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石右의 시방1595 나무에게 묻다 - 윤명상 나무에게 묻다 / 석우 윤명상 나무는 스쳐 간 바람을 그리워할까? 가지에 앉아서 잠시 울다간 새를 기억할까? 바람은 스쳐왔던 나무를 기억할까? 잠시 앉았던 나뭇가지를 새는 그리워할까? 나무를 바라보며 내가 그랬던 것처럼 나는 나의 그리움을 생각한다. 어쩌면 나무가 저리 쉬지 않고 몸을 흔드는 것은 스쳐 간 모든 바람이 그리운 까닭이고 매년 조금씩 까치발을 하는 것은 떠나간 새를 기다리는 몸짓이리라. 세월의 바람에 스친 나의 마음도 지금 나뭇가지처럼 흔들리고 있다. 2021. 6. 9. 산다는 것 - 윤명상 산다는 것 / 석우 윤명상 당신이 곁에 있을 때는 부족한 것을 몰랐습니다. 사랑도 기쁨도 웃음도, 당신이 떠난 뒤에야 부족하지 않다고 여겼던 그 모든 것이 사실은 부족하다는 것을 비로소 알았습니다. 마주보며 웃던 것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음식을 먹던 일조차 당신이 떠나고 보니 아쉬울 만큼 너무 부족합니다. 한 번 더 손을 잡지 못한 한 번 더 말을 걸지 못한 한 번 더 웃어주지 못한 한 번 더 안아주지 못한, 아, 산다는 것은 그렇게 부족함을 그리움으로 조금씩 채워가는 것인가 봅니다. 2021. 6. 4. 6월을 맞으며 - 윤명상 6월을 맞으며 / 석우 윤명상 이런 봄비는 처음 본다 싶었는데 다 이유가 있었던 게다. 오월의 끝자락에서 정신 사납게 쏟아붓던 비는 봄날의 고별사였다. 그리고 이제 6월, 마음이 사뭇 경건해지는 것은 봄의 흔적을 말끔히 씻어내고 신록의 계절을 맞은 때문이리라. 봄이 떠난 자리에는 이제, 성장통을 이겨낸 싱그러운 청춘과 꽃 진 열매를 위한 새로운 도약이 있을 뿐이다. 2021. 6. 2. 아카시아꽃의 추억 - 윤명상 아카시아꽃의 추억 / 석우 윤명상 산비탈의 오월을 하얗게 물들인 아카시아꽃을 보노라면 가슴속의 추억이 파랗게 돋아난다. 소를 몰고 풀을 뜯기며 간식을 먹듯 아카시아꽃을 따서 군것질을 하던 달콤한 어린 시절과 한 소쿠리 아카시아꽃을 따다가 쌀가루에 버무려 설기를 만들어 주시던 어머니의 미소. 그렇게 오월의 산언저리는 아카시아꽃이 어머니의 미소로 피어나는 추억의 책장이다. 2021. 5. 17. 죽순 앞에서 - 윤명상 죽순 앞에서 / 석우 윤명상 범상치 않은 기개로 맨땅을 꿰뚫고 올라오는 싹수 좋은 너, 그곳이 마른 땅이든 하물며 딱딱한 길바닥이든 거침없이 고개를 내민다. 며칠 사이 배냇저고리 벗어버리고 의젓한 나무가 되어서도 속은 비우고 처음 모습 그대로의 올곧은 자세가 아름답다. 2021. 5. 13. 인생의 책갈피 - 윤명상 인생의 책갈피 / 석우 윤명상 인생은 한 권의 책을 쓴다. 한 장 한 장 페이지가 추가될 때마다 책갈피에는 삶의 흔적이 머문다. 태양과 먹구름 눈보라와 빗방울 사랑과 미움 그대와의 소소했던 희로애락은 책을 이루는 뼈대다. 책의 두께보다는 책갈피 사이의 사연들이 더 의미 있게 우리 인생의 가치를 말해주리라. 2021. 4. 19. 꽃 한 송이 - 윤명상 꽃 한 송이 / 석우 윤명상 옷감을 재단하거나 무늬를 디자인도 없이 하룻밤 새, 뚝딱 예쁜 꽃송이를 저리도 많이 만들어 놓았다. 꽃 한 송이 만들지 못하는 만물의 영장이라니 이름도 없는 작은 들꽃에도 머리 숙여 우러러볼 일이다. * 동구문학 제 22호에 수록 2021. 4. 13. 꽃이 진다 - 윤명상 꽃이 진다 / 석우 윤명상 한 주간 가슴 설레게 하던 예쁜 꽃들이 하나둘 시야에서 사라져간다. 일 년 열두 달 피어있으면 좋으련만 어쩌랴, 꽃잎을 떨궈야만 열매를 맺을 수 있으니. 2021. 4. 6. 봄이니까 - 윤명상 봄이니까 / 석우 윤명상 아픔도 슬픔도 이젠 다 잊을 때다. 혈기를 되찾고 꽃을 피우는 나무처럼. 원망도 미움도 이젠 다 잊을 때다. 마른 가지에서 불쑥 고개를 내미는 연둣빛 새순처럼. 아픔과 미움이 없는 삶이 세상, 어디 있으랴. 꺾이고 밟혀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것은 봄이니까 가능한 일이다. * 문학사랑 2022년 봄호(139)에 수록 2021. 3. 27. 호반의 봄날 - 윤명상 호반의 봄날 / 석우 윤명상 버들강아지 통통하게 살찐 대청호를 찾았다. 봄 가뭄에 속살을 드러낸 호반의 텅 빈 가슴은 사랑의 깊이리라. 채우기보다 아낌없이 자신을 내어주는 어머니의 속마음처럼, 드러난 뭍을 넘지 않을 만큼 욕심으로 품더니 이젠 사랑으로 다 내어주고 흥겨운 노래를 부른다. 2021. 3. 26. 버스를 기다리며 - 윤명상 버스를 기다리며 / 석우 윤명상 버스를 기다려본 사람은 안다. 그 지루하고 더딘 시간을, 눈치 없이 쏜살같던 세월도 기다림에 붙잡혀 굼벵이가 된다. 평소에는 빠른 세월을 탄식하다가도 정작 기다림의 시간이 되면 그 더딤을 푸념하지 않았던가. 오늘처럼 몇 분의 기다림이 마음에서는 몇 시간이었던 것처럼 그렇게, 마음의 시간으로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2021. 3. 11. 봄비처럼 - 윤명상 봄비처럼 / 석우 윤명상 봄비는 홍수가 되지 않고 봄바람은 태풍이 되지 않는다. 아무리 밀려들고 쌓여도 마음을 넘지 못하는 그리움처럼. 2021. 3. 5. 일상의 의미 - 윤명상 일상의 의미 / 석우 윤명상 산과 나무 하늘과 구름 흔들리는 바람 그리고 스쳐 가는 사람들, 흔하디흔한 일상을 생각의 주머니에 담는다. 조용한 시간, 주머니 속의 생각을 꺼내어 몇 번이고 가슴에서 되새김한다. 그렇게 곰삭은 생각에 마음의 옷을 입히면 하나 버릴 것 없는 나만의 특별한 시가 되고 의미가 된다. 2021. 3. 2. 비 다음에 눈 - 윤명상 비 다음에 눈 / 석우 윤명상 어제는 비가 내리더니 오늘은 눈이 내린다. 어제는 봄날이었고 오늘은 한파주의보다. 하루 사이에 어찌 저리 변할 수 있겠느냐 하겠지만 인생이란 그런 거다. 따뜻할 때가 있으면 추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면 슬플 때도 있는 것. 네 마음이 변한 듯싶어 서운했지만 사실, 알고 보면 네가 아닌 내가 변한 것이었음을 날씨를 보며 알았다. 어제와 오늘이 전혀 다른 성깔로 바뀌는 것처럼. 2021. 2. 16. 떡국 - 윤명상 떡국 / 석우 윤명상 어릴 때는 나이 한 개 더 먹는 재미로 설날 아침, 떡국을 먹었다. 때로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몇 개의 나이를 한꺼번에 먹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쌓여 온 나이가 무거워 그만 먹고 싶은데 설날 아침이면 어김없이 먹음직스러운 나이가 밥상 위에 차려진다. 2021. 2. 12. 로드킬 - 윤명상 로드킬 / 석우 윤명상 가도 되는 길인지 가면 안 되는 길인지 분간하지 못한 때문일까. 아니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제멋대로 가려던 때문일까. 한밤중 멧돼지들이 도로에서 유명을 달리했다는 뉴스를 접하는 순간 무모한 욕망의 질주가 고삐 풀린 권력과 다르지 않다는 걸 느꼈다. 저돌적인 힘도 멈출 때가 있고 질주본능은 오히려 자신의 발목을 잡는 올무였다. 어디, 동정도 없는 죽음뿐이랴. 뉴스가 끝나고 나면 그 모든 게 잊힌다는 것. 2021. 2. 5. 그리운 향기 - 윤명상 그리운 향기 / 석우 윤명상 손자 손녀가 태어나고 가끔 찾아올 때면 아내의 잔소리는 추가된다. 씻었어? 아이들이 노인 냄새를 싫어한다며 하는 말이지만 나는 지금, 그 노인 냄새가 그리운 나이다. 오래전 떠나가신 임들의 체취를 다시 느낄 수 없다는 것이 내게는 슬픔이지만 아이들을 위해 그 향기를 씻어내야만 한다. 2021. 2. 2. 또 다른 봄을 기다리며 - 윤명상 또 다른 봄을 기다리며 / 석우 윤명상 아, 봄! 기다림이 항상 기쁨인 것만은 아니다. 그토록 두 손 모아 간절했던 것일수록 더 큰 아픔이 되는 것은 기대의 순수함만큼 기다림의 실체가 순수하지 못한 까닭이다. 그럼에도 봄을 기다리다 그 봄에 상처받는 일이 반복되는 것은 사무친 기다림에 실바람조차 봄이라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2021. 2. 2. 겨울비 내리는 날 - 윤명상 겨울비 내리는 날 / 석우 윤명상 북극보다 추운한파에 놀란 마음을달래기라도 하듯비를 뿌리며 겨울이감성팔이를 한다. 마냥 추운 것만은 아니라며매섭고 차가운 것이겨울의 전부는 아니라며부슬부슬 비를 뿌린다. 비가 그치고 나면다시 한파라는데겨울은 또 어떤 모습으로어떤 감성을 보여줄까. 꽁꽁 얼어붙던지펑펑 눈을 뿌리던지오늘처럼 비를 쏟아내던지겨울은 겨울 나름의다양한 사색을 한다. 2021. 1. 26. 원망하지 마라 - 윤명상 원망하지 마라 / 석우 윤명상 봄에는 꽃샘추위가 있듯이 여름에는 태풍이 있듯이 가을에는 찬서리가 있듯이 겨울에는 한파가 있듯이 인생에도 돌풍이 있는 법이다. 계절은 꽃샘추위를 탓하지 않고 태풍과 서릿발을 나무라지 않고 한파를 원망하지 않듯 돌풍도 묵묵히 견딜 일이다. 꽃샘추위가 있어 봄은 더 분명해지고 태풍을 맞으며 여름은 제정신을 차리고 서리가 있어 가을은 더 선명해지고 한파가 있어 겨울은 비로소 겨울다워지듯 돌풍이 있기에 인생은 꽃을 피울 수 있는 것이다. 2021. 1. 19. 대가가 있다는 것 - 윤명상 대가가 있다는 것 / 석우 윤명상 세상 모든 일에는 크고 작은 대가를 동반한다. 아롱아롱 내리는 함박눈은 그 자체만으로 예술이고 감동이며 멋진 시가 되지만 그 낭만 때문에 친구와의 약속을 미뤄야 했다. 폭설에 미끄러운 길이며 눈 녹은 질퍽한 도로는 낭만을 위한 대가였다. 대가의 크기는 존재의 가치를 가늠하기에 대가를 치르는 일은 그 달콤함을 누리는 일이다. 대가는 대게 반대편에서 온다. 눈물과 기쁨, 고생과 성공, 인내와 행복처럼. 2021. 1. 18. 이전 1 ··· 22 23 24 25 26 27 28 ··· 76 다음