

 

엄마가 죽으면 산으로 간다.

저렇게 푸른 산으로 간단다.

 

산에 가서 뭘 해 엄마

수동이는 물었습니다.

 

뻐꾹새 되지

수동이가 보고 싶을 땐

언제나 우는

뻐꾹새가 되지

수동아.

 

그럼 나도 뻐꾹새가 될래

엄마 따라

 

엄마는 큰 뻐꾹새

나는 작은 뻐꾹새

 

뻐꾹, 뻐꾹,

엄마는 뻐꾹새처럼

울어보았습니다.

 

​​

 

어머니 / 박경리

 

어머니 생전에 불효막심했던 나는

사별 후 삼십여 년

꿈속에서 어머니를 찾아 헤매었다

 

고향 옛집을 찾아가기도 하고

서울 살았을 때의 동네를 찾아가기도 하고

피난 가서 하룻밤을 묵었던

관악산 절간을 찾아가기도 하고

어떤 때는 전혀 알지 못할 곳을

애타게 찾아 헤매기도 했다

 

언제나 그 꿈길은

황량하고 삭막하고 아득했다

그러나 한 번도 어머니를 만난 적이 없다

 

꿈에서 깨면

아아 어머니는 돌아가셨지

그 사실이 얼마나 절실한지

마치 생살이 찢겨나가는 듯했다

 

불효막심했던 나의 회한

불효막심의 형벌로써

이렇게 나를 사로잡아 놓아주지도 않고

꿈을 꾸게 하나 보다

 

 

 

엄마의 등 / 한상순

 

새벽 네 시 반이면 문을 여는

김밥 가게

 

가게 주인은 우리 엄마

엄마는 등에 혹이 달린 곱추랍니다

 

다 일어서도 내 키만 한 엄마

김밥 한 줄 꾹꾹 눌러 쌀 때마다

등에 멘 혹이 무거워 보입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엄마의 혹을 살짝 내려놓고 싶습니다

 

끝내 메고 있어야 할 엄마의 혹 속엔

더 자라지 못한 엄마의 키가

돌돌 말려 있을 것만 같습니다

 

나는 도르르 말린 엄마의 키를 꺼내

쭈욱 늘려놓고 싶습니다

 

그래서 하루만이라도

꼭 오늘 하루만이라도 곱추등 쫘악 펴고

한잠 푹 주무시게 하고 싶습니다.

 

 

 

엄마 품 / 전주인

 

친구와 멍이 나도록 싸워도

나는 이 서글픈 마음을

보여 주기 싫어서

나도 모르게 엄마 품에 얼굴을 깊이 묻는다.

 

대회에 꼴등이 돼서 울어도

나는 이 억울한 마음을

숨기고 싶어서

나도 모르게 엄마 품에 얼굴을 감추어

잠에 스르르 빠져든다.

 

엄마의 품은 마음의 약이다.

서글픈 마음, 억울한 마음

남김없이 없애 버린다.

 

 

 

엄마 / 서정홍

 

엄마는 아무리 불러도 좋다.

화나는 일도 짜증나는 일도

'엄마' 하고 부르면 다 풀린다.

 

엄마 곁에 있으면

안 되는 일이 없다.

무서운 게 없다.

 

 

 

바보 천사 / 김원석

 

알면서도

모르는 척

 

듣고도

못 들은 척

 

보고도

못 본 척

 

좋아도

안 좋은 척

 

맛있어도

맛없는 척

 

엄마는

엄마는

그렇게

키웠다.

 

 

 

엄마2 / 곽해룡

 

추운 날씨도 아닌데 엄마는

옷깃을 세우고 모자를 눌러썼어요.

 

엄마, 하고 내가 불러도

못 들은 척 바삐 걷고 있었어요.

 

친구들하고

수업 마치고 나오는 학교 앞길

마스크로 얼굴 가리고

땅만 보며 걷고 있었어요.

 

끌고 가는 손수레에

공장에 가져다 줄

부업 상자가 실려 있었어요.

 

난 아무렇지 않은데

다 알아요,

친구들 보면 내가 창피할까 봐 그런

엄마 마음

 

 

 

/ 이무원

 

어머니 누워 계신 봉분(封墳)

고봉밥 같다

 

꽁보리밥

풋나물죽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픈데

늘 남아도는 밥이 있었다

 

더 먹어라

많이 먹어라

나는 배 안 고프다

남아돌던

어머니의 밥

 

저승에 가셔도 배곯으셨나

옆구리가 약간 기울었다

 

 

 

매달려 있는 것 / 신새별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는 게 뭐지?

나뭇잎.

 

나뭇잎에 매달려 있는 게 뭐지?

물방울.

 

엄마한테 매달려 있는 게 뭐지?

.

 

 

 

어머니 1 / 정한모

 

어머니

지금은 피골만이신

당신의 젖가슴

그러나 내가 물고 자란 젖꼭지만은

지금도 생명의 샘꼭지처럼

소담하고 눈부십니다.

 

어머니

내 한 뼘 손바닥 안에도 모자라는

당신의 앞가슴

그러나 나의 손자들의 가슴 모두 합쳐도

넓고 깊으신 당신의 가슴을

따를 수 없습니다.

 

어머니

새다리같이 뼈만이신

당신의 두 다리

그러나 팔십 년 긴 역정(歷程)

강철의 다리로 걸어오시고

아직도 우리집 기둥으로 튼튼히 서 계십니다.

어머니!

 

 

 

어머니2 / 이창건

 

할아버지 사셨을 적부터 어머님은 광주리 하나로

살림을 맡았습니다.

 

설움으로 얼크러진 머리를

손빗으로 가다듬으며

살림의 틀을 야무지게도 짜냈습니다.

 

, 여름은 푸성귀로

광주리를 채우고

가을, 겨울엔 과일로

광주리를 채웠습니다.

 

그러나 어머님은

그 솔껍질 같은 손으로

광주리 한 구석에

내가 기둥나무로 자라기 바라는

기도를 꼭 담곤 했습니다.

 

내가 이만큼 자랐는데도

오늘 아침

어머님은

내 기도가 담긴 광주리를 이고

사립문을 나섰습니다.

 

 

 

어머니의 바느질 / 석우 윤명상

 

불빛에

바늘귀를 비추며

실을 꿰시던 어머니.

 

찢어진 내 옷에

꿰맨 자국이 남지 않도록

어머니는 마음의 천을 덧대어

한 번 더 기우셨다.

 

그래서인지

세월이 흘러 옷은 낡아 없어졌지만

여전히 꿰맨 자국은

어머니의 눈빛처럼

나의 심장에 남아있다.

 

찢어진 옷이 아니라

당신의 사랑을

나의 심장에 기우셨던

어머니.

 

 

 

엄마/ 김종삼

 

아침엔 라면을 맛있게들 먹었지

엄만 장사를 잘할 줄 모르는 행상이란다

너희들 오늘도 나와 있구나 저물어가는 산허리에

 

내일은 꼭 하나님의 은혜로

엄마의 지혜로 먹을 거랑 입을 거랑 가지고 오마.

 

엄만 죽지 않는 계단

 

 

한 사흘만 / 신달자

- 어머니의 거울 · 12

 

한 사흘만 아니 한 세 시간만 어머니

우리 마주 앉아 이야기할 수 없을까요

그래요 그 많은 이야기 그 시간에

아예 어림없다면

저 봄 동산으로 후다닥 날려 보내고

어머니 무릎 위에 얼굴이나 묻은 채

살 벗겨지도록 억세게 비비고나 싶어요

어머니

 

 

두터운 스웨터 / 문태준

 

엄마는 엄마가 입던 스웨터를 풀어 누나와 내가 입을 옷을 짜네

나는 실패에 실을 감는 것을 보았네

나는 실패에서 실을 풀어내는 것을 보았네

엄마의 스웨터는 얼마나 크고 두터운지 풀어도 풀어도 그 끝이 없네

엄마는 엄마가 입던 스웨터를 풀어

누나와 나의 옷을 여러 날에 걸쳐 짜네

봄까지 엄마는 엄마의 가슴을 헐어 누나와 나의 따스한 가슴을 짜네

 

 

어머니의 밥 / 오봉옥

 

난리를 두 번이나 겪어봐서 안다

이 세상에 목숨 붙이고 사는 일보다 중요한 거 없다

잡상인으로 살며 사흘 걸러 잡혀가면서도

눈물 한 번 흘리지 않았다

잡아가는 순사도 지쳐 멀리서 호루라기 불었다

자식 놈 밥 넘어가는 소리 들으며

빈 수저로 허공을 퍼 올려 배를 채우던 엄니에게

밥은 무엇이었을까

먹어도 먹어도 허기진 세월,

난 늙은 엄니가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눈밥을 떠먹는 걸 본 적이 있다 그리고

제 몸의 살점을 뚝 떼어내 자식들 입에 떠 넣어주는 일을

난 그저 거룩하다는 말로 포장해 왔다

 

 

조묵단전() / 문인수

- 창밖 목련

 

어머니, 내 옆자리에 와 앉는다.

방금 했던 말, 날 보며 또

밥 먹었느냐, 묻고

앉는다. 가죽 소파 둔한 반동에 닿으며 나는

공중으로 약간 부풀어

피어오르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을 받았다.

 

작은 키에 꼿꼿이 마른 체구, 아흔여덟 연세에 무슨

힘이 있겠냐만, 새삼

날 낳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는 것 같다.

 

환갑 지난 내 몸무게가 방금,

창밖

목련 피는 환한 시늉을 겪었다.

 

 

어머니 / 이성부

 

그 겨울 아침 함박눈 내려쌓이던 골목

뒤돌아보며 바쁜 걸음

모퉁이 사라지시던 어머니,

박수근의 기름 장수 목판화 한 폭으로 살아서

오늘은 내 책상머리를 울고 가시네.

함박눈 아니라도 좋아라.

소나기 아니라도 좋아라.

흩날리는 꽃이파리 아니라도 좋아라.

하늘 가득히 내리는 말씀 아래

굵게 패인 刻刀 자국 속에

불끈 쥔 두 주먹 걷어붙인 팔뚝

멀리서 오는 기차 소리를 들으며

신병이 되어 떠나간 아들을 생각하고

철없이 구는 어린것들을 생각하고

흰 눈에 각혈 한 번 하고

한세상 가슴앓이 눈 들어 먼 산을 바라보시네.

어떤 모진 6·25로도 어떤 불행으로도

빼앗길 수 없었던 목숨 질긴 목숨

오늘은 서울 모래내에서 문산 가는 기차 소리를 들으며

내 책상머리 울고 가시네.

 

 

어머니 / 류시화

 

시가 될 첫 음절, 첫 단어를

당신에게서 배웠다

감자의 아린 맛과

무의 밑동에서 묻은 몽고반점의 위치와

탱자나무 가시로 다슬기를 뽑아 먹는 기술을

그리고 갓난아기일 때부터

울음을 멈추기 위해 미소 짓는 법을

내 한 손이 다른 한 손을 맞잡으면

기도가 된다는 것을

당신은 내게 봄 날씨처럼 변덕 많은 육체와

찔레꽃의 예민한 신경을 주었지만

강낭콩처럼 가난을 견디는 법과

서리를 녹이는 말들

질경이의 숙명을 받아들이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내 시는 아직도

어린 시절 집 뒤에 일군 당신의 텃밭에서 온다

때로 우수에 잠겨 당신이 바라보던 무꽃에서 오고

비만 오면 쓰러져 운다면서

당신이 일으켜 세우던 해바라기에서 오고

내가 집을 떠날 때

당신의 눈이 던지던 슬픔의 그물에서 온다

당신은 날개를 준 것만이 아니라

채색된 날개를 주었다

더 아름답게 날 수 있도록

하지만 당신의 경사진 이마에

나는 아무것도 경작할 수 없다

삶이 파 놓은 깊은 이랑에

이미 허무의 작물이 자라고 있기에

 

 

어머니 독에 갇혀 우시네 / 유홍준

 

어머니 커다란 독에 갇혀

우시네 엉덩이가 펑퍼짐한 어머니

텅 빈 독 속에 갇혀 우시네

똬리 틀고 들어앉아

우시네 자식을 일곱이나 낳은

어머니 아랫배가 홀쪽한 어머니

배암으로 우시네 두꺼비로 우시네

마른 바람의 혓바닥으로 우시네

텅 텅 독을 빠져나갈 수가 없어서

텅 텅 텅 텅 빈 독 두드리며 우시네

속절없이 먼 하늘 바라보면 우시네

일흔 살 어머니 두드리면

댕그랑 댕그랑 맑은 울음 우는 빈 독

, 손마디로 두드리며 묻네

간장 같은 된장 같은 어머니, 거기 계셔요?

 

 

꽃이 부끄러워할 때 / 고영

 

보풀 같은 숨소리가

,

,

끊어집니다

 

어머니는 자꾸 종이 기저귀를 뜯어냅니다

마른 지푸라기 같은 손으로 기저귀에 묻은 똥꽃을 쓸어냅니다

기저귀를 들춰낼 때마다

열일곱 살 섬 처녀가, 서른 살 종갓집 맏며느리가,

여든 살 새색시가 붉게 물들어갑니다

기어이 울음보가 터집니다

꺼이꺼이, 스스로 꽃 속에 갇혀 웁니다

 

꽃이 부끄러워할 땐

다 큰 아들도 외간 남자입니다

 

 

어머니, 여자 / 복효근

 

어머니 혼자 기저귀를 가신다

스스로 아기가 되어

쭈그리고 앉아 기저귀를 가신다

 

어머니는 여자였구나

 

아버지가 나를 만드실 나이의 아버지가 된 내게

각시처럼 부끄러워서 불도 켜지 않은 채

앙상한 엉덩이뼈를 감싼다

 

업거나 안고서

어디로 데려가겠다는 것 같다

그 어디에 가서는 진짜 아기가 될 것이다

 

죽음의 둘레가 만삭이다

산통이 좀 길다

 

수의를 입히며/ 고정희

 

논두렁 밭두렁에 비지땀을 쏟으시고

씨앗 여물 때마다 혼을 불어넣으시어

구릿빛 가죽만 남으신 어머니,

바람개비처럼 가벼운 줄 알았더니

어머니 지신 짐이 이리 무겁다니요

날아갈 듯 누우신 오척 단신에

이리 무거운 짐 벗어놓고 떠나시다니요

이 짐을 지고 버티신 세월

억장이 무너지고 넋장이 부서집니다

구멍이란 구멍에 목숨 들이대시고

바람이란 바람에 맨가슴 비비시어

팔남매 하늘을 떠받치신 어머니,

당신 칠십 평생 동안의 삶의 무게가

마지막 잡은 손에 전류처럼 흐릅니다

당신 칠십 평생 동안에 열린 산과 들의 숨소리가

마지막 포옹에 화인처럼 박힙니다

얘야, 나는 이제 너의 담벼락이 아니다

나는 네가 머물 반석이 아니다

흘러라

내가 놓은 징검다리 밟고 가거라

되돌아보는 것은 길이 아니여

다만 단정하게 눈감으신 어머니

아흐,

우리 살아생전 허물과 죄악을

당신 품속에 슬며시 밀어 넣고

베옷 한 벌로 가리워드립니다

그래도 마다 않고 길 뜨시는

어머니

 

 

상여 / 김선태

 

어머니 가시네, 저기

저수지 가으로 이어진 황톳길 따라

어머니 허리처럼 아득히 휘어져 가시네.

 

하늘은 하, 푸르고 막막하고

저수지 물빛도 저리 차고 맑으니

어머니 산국화 꺾어 머리에 꽂으시고

육자배기 한 자락 길게 날리며 가시네

만고강산 벗님네야 춤추며 가시네.

 

억새꽃 물결치는 늦가을 공동묘지

포크레인이 파놓은 붉은 저 흙자리

어머니 들어가 사뿐히 누우시네

생전의 보퉁이 끝끝내 끌어안고

어머니 흙이불 소복 덮으시네.

 

어머니 오시네, 다시

돌아오는 길목 풀벌레 울음 자지러지는데

어머니 마을 앞산 흰 초승달로 걸리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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